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인터뷰 활용법 (2)
“드디어 오늘! 예고했던 대로 너무도 많은 유저분들이 기다려 왔던 산드로 님과의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산드로 님! 이렇게 타이토닉TV와 최초 단독 인터뷰를 허락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좋은 기회를 통해 이렇게 정식으로 처음 인사드리게 됐습니다. 산드로라고 합니다.”
대략적인 진행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녹화가 시작되자, 김석용 아나운서의 톤이 돌변했다.
동네 아재 같은 느낌에서 그동안 TV에서 봐 왔던 익숙한 진행자의 모습으로.
“일인 군단! 일인 무쌍! 일인 성주! 그리고 요즘은 스페셜 원이었나요? 어느덧 산드로 님을 지칭하는 수식어들이 많이도 생겼는데요. 그만큼 타연 유저분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계시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겠죠?”
“하하! 과찬의 말씀입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었죠.”
“운도 여기까지 이어졌다면, 이젠 실력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겠습니까? 아무튼 유저분들뿐만 아니라 저 또한 궁금한 것들이 정말 많은데요. 자, 오늘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쌓였던 수많은 궁금증들을 해소해 주시겠습니까?”
“최선을 다해 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실 전 예전에는 평범하게 플레이하던 무길드 솔플 유저였을 뿐입니다. 그래서 혹시나 많은 분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드리지 못할 것 같아 벌써부터 죄송스럽네요.”
“죄송하기는요!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 주신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일단 많은 유저분들께서 가장 궁금해하시는 부분들을 설문 조사해 봤는데요, 하나씩 여쭤보기로 하죠. 먼저 첫 번째로, 그날 도대체 어쩌다가 신검을 드시게 된 것입니까?”
예상했던 첫 번째 질문을 시작으로, 나에 대한 질문이 쉴 새 없이 줄줄이 이어졌다.
“직업을 변경하신 것도 아닌데 캐릭을 새로 키우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타이탄을 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혹시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태성과는 도대체 어떤 악연이 있어서, 그렇게 단독으로 싸우게 되셨습니까?”
이날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작정하고 준비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나는 대부분의 질문에 스스럼없이 솔직하게 답변해 주었다.
“태성 측 관계자가 없어서 산드로 님의 말씀에 대한 진위를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말씀대로라면 충분히 그러실 만도 하군요. 아무튼 이 부분은 조금 민감한 부분이기에 여기까지만 여쭤보겠습니다. 다음 질문은…… 아! 이걸 빼먹었군요.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는 것 중 하나가 신검의 스펙인데요. 혹시 룬 페이토나의 스펙에 대해 공개해 주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산드로로서의 데뷔전 이후, 나는 평범한 강철 장검으로 바꿨던 신검의 외형을 원래대로 복구시켰다.
그래서 내가 신검을 빼 들자, 카메라맨이 곧바로 자세히 포커싱했다.
투명하다 못해 하얗게 보일 정도로 곧게 뻗은 검신.
푸른빛과 하얀빛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화려한 크로스 가드.
정체 모를 보석으로 마무리된 폼멜까지…….
누가 봐도 반할 수밖에 없을 만큼, 정말 ‘빛의 검’이라는 수식어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외형이었다.
“사실 그 부분은 아직 저로서도 밝히기엔 민감한 부분입니다. 제가 마쉴 도둑으로 새로 키우게 된 부분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부분이라서요. 혹시 태성의 길드 마스터가 공개한다면야 어쩔 수 없겠지만, 그 전까지는 비밀로 하고 싶네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지금까지 시원하게 답변해 주신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한 마음입니다.”
어차피 전투 때마다 마나 쉴드 특유의 피격 이펙트가 표현되기에, 마나 쉴드를 익힌 것도 과감히 공개했다.
당장 인터뷰어인 김석용 아나운서조차 깜짝 놀랐을 정도였으니, 방송 후 이 테크트리의 효용 논란으로 얼마나 많은 게시판이 달아오르게 될지 눈에 훤했다.
“이 정도면 대부분 답변해 드린 것 같은데요. 마지막으로 저도 몇 가지 홍보를 해도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산드로 님.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얼마든지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먼저 이 업적을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내가 김석용 아나운서에게 링크로 정보를 보내 준 업적, ‘노블 패밀리’.
성을 가진 길드의 길드원들이 얻게 되는, 올 스탯 +5의 효과를 주는 B등급 업적이었다.
