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69화 (69/350)

69화 운영자와의 거래 (1)

살면서 벼락에 맞을 확률이 대략 50만분의 1이라고 한다.

한데 그 벼락을 무려 7번이나 맞고도 살아남은 사람도 있다고 하니, 과연 현실은 가끔씩 소설보다 더 비현실적일 때도 많았다.

어쩌면 이번 일도 그러한 범주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신의 선물’ 뽑기에서 극악의 확률로 뽑힌다는 디바인 무기.

엄청난 대가를 바쳐야 하기에 쉽사리 도전하기도 힘든 이 뽑기에, 유저가 2번 도전했는데 전부 7신기가 뽑혀 나왔다.

가상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제 자리에 주저앉고 만 지옥불.

그나마 나는 먼저 정신 차릴 수 있었기에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와…… 정말 말이 나오지 않네요. 마신검이라니…… 정말, 너무나 축하드립니다!”

“이, 이게 도대체…… 꿈인지 생신지…….”

“지금 손안에 들고 계시잖아요. 틀림없는 현실이에요. 그간 플레이하며 고생하셨던 보답과 값진 도전의 결과를 받으신 겁니다.”

‘룬 페이토나’가 밝게 빛나는 화려한 검신을 가졌다면, 이 ‘룬 제스베라’는 모든 빛을 빨아들일 것만 같은 칠흑의 검신을 갖고 있었다.

온통 검은색이었지만 보랏빛이 포인트로 들어간 크로스 가드.

폼멜에 달린 자수정…….

마치 신검이 밝은 연회복 차림이라면, 마신검은 검정 슈트를 잘 차려입은 모습이라고나 할까?

묘할 정도로 신검과 똑 닮은 디자인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조금 더 고풍스러운 느낌의 멋진 외형이었다.

“어이쿠, 이거 실례가 많았습니다. 갑자기 워낙 많은 귓속말이 쏟아져 들어와서 조금 답장하다가 꺼 버렸네요.”

“괜찮습니다. 당연히 그러실 만하십니다.”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지옥불이 대답해왔다.

전체 알림 창에는 마신검을 얻은 사람의 아이디가 노출되지 않았지만, 사실 누가 이 검을 뽑았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신의 선물 뽑기는 오직 국왕만이 할 수 있는 엔드 콘텐츠.

다리우스는 이미 한차례 시도했으니, 지금 공개된 이 마신검은 당연히 누구나 지옥불이 뽑은 것이라는 걸 추측할 수 있었다.

수천 명이 노력한 끝에 겨우 모은 업적치로 뽑게 된 ‘신검’이란 놈을, 나는 어떻게 보면 거저 획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터질 듯이 설레고 기뻤는데, 지금 이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업적치의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손으로 하나씩 모은 끝에, 결국 끝판왕 템을 손에 넣은 기분.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감히 가늠하기도 힘들 정도로 가슴 벅찬 순간이랄 것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피슛!

그런 역사적인 순간을 얼떨결에 우리 둘만 나누고 있는 도중이었다.

우리 앞에 누군가가, 갑작스럽게 순간이동을 통해 나타났다.

NPC를 통하지 않고 순간이동하는 건 아직 유저에게 허락되지 않은 일!

나타난 이는 다리우스의 대관식에서 한차례 본 적 있었던 바로 그 사람, 타연의 개발자이자 운영자인 테오시스였다.

“놀랍습니다. 정말이지 엄청나게 놀라고 말았네요. 룬 페이토나가 뽑혔던 것도 정말 예상 못 한 일이었는데, 이렇게 룬 제스베라까지 연달아 뽑혔다니 말입니다. 지옥불 님, 두 번째 7신기의 주인이 되신 걸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운영자님. 이렇게 사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정말 간만이시군요.”

“사실 다른 일을 하고 있다가 알림을 받고, 급하게 접속한 것이랍니다. 제가 디자인했던 룬 제스베라가 이렇게도 빨리 등장했다는 소식을 보고 나니,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서요.”

