소설리스트

득템왕-58화 (58/350)

58화 첫 현금화 (1)

새벽부터 오전이 끝나기까지, 오크 땅굴에서 사냥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공동의 몹들을 전부 다 처치하고 나면 비슷한 구조의 두 번째 공동이 또 나왔는데, 이곳의 몹까지 잡고 나면 길이 끝나는 곳에 오크 제사장 ‘울타’가 나왔다.

아무래도 보스 몹인만큼, 아직 레벨 차이가 많이 나는 지금은 도전하기 이른 것 같아 굳이 트라이 해보진 않았다.

어차피 잡히기 시작한 순간부터는 질리도록 사냥할 녀석.

그때가 되기까지는 서둘러 레벨업부터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랜포드의 방패 돌격이 상당히 쓸 만했기에 다시 차출해서 몹몰이 사냥을 반복하던 도중, 갑작스럽게 전체 알림창이 떠올랐다.

[타이탄 연대기에 새로운 국가 ‘리버스’가 건국되었습니다.]

[‘리버스’ 국을 건국한 초대 국왕은 ‘피닉스’ 길드의 ‘지옥불’ 님입니다.]

유저가 세운 두 번째 국가, 리버스(rebirth)의 탄생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국가가 되면 세금이 2배로 걷히니 절차를 빠르게 밟을 거라곤 예상했지만, 이렇게 바로 다음 날 조용히 건국할 줄은 몰랐다.

‘하긴 대관식 같은 낯간지러운 짓은 다리우스나 하는 짓이겠지. 하여간 점잖은 척하면서 관종 짓과 역할극 놀이는 제일 열심히 하는 놈이라니까?’

다리우스는 지가 무슨 왕족이라도 되는 양, 사용하는 말투부터가 기분 나쁜 허세로 가득 찬 놈이었다.

반면 내가 만나 봤던 지옥불은 20여 년간 게임 업계에서 수많은 풍파를 겪은 노련미가 넘쳐흘렀다.

그런 사람답게, 효율성을 추구했을 것이고 그래서 이렇게 건국을 빨리 선포한 듯싶었다.

이로써 타연 속 국가는 벌써 2개.

평범한 유저들은 그 안에 숨은 의미를 모르겠지만 난 알고 있다.

국가가 줄곧 한 개였다면 당분간 비밀인 상태로 유지될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 둘이나 됐으니 서서히 알려지게 될 것이다.

유저도 국가 단위부터는, ‘타이탄’을 직접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러니 지금처럼 랭커들을 쫓아가기만 해서는 안 된다.

따라잡는 것을 넘어, 그들이 추월해서 서둘러 앞서 나가야만 했다.

그래야만 혼자서 태성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수 있었다.

건국 알림창 덕분에 다시 한번 전의가 불타오르는 순간, 귓속말이 들어왔다.

건국으로 한창 바쁠 지옥불이었다.

(지옥불: 바쁘십니까 산드로님?)

(나: 아닙니다 지옥불님. 방금 전체 알림으로 건국하신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국왕이 되신 걸 정말로 축하드립니다!)

(지옥불: 하하! 전부 산드로님께서 저희 길드를 도와주셔서 가능했던 일이지요. 제가 빚지고는 못사는 성격이라 이렇게 먼저 연락드렸습니다. 남은 성공 보수를 받아 가셔야지요?)

(나: 아... 사실 어제 공성에서 동맹인 아틀란티스과 트러블이 있어서, 먼저 연락을 못 드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먼저 말씀을 꺼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옥불: 그게 뭐 별일이라고... 타연을 조금 더 깊숙이 하시다 보면 곧 알게 되실 겁니다. 온갖 배신과 더러운 짓거리들에 비하면 산드로님이 하신 건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요. 오히려 저는 혼자서 성을 차지할 발상을 했다는 사실에 감탄했습니다. 그러니 그런 마음은 전혀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말뿐일지 몰라도 확실히 히든캬드와는 달랐다.

아니, 이 사람은 다르다는 신뢰가 나도 모르게 생기는 느낌이었다.

지옥불은 바쁜 와중에도 안전지대인 외성 마을까지 손수 나와, 의뢰 금액의 절반이었던 100만 골드를 넘겨줬다.

“서로 좋은 결과를 맺어서 기분 좋은 거래였습니다. 다음에도 웃는 얼굴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군요.”

“한 나라의 국왕이 되신 분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제게 더 좋은 일이죠. 이 돈은 좋은 곳에 잘 쓰겠습니다.”

“어떻게든 저희 길드로 영입하고 싶지만, 이미 저보다 골드를 더 잘 벌고 계신 것 같으니 엄두조차 못 내겠군요. 이정도 골드를 한 번에 얻는 건 정말 흔치 않은 일인데, 앞으로 1달간 성의 세금도 혼자 독차지하게 됐다니…… 정말 든든하겠습니다.”

“워낙 없이 살아와서 저도 얼떨떨하긴 하네요. 그래도 이제 여유 골드도 충분히 생겼고 성도 먹었으니, 오랜만에 현금화나 한번 해 보려구요.”

