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62화 (62/350)

62화 인터뷰 활용법(3)

광장 중앙에 위치한 원형의 분수대.

나는 그 분수대의 난간 위를 원을 그리며 돌면서, 둘러싼 인파가 차례대로 분수대 앞줄까지 다가오면 가입과 함께 추방 처리를 하는 식으로 업적을 나눠주었다.

[‘종강파티’ 님이 길드 가입을 요청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예스 버튼을 터치하자마자 이어지는 길드 추방 버튼 터치.

[‘종강파티’ 님을 길드에서 추방하시겠습니까?]

[‘종강파티’ 님을 길드에서 추방하였습니다.]

일인 길드인지라, 가입된 길드원 목록이 한 명도 없어 추방 유저를 선택하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분수대 위를 빙빙 돌면서 내 시야에 떠지는 누군가의 가입 요청을 수락하고 추방하는 데는, 단 2초면 충분했다.

그 직후, 업적을 얻게 된 유저는 귀환 주문서를 사용해서 이 광장에서 빠져나가게 된다.

이런 과정을 매일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진행한 결과, 하루에 무려 3천 명이 넘는 유저들에게 노블 패밀리 업적을 나눠줄 수 있었다.

하루에 단 2시간 만이라곤 하지만, 끝나면 정말 진이 다 빠질 정도로 힘들었다.

하지만 그만큼 고생한 보람도 있는 투자였다.

일단 첫날 이벤트가 끝난 후 유저들의 반응을 살펴보니, 긍정적인 반응들이 상당히 많았던 것이다.

최초로 받아 본 업적이라 너무 감사하다는 유저.

성길은 꿈에도 못 꿔 평생 못 얻었을 업적을 얻게 되어 기쁘다는 유저.

내게서 이 업적은 받은 이상, 앞으로 필드에서 만나게 되면 공격은커녕 버프와 쉴드만 걸어주겠다는 유저까지…….

아무리 나름의 의도를 가지고 시작한 일이라고는 해도, 노가다로 누적된 피로가 그대로 치유되는 듯한 감사 글들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그리고 내심 하나 더 의도했던 것.

마지막 일주일 동안 칼젠 성의 뽕을 뽑으려던 계획도 제대로 먹혀들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세금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벤트는 오늘을 마지막으로 끝나는데, 아직도 광장 안은 업적을 받고자 하는 유저들로 꽉 차 있었다.

첫날 같은 경우는 훨씬 더 심해서,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한가하던 이 성에 갑자기 수많은 인파가 모였으니, 세금이 그대로일 리 없었다.

이 많은 유저들이 이용한 공간이동술사 비용, 온 김에 매매한 상점의 소비품과 거래소 수수료까지…….

요 일주일간의 세금 수입이 지난 3주 동안 걷은 세금보다 족히 2배는 더 많았다.

이 정도면 이 칼젠 성으로 뽕 뽑을 수 있는 것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전부 다 뽑아 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쾌녀선미’ 님이 길드 가입을 요청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쾌남현우’ 님이 길드 가입을 요청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정신없이 가입 요청을 수락해 주고 추방을 반복하느라 아이디를 살펴볼 정신까지는 없었는데, 유독 낯익은 아이디가 눈에 띄었다.

‘헐, 뭐야? 이거 혹시……?’

일단 모르고 받아는 줬지만, 급히 정신을 차리고 아이디를 신중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마지막 날인 오늘, 그것도 2시간이 다 끝나가는 지금은 내가 가장 지치고 방심했을 시간!

그 허점을 노리고 왔을 그 자식들에게, 얼떨결에 업적을 나눠 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쾌남쭈호’ 님이 길드 가입을 요청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쾌남서준’ 님이 길드 가입을 요청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하하하하! 너희들 뭐 하는 거냐?”

혹시나 했는데 정말로 왔구나!

내가 초보존에서 새로 캐릭을 키울 당시 뒤치기를 했던 놈들.

그중 두 녀석이, 염치도 없이 내게 업적을 받으러 몰래 온 것이었다.

심지어는 둘 다 마법사들이나 입는 후드를 둘러쓴 상태였다.

당시 싸움은 나름 상당히 임팩트 있었기에, 내 아이디를 잊어먹었을 리는 없었다.

특히 쾌남쭈호는 한동안 나를 찾아 초보존을 뒤졌을 게 분명한 녀석.

그때 뒤치기했던 유저가 나인 줄 모를 수 없으면서, 뻔뻔하게 업적을 받으러 찾아 왔겠다?

“산드로 님! 왜 가입 요청을 안 받아주세요? 벌써 오늘 업적 나눔이 끝났나요?”

“산드로 님! 아직 5분 남았습니다!”

쉬지 않고 분수대를 돌며 업적을 나눠주던 내가, 갑자기 가입도 받지 않고 웃고만 있으니 맨 앞줄의 유저들이 소리쳤다.

