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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74화 (74/350)

74화 타락 성기사 (2)

쉬이익, 쉭!

바람 가르는 소리를 들으며 가장 먼저 오크 로드에게 도착한 사람은 역시나 훼라리를 소유한 나였다.

오크 로드는 예전 내가 뛰어들었던 폭포 아래, 모래사장 부근에 떠 있었다.

‘딱히 엄폐할 곳은 안 보이네? 레이드 중에 뒤치기 들어오면 훤히 보이겠는데?’

폭포수가 떨어져서 흘러가는 하류 주변은 나무가 많지 않고 큰 바위 몇 개가 다였다.

덕분에 이곳에서 바로 오크 로드를 잡는다면, 누군가 뒤치기하려고 다가올 때 이미 발견되고도 남을 휑한 공터나 마찬가지였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숨어서 쭉 지켜보고 있자.’

하늘 위에서 지형을 둘러볼 만큼 둘러봤기에, 지상으로 내려와서 은신을 쓴 채 피닉스 길드원들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라스트챤스: 형님, 정말로 다리우스 나타나는 거 맞죠?)

(나: 어. 아마 분명히 나타날 거다. 나타나면 제대로 일점사 해. 네 손에 너희 길마의 목숨이 달려있다 생각하고 집중해서!)

(라스트챤스: 당연하죠! 안 나타난다면 모를까 나타난다면, 다리우스 막타는 저희 궁수단 겁니다.)

라스트챤스는 어느덧 레벨업을 많이 해서 이번 피닉스 궁수단의 리더를 맡고 있었다.

힐러와 버퍼인 척 스태프를 들고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을 십여 명의 무리.

그들은 다리우스 패거리가 나타나는 순간, 라스트챤스의 지휘 아래 스태프를 활로 스위칭을 해서 다리우스에게 폭발적인 화력을 쏟아부을 예정이었다.

‘급습하는 입장에서는…… 버퍼들 아이디가 궁수였는지까지 확인할 여윤 없겠지.’

이번 레이드에 모일 피닉스 길드원은 대략 50여 명.

거기에다 실제로는 죽는 것을 각오하고 다리우스에게 덤벼들 10여 명의 도둑 부대도 대기하고 있을 예정이었다.

마지막으로 8성 은신으로 숨어 있는 나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에 다리우스가 나타난다면, 살아서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보였다.

‘드디어 오늘……. 네놈이 내 눈앞에서 쓰러지는 꼴을 볼 수 있겠구나!’

잠시 후 벌어질 통쾌한 복수를 상상하는 동안, 피닉스 길드원들이 하나둘씩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거깁니다! 힐러들은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마세요! 이제 딱 2분만 더 기다린 다음 레이드에 들어가겠습니다!”

“네!”

원래 이런 필드 보스 레이드는 속전속결이 생명인지라, 늘 하던 것처럼 순식간에 진형을 갖추고 레이드에 돌입할 준비를 했다.

[지옥불: 메인 탱커는 히든캬드가 맡는다.]

공격대 채팅창에도 지옥불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아무래도 지옥불은 최근 10레벨을 다운당했기에, 공격대원들이 보기에도 성기사 랭킹 1위인 히든캬드가 메인 탱커를 맡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사실은, 지옥불이 잠시 후 태성 암살단의 집중 타겟팅이 될 것이기 때문에 히든캬드가 맡은 것이었다.

“모두 집중! 간다! 신성한 가호!”

히든캬드의 선창과 함께, 오크 로드의 레이드가 시작됐다.

길드원들을 기다린다는 이유로 다소 시간을 지체한 듯싶었지만, 사실은 다리우스 패거리가 올 시간을 벌어줬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었다.

틀림없이 이 레이드가 끝나기 전에, 다리우스 패거리가 나타나 지옥불의 뒤치기를 시도할 것이다.

녀석이 마신검을 진정으로 원하고 있다면, 이 타이탄 소환 쿨타임에 걸린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 없을 테니 말이다.

“너희들은! 지금 내가 흘린 피보다! 수백 배의 피를! 흘리게 될 것이다!”

광폭화 구간임을 알리는 줌바카의 외침.

이제는 하도 들어서 익숙한 오크 로드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주변에는 피닉스 길드원밖에 보이지 않았다.

예상과는 다르게 체력의 25%만 남은 이 구간에 돌입할 때까지, 뒤치기는커녕 태성의 유저가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뭐지? 뒤치기가 아니었나? 아니면 오늘은 그냥 포기? 설마…… 아직도 도착하지 못한 거야?’

폭포 위 절벽과 모래사장 끝에서 몇몇 유저들이 보이긴 했으나, 근처에서 사냥 중이던 일반 유저였는지 태성과는 상관없는 길드 마크를 달고 있었다.

