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71화 (71/350)

71화 운영자와의 거래 (3)

콜로세움의 경기장 무대 뒤편에 도착하니, 벌써부터 여러 방송사의 마이크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들어오면서 살펴봤는데 객석은 이미 거의 다 차서, 시작도 하기 전부터 3만 명에 가까운 관중이 전부 다 모인 듯싶었다.

하긴 내가 일반 유저였더라도 타이탄을 직접 눈으로 구경할 수 있는 이번 기회를 놓치기는 싫었을 것이다.

-이거 실화냐? 타이탄끼리 결투한다고? 와, 산드로와 지옥불 이놈들 겜 제대로 할 줄 아네.

-그것만 하면 심심하니까 몹 잡으면서 타이탄이 얼마나 센지도 보여준다는데? 운영자와 얘기 끝났대~ 끝에는 인터뷰도 진행한다고 하고!

-근데 진짜 대인배들 아니냐? 나라면 꼭꼭 숨겨놓고 정보는 일절 안 풀었을 텐데?

-지들끼리 다 해 처먹는다고 비난받을 게 뻔하니 선수 치는 거지. 쟤들이 손해 볼 짓을 하겠냐?

└ 태성 어서 오고~

근래 커뮤니티 사이트를 모니터한 결과, 여론은 확실히 우리의 이번 시도에 대해 우호적이었다.

확실히 이렇게 작은 기회라도 놓치지 않고, 유저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두려는 것이 조금씩 먹히는 것 같았다.

대중은 태성이 어떤 놈들인지 잘 모른다.

최상급 유저들 사이에 악명이 높은 건 그저 작은 메아리일 뿐,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태성이라는 타연의 1등 길드와 스타 플레이어들에게 우호적이었다.

특종과 최신 뉴스를 따내야 하는 방송 채널들 또한, 최선두 그룹인 태성의 비위를 어느 정도 맞춰줄 수밖에 없었다.

오프라인에서도 태성 그룹이 광범위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기에, 게임 내 태성의 악행들이나 노매너에 관한 것들이 대중에게 널리 퍼지지 않은 점도 원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태성을 상대로, 앞으로 혼자 무차별 필드전을 펼칠 계획이었다.

아마 그때가 된다면 내게 죽은 유저들의 원망으로 온 사이트의 게시판이 도배될지도 몰랐다.

또한, 내 아이디는 항상 시뻘겋게 물든 머더러 상태를 절대 벗어나지 못하게 될 테고 말이다.

그때를 대비해서 이렇게 조금씩이나마, 산드로란 존재가 좋은 이미지를 갖도록 노력해야만 했다.

“먼저 와 있었군요.”

“며칠만이네요 지옥불 님. 준비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제가 뭐 한 게 있겠습니까? 여기 있는 두 사람이 사실 거의 다 준비했습니다. 고생이 많았다, 너희들.”

“아닙니다, 형님.”

“저희가 할 일인걸요, 길마님.”

대기실로 들어오는 지옥불 뒤로, 부길마 히든캬드와 총무 슈바이쳐의 모습이 보였다.

어느덧 6성이라는 초거대 길드로 성장한 피닉스.

그래서 그런지 확실히 길드 마스터를 돕는 뛰어난 인재도 많아, 짧은 시간 만에 행사를 준비하는 데도 무리가 없었다.

콜로세움을 빌리고 대중에게 홍보하고 방송국과 접촉하는 건, 말은 쉬웠지만 상당히 해야 할 일도 많고 시간도 허비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과연 둘밖에 없는 국왕 유저답게, 나까지 나서서 도와줄 일은 없었다.

“산드로 님은 바이트 코인보다는 골드로 받으시겠다고 하셨죠? 여기 백만 골드입니다. 방송국으로부터 받은 돈을 환전해 왔습니다.”

만나자마자 교환창부터 요청하는 지옥불.

그로부터 골드를 건네받았다.

하루아침에 유명 스타가 된 연예인의 기분이 이러했을까?

