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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72화 (72/350)

72화 운영자와의 거래 (4)

공격을 실제로 보고 막을 수 있는 전투 시스템이라면, 아무래도 전투 센스와 반사 신경이 뛰어난 사람이 더 유리할 수밖에 없다.

프로게이머인 지옥불의 반사 신경이야 말할 것 없었지만, 나 또한 지옥불 못지않았다.

챙, 챙, 채챙!

순식간에 몇십 합이나 되는 공격을 나눴지만, 검들이 맞부딪치는 금속음만 요란하게 울릴 뿐 제대로 된 유효타는 서로에게 몇 대 먹이지 못했다.

『노, 놀랍습니다! 지옥불 님의 컨트롤이야 모르는 분들이 없었겠지만, 산드로 님의 컨트롤 또한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군요! 타이탄 간의 전투가 이런 시스템일지, 그리고 둘 간의 전투가 이렇게 팽팽하게 진행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결투를 통해 산드로 님의 전투 센스가 프로게이머, 혹은 그 이상급이라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군요!』

‘흥! 한창 금강 파이터즈에 빠졌을 때, 통합 순위 30위 안까지 들었던 몸인데 이 정도쯤이야!’

안 해본 게임이 없었던 나는, 예전에 격투 게임도 몇 개 섭렵한 전적이 있었다.

물론 그 게임들의 경험을 실제 몸으로 하는 이런 가상현실 전투에 직접 대입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하지만 카운터를 날리기 위한 반사 신경이나 타이밍을 잡는 법, 이지선다나 심리전을 거는 법 등에 대해서는 통달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익숙했다.

그러니 이런 전투 시스템은 오히려 내게 잘됐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편하게 느껴졌다.

TX-PRO 버전의 캡슐을 사용한 후부터는, 예전과 달리 컨트롤에도 자신이 붙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는 만만치 않은, 아니 그 많은 프로게이머 중에서도 무려 ‘전설’이라고 불렸던 사내.

우리는 2분의 시간을 맞서 싸웠지만, 별다른 결정타를 날리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답보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순식간에 서로의 스킬 파악과 쿨타임, 공격 패턴을 꿰뚫게 된 것이다.

결국 지옥불이 뒤로 물러서서 전투를 멈추고는, 관중을 향해 소리쳤다.

『이 정도면 유저분들께서 타이탄의 전투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충분히 파악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남은 3분은 테오시스 님의 도움을 받아 타이탄이 대형 보스 몹을 사냥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약속했던 결투 시간은 3분이었지만, 2분만으로도 둘 다 충분히 깨달을 수 있었다.

일대일 전투는 더 진행해봤자 시간 낭비라는 사실을…….

‘솔저나 나이트급은 모르겠는데, 로드급끼리는 일대일로 싸움해봤자 절대 소환 시간 내에 잡아내질 못하겠어. 역시 타이탄은…… 계획 단계부터 대규모 전투용으로 만들어졌던 게 분명하구나.’

이번 타이탄 간의 대결을 통해 뜻밖의 정보를 추가할 수 있었다.

여하튼 우리가 전투를 멈추자, 곧바로 운영자가 우리 둘 사이로 스르륵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이번 이벤트를 협조하게 된 GM 테오시스입니다. 시간이 없으니 곧바로 몬스터를 소환하도록 하겠습니다. 서먼 몬스터!』

테오시스의 외침과 함께 넓은 경기장 한복판에 필드 보스 몬스터 한 마리가 소환되었다.

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덩치와 흉폭한 두 개의 머리.

두 손에 각각 전투 도끼와 강철 몽둥이를 든 녀석의 이름은, ‘트윈 헤드 오우거’였다.

최근에는 유저들의 레벨이 올라가서 이놈을 레이드하는 것이 조금은 쉬워졌다고 들었다.

하지만 얼마 전만 해도, 20명의 유저가 달라붙어도 종종 실패하는 난이도가 제법 있는 녀석이었다.