“많은 유저분들이 공성전에 참여하고 있지만, 통계적으로는 타연을 즐기는 유저의 10% 정도밖에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 10% 중에서도 성을 먹게 되어 이 업적을 얻게 되는 경우는 더욱 드물 테죠. 그래서! 제가 칼젠 성을 먹게 된 이번 기회를 빌려, 공성에 참여하지 못하고 계신 90%의 유저분들을 위한 작은 이벤트를 하나 열어보려고 합니다.”
“이벤트요? 혼자 자체적으로 말입니까?”
“네, 맞습니다. 이번 달 공성전이 시작되기까지 남은 일주일간, 매일 저녁 7시마다 2시간 동안! 칼젠 성 외성 마을 광장에서 저의 ‘내집마련’ 길드로의 무차별, 무제한 가입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모두들 이 7레벨업과 맞먹는 훌륭한 업적 획득의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일정이 잡혔을 때부터 타이토닉TV가 예고해 왔기에, 많은 이들이 기다려 온 인터뷰였다.
그리고 기다려 왔던 기대를 충족시켜 줄 만큼, 많은 궁금증을 해결해 준 방송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음 날 방영된 프로그램의 마지막에 나온 내 멘트로 인한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타연의 수많은 커뮤니티 게시판들이 온통 나에 관한 게시글들로 도배돼 버린 것이다.
-이거 실화냐? 성길만 먹을 수 있는 업적을 나눠준다고? 그게 정말로 가능해?
-와, 난 저런 업적이 있는 줄은 알지도 못하고 있었네. 아주 지들끼리 다 해 처먹고 있었구먼?
-스페셜 원이 진짜 난 놈은 난 놈이다. 혼자 성 먹었을 땐 오지게 부러워서 짱났었는데, 진짜 하는 짓 보면 개호감상이네ㅋㅋ
└본인 등판한 거 아니냐? 신검도 먹자, 성도 먹자한 자식이 개수작 떠는 건데 뭘 그리 빨아 재끼냐?
└님, 태성 길드원이세요? 산드로가 뭔 짓을 했건 일반 유저들은 피해 볼 일 하나 없고 오히려 업적까지 나눠준다는데 왜 발끈이세요? 설마 다리우스? 것도 아님 혹시 일도양단?ㅋㅋ
간혹 시기나 질투, 혹은 분탕으로 보이는 글들도 보였지만 대부분은 긍정적인 평가들이 많았다.
이제는 내 팬임을 자처하는 유저들조차 종종 보일 정도였다.
그동안 타연 내에서 단 한 번도 없었던 업적 공유.
그 이유는 사실 ‘노블 패밀리’의 업적 달성 조건이, 업적 중에서도 상당히 특수한 경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공성에 성공해서 성을 점령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승자 독식으로 귀결되는 타연 속 힘의 논리 때문에, 대부분의 성은 상위 길드들이 차지하기 바빴으니 말이다.
그 바람에 상당히 강한 길드들조차 이십여 개의 성 중, 단 한 번도 성을 먹어보지 못한 경우가 속된 말로 널려 있었다.
현중이가 가입하고 있는 세인트 길드만 해도 상당한 명문 길드로 유명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 세인트조차 공성전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는 것만 봐도, 성을 점령한 ‘성길’의 길드원이 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반면 업적 획득 조건은, 어떻게 보면 허무할 정도로 쉬운 조건이기도 했다.
성을 점령한 상태의 길드 마스터가 소속된 1군의 길드원으로 받아주기만 하면, 업적 달성이 되었던 것!
미리 양해를 구하고 현중이가 잠시 길드를 탈퇴한 뒤, 내 길드에 가입시켜보면서까지 체크한 확실한 정보였다.
‘업적 나눔’.
기존 성길의 마스터 중에는 길드원 및 보안 유지를 위해서, 혹은 굳이 일반 유저들을 위해 힘든 수고와 시간 낭비를 할 필요가 없었기에 생각도 못 해봤을 일.
허나 나는 발상의 전환으로 이 대규모 이벤트를 기획했고, 현재 돌아가는 여론을 살펴봤을 때 내 의도는 제대로 먹혀들었다.
-아이템이랑 성을 바꾼다는 건 또 뭔 짓인데? 진짜 스페셜 원은 하는 짓마다 스페셜하구나 스페셜 해!
-우리 스원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업적만 나눠준다면야, 뭘 하든 무슨 상관이야!
-스원이는 지금도 쩌는데 대도 부츠까지 착용하면 오지겠다ㅋㅋ 더 미쳐 날뛰는 거 아니냐?
└스원이 이미 드레이크 꼬셔서 날아다니는 거 모르냐?ㅋㅋ
또한 방송 규정 때문에 직접적으로 판매한다고 광고하진 못했지만, 특정 아이템을 가져오는 길드에게 성을 미리 내어 주겠다고 은근히 암시한 멘트가 그대로 방영되었다.