이제는 단위 자체가 달라진 골드가, 매일같이 너무도 쉽게 수중에 들어왔다.

“번거로우셨을 텐데 감사합니다. 혹시나 꼬리가 밟힐까 봐 아직 현금은 별로 쓰질 않고 있거든요. 저번에 현금화한 돈도 쓰려다 말았습니다.”

“아 그러셨습니까? 한데 이제는 산드로 님도 워낙 유명해지셔서,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텐데요.”

“지금이야 그렇죠. 하지만 앞으로 제가 태성에게 할 짓을 생각해보면, 계속 조심해 보려고요.”

“도대체 얼만큼이나 태성을 상대로 깽판을 벌이시려고…….”

“형님! 이제 시작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유저분들도 충분히 오래 기다리셨고요.”

그다지 대화를 나눈 것도 없는데 서둘러 재촉하는 히든캬드였다.

어쨌든 오늘의 목적은 대화가 아니었기에, 우리는 잠시 말을 맞추고 경기장으로 올라갔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두 신검의 주인인 산드로 님과 지옥불 님이 올라오십니다. 모두 힘찬 박수로 반겨 주시기 바랍니다!』

와아아아!

경기장을 둘러싼 객석을 빼곡히 채운 3만 명의 관중들이, 우리 둘을 향해 엄청난 환호성을 쏟아냈다.

아무리 가상현실 게임이라고 해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집중 받는 것은 처음 겪는 일.

첫 공성전에서 선전포고할 때보다 열 배는 더 많은 유저들 때문에, 내 가슴은 또다시 세차게 두근댔다.

허나 생각보다는 무대체질인지, 마음과는 달리 담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반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리버스 국의 국왕, 지옥불입니다.』

『안녕하세요, 산드로입니다.』

일단 간단한 인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됐다.

인터뷰어는 내가 타이토닉TV의 김석용 아나운서를 추천했기에 그가 대표로 혼자 나오게 되었고, 주변은 5개 방송사의 카메라맨이 우리를 찍고 있었다.

아무래도 배경 지식을 먼저 설명한 후에 전투를 벌이는 것이 이해가 쉬울 듯싶어서, 대결에 앞서 인터뷰부터 진행하기로 했다.

『타이탄은 모두 3개 등급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말씀이신 건가요?』

『네. 힘들게 알게 된 내용이지만 저희 리버스 국은 타연 유저분들의 궁금증 해결을 위해 정보를 아낌없이 공개하겠습니다. 일단 건국을 하게 되면 국가는 솔저급 타이탄을 제작할 수 있게 됩니다. 저희도 지금 연구 중인데, 아마 먼저 건국한 태성은 이미 생산 단계에 이르렀을지도 모릅니다.』

『헉! 그 말씀은 조만간 여러 대의 타이탄이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건가요?』

『여러 대뿐만이 아닙니다. 이르면 일 년 안에 수백 대의 타이탄이 필드를 활보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 게임의 타이틀부터가 타이탄 연대기 아니겠습니까? 다른 유저분들께서도 이 소식을 듣고 분발하여, 그런 날이 더욱 앞당겨질 수 있도록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이기도 합니다!』

와아아!

“리! 버! 스!”

“피! 닉! 스!”

지옥불의 충격 발언이 끝나자, 흥분한 관중들이 단체로 피닉스 길드를 외쳐대기 시작했다.

잠시 함성이 잦아들기를 기다린 지옥불은 이어서 차분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저희가 알아낸 바에 의하면 솔저급은 1개의 전용 스킬을 갖게 되고, 그 윗급인 나이트급은 2개의 스킬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희가 7신기를 통해서 갖게 된 타이탄은 로드급이라는 가장 높은 등급으로, 총 3개의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그간 산드로 님께서 타이탄으로 보여주신 놀라운 활약은, 최고 등급의 타이탄이었기에 가능했다는 말씀이시군요?』

