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63화 (63/350)

63화 대도적의 부츠 (1)

632만 7250골드.

지난 4주간 칼젠 성을 통해 걷어 들인 세금의 총수입이었다.

현금으로 따지자면 6억이 넘는 엄청난 금액.

원래라면 이 절반 수준에도 못 미쳤겠지만, 마지막 1주간의 업적 이벤트로 인한 인파 덕분에 지난달 대비 최소 2배 이상 걷혔을 거라고 생각됐다.

그리고 이 세금은, 유저들의 레벨이 계속 올라가고 있으니 지속해서 증가할 예정이었다.

“이 금액이 제가 한 달간 거둬들인 금액입니다. 매일같이 조금씩이지만 수입은 늘어가는 추세고요. 조금 비싼 것 같더라도 만약 수성에만 성공하신다면, 절대 손해는 보지 않으실 겁니다.”

칼젠 외성 마을의 여관방을 빌려 이 자리에 모인 인원은 전부 셋.

올림푸스의 총무 ‘뉴요커’.

아틀란티스의 부길마 ‘바라기’.

아마존의 길마 ‘판도라’.

모두 타연 내에서 쟁쟁한 명성을 떨치는 유저들이었다.

“어차피 혼자 점령 중이신 거라 내일 공성전은 무조건 포기하실 텐데요. 그걸 그렇게 비싸게 파셔야겠습니까?”

“다 알고 오셨으면서 굳이 그런 말씀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빈 성으로 두면 태성이 가장 먼저 오벨리스크를 차지할 게 뻔한데, 정말 그렇게 두시겠어요?”

“맞습니다, 바라기 님. 어차피 무리해서 사 봤자 수성에 실패하면 돈만 날리는 셈이 될 테니, 불만이 있으시면 그냥 이곳에서 빠지시면 됩니다.”

“피닉스가 건국하더니 아틀란티스도 마음이 급해졌나 보군요? 그쪽이나 이번 공성전에서 칼젠 성까지 지킬 수 있습니까? 피닉스는 지금 자기 앞가림도 못 하느라 지원군도 못 보낼 텐데요?”

태성이란 공동의 적은 같지만, 그렇다고 각 길드가 한마음일 리는 없다.

평소에 어떤 관계였는지, 4강 길드의 간부진들이 둘이나 모인 자리에 있다 보니 어느 정도 감이 왔다.

“자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나요? 아무튼 다들 바쁘실 테니 바로 진행해서 금방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렸던 대로, 세 분 다 대도 부츠를 구해오신 건 확실하시죠?”

“네.”

“그럼요.”

“아마 서버에 풀린 부츠의 절반이, 여기에 모였을 겁니다.”

“하하! 정말 그렇겠네요. 그러면 미리 말씀드렸다시피 추가금을 가장 많이 제시한 분에게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바라기의 짧은 투정을 끝으로, 차례대로 교환창을 열어 물건과 추가 골드를 확인했다.

사실 세 길드 모두 타연 내 유명 길드인지라, 빈 성을 가지고 이 3인을 상대로 경매 벌이는 것은 상당한 노매너로 여겨질 수 있었다.

그냥 비공개로 판매해도 좋았겠지만, 정말 이런 식으로 성이 팔리게 될지 확신이 없었고 무엇보다 대도 부츠가 너무 갖고 싶었기에 은근한 경쟁을 유도하게 되었다.

어쨌든 그래서 마구잡이식 경매 대신, 가장 높은 추가금을 제시한 길드에게 단번에 넘겨주는 것으로 이곳에 모이기 전에 미리 말해 두었다.

“먼저 뉴요커 님.”

“네.”

+2 대도 부츠와 120만 골드.

괜찮은 금액이었다.

“그리고 바라기 님.”

“확인하시죠.”

+2 대도 부츠와 151만 골드.

상당히 많은 금액을 투자한 아틀란티스였다.

이대로라면 올림푸스에게 넘겨주는 것이 손해였지만, 그래도 지옥불과 얘기해 놓은 것이 있어서 이 정도 손해는 감수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판도라 님.”

“네.”

얼마 전 초보 지역의 공성 성공을 시작으로, 이제 막 1성을 보유하게 된 아마존 길드.

그런 만큼 큰 기대 없이 확인한 교환창이었으나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헐? +3 대도 부츠라고?’

이 희귀하고 비싼 아이템에 강화를 한 간 큰 사람이 있을 줄이야!

사실 저강화일 때는 강화 성공 확률이 비교적 높았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필드 드랍템이라 워낙 구하기 힘든 이런 레전더리 장비에, 추가 강화를 시도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1 수치가 올라갈 때의 이득보다, 강화 실패로 파괴될 때의 손해가 훨씬 더 극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3강 이상의 레전더리 장비들은, 죄다 인던에서 나온 템이라고 단정 지어 말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었다.