‘이 사람이 그 테오시스가 맞는 건가……? 공적인 자리에서 보여줬던 모습과는 너무 다른데?’

게임 속에서 그야말로 신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전지전능해 보였던 테오시스.

그런 그였기에 유저들 앞에 나서는 일은 아주 커다란 공식 행사 등이 아니라면 극히 드문 일이었다.

그마저도 항상 많은 유저들 앞이었기 때문인지, 다소 딱딱한 어투의 공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일전에 지옥불과 함께 이런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있었는지, 사적인 공간에서 보여주는 친근한 태도는 상당히 의외의 모습이었다.

“아, 함께 계신 분이 계셨죠? 안녕하세요, 산드로 님. 이렇게 인사 나누게 되어 반갑습니다. 멋진 활약 잘 지켜보고 있었답니다. 정말 대단하시더라고요.”

“대단하기는요. 저야말로 이렇게 운영자님과 단둘이 대화를 나누다니, 정말 출세했네요.”

“하하! 무슨 출세까지 말씀하시나요? 아무튼 공교롭게도 이 자리에 7신기의 주인 두 분이 전부 계시고, 또 다른 사람들도 안 계실 때 빨리 말씀드리는 게 좋을 거라 생각돼서 이렇게 찾아 왔습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어려운 중성적 외모의 그녀.

단순히 축하 인사를 건네기 위해 찾아 왔을 거로 생각하진 않았는데, 역시나 무언가 목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일단 이곳은 다른 유저들도 올 수 있으니, 잠시 GM들만의 공간으로 이동해서 대화할까 하는데 괜찮을까요?”

“괜찮습니다.”

“네.”

“네, 그럼 이동하겠습니다. 매스 텔레포트!”

매스 텔레포트에 동의하는 뜻으로 캐스팅 중인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주변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순간 이동으로 우리 세 사람이 도착한 곳.

이곳의 정체는 놀랍게도 하늘에 통째로 떠 있는 조그마한 고성(古城)이었다.

[데미 갓들의 쉼터, 로스트 캐슬에 도착했습니다.]

우리가 발을 디딘 곳은 성 최상단에 위치한 테라스.

난간 너머로 하얀 뭉게구름의 모습만 보이지 않았다면, 이곳이 하늘 위인지도 몰랐을 그런 신비한 장소였다.

가냘프게 들려오는 바람 정령의 노랫소리 덕분인지, 드높은 상공임에도 불구하고 세차게 불어와야 할 바람 한 점 없이 쾌적했다.

“여긴…… 로그인 때마다 타연의 타이틀이 떠오르는, 바로 그 하늘이군요.”

“오! 바로 눈치채셨네요? 정확합니다. 만들기 좋아하는 세라자드가 저희 GM들 3명만을 위해 만들어준 보금자리죠.”

지난 3년간 내가 가장 좋아한 순간이 바로 로그인할 때인데, 알아차리지 못할 리 없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말 좀 편하게 나눠도 될까요? 유저들 많은 곳이나 카메라 돌아가는 곳에서는 딱딱한 말투를 쓰느라 영 답답하거든요.”

“뭐, 이미 편하게 말씀하시고 계셨던 걸요. 괜찮습니다.”

사생활 보호 측면에서 평상시 동영상 촬영 기능이 없다는 타연의 설정이, 사실은 개발자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이 순간 들었다.

“하하, 제가 그랬나요? 어쨌든 이제 본론부터 말씀드리죠. 사실 저희 일루전 측에서도 디바인 무기, 특히 이 7신기가 유저 개인에게 막강한 파워를 안겨 주는 아이템으로 개발 컨셉을 세우고 제작했던 게 맞습니다. 물론 거기에 걸맞은 페널티도 추가했지만 말이죠.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렇게나 빨리, 그것도 2개나 연달아 뽑혀 나올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답니다.”

“그 말씀은 신의 선물 뽑기에서 이렇게 7신기가 연달아 뽑혀서 나온 게 게임상의 어떤 메커니즘이나 설정 등이 아닌, 순전히 낮은 확률을 뚫고 벌어진 우연한 일이라는 말씀인 건가요?”