허나 우리 두 타이탄 앞에 이놈은 그저 애피타이저일 뿐.

녀석이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라붙어 경쟁하듯 검을 박아 넣었다.

‘공격하는 족족 가드하던 지옥불 님을 상대하다가, 이런 멍청이 몹을 잡으려니까 너무 쉽구나!’

혼자서 오크 로드도 잡아냈던 게 바로 이 로드급 타이탄이었다.

그러니 로드급 타이탄 2기의 집중 공격을, 이런 네임드도 아닌 필드 보스가 제대로 버텨낼 리 없었다.

단 20초.

소환된 지 채 20초가 지나기 전에, 수십 명의 유저들이 달라붙어야 겨우 잡던 보스 몹을 단 두 명이 쓰러뜨렸다.

『아, 아니! 트윈 헤드 오우거가 무슨 오크 투사도 아니고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이제 좀 공격하나 싶었는데 그대로 죽어버렸습니다! 정말 엄청난 위력입니다!』

호들갑을 떨며 외치는 김석용 아나운서.

그리고 그 곁에서 오우거가 사라지는 것을 본 테오시스는 곧바로 다음 몬스터를 소환했다.

크아아아!

3만여 관중의 함성을 송곳처럼 뚫고 울려 퍼지는 피어 소리.

그와 함께 나타난 녀석의 정체는 벤토 숲의 주인인 히드라였다.

<재앙의 히드라 젤 루퍼>

타연에 최초로 등장했던 초대형 몬스터.

지금으로부터 1년 전, 태성 길드에서 무려 100명 이상의 공격대를 동원해서 퍼스트 킬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진 압도적인 보스 몹의 상징.

그 녀석이 우리의 다음 상대로 이 콜로세움 한복판에 등장했다.

『채 3분도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무엇이 나타날까 싶었는데 젤 루퍼, 바로 히드라였습니다! 10미터가 넘어가는 압도적인 크기의 몸체, 그리고 거기에 붙어있는 저 9개의 긴 머리! 늪이 아닌 여기 콜로세움에서 이 보스 몹을 보게 되니, 정말 더욱 무시무시한 모습이네요!』

녀석의 가장 위협적인 부분은 눈과 입에서 뿜어내는 석화 공격과 독 운무 도트(Damage Over Time) 공격이었다.

HP가 높지 않은 근접 딜러들이 쉽게 죽어 나가기 좋은 모든 조건을 갖춘 놈.

더불어 전원이 각 9개 머리의 움직임을 한 개도 빼먹지 말고 집중해야 하느라,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했던 놈이었다.

하지만 타이탄은 그야말로 녀석의 천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동급 체형의 몬스터가 쓰는 물리적인 상태 이상기라면, 몇 번 경험했다시피 타이탄도 걸릴 수 있었다.

하지만 9개의 머리가 쓰는 슬립, 공포, 혼란, 석화 등등의 마법적인 상태 이상기는 전부 대(對)유저용 스킬인지라 걸리질 않았다.

또한 높디높은 체력 덕택에, 도트 데미지 따위는 이 타이탄이라는 놈에게 전혀 의미 없었다.

“지옥불 님! 누가 더 대가리 많이 따는지 내기하실래요?”

“좋지요! 갑니다, 안식의 검!”

내 제의에 히드라의 소환이 완료되자마자, 지옥불은 그대로 달려가 가까이 있는 머리를 향해 삼연격을 날렸다.

나 또한 데이네스의 반대편으로 이동해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머리들을 향해 영광의 검을 날리며 심판의 전진을 사용했다.

쿠궁!

놀랍게도 유저들로서는 꿈도 못 꿔봤을 초대형 몬스터의 넉백이 이루어졌다.

정신 못 차리는 히드라를 향해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다가, 일어나는 순간 데이네스도 리프 어택인 절망의 울림을 사용했다.

그러자 녀석은 연속으로 넉백 당해, 우리에게 장시간 프리딜을 허용했다.

케엑!