어쨌든 이제는 뒤치기가 들어오든 말든, 앞에 있는 줌바카를 서둘러 처리해야만 했다.

이놈 특유의 위험한 광역기가 시작됐기 때문이었다.

“요동치는 대지!”

콰당!

어느새 오크 로드 앞에는 메인 탱커인 히든캬드만 남아, 유일하게 광역기를 맞으며 계속해서 넉백 당했다.

이 광폭화 구간에는 어그로가 쉴 새 없이 튀었기에, 주위에 지옥불을 포함한 다른 서브 탱커들도 만약을 위해 거리를 가까이 유지 중이었다.

멀리서 지켜만 보고 있는데도 여전히 위협적으로 보이는 광폭화 구간.

그러나 이제는 유저들의 레벨도 차츰 올랐기에, 더는 첫 사냥 때만큼의 포스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이렇게 잡히고 끝인가 보다……. 어? 저게 뭐지?’

곧 오크 로드가 잡힐 것이란 생각에 마음을 접고 다른 곳을 둘러보는 순간, 뭔가 이상한 게 시야에 걸렸다.

폭포 위 언덕 너머로, 무언가의 날개 끝자락이 보인 것이다.

‘저건…… 그리폰의 날개?’

이 쉬폰 숲에서 그리폰이라고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그렇다면 저 그리폰은 다름 아닌 누군가의 펫이란 소리!

그리고 얻기 힘들기로 유명한 저 비행 몬스터를 펫으로 가장 많이 소유한 길드는, 다름 아닌 태성이었다.

[산드로: 왔습니다! 태성이 왔어요! 절벽 위를 보세요!]

서둘러 공격대 채팅창에 글을 올리는 순간, 폭포소에서 흘러내려 가는 냇물에서 은신을 쓴 도둑 20여 명이 기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제사장의 머리 장식을 쓴 덕에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중 가장 먼저 보인 아이디는 다름 아닌 홍길동이었다.

즉, 놈이 이끄는 암살 부대가 더 많은 숫자의 도둑들과 함께 줄곧 물속에 숨어 있던 것이었다.

‘미, 미친! 하늘과 땅에서 그냥 동시에 꼬라박겠다고? 하지만 고작 저 숫자로?’

자살 공격까지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마신검을 먹고 도망칠 수가 없다면 의미가 없을 터!

도대체 놈들의 속셈을 알 수가 없는 부대 구성이었다.

어쨌든 도둑들의 모습까지 보고 튀어나가는 와중에, 하늘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전원 공격!”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은 그리폰 부대.

족히 30마리는 돼 보이는 그리폰 위에는 전원이 활을 착용한 채 올라타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그리폰 라이더는, 마치 폭포의 물줄기를 따라 떨어지는 물처럼 활강하며 날아왔다.

“뒤, 뒤치기다!”

“뭐야? 무슨 그리폰이 저렇게 많아!”

번스타인 공성전이 끝난 지도 2달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모종의 이유로 그리폰 라이더를 집중적으로 양성했는지, 타연의 다른 모든 그리폰 라이더를 합친 것보다 놈들의 수가 더 많아 보였다.

하지만 그리폰 라이더의 화살 공격은 어디까지나 보조 딜일 뿐, 도둑들의 근접 딜이 훨씬 더 무서울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와 궁수들은 그리폰을 요격하세요! 지금 중요한 건 은신으로 다가오는 도둑입니다! 간파 쓰셔서 공격하세요!”

사람들은 하늘을 뒤덮듯이 강하하는 그리폰에 시선을 뺏겨, 도둑 20여 명도 은신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오직 나만 간파 활성화 상태인 덕에 먼저 발견했는데, 상당히 떨어진 곳이라 은신 상태를 벗길 공격은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산드로: 이건 안 되겠어요! 그리폰 부대는 예상하지 못했고 생각보다 위험해 보여요! 지옥불님, 일단 함정은 포기하고 후퇴하세요!]

[지옥불: 그래도 많지 않은 숫자입니다. 일단은 한 번만 기회를 노려 보겠습니다. 아직 다리우스는 나타나지도 않았으니!]

저 모든 도둑들이 죽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궁수들의 원거리 공격과 함께 자살 공격을 한다?

그렇다면 아무리 지옥불이라 해도, 버티기 힘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놈들 또한, 절대 살아서는 돌아갈 수 없었다.

‘아무리 봐도 이상한데……. 뭔가 불길해.’

그 순간이었다.

오크 로드의 메인 탱커를 맡고 있던 히든캬드로부터, 이 상황에서 절대 나와선 안 되는 스킬 명을 외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천상의 방패!]