왠지 묻지 않은 것까지 술술 대답해 주고 있기에, 은근슬쩍 궁금했던 것들에 관해서도 물어봤다.

“네. 저희는 일절 개입한 바가 없답니다. 사실 시스템과 게임 내 이런저런 기둥이 되는 설정들은 저희가 대부분 만들었지만, 세부적인 부분은 통합 AI 세라자드의 역할이 상당히 컸거든요. 그래서 다른 게임들과는 달리, 저희 개발자들이 직접 GM을 맡아 저희가 놓치고 있는 오류들이 있는지 인 게임 내에서 찾아다니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타연 내에 버그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말인 건가요? 그런 위엄한 발언을 이렇게 유저들 앞에서 함부로 하셔도 되는 거예요?”

“물론 안 되죠. 방금 들으신 얘기는 당연히 비밀로 해주실 거죠, 산드로 님?”

“……네?”

뭔가 들어선 안 되는 걸 들은 것 같았지만, 그보다는 이 종잡을 수 없는 화법을 구사하는 테오시스의 본 모습이야말로 더 알아선 안 됐던 것 같았다.

어렴풋이 세기의 천재 이미지로 내 머릿속에 자리 잡았던 운영자의 실체가…… 이런 사람이었다니?

“다들 잘 아시다시피 지난 신검이 뽑히고 난 직후부터 저희 일루전의 주식이 폭등하지 않았습니까? 워낙 임팩트가 있는 사건이었고 뉴스에서도 도배되듯 연일 다뤄져, 신규 투자자들이 몰렸던 거죠. 그런데 근래는 다시 급락하고 있답니다. 혹시 그 이유에 대해서 알고 계시나요?”

“아뇨. 저는 폭등했던 것도 모르고 있었는데요?”

요 몇 달간 게임에만 몰두하느라, 나는 세상사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런 이런! 제 예상보다 더 대단한 분이셨군요? 이게 전부 다 산드로 님이 워낙 뛰어나셔서 생긴 일이랍니다. 혼자서 온갖 활약을 벌이신 덕분에, 최근 게임 내 밸런스가 엉망이라는 언론의 악평이 줄을 이었거든요!”

“네? 저 때문이요?”

“네. 실제로는 오히려 신규 유저와 컴백 유저의 증가세가 가팔라졌지만, 뉴스나 게임 평론가들의 부정적인 평가는 잠잠해지긴커녕 늘어나고만 있답니다. 그러니 주가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죠.”

“그건 아무래도 태성이 신검을 뺏기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인 것 같군요.”

잠자코 듣고만 있던 지옥불의 물음.

“지옥불 님이 말씀하신 의도가 뭔지는 알겠지만, 그래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아무리 태성 그룹이 몇몇 언론사들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하더라도, 저희 일루전과 대놓고 척을 질 수 있는 기업은 적어도 한국 내에는 없답니다.”

“그러면 언론이 지적하는 대로…… 실제로 게임내 밸런스에 문제가 있다는 말씀이신 건가요?”

“그랬다면 저희가 진작에 패치를 진행했겠죠. 밸런스는 전혀 문제없답니다.”

“그럼 도대체 이유가 뭔지요?”

“산드로 님의 실력. 라이더인 산드로 님이 저희가 예상했던 평균 라이더 수준의 상위 0.1%에 달하는 유저였다는 점이, 미처 생각지도 못한 문제였답니다.”

“예? 제가요?”

갑자기 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놀라서 대답했다.

“네. 하나뿐인 타이탄 라이더가 공교롭게도 너무 뛰어난 분이셔서 밸런스가 붕괴된 것처럼 느껴지게 된 겁니다. 더군다나 루이투스는 로드급 타이탄. 일반 솔저급 타이탄이나 나이트급 타이탄보다 뛰어난 타이탄이 최초로 등장하다 보니 더욱 충격이 컸죠.”

“아…… 저는 그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것밖에는 없습니다만…….”

