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70화 (70/350)

70화 운영자와의 거래 (2)

“대, 대가를 바라신다는 말씀이신 건가요?”

“네. 뭐든지 맨입으로 되는 거 보셨어요? 항상 운영자들이 숨어서 날 모니터링하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정말 아니었나 보네요? 나란 놈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걸 보니까요.”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

부탁하러 온 입장에서는 약소하게나마 선물을 준비해 와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던가?

옆에 있는 지옥불마저도 약간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여기서 뭘 얻어내게 된다면 본인에게도 이득일 터, 나를 말릴 이유가 없었다.

“와! 듣던 대로 대단한 분이시네요. 그러나 운영자, 아니 개발자라고 해도 게임 내에서 유저들에게 무언가 아이템을 선물하거나 혜택, 정보 등을 베풀 수 있는 건 없답니다. 사규(社規)에도 어긋날뿐더러, 만약에 그런 일이 유저들 사이에 알려지게 되면 회사의 신뢰도에 회복하지 못할 손실을 입힐 게 분명하니까요.”

“에이, 그건 말도 안 되죠! 저희가 정보를 밝혀서 만약 주가가 회복된다면 돈이 수백억, 수천억이 왔다 갔다 하게 될 텐데…… 그걸 그냥 말 몇 마디로 꿀꺽하겠다고요? 그리고 누가 아이템을 달라고 했나요? 그저 저희가 납득할 만한 대가만 주시면 되는 겁니다. 별로 많은 걸 바라지도 않아요.”

협상할 때 무언가 꼭 얻어내고 싶은 게 있다면, 다소 무리더라도 처음부터 강하게 부르는 것이 좋다.

큰 걸 먼저 요구한 다음 못 이기는 척 조건을 완화하게 되면, 상대방도 이정도는 괜찮지 않나? 하며 자신도 모르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

20년의 게임 인생에서 수없이 많은 아이템 거래를 하며 익힌, 실전 노하우였다.

“아이템이 아니라면 뭐가 필요하시다는 건가요? 아무리 운영자라 하더라도 사실 할 수 있는 건 별로 많지 않답니다.”

“경험치 축복요. 저번에 대규모로 할 때 한 번 받아 봐서 님께서 충분히 하실 수 있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라면 테오시스 님의 부탁을 고려해볼 만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옥불 님?”

“네. 듣고 있습니다, 산드로 님.”

“마신검 설명에 지금 타이탄 봉인되어 있다고 쓰여 있죠? 아마 마신검도 다르지 않다면, 그걸 해제하기 위해서는 레벨 10을 대가로 바쳐야 할 겁니다. 그러면 현재 랭커 위치에서 순식간에 순위권 밖으로 떨어지게 되실 텐데, 경험치 축복을 받게 되신다면 어느 정도 만회가 되지 않을까요?”

“몰랐던 정보지만, 정말이라면 딱 적당한 조건인 것 같긴 하군요. 사실입니까 테오시스 님?”

“네……. 10레벨 다운은 7신기의 타이탄 해제 공통 조건이에요. 7신기의 주인이 제법 자주 바뀔 거로 예상됐기에 만들어진, 나름의 페널티였답니다.”

테오시스의 확인으로 내 제의에 동조하게 된 지옥불.

거기다 테오시스 또한 바로 안 된다고 반박하지 않는 걸 보니, 내 제안이 터무니없게 느껴지지만은 않은 기색이었다.

“되는 걸 이미 알고 계시는데 안 된다고 할 수도 없고……. 만약 된다 치면 어느 정도를 원하시는 건가요?”

“1달간 50% 추가 획득 버프를 원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정도는 돼야 할 것 같아요.”

“말도 안 됩니다! 그 정도라면 누구라도 레벨업 속도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챌 거예요!”

내 말에 펄쩍 뛰는 테오시스.

하지만 이번 것도 먼저 세게 한번 불러 본 거였다.

그래도 살살 구슬려서 최대한 얻어내야 했기에, 계속해서 양념을 조금씩 더 쳐봤다.