하지만 독촉은 독촉이고 원한은 원한이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무리 자잘한 원한이라도 금방 다 잊고 살 만큼 아량 있는 놈은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업적 나눔은 이제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여기 이 앞에 있는 쾌남 패밀리에게 실수로 업적을 나눠주고 말았거든요! 얘네 패밀리가 분수대 앞에 얼마나 더 있는지 몰라, 업적 나눔을 더는 할 수가 없겠네요!”

“네? 그게 무슨 소리세요? 지금 2시간 넘게 줄 서서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요! 쾌남 패밀린지 쾌변 패밀린지가 업적을 받는 것과, 대체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만두시는 건데요!”

“쾌남 패밀리는 예전 제가 초보존에서 사냥할 때 이유도 없이 절 뒤치기했던 놈들입니다. 고렙도 끼어 있었고, 심지어 캐릭을 접게 만들겠다고 협박까지 했었죠. 그런 놈들이 지금 업적을 받겠다고 제 눈앞에 와있습니다. 이걸 제가 받아줘야만 할까요? 지난 일주일 동안 저도 할 만큼 충분히 한 것 같으니, 죄송하지만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미 업적 받기에는 늦었다고 판단해서 포기하고 떠난 사람도 있지만, 아직 이 광장에는 천 명이 넘는 유저가 분수대를 감싸고 있었다.

오늘이 이벤트의 마지막 날인 만큼, 혹시 모를 희망을 품고 대기 줄을 서고 있던 것이다.

한데 그들 모두가 담담하지만 단호한 어투의 내 말을 듣게 되자, 결국 막차가 떠났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마치 마른 들판에 불이 번지듯, 광장 안은 쾌남 패밀리를 비난하는 욕설로 순식간에 가득 차 버렸다.

“야 이, 개 같은 쾌남 뭐시기들아! 너희 내 눈에 띄면 뒤질 줄 알아라! 알긋냐?”

“아직도 초보존에서 뒤치기하는 잡놈들이 있냐? 그것도 아이디 맞춘 패밀리로? 아오, 캐릭 접어라 접어! 개쪽팔리다!”

“여기도 있어요! 아이디 쾌남쭈호! 쾌남서준! 이 자식들이네요! 좀 전까지 제 앞에 쾌녀선미와 쾌남현우도 있었는데, 그놈들은 업적 받아갔습니다!”

바로 아이디까지 지목당하자, 내 앞에 있던 두 놈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귀환 주문서를 사용했다.

“죄, 죄송합니다!”

“저희도 PK에 성공하기는커녕, 오히려 반대로 당했어요!”

“이 허접한 놈들아, 그걸 변명이라고 하고 있냐!!”

그러나 귀환 주문서의 발동시간은 어언 10초.

그동안 사방을 둘러싼 사람들로부터 온갖 욕설 폭격을 오롯이 받아야만 했다.

아마 살아오면서 먹은 욕설보다, 지금 잠깐 사이에 먹은 게 더 많지 않았을까?

“어라? 쾌남 패밀리가 전부 귀환했네요? 여러분 덕에 잘 처리됐으니, 5분이 아니라 특별히 30분간 더 추가로 나눠드리고 이벤트를 끝맺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이런 비매너 유저들이 보이면 지금과 같은 정의의 응징을 부탁드립니다!”

“와! 감사합니다, 산드로 님!”

“앞으로 제가 필드서 쾌남 패밀리를 만나게 되면, 반드시 선공부터 먹이고 시작하겠습니다!”

“쾌남 패밀리 척살!!”

그렇게 공성전을 하루 앞둔 마지막 날의 이벤트는 자그마한 소동과 함께 끝이 났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마지막 차례로 칼젠 성 매각 협상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 * *

방송에서 대도부츠를 조건으로 성 매각을 암시한 후.

놀랍게도 오늘까지 접근해온 길드는 총 세 군데나 있었다.

올림푸스, 아틀란티스, 그리고 요즘 떠오르고 있는 신흥 길드 아마존.

구하기 정말 어려운 레전더리 아이템임에도 불구하고 세 군데나 접촉해 왔다는 것은, 역시 빈 성이라도 이 칼젠 성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반증이었다.

리버스국을 세운 피닉스도 접촉해 올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6성을 수성할 인력을 갖추기에는 아직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구매 의사를 밝히진 않았다.

그래도 피닉스의 길마, 지옥불로부터 특별한 부탁을 받기는 했다.

(지옥불: 방송에 이어 업적 이벤트까지.... 산드로님의 행보는 도무지 예측할 수 없어서, 정말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군요.)

(나: 하하! 별말씀을요. 저번 잔금 정산 이후로는 오랜만이네요. 어쩐 일이세요?)