“네? 설마 지금까지 한 번도 현금화를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동안 이것저것 꽤 먹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당장 장비 살 돈이 필요하기도 했고, 지금까지는 다리우스네 패거리가 신경 쓰이기도 해서 겸사겸사요.”

“플레이는 화끈하시던데, 알고 보니 참을성까지 대단하시군요. 비싼 거라도 쇼핑하면서 기분 좀 내시길 바랍니다.”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습니다. 오래 살아본 건 아니지만…… 역시 뭐든 비싸면 비쌀수록 좋더라고요.”

* * *

골드 환전소.

유저들 사이에서 흔히 ‘GTB’라는 줄임말로 불리는, 게임 속 골드를 가상 화폐로 환전해 주는 게임 속 거래소였다.

사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게임 산업은 PC에서 모바일로 세대교체가 완전히 이루어진 듯싶었다.

시대를 풍미했던 PC게임 IP들은 모두 모바일 버전으로 새롭게 출시되었다.

그에 따라 PC버전을 즐기던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휴대가 간편하고 언제든 접속이 가능한 모바일로 이동했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많은 문제점들 또한 대두되었다.

기본적으로 접속 기회가 무료로 주어지는 모바일 게임의 특성상, 대부분의 게임사들이 부분 유료화 과금 모델을 택한 것이다.

이로 인해 수많은 가챠(gacha)와 랜덤 박스 시스템이 도입됐고, 이는 유저들이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씩 결제하도록 과경쟁을 부추겼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게임사들은 더욱 많은 수익을 위해 캐쉬 아이템들의 등장 확률을 조작하거나 허위로 게시하는 등, 온갖 부도덕한 행동들로 사회적 지탄을 받기도 했다.

이를 견디다 못해 폭발하게 된 유저들은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했다.

결국 과거로의 회귀, 즉 정액제 과금 모델의 부활을 요구하기까지에 이르렀을 때.

일루전이 세계 최초의 가상현실 게임을 출시하면서 새로운 과금 모델을 제시했다.

정액제를 기본 바탕으로 한, 아이템 현금화 거래의 ‘수수료’가 바로 그 대안이었다.

일루전은 게임 속 마을 곳곳에 GTB를 배치해, 이곳에서 유저들이 골드를 자유롭고 간편하게 현실 속 바이트 코인으로 판매하거나 구매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건 혁명이었다.

현시대의 바이트 코인은 현금이나 마찬가지였기에, 현실과 게임 속 재화를 거래하는 일이 말도 안 되게 간편해진 것이다.

단 5%.

NPC에게 골드를 판매할 때 일루전이 가져가는 환전 수수료만으로, 일루전은 현재 한국 서버에서만 연 3조가 넘는 순수익을 올리게 되었다.

또한 이 새로운 수익 시스템의 구축 덕분에, 예전 MMORPG의 밸런스를 해치고 여러 악영향을 끼치던 악성 캐쉬 템들은 게임계에서 완전히 퇴출당하게 되었다.

“와, 자주 오던 곳인데 거의 두 달만인가? 여전히 죽돌이들이 많구나 여긴!”

지옥불로부터 골드를 받고 난 다음, 칼젠 성에도 하나 있는 골드 환전소를 찾았다.

아이러니했다.

매달 생활비를 걱정해야 할 땐 푼돈만 생겨도 찾던 GTB인데, 수억 치의 템을 얻게 된 지도 한참이 흐른 지금에야 찾아오다니…….

하지만 언제 골드가 더 필요할지 몰랐고, 초기에는 박태후의 오프라인 추적이 상당히 염려됐기에 그간 조용히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여유 골드가 생겼을뿐더러, 앞으로 한 달간 들어올 세금도 풍족했다.

무엇보다 게임 속 템만큼이나 현실 속에서도 사야만 하는 템이 있어서 찾아오게 되었다.

‘비상구의 놀라웠던 연속 회피. 이번 로젠타스 전투에서의 내 집중 회피와 비교해 보면…… 확실히 내가 약간 딸린다.’

요 며칠간 실전을 치르면서, 난 내 부족한 부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인공지능 몹들만 상대한 기존의 사냥과 달리, 유저들의 공격은 돌발적이며 변칙적이었다.

물론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도 전투의 양상을 파악할 수 없었던 건 아니지만, 문제는 내 몸이 내가 원하는 대로 정확히 따라오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집중 회피(고유 스킬): ★★★★★☆☆☆)]

* (passive) 물리 공격에 피격 시, 12%의 확률로 회피합니다.

* (active) 8초간 회피 능력을 극대화해, 머리와 몸통을 제외한 곳에 피격 시 회피 판정을 받습니다.

공중으로 날아온 수많은 공격을, 전부 스치듯 회피하던 비상구의 모습.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역시 랭커란 대단한 존재라고 새삼 실감했다.

아슬아슬하게 피했다는 것.

그건 다시 말해, 가장 최소한의 동선으로 공격을 흘렸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았다.

한두 명과 전투를 하면서는 나도 물론 따라 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이번 로젠타스 성에서 대규모 다대일 전투를 하면서 통감했다.