『네. 그간 타이탄 때문에 밸런스 파괴니 망겜이니, 말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로드급 타이탄을 얻게 된 제가 탑승해보니, 전혀 그렇지는 않다고 판단 내렸습니다. 산드로 님의 실력이 워낙 출중했던 것과, 하필 처음 등장한 타이탄이 가장 좋은 타이탄이였다는 것이 문제였던 것이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타이탄의 등장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유저들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지옥불 님께서는 타이탄의 등장으로 유저들 간의 격차가 너무 심해졌다고 생각하시진 않습니까?』

『물론 타이탄이 너무 좋다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페널티도 큽니다. 일단 타이탄은 레벨업을 할 수 없기에 처음 그 스펙 그대로 쭉 이어지게 됩니다. 유저분들의 레벨이 오를수록 그 격차는 꾸준히 줄어들게 된다는 뜻이지요. 거기다가 타이탄 라이더가 죽게 되면, 놀랍게도 자신의 타이탄 소유권은 다른 사람에게로 이전될 수 있습니다. 마치 아이템을 드랍하듯이요!』

『네에!?』

놀라서 되묻는 김석용 아나운서.

객석의 유저들 또한 전부 깜짝 놀라 술렁거렸다.

『이 말은 다시 말해, 타이탄이 늘어날수록 유저들이 탑승할 기회도 그만큼 많아진다는 얘깁니다. 그저 부러운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평범한 유저들도 얼마든지 타이탄 라이더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걸 알려드리기 위해 이번 이벤트를 열게 된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정보군요! 말씀하신 것들이 전부 사실이라면, 오늘을 기점으로 많은 유저분들이 타이탄 라이더라는 목표를 가지고 플레이하게 되겠습니다!』

『네, 맞습니다. 저와 산드로 님은 그저 여러분보다 조금 앞서나갔을 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께서는 조급해하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결국엔 누구나, 이 타이탄이란 놈을 통해 타연을 더 재미나게 즐기게 될 것입니다!』

와아아!

지옥불의 격앙된 화법에 매료된 관중들이, 다시 한번 함성을 질렀다.

‘나서는 걸 싫어한다는 사람치곤 너무 잘하잖아? 하긴 예전에도 그랬지. 확실히 수십 년 동안 프로게이머 생활하며 먹은 짬밥이, 그냥 먹은 건 아니셔.’

확실히 지옥불이 인터뷰를 도맡아 하기로 한 건 잘한 결정이었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았다.

『이제, 어느 정도 타이탄에 대한 궁금증들이 해소되셨을 테니, 기다리셨던 일대일 전투를 해볼까 합니다.』

『드디어! 새로운 타이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겠군요!』

『네.』

“산드로 님, 준비되셨지요?”

“네, 됐습니다. 먼저 소환하시면 바로 뒤따라 소환하겠습니다.”

김석용 아나운서와 카메라맨들이 뒤로 물러서자, 지옥불이 내게 결투를 신청해왔다.

[‘지옥불’ 님이 결투를 신청합니다. 수락하겠습니까?]

[YES]

[‘지옥불’ 님과의 결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일주일간 경험치 버프에 힘입어 달성한 레벨은 325.

이제 하위 랭커들과는 40레벨도 차이 나지 않을 만큼, 엄청난 속도의 폭업이었다.

그러니 지옥불이 소환할 타이탄과 내 타이탄의 소환 유지 시간은, 그다지 큰 차이가 나진 않았다.

“데이네스 소환!”

지이잉!

지옥불을 가운데에 두고 지상에 새겨진 마법진.

그 안에서 빛이 쏟아져 나오더니, 금세 6미터 크기의 칠흑빛 거신이 소환되었다.

<반전(反轉)의 어둠, 데이네스>

전신을 감싸고 있는 외골격의 장갑은 검은색 금속이 광택으로 번들댔고, 손에 든 긴 흑색의 장검은 루이투스의 검보다 얇은 대신 길었다.

화려한 외형은 아니었지만, 화려해 보였다.

동시에, 마치 암흑의 마왕이 강림한 것 같은 위엄도 공존하고 있었다.