“아닐걸요? 지옥불 님은 10레벨을 다운했으니 1달 만에 다시 기존 랭커 순위를 회복하기는 어려우실 거고, 저도 워낙 빠르게 레벨업을 해왔기 때문에 사람들도 그다지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거예요. 만약 제가 도둑 랭커에 진입하게 된다면 의심할지도 모르지만, 고작 1달 만에 그럴 리가 없잖아요?”

“…….”

“저희 두 사람만 버프를 받는 것이니까 저희만 입 다문다면 아무도 모르고 끝날 일입니다. 아이템처럼 증거가 남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도 안 되겠습니까? 주가 운운하셨던 걸 보니 경영진 쪽에서 요구했을 것 같은 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왠지 뜨끔해 하는 게 느껴진 순간, 결국 테오시스가 백기를 들었다.

“1달간 25%, 혹은 2주간 50%. 그 외에는 절대로 안 됩니다.”

“2주간 50%, 콜!”

“아……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월권인데……. 대단하시네요, 산드로 님. 이건 진심이랍니다.”

“솔직히 운영자님 제의대로만 하면 저희만 손해잖아요. 그러니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는 말아 주세요.”

지금 내 입장에선 좋은 아이템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시나 가장 급선무는 레벨업이었다.

조만간 타이탄이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할 테니, 수가 쌓이기 전에 어떻게든 일인무쌍급 으로 키워 놔야 태성과의 필드전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기간을 크게 단축할 소중한 기회를, 말 몇 마디로 얻어냈다.

“그리고 어차피 공개할 거라면 제대로 판을 깔아 보려고 하는데…… 협조 좀 가능할까요? 아예 방송으로 공개하도록 콜로세움에서의 녹화 기능 제한 좀 풀어주시면 좋겠는데요.”

“네? 방송요”

“산드로 님? 그건 또 무슨?”

아무리 생각해도 정보창을 캡처해서 홈페이지에 올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공개하기에는 너무 시시했다.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였지만 생각보다 괜찮을 것 같았기에, 두 사람에게 내 의견을 말해보았다.

“콜로세움을 빌려서 타이탄 2대로 일대일 전투 쇼를 열어보죠. 수만 명의 관중과 방송사까지 초청해서 말이죠.”

* * *

“사실 예전에 조금 인연이 있는 사이입니다. 테오시스 님과 저는 말이죠.”

테오시스와의 협상이 끝난 후, 지상에 내려온 우리는 잠시 둘만의 대화를 나누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한창 지옥불이 갤럭시 워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20대 초반.

오프라인 경기장까지 찾아와 응원하던 열성 팬 중 한 명이 지금의 운영자, 테오시스라고 했다.

“당시엔 과학고에 재학 중이던 여고생이었죠. 직접 플레이하는 것보다 경기를 지켜보는 게 더 재미있다던……. 우연히 서로를 알게 된 후에는, 절 이길 수 있는 AI를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었죠. 그러더니 미국 유명 공대에 진학하느라 소식이 끊겼었는데…… 10년이 훌쩍 지난 후에야 재회하게 됐습니다. 초청받아 참석했던 타연 개발 발표회에서 우연히 말이죠.”

“그럼 아직 30대 초중반 밖에는 안 됐겠네요? 와, 테오시스라는 분 진짜 대단한 사람이네요. 사적으로 만나 보니 뭔가 어리숙한 사람인 것처럼도 보였는데…….”

“평생 공부와 연구만 해 왔을 테니, 아무래도 게임상에서도 그런 부분이 좀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제는 서로의 위치가 위치인 만큼, 예전처럼 아는 척은 못 하고 있지만 참 대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팬이었던 소녀가 개발에 참여한 게임을, 지금 제가 진심을 다해 플레이하고 있으니까요.”

두 사람 모두 꿈을 좇아, 평생 자신의 분야에서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런 만큼, 두 사람은 이제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어느 정도의 ‘현실 업적’을 달성하여 멋지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크게 부럽지만은 않았다.