어느새 데이네스가 치고 있던 머리 하나가 잘려나갔고.

케에엑!

곧이어 내가 집중적으로 치고 있던 머리 하나도 터져나갔다.

『이럴 수가…… 정말 말이 안 나오는 광경입니다. 타이탄 두 기가 함께 레이드를 진행하니 잠깐만에 벌써 머리가 두 개나 잘려나갔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정말이지 이런 레이드 속도를 상상이나 해보셨습니까!』

오크 로드 레이드를 할 당시도 타이탄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기껏해야 백여 명 안팎의 유저만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것조차 막판에만 잠깐씩 전투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게 전부였다.

그러니 이런 대규모 관중과 수많은 시청자들이 보게 될 방송에서 타이탄으로 보스 몹을 레이드 하는 모습을 공개한 것은, 어찌 보면 전례 없던 엄청난 충격이 될지도 몰랐다.

그동안 이런 필드 보스 몹들을 잡기 위해, 얼마나 많은 유저들이 수없이 죽어 나가며 공략법을 연구했던가!

그러나 타이탄이 등장하면서부터, 그 모든 역사와 전략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남겨지게 되었다.

조금 전 우리가 밝혔던 것처럼, 이제 타이탄은 앞으로 끊임없이 등장하기 시작할 테니 말이다.

쿠궁.

마침내 거대한 히드라가 모로 쓰러졌다.

광역 스킬이 있는 덕분에 내가 5개, 지옥불이 4개의 머리를 클리어한 끝에 달성한 결과였다.

나도 히드라 레이드는 처음인지라 시간 내에 잡아낼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확실히 레벨 차이도 있고 로드급 타이탄 2기의 폭딜이 시너지 효과도 낸 모양이었다.

머리가 재생되기 전에 순식간에 따버리다 보니, 히드라 특유의 엄청난 체력 회복 속도가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지옥불도 설마 잡아낼지 몰랐는지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이내 뿌듯한지, 데이네스의 검신을 들어 나를 향해 뻗었다.

챙!

나 또한 루이투스의 검신을 들어 맞부딪혀, 그의 세레모니에 화답했다.

『결국 히드라를 잡아내고 말았습니다! 놀랍게도 2기의 타이탄만으로 불과 3분여 시간 만에 300레벨의 필드 보스를 잡아낸 것입니다. 드디어 타이탄 연대기라는 게임 타이틀에 걸맞은 시대가 시작됐음을, 모두의 앞에서 선보이는 순간입니다!』

그렇게 흑과 백의 거대한 타이탄들은 검을 맞닿은 채로 서로 붙어있다가, 곧 하나씩 역소환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지상에 다시 나타난 지옥불이 카메라맨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더니 이윽고 말을 꺼냈다.

“여러분들에게도 지금 보신 타이탄 라이더가 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열려 있습니다. 그러니 도전하고 또 도전하십시오. 그래서 저희가 지금 느끼고 있는 즐거움을 함께 누려 보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도 계속될, 이곳 타이탄 연대기 안에서!”

* * *

-방송 봤냐? 타이탄. 진짜 간지 개쩔더라!

-타연하는 사람치고 안 본 사람이 있음? 진짜 그동안 타이탄이 뭔지 제대로 모르고 있었는데 미쳤음. 대체 저게 말이 됨?

-말이 왜 안 됨? 애초에 게임 이름부터가 타이탄 연대기인데 ㅋㅋㅋ

-무슨 두 명이서 백 명이 간신히 잡던 히드라를 순식간에 쳐 잡어? 다른 유저들은 개호구야? 이걸 지켜만 본다고? 타이탄은 반드시 너프시켜야 한다!

└ ㅇㅇ 아냐. 기사들도 이미 호평 일색에 사람들 반응도 역대급임. 접은 사람들 지금 너도나도 복귀한다고 공홈 지금 터져나가고 있음

└└ 컴백하는 사람보다 방송 보고 접는 사람이 더 많겠다! 이거 너프 하지 않으면 타연 분명히 곧 망한다고!