덕분에 이벤트가 끝나는 순간, 내가 칼젠 성을 판매할 것이라는 의도를 대부분 눈치챈 상태였다.
내가 언급한 아이템은 ‘대도적 윌리펑의 괴상한 부츠’.
줄여서 ‘대도 부츠’로 불리는 아주 유명한 레전더리 신발이었다.
레전더리답게 스펙도 출중했지만, ‘2개’의 특수 옵션 덕분에 매물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템.
지인이나 같은 동맹 길드 내에서만 거래를 해도 충분히 제값 주고 구매하겠다고 대기 중인 유저가 워낙 많았기에, 일반 유저들은 돈이 있어도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초인기템이었다.
사실 필드 드랍 레전더리 아이템들은 거의 다 이런 케이스였다.
간혹가다 매물로 올라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거래소나 장사꾼을 통해 살 수 있는 레전더리나 고강화 유니크 템은 크게 좋지는 않은 것들이었다.
그렇기에 난 이번 칼젠 성 매각 조건으로 골드가 아닌 아이템을 제시했다.
그동안 돈이 있어도 구하지 못했던 아이템을 얻을 절호의 기회!
성이 꼭 필요한 길드라면 인맥을 총동원해서라도 어떻게든 구해오도록 판을 만들었다.
이벤트가 진행되는 일주일 동안.
과연 이 아이템을 들고 칼젠 성의 구매 의사를 밝혀오는 길드가 몇이나 될지가, 나만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였다.
* * *
“줄 똑바로들 서 주세요! 새치기하거나 멍 때리다가 줄 안 땡기고 있으면, 절대 업적 드리지 않습니다! 거기, 검은 로브 입은 마법사님! 줄 빨리 안 땡기시나요?”
얼핏 봐도 천 명이 훌쩍 넘는 유저들로 가득한 광장.
평소 한산하기 그지없던 칼젠 성이, 지금은 번스타인 성의 대관식 날을 연상케 할 정도로 인산인해였다.
그리고 광장 분수대 위로 올라가 있는 내 옆에는, 낯익은 아이디의 여성 유저 한 명이 좌판을 연 채로 열심히 줄서기를 통제하는 중이었다.
-업적을 받고 나면 곧바로 귀환 주문서를 사용하세요!
좌판에 적힌 멘트는 아이템 판매 멘트가 아닌, 이벤트 안내 멘트였다.
이 유저의 정체는 다름 아닌 ‘핑크래빗’.
예전 게반 마을에서 주머니 노가다를 끝낼 때 잠시 마주쳤던 장사꾼이었다.
(핑크래빗: 안녕하세요 산드로님! 저는 예전 매그넘03 아이디 당시, 우연히 만나 뵀었던 핑크래빗이라고 해요! 괜찮으시다면 잠시 대화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인터뷰 방송이 끝난 직후, 나는 핑크래빗으로부터 귓속말을 받았다.
아이디를 밝힌 후부터 하루에도 수십 명씩 차단하는 게 일이라면 일이었지만, 간혹 이렇게 낯익은 아이디로부터 귓속말이 오는 경우도 있었다.
장사꾼으로서의 수완이 상당히 괜찮았고 끝까지 친절하게 대해줬던 유저.
내게 기억된 그 좋은 이미지 덕분에 잠시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나는 결국 새로운 조력자를 얻게 되었다.
(나: 그러니깐 앞으로 제 전담 장사꾼이 되고 싶다는 말씀이신 거죠? 괜찮은 매물이 나오면 수수료만 받는 식으로 구매도 알선해 주신다는 거고요?)
(핑크래빗: 네. 사실 장사꾼으로 더 커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반쯤은 포기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제가 만났던 산드로님이 나날이 변하는 모습을 접하고 나니, 식었던 열정이 다시 아자아자 불타오르더라고요! 이것저것 하시느라 바쁘실 텐데, 장사만큼은 제게 맡기시고 시간을 아끼세요~ 절대 후려치거나 손해를 끼쳐 드리는 일은 없도록 할게요!)
(나: 어차피 저도 그런 분이 주변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습니다. 일단 함께 일해 보도록 하죠^^)
(핑크래빗: 꺄! 감사합니다!! 실망시키지 않도록 앞으로 진짜 제대로 잘할게요. 충! 성!)
그렇게 찾아온 핑크래빗은 내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무려 일주일 동안 내 이벤트 진행을 이렇게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었다.
그 덕분에 지난 일주일 동안, 간혹 꼬장 유저가 나타나더라도 별 탈 없이 무난히 진행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