(지옥불: 다름 아니라 칼젠 성 매각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아틀란티스야 구매 의사를 길마에게 직접 들어서 알고 있지만, 혹시 다른 길드 중에서 구매 의사를 밝힌 곳이 있습니까?)

(나: 네. 몇 곳인지는 알려드릴 수 없지만, 최소 세 군데 이상 있네요)

근황 소식부터 물어보기 시작한 대화는 어느새 칼젠 성 매각 관련 주제로 넘어갔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지옥불의 본 목적이었다.

(지옥불: 제가 이런 말씀 드리기 뭐하지만, 기왕 매각하실 거라면 아틀란티스만큼은 제외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응?’

의외였다.

무려 국왕이 된 거물 유저의 귓속말이기에, 당연히 무슨 의도가 있을 거라고는 예상했다.

그리고 현시점이라면 칼젠 성 매각과 관련있을 게 분명했기에, 내심 동맹인 아틀란티스에게 넘겨주기를 부탁하시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

오히려 지옥불은 아틀란티스한테만은 성을 판매하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하고 있었다.

(지옥불: 이런 말을 하는 저를 어떻게 생각하실지 잘 압니다. 하지만 이번 공성전에서 칼젠 성은 상당히 중요한 변수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 길드 입장에서는, 산드로님의 성이 올림푸스 쪽으로 넘어가는 게 베스트라고 판단 내렸습니다.)

나로서는 알 수 없는, 그리고 알고 싶지도 않은 거대 길드들의 정세 싸움.

사실 타연의 메인 스트림은 거대 길드 간의 세력 다툼이었기에, 나 같은 솔플 유저는 ‘변수’는 될 수 있을망정 ‘주력’이 될 순 없었다.

뭐, 앞으로는 달라질 수도 있을 거로 생각하지만 일단 지금 상황으로는 이게 엄연한 현실이었다.

어찌 됐든 간에 지옥불의 설명은 이러했다.

두 번째로 건국하기는 했으나 너무 앞선 태성을 따라잡기에는 아직 역량과 시간이 모두 부족한 상태.

그러나 명색이 두 번째로 건국된 국가이기에, 벌써 다른 길드들로부터 예전과 다른 수준의 견제가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히려 건국하기 전보다 길드의 성장 속도가 느려질 것 같다는 위기의식마저 느끼게 될 정도로.

(지옥불: 3번째 국가의 탄생. 만약 3국 체계가 된다면 숨통이 트일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물론 내가 가진 칼젠 성 하나만으로 이 강대한 세력 다툼에 큰 변수를 주기는 힘들다.

또한 그렇게까지 칼젠 성을 간절히 원한다면, 피닉스나 아틀란티스가 얼마든지 살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러니 지옥불이 굳이 이렇게까지 부탁하는 숨은 의도는 따로 있다고 보는 편이 맞았다.

바로 ‘나’라는 존재.

점점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내 현재와 미래의 가능성을 보고, 지금부터 자신이 구상하는 길드 간 세력 싸움에 내가 따라와 주기를 넌지시 권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나로서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나: 제 목표는 오직 다리우스 패거리와 태성입니다. 태성이 공동의 적인 이상, 굳이 다른 길드의 견제로 전력을 낭비할 필요는 없겠죠. 제가 올림푸스에게 성을 매각하면 그쪽이 이번 달 공성전 직후에 건국하는 건 확실한가요?)

(지옥불: 네. 예전 다리우스 암살을 함께 진행하며 연락을 튼 간부진이 있습니다. 칼젠 성을 갖게 되고 이번 공성전에서 보유 성들의 수성에 성공한다면, 고조선과 합병해서 건국을 선포할 거라고 하더군요.)

올림푸스의 길마는 바로 ‘그’ 사람.

저레벨 시절의 모습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그가 한 나라의 국왕급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단하게 느껴졌다.

‘어쨌든 간에 벌써 세 번째 국가의 탄생이라…….’

고전 삼국지(三國志)도 아니고 타연 속에서 갑작스럽게 3국 체계라니?

아무리 게임 스토리보다는 유저들 간의 갈등 관계를 중점으로 플레이되는 타연이라곤 해도, 개발사조차 게임이 이런 양상으로 진행될 줄은 예측하지 못했을 거다.

살아 숨 쉬는 것 같은, 아니 어쩌면 현실 세계보다 더욱 원초적인 욕망들이 뒤엉켜 있는 게임.

그런 게임 안에서 어느 순간부터 난, 가장 중요한 키 플레이어(key player), 혹은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로 취급받고 있었다.

‘지옥불 그라면……… 한 번 믿어볼 만한 사람 같다. 좋아. 그가 먼저 배신하지 않는 한, 그의 뜻대로 한번 따라가 보자.’

결국 지옥불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고 비밀 협상을 마쳤다.

물론 가격이 맞지 않으면 매각은 불가하니, 넉넉히 챙겨오길 전하라는 당부의 말을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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