“괜찮습니다. 저희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답니다. 잠수함 너프를 한다거나 그럴 예정도 없고요. 다만 부탁할 것이 있기에 이렇게 두 분을 모신 거랍니다.”

“부탁이요?”

“네. 이제 두 개의 국가가 건국됐으니 곧 솔저급 타이탄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할 겁니다. 그러면 수백 대의 타이탄과 수십 대의 나이트 급이 전장을 활보할 날도 금방 찾아오게 될 거고, 늘 그래 왔듯 논란은 언제 있었냐는 듯이 사그라들게 되겠죠.”

“그 정도로 타이탄이 많이 풀리는 겁니까?”

“아무래도 수백만 명이 한 서버에서 플레이하다 보니, 규모의 경제가 엄청나게 크답니다. 거기에 개발 초창기부터 저희 개발진들도 PC 버전보다는 훨씬 더 많이 풀리도록 조절해, 더욱 많은 유저들이 타이탄 라이더가 될 기회를 제공하기로 의도했고요. 마지막으로 차후 업데이트될 ‘천계’와 ‘마계’ 때문에라도, 타이탄은 다소 많이 풀릴 수밖에 없는 구조랍니다.”

이건 내게 상당히 안 좋은 소식이었다.

혼자만 타이탄을 갖고 있다는 이점을 오래 이어갈 순 없을 거라고 예상해왔지만, 그렇게나 많이 풀리게 될 줄은 몰랐다.

타이탄이 수백 대나 풀리게 되면, 지금까지처럼 혼자 활약할 수 있는 상황이 훨씬 적어지게 된다.

물론 이제껏 다중접속 온라인 게임에서, 나 혼자 깽판 치듯 활약했던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웠던 일이겠지만 말이다.

천계와 마계 업데이트라는 새로운 정보에 관해서도 물어보려는 찰나, 생각에 잠겨 있던 지옥불이 먼저 테오시스에게 물음을 던졌다.

“그래서 저희에게 부탁하실 거라는 건, 대체 무엇입니까?”

“타이탄이 또 등장했는데, 이번 것마저도 로드급이라면 다시 한번 밸런스 논쟁에 불붙을 건 뻔하지 않겠어요? 그러기 전에 두 분께서 먼저 타이탄의 성능에 대해 대중들에게 정보 공개를 해 주셨으면 해서 이렇게 찾아 왔답니다. 혹시 가능하시겠나요?”

“타이탄의 정보 공개라고요?”

타이탄의 정보를 공개해 달라는 말은 소환 시간이나 스킬 정보 등의 약점을 노출해 달라는 소리와 같은 말이었다.

당연히 불가하다고 말하려는 순간, 테오시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네. 사실 지금 갖고 계신 타이탄의 정보는 개인 정보라기보다는 게임 자체의 정보에 가까워서, 지금이라도 홈페이지에 정보 업데이트를 해도 상관없답니다. 물론 전례가 없던 일인지라 그러기 전에 두 분이 협조해 주시면 모양새가 더욱 좋긴 하겠지만요.”

“흠…….”

다시 한번 생각에 잠긴 지옥불.

하지만 내 생각에 이건 그녀가 우리를 찾아오는 순간부터 이미 결론이 난 일이었다.

우리가 협조를 안 해봤자, 딱히 공개를 막을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안 된다고 우기는 건 하책(下策).

오히려 잘만하면 전화위복으로 삼을 수 있는, 좋은 찬스가 될지도 몰랐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협조를 안 해드릴 수 없겠네요. 다만 테오시스 님도 이게 저희에게 상당한 손해인 건 아시죠? 혼자만 갖고 있는 특수 아이템의 정보를 공개해 달라는 소리와 마찬가지잖아요? 정보 업데이트도 저희가 걸고넘어지면 게임 약관과 어긋나는 부분이 있을 것도 같고요.”

“네, 물론 잘 이해하고 있답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직접 찾아와 부탁드리는 것이기도 하고요.”

“부탁이라고 하시니 드리는 말인데요. 그렇다면 정보를 공개하는 대가로 운영자님은 저희에게 무엇을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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