눈은 따라가도 몸은 마음처럼 따라오지 않아, 결국 집중 회피 스킬의 액티브 사용을 만족스럽게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딱 한 틱. 한 틱이 모자라서 자꾸 포기하고 있어. 잘만 쓰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써먹을 스킬인데……. 패시브만으로도 너무 좋고 유용한 스킬이지만, 그래도 액티브를 썩히긴 너무 아깝잖아!’

이대로 내 컨트롤이 한계인 것에 체념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발전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고 계속 연습해 볼 것인가!

하지만 생각해 보니 내겐 하나의 선택지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의 내게 아주 손쉽게 뒤집어 확인해 볼 수 있는 패였다.

그저 ‘현금’만 충분하다면!

[판매하실 골드 금액을 입력하세요.]

[1,500,000 GOLD]

[환전 수수료 5%와 소득세 16.5%를 제외한 환전 금액은 1.12466 바이트 코인입니다. 환전 하시겠습니까?]

매일 밤 자정.

GTB 내에 있는 게시판에는, 당일 타연에서 드랍된 골드의 총액수와 GTB를 통해 거래된 총 금액 등이 투명하게 공개된다.

나야 자세한 과정까지는 잘 모르고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은 내용들.

하지만 이중 삼중으로 교차 검증되며 투명하게 운영되는 환전 시스템은, 일루전의 자랑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이용자들 또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계정에 등록된 가상화폐 지갑으로 환전하신 바이트 코인이 입금되었습니다.]

짤랑!

인벤토리에서 골드가 차감되는 효과음과 함께 150만 골드가 빠져나갔다.

나는 곧바로 로그아웃한 후 스마트폰에 있는 가상 지갑 계좌를 확인해 보았다.

역시나 예전과 다름없이, 그새 코인이 입금되어 있었다.

<총 보유 수량 : 1.145232 BAC>

<132,402,321 KRW>

1억이 훌쩍 넘게 찍혀 있는 잔고 액수.

머리론 잘 알고 있었지만, 이제야 내가 타연 속에서 번 돈이 진짜였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몇 번의 클릭으로 한화 3천만 원을 통장에 입금했고, 나머지는 가상 지갑에 그대로 뒀다.

지금부터 내가 살 물건은 바이트 코인으로도 구매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둘러 씻은 다음 외출 준비를 하다 보니, 현중이에게 전화가 왔다.

-준비 다 했냐? 곧 니네 집 앞이다.

-어, 다 해간다. 태워 줘서 땡큐! 바로 나가마!

-얀마! 네가 드디어 큰맘 먹고 산다는데 이정도야 도와줄 수 있지. 사는 건 어제 말했던 대로 프로 버전 맞지?

-응. TX-PRO. 자고로 기변은 처음부터 끝판왕급으로 가는 게 진리지.

기다려왔던 TX-PRO 버전.

현존하는 캡슐계의 최고 스펙이, 드디어 엊그제 출시되었다.

* * *

“한번 보고 가세요! 뭐 사러 오신 거세요?”

“가격 맞춰 줄 테니까 일단 들어와 보세요! DX? FX? 전부 다 시승 가능합니다!”

용산 국제업무 지구.

한때 전자제품의 성지였다는 이곳이 국제업무 지구로 변한 지도 십수 년이 지났다.

하지만 다른 전자 제품들은 시들해졌을지 몰라도, 아직 이곳은 캡슐 관련 제품의 성지로 예전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가려는 곳이 따로 있어서요.”

현중이의 차를 타고 2시간이나 달려 서울에 온 이유.

새로 나온 캡슐 TX의 PRO 버전은 초고가 캡슐이기에 온, 오프라인 상에 아주 소량만 풀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온라인으로 구매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혹시 모를 구매 기록이나 누군지도 모를 설치기사가 집에 방문한다는 사실이 아직은 꺼려졌다.

한데 마침 현중이를 통해 안전하게 구매할 루트를 알게 되어, 직접 이곳을 찾아오게 되었다.

“형! 저 왔어요!”

“오! 고생했다 현중아. 고모가 그러시던데, 너 이 자식 아직도 취업 안 했다면서?”

“어허! 오랜만에 만났는데 무슨 보자마자 그런 소리부터 해요? 뻔히 가업을 잇고 있는걸 알면서!”

“하하! 현중이 넌, 여전히 뻔뻔한 소리를 잘도 하는구나?”

아인 테크.

현중이의 사촌 형이 운영하는 캡슐 전문 판매점의 이름이었다.

안에는 수십 대의 캡슐이 줄지어 놓여 있었는데, 얼핏 봐도 이 층에서 가장 큰 매장이었다.

‘현중이네 집안은 외가까지도 다 잘 사시는가 보네. 캡슐점 규모가 어마어마한 걸 보니…….’

“이분이 TX 프로 버전을 구매하신다는 분이니?”

“네. 제 친구니까 말씀 편하게 하세요.”

“아무리 네 친구라도 우리 매장을 찾아주신 고객이신데 그럴 수는 없지. 어서 오세요 고객님, 아인 테크의 사장, 김아인이라고 합니다. 어디, 가격은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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