(판도라: 공정한 거래 중에 이런 귓속말을 하는 건 평소 제 성격과 안 맞는 행동이지만....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이 +3 대도 부츠는 조금 전 제가 직접 강화해서 띄운 거랍니다. 다른 분들을 이기려고 나름의 모험을 한 셈이죠. 산드로님께서 알아주셨으면 좋겠네요.)

(나: 아, 네... 정말 대단한 배짱이십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많이 놀랐네요)

판도라의 입장에서는 칼젠 성을 꼭 구입하고 싶지만, +2 대도 부츠로는 구매하지 못할 것 같아 승부수를 띄웠던 것이리라.

아무리 지옥불의 부탁이 있었다곤 해도, 이렇게까지 진심을 보여준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다른 이에게 넘겨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애초에 지옥불 님이 원했던 건 아틀란티스가 칼젠 성을 갖지 못하는 거였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겠지.’

이번에 얻게 되면 평생 템이 될지도 모르는 부츠.

따라서 +3짜리로 구할 수 있는 걸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세 분께서 제시한 금액을 전부 다 확인했으니 말씀드리겠습니다. 칼젠 성의 새로운 주인은 아마존의 판도라 님으로 정해졌습니다. 참여해 주신 나머지 두 분께 정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다음에 또 다른 기회가 있을 때, 좋은 거래로 다시 만나 뵙게 되면 좋겠네요.”

아쉬운 표정이었지만 쿨하게 돌아서는 바라기.

그와는 다르게 뭔가 할 얘기가 있다는 듯이 뉴요커는 잠시 머뭇거렸다.

들었던 이야기와 다르니 당황한 모양이었다.

(나: 뉴요커님. 바라기님께서 더 많은 골드를 제시했지만 지옥불님과의 약속도 있고 해서 넘기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었습니다. 판도라님이 +3 대도 부츠를 제시했거든요.)

(뉴요커: 네? 이런... 알겠습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저희도 강화를 해보는 거였는데... 아무튼 이번 달 공성전도 역시나 많은 이슈가 생기겠군요.)

(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옥불님께는 제가 말씀드려 놓겠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렇게 뉴요커까지 떠난 후에야 마침내 판도라와 단둘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번 칼젠 성 매각 소식을 접하고 꼭 얻고 싶어서, 그동안 잘 착용하고 있던 대도 부츠를 매물로 내놓게 됐네요. 두 번째 성을 먹기에는 아직 부족함이 있지만, 그래도 지키는 건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길 만큼 길드가 커졌거든요.”

‘응? 아마존 길드원이 벌써 그렇게 많아졌나? 필드에서는 거의 못 본 것 같은데…… 아무튼 대단하네.’

아마존이라면 그래도 나름대로 이름 있는 대형 길드인데, 그 길드 마스터인 판도라는 나만큼이나 큰 키의 젊은 여성 유저였다.

아무래도 가상현실 게임인 타연의 특성상, 나이가 어린 길드 마스터는 길드 운영과 성장에 애로사항이 많을 텐데 잘 헤쳐나가는 모양이었다.

천생 솔플 유저인 나로서는 엄두도 나지 않을 일이었기에, 그녀가 정말 대단해 보였다.

여하튼 그녀와 나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매각 과정을 조율했다.

“그럼 성은 내일 정오에 넘겨드리는 것으로 확정 짓죠. 수성을 준비하실 것도 많으실 테니까요.”

“네, 그럼 오늘 밤이 칼젠 성의 마지막 하루겠네요? 성안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많으니까 하루 치고는 그래도 세금이 꽤 걷히겠어요.”

“알뜰하게 챙기느라 빨리 못 건네 드려서 죄송하네요. 그럼 내일 그 시간에 뵙겠습니다!”

“산드로 님의 이벤트 덕분에 유저들이 늘었으니, 넘겨받는 입장에서 이 정도 편의야 당연히 봐 드려야죠. 그럼 내일 봬요, 성주님!”

어차피 이번 거래 자체는 둘 중 누군가가 먼저 자신의 것을 건네야 하는 거래.

그래서 원래 내일 성을 넘겨줄 때 대도 부츠를 건네받아야 했으나 미리 선불을 부탁해봤다.

그러자 판도라는 원래 믿고 먼저 건네드리려고 했다면서, 통 크게 대도 부츠를 넘겨주고는 방을 나섰다.

“휘유, 진짜 길마들은 하나같이 뭔가 다르긴 다르구나.”

그녀의 대범함을 보면서 뭔가 반성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쨌든 여관방에 혼자 남은 나는, 넘겨받은 대도 부츠의 차근차근 확인해 봤다.

<+3 대도적 윌리펑의 괴상한 부츠(레전더리, 신발)>

* 방어력 140(+42)

* 마법 방어력 70(+21)

* 민첩 + 50(+15)

* 바람 속성 내성 +5%(+3%), 땅 속성 내성 +5%(+3%)

* 이동 속도 +8%(+3%)

* 부츠 바닥이 닿는 곳에 흡착 효과가 발생합니다.