└└└ 타연 망하는 거보다 니 인생 망하는 걸 더 걱정해야 할 듯. 억울하면 너도 타이탄 라이더가 되면 되잖음?

생방송으로 진행됐던 이번 방송의 후폭풍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지금 보고 있는 올타 뿐만 아니라 어느 커뮤니티를 가도, 나와 지옥불의 타이탄 이야기로 온통 도배된 것이다.

오늘이 주말인지라 바로 반응을 확인할 순 없었지만, 이 정도라면 장이 열리는 월요일에는 일루전의 주가도 상승세를 회복할 것이 분명했다.

아니 어쩌면 새로운 기대감에 고조되어, 최고가를 경신해 나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번 일로 나 또한 좋은 정보를 알게 됐다. 어쩌면 돈 번 거나 이미지 개선보다, 이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네.’

다른 타이탄과 겨뤄 본 것은 나로서도 이번이 처음.

그 덕에 그저 명중률과 방어력 수치로 계산되던 기존의 게임 내 전투와는 다르게, 타이탄 간의 전투는 치고 막는 게 가능한 실전에 더 가까운 형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아직 이 타이탄만의 독립된 전투 시스템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듯싶었다.

하지만 난 이미 몇 가지 파급 효과를 유추해낼 수 있었다.

‘무기로 막으면 막힌다? 이 말인즉슨 공성에 타이탄이 한 기라도 등장하게 된다면, 지금까지처럼 깡딜을 넣는 플레이를 더 이상 못 한다는 얘기지.’

지금까지는 어차피 HP가 다 닳아서 역소환 당하는 것보다 소환 시간이 먼저 소진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딜을 더 먹이는 식의 플레이로 타이탄을 써먹어 왔다.

한데 다른 타이탄이 내 공격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은, 내 공격으로부터 다른 유저나 오벨리스크를 보호할 수도 있다는 걸 의미했다.

전투 센스와 컨트롤이 뛰어난 유저라면, 아무리 솔저급 타이탄을 탔더라도 작정하고 물고 늘어지면 상당히 시간을 끌 수 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가뜩이나 죽이기 힘든 다리우스인데, 더 죽이기 힘들어졌다는 의미지.’

내가 혼자서 필드를 활보하고 다닐 수 있는 이유는 마쉴과 훼라리 때문도 있지만, 위기의 순간이 닥치면 타이탄을 소환해 타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었다.

허나, 이건 이제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유저에게도 통용되는 일이 되었다.

통합 랭킹 1위, 최고의 풀템, 말도 안 되게 좋은 업적들을 다수 보유한 다리우스가…… 타이탄을 갖게 될 뿐만 아니라 다른 타이탄들의 보호까지 받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내가 아무리 일대일로 잡아낼 수 있을 만큼 성장한다 하더라도, 죽이는 것만큼은 불가능하게 될지도 몰랐다.

‘어떻게든 다리우스 일당이 타이탄을 얻기 전에, 녀석과 태성을 쓸어버린다.’

역시나 이렇게 한가하게 인터넷 반응이나 살펴보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서둘러 레벨업을 위해 다시 캡슐로 들어가려는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현중이었다.

-어, 나다. 형님 방송 보고 전화하는 거냐? 빨리도 하네?

-……아니야 지환아. 도무지 내가 지금 뭘 해야 할지 몰라서…… 그래서 전화했다……. 나 이제 어떡하면 좋냐?

가볍게 받은 전화였으나 심상치 않은 목소리.

녀석의 침울함에 놀란 난, 서둘러 이유를 물어보았다.

-너답지 않게 왜 그러는 건데? 장난치는 거면 죽는다?

-방금 게임 도중에 다리우스한테서 귓말 받았는데…… 다짜고짜 네 신상에 대해 아는 대로 전부 다 불라고 하더라……. 놀라지 마. 그 자식…… 내가 네 친구인 거 이미 알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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