“루이투스 소환!”

그에 대적하는 멸절의 빛, 루이투스.

타이탄에 올라타자 왠지 낯선 기분이 들었다.

루이투스를 탄 이래로 눈높이가 맞는 상대는 처음이었다.

“가겠습니다! 지옥불 님.”

“오십시오!”

지옥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데이네스에게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챙!

놀랍게도 데이네스의 검이 내 검을 튕겨냈다.

무기 방어와 같은 스킬과 확률로 발동하는 가드 판정이 아니라면, 타연 내에서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없다는 건 상식!

하지만 타이탄 간의 대결에서는 이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패링(parrying) 시스템? 타이탄끼리는 무기가 오브젝트 판정이라도 받는다는 말이야?’

이건 나조차도 몰랐던 설정이었다.

확실히 직접 해봐야 알게 되는 새로운 정보들이, 이 타연에는 아직 무궁무진하게 남아있었다.

잠시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두 타이탄이 마주 보다가, 다시 내가 공격하는 것으로 결투는 재개됐다.

연달아 휘두르는 내 참격을 놀랍게도 전부 가드해낸 데이네스.

그 암흑의 거신이 나를 향해 전진하며 스킬을 시전했다.

[안식의 검!]

빠르게 검을 세 차례 찔러대는 데이네스.

아무래도 안식의 검이라는 스킬은 단일 타게팅 삼연격(三連擊) 공격인 모양이었다.

[데이네스로부터 8,552의 물리 피해를 입습니다.]

[데이네스로부터 9,108의 물리 피해를 입습니다.]

[데이네스로부터 8,887의 물리 피해를 입습니다.]

막아보려 했으나 평타와 달리 스킬은 막을 수 없는 모양인지 그대로 적중당했다.

나 또한 질세라 영광의 검을 날렸으나, 어쩐 일인지 내 공격은 막혀버렸다.

[침묵의 방패!]

스킬명을 외침과 동시에 데이네스의 왼팔이 검은 아지랑이 같은 기운으로 뒤덮였고, 그 검은 방패가 내 스킬을 대신 맞아준 것이었다.

마법 데미지만 흡수하는 내 광휘의 방패와는 달리, 물리 데미지까지 막아 줄 수 있는 쉴드인 모양.

여러모로 내 루이투스의 스킬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스킬을 갖고 있었다.

공격해봤자 내 공격을 전부 다 흡수하니, 잠시 쿨타임을 벌기 위해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데이네스가 마지막 스킬을 공개하며 따라붙었다.

[절망의 울림!]

전진기로 예상했던 나머지 스킬.

그건 놀랍게도 점프 스킬이었다.

전사 유저들이 갖고 있는 리프 어택(leap attack)과 똑 닮은 스킬!

체고의 몇 배나 높게 점프해서 빠르게 날아온 데이네스가 내 앞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루이투스는 충격파 이펙트와 함께 넉백당해 버렸다.

『아! 타이탄이 타이탄을 쓰러뜨리는 장면입니다! 가까이서 지켜보니 정말, 너무나도 웅장한 전투입니다!』

쓰러진 내게 다가와 후속타를 먹이는 데이네스.

난 넉백이 풀리자마자 데이네스의 검을 흘리며 카운터를 먹였다.

그리고 평캔과 함께 심판의 전진을 사용했다.

콰당!

돌진 전진기를 짧은 거리에서 쓸 줄은 몰랐는지, 어느새 검은 방패가 사라진 데이네스도 적중당해 넉백당했다.

나 또한 넘어진 데이네스에게 검을 빠르게 휘둘러서 제법 추가타를 넣는 데는 성공했으나, 금세 일어나 가드를 시작하자 또다시 유효타를 먹이기 힘들어졌다.

이 정도라면 새로운 전투 시스템이 도입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유저들의 일대일 대결에서 흔히 펼쳐지는 말뚝딜 싸움이, 타이탄 간의 전투에서는 전혀 통용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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