아직 무엇하나 이룬 게 없는 ‘나’지만, 예전과 달리 이제는 나만의 목표를 향해 미친 듯이 노력하고 있었으니까.

“어쨌든 고생하셨습니다, 지옥불 님. 제가 멋대로 진행한 거래에도, 방송 출연에도 선뜻 동의해 주셔서요.”

“어차피 해야 하는 거라면 이렇게 뭐라도 얻어내는 게 좋죠. 거기에 방송도 생각해 보니 좋은 의견인 것 같아서 오히려 감사드립니다.”

제국의 수도 오스타그에 존재하는 초대형 경기장, 콜로세움.

평상시 투기장이라고 불리는, 유저들 간의 모의 전투 인던이 생성되고 매일같이 PvP 랭킹이 매겨지는 곳.

나도 천인대전으로 참여해 본 적 있는 투기장 대신, 이곳은 다른 역할로도 유명했다.

유저가 개최하는 대형 행사나 토너먼트, 몬스터 사냥 등의 이벤트.

누구나 골드만 지불한다면 콜로세움을 빌릴 수 있어, 실제로 이런 용도로 종종 사용되고 있었다.

즉 다시 말해, ‘인스턴트’ 모드와 ‘실물’ 모드.

콜로세움은 이 2가지 모드로 이용할 수 있었다.

실물로 이용하게 된다면 유저들이 관중석에 실제로 착석해서 구경할 수도 있는데, 그 인원만 해도 무려 3만 명까지 수용이 가능한 대형 시설물이었다.

이곳에서 관중들과 방송국을 초청해서 타이탄을 탑승한 채로 둘만의 결투를 벌인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대형 몬스터를 사냥하는 모습까지 보인 후, 마지막으로 타이탄에 관한 정보를 공개한다.

내가 운영자에게 제안한 즉흥 아이디어였다.

물론 번거롭고 거창한 일이 되겠지만, 이렇게 진행하면 그냥 정보만 공개하는 것보다 얻을 수 있는 것이 크게 2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 대중들에게 저희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 줄 수 있습니다.

신검을 먹고 난 후, 내가 지속해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이미지 관리.

일단 이번 건을 통해서 다시 한번 이미지 제고를 꾀할 수 있었다.

-저희가 스스로 타이탄의 정보를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저희에게 호감을 갖게 될 겁니다. 가뜩이나 6성을 갖게 된 피닉스는 타이탄까지 얻게 되었으니, 앞으로 온갖 시기와 견제의 대상이 될 게 분명하죠. 하지만 이런 공개 쇼를 개최하게 되면 어느 정도 그런 질투를 희석할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견제보다는 대범함에 반해, 길드원이 더욱 늘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나 또한 타연 내에서 계속 존재감이 높아지는 것이, 차후 신상이 밝혀졌을 때의 안전과 직결되는 것이기에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두 번째, 유저들을 대상으로 입장료를 걷을 수는 없겠지만 방송사들은 다릅니다. 방송 중계를 통해 금전적인 이득을 취할 기회입니다. 요즘 돈 나갈 곳이 많아진 피닉스로서는 가뭄의 단비가 될 수도 있을 테죠.

콜로세움을 빌리게 되면 입장객들에게 입장료를 설정할 수 있었다.

보통은 이벤트답게 무료로 설정하지만, 토너먼트 같은 행사에서는 입장료를 설정해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는 경우도 있었다.

유저들에게 입장료를 받는 것은 이미지 개선이라는 목적과 어긋나기에 할 수 없겠지만, 방송사들은 달랐다.

타연과 연관된 방송 채널 중 중계권 비용을 지불할 만큼 큰 곳은 타이토닉TV, 올타TV, TTG 등등해서 대략 5여 곳.

두 타이탄, 특히나 마신검의 타이탄이 최초 공개되는 자리라면 얼마든지 중계료를 지불해서라도 방송하고 싶을 게 분명했다.