* 어느 곳이든지 몰래 침투할 수 있었던 대도적 윌리펑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부츠입니다.

* “오스타그 궁전의 황제 침소? 미스틱 드래곤 칼 데드라의 전설의 레어? 혹은 가트웰 산맥 콘틀랑 정상에 있는 페어리 퀸의 공중정원? 아들아. 젊었을 적 내 발걸음이 닿지 않았던 장소라고는, 하늘 아래 그 어디도 없단다.” -대도적 윌리펑-

“크하! 내가 정말 이 아이템을 착용하는 날이 오다니! 돈 주고도 못 구하는 이 대도 부츠를! 오예!”

몬스터가 아닌 전설 상자에서 아주 희귀한 확률로 등장하는 레전더리 부츠.

이 부츠가 유저들 사이에도 유명한 이유는 크게 2가지였다.

첫째로는 아무리 레전더리라고 해도 잘 붙지 않는 이동 속도 증가 옵션이 있는 부츠였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여러 너튜브 영상들을 통해 수많은 화제가 됐었던 흡착 효과, 일명 ‘벽타기’가 가능해지는 특수 옵션이 붙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실용성도 실용성이지만, 일단 간지부터가 넘사벽이지. 가끔 마을에서 건물 벽을 타고 달리는 사람보고, 얼마나 부러워만 했었는지!”

가상현실 게임이 출시되자, 많은 사람들은 현실에서 해보지 못한 공상들을 이 안에서 직접 경험해보고 싶어 했다.

마침 일루전은 초일류 기업이자 유저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는 갓(god) 기업.

그들은 유저들의 가려운 곳을 원 없이 긁어주겠다는 듯, 그런 욕망을 채워 줄 요소들을 타연 곳곳에 어색함 없이 잘 구현해 놓았다.

스킬을 사용하면 한 번에 수 미터를 뛰어오르거나, 100미터를 5초 만에 주파하는 초인적인 능력부터…….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는 놀라운 마법까지!

물론 누구에게나, 그리고 제한 없이 주어지는 것이 아닌, 레벨업이나 템 파밍 같은 여러 노력들이 필요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실제로 체험해 볼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이 게임에 빠져들게 되는 동기로는 충분했다.

얼마 전 타연에 등장한 이 대도 부츠 또한, 등장과 동시에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던 아주 핫한 아이템이었다.

유명한 할리우드 영화 속 히어로.

‘거미 인간’의 모습을 빼다 박은 플레이가 가능도록 만들어주는 템이었기 때문이다.

이 부츠를 착용만 하면 절벽을 수직으로 오르는 것은 물론, 동굴이나 건물의 천장에 거꾸로 서 있을 수도 있었다.

윌리펑의 말처럼 걸어서 가지 못할 곳이 없어지는, 게임 내 유니크한 특수 능력의 소유자로 탈바꿈해주는 템이었던 것이다.

“로젠타스 공성전에서 성벽을 오를 때…… 마침 NPC 병사들이 없었다면 잠입하는 데 많이 난감했겠지? 이거라면 이제 어디를 침투하든지 간에 걱정 따위는 전혀 할 필요가 없어. 그리고 나라면…… 이 부츠를 타연 그 누구보다 잘 써먹을 수 있을 거야!”

타연 속 인던은 거의 대부분이 파티 사냥용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수많은 잡몹들을 사냥한 끝에야 파티 단위 레이드로 클리어되는 보스가 나오는 뻔한 구성.

다중 접속 온라인 게임이라 유저들의 파티 사냥을 지향하는 만큼,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몹 배치였다.

하지만 여기에 일루전이 예상 못 했던 허점이 하나 있었다.

‘웬만한 인던 보스들은 파티 플레이가 아니라면 클리어할 수 없지만, 나는 혼자 가능하다는 것!’

이 말인즉슨, 보스 룸이 있는 곳까지 빼곡히 있는 몹들을 무시할 수만 있다면!

나는 끝없이 인던을 리셋하며, 얼마든지 보스 몹만 빼먹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저벅저벅.

나무로 이루어진 여관방 구석까지 다가간 다음, 그대로 벽에 발을 대고 걸어 보았다.

그리고는 단숨에 천장까지 올라가 거꾸로 섰다.

“오늘은 좀 쉬어 볼까 했는데…… 마지막 날까지 뽕 뽑아먹을 구석이, 하나 더 생기고 말았구나.”

칼젠 성을 아마존에 넘겨 주기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15시간.

이 성주로서의 남겨진 시간 동안, 나는 오크 제사장 울타를 반복해서 잡을 생각이었다.

땅굴의 천장을 거꾸로, 그리고 거침없이.

놈이 있는 보스 룸까지 뛰고 또 뛰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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