-방송으로 공개하게 되면 단순히 홈페이지에 정보를 올리는 것보다 훨씬 더 전달 효과가 크겠죠? 여러 뉴스에도 자세히 소개될 테니 말이죠. 어떻게 보면 바로 주가에 반영되기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일지도 모릅니다.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테오시스로부터 콜로세움 방송에 협조하겠다는 확답을 받아내고 지상에 내려왔다.

“산드로 님 덕분에 좋은 걸 여럿 얻어냈으니, 저도 7신기와 관련된 정보 하나를 드릴까 합니다.”

“정보요?”

내가 이 사람을 보면 볼수록 호감을 느끼는 이유.

이 지옥불은 처음부터 그랬듯, 기브 앤 테이크가 철저한 남자였다.

“상당히 놀라운 업적을 받게 돼서요. 아무래도 설명을 읽어보니 이건 산드로 님은 못 받았을 것 같더군요.”

“어떤 업적인데요? 흠…… 헉!”

지옥불이 귓속말로 보내 준 업적의 정보 링크를 읽자마자, 헉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업적: 7신기의 해방자(S)]

* 타이탄 연대기 최고의 무기, 7신기를 세상에 등장시킨 자에게 주어지는 업적입니다. (모든 능력치 +30)

* 업적 효과로 집중 공격에 대해 매우 높은 내성이 생깁니다. (모든 물리 및 마법 데미지 -20%)

* 이 업적은 오직 7명의 유저만 소유할 수 있습니다.

“말, 말도 안 돼! 사람들이 왜 기를 쓰고 방어구에 +1강을 하겠다고 돈을 쏟아붓는데요? 이게 정말이라면 이건 완전히 밸런스 파괴잖아요! 아무리 S급이라 해도 무슨 업적 효과가 이렇게까지!”

“아무래도 그런 면이 있죠? 그래도 오직 7명만 가질 수 있는 업적이라는 걸 보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닙니다. 어차피 디바인 무기와 로드급 타이탄만 해도 충분히 밸붕급이었기도 하고요.”

어쩐지 아무리 업적 획득 조건이 까다롭다고는 해도, 무려 신검을 먹었는데 업적 하나가 안 떴던 게 평소 의아하기는 했었다.

한데 이제 보니, 업적을 남발하기보다는 최초 획득자에게 더 큰 메리트를 몰빵해 주자는 의도였던 모양이었다.

디바인 무기는 주인이 자주 바뀔 것이라고 예상했다는 테오시스의 발언을 고려해보면, 이해가 전혀 안 가는 것까지는 아니었다.

“보아하니 7신기가 강화로 파괴되어 리셋되지 않는 이상, 이 업적을 받은 사람이 업적을 뺏길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다리우스 또한 여전히 이 업적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겠지요.”

“…….”

이 업적 하나가 마치 방어구 서너 개를 추가로 착용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내고 있었다.

그야말로 사기 중의 사기 수준이라고 할만한 업적.

내가 가진 S급 업적 ‘경험치 추가 효과’와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은, 어쩌면 여러모로 효용성이 더 높은 업적으로 보였다.

‘다리우스 이 자식……. 어쩐지 신검을 떨굴 때 드럽게도 안 죽더니, 이거 때문이었구나?’

가뜩이나 죽이기 힘든 랭커 1위이자 타연 최고 길드의 마스터인데, 사실은 훨씬 더 죽이기 힘든 상태가 된 지 오래였다.

지옥불이 이 귀중한 정보를 굳이 왜 공유해주나 싶었는데, 이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산드로 님. 저희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다리우스가 타이탄을 갖기 전에 잡아 보도록 하지요. 만약 그놈이 타이탄까지 갖게 된다면, 죽이는 건 정말 힘든 일이 될 겁니다.”

“바라던 바입니다.”

다리우스라는 공통의 적이 있는 한, 지원군은 언제든지 환영이었다.

물론 배신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조건이 붙겠지만 말이다.

* * *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려온 그 날이 왔습니다! 이곳은 지난 5일간의 예고로 수많은 유저들이 모이게 된 오스타그의 콜로세움 현장입니다. 시청자 여러분, 잠시 후 이곳에서 벌어질 지상 최대의 쇼를 절대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채널- 고정!』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