성기사의 가장 유명한 고유 스킬이자, 일명 ‘성바퀴’라고 불리게끔 만들어 준 타연 최고의 생존기.

‘천상의 방패’를 5성까지 찍게 되면 10초간 모든 공격이 먹히지 않는, 일명 ‘무적’ 상태가 돼버린다.

하지만 문제는 저 무적 스킬은, 메인 탱커가 절대로 함부로 써선 안 되는 스킬이라는 것이었다.

공격을 하지 못하게 된 오크 로드.

녀석의 어그로가 곧바로 다른 유저를 향해 바뀌어 버렸다.

“히캬야! 갑자기 그걸 지금 왜 써!”

이미 광폭화에 돌입한 오크 로드.

놈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자, 지옥불에게서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마신검을 차고 있었기에 가장 많은 누적 딜이 쌓였던 지옥불에게, 가장 먼저 어그로가 튀었던 것이다.

“요동치는 대지!”

순식간에 다가온 오크 로드는 지옥불에게 붙자마자 자신의 간판 광역기 요동치는 대지를 써버렸다.

그리고 지옥불은 그대로 적중당해 넉백으로 쓰러졌다.

파파파파팟!

어그로가 튀어 급격히 혼란스러워진 타이밍에 맞춰, 다가오던 20명의 태성 측 암살 부대가 전원 은신을 풀었다.

그리고는 곧장 자버프를 걸며 지옥불을 향해 그림자 밟기를 시전했다.

“미, 미쳤다! 이 많은 도둑들이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힐!!”

“쉴드!!”

하나, 원래 레이드 중이었기에 힐러와 버퍼진들의 스킬 범위에 걸쳐 있던 지옥불이었다.

그렇기에 20명의 집중 공격이 무섭기는 했어도 넉백 동안에 순삭당할 만큼은 아니었다.

다음 공격이 이어지지 않았다면 말이다.

[방패 후려치기!]

펑!

무수한 도둑들의 공격을 견디고 이제 겨우 넉백에서 일어나던 지옥불에게, 탱커들의 간판 기술인 방패 휘두르기가 적중됐다.

곁에 있던 히든캬드가 쓴, ‘스턴’ 스킬이었다.

동시에 사정 거리에 다다른 그리폰 라이더의 화살들이 지옥불에게 소낙비처럼 쏟아졌다.

파바바바박!

황급히 달려 나가는 내 눈에, 도둑들의 수많은 연속 베기와 궁수들의 차징 샷에 공격당하는 지옥불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 내 시야 하단부의 시스템 메시지창에는, 어느새 새롭게 올라와 있었던 로그 기록이 선명하게 보였다.

[‘히든캬드’ 님이 공격대에서 탈퇴했습니다.]

“저 새끼! 이런 미친, 설마 부길마나 되는 놈이 멀린 같은 배신자였다고?”

같은 파티원이나 공격대원에게는 유저간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

이점 때문에 히든캬드는, 지옥불에게 스턴을 먹이고자 공격대를 급하게 탈퇴한 것이었다.

‘끝났다…….’

스턴이 끝나자 넉백 당시 도착하자마자 설치한 도둑들의 스턴 덫이, 연달아서 터졌다.

지옥불이 저 연계 상황에 빠진 걸 본 순간, 곧바로 죽음을 직감했다.

애초에 PK에서의 넉백과 스턴 연계가 저만큼이나 무서웠기에, 굳이 내가 캐릭을 새로 키웠던 것이니 말이다.

체념이 점차 차오르는 순간, 결국 지옥불이 쓰러져 넘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곧바로 흩어지듯 잿빛으로 산화되는 모습 사이로, 땅에 거꾸로 박혀 있는 검은 색의 마신검이 스치듯 보이다 사라졌다.

히든캬드가 먹어버린 것이었다.

“히캬 형님!”

“히든캬드야! 도대체 왜 그래!”

“이게 무슨 일이야? 정말 부길마가 길마님을 배신한 거야?”

이 상황을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내가 아닌 그동안 동고동락했던 길드원들일 터.

그 중 라스트챤스가 외치는 절규와도 같은 ‘형님’ 소리는,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섬뜩하게 들릴 만큼 짙은 원망이 배어있었다.

살짝, 아주 살짝 길드원들이 모여 있는 방향을 한 번 쳐다본 히든캬드는 그대로 반대편을 향해 뛰어나갔다.

그리고 그 방향에는 그리폰 한 마리가 지상에 홰를 치며 살짝 떠 있었다.

“저, 저 자식? 이런, 훼라리 소환!”

놈도 라이딩 스킬 있는지 곧바로 그리폰 라이더의 등 뒤에 점프하듯이 올라탔고, 그리폰은 그대로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나 또한 녀석의 뒤를 쫓아 훼라리를 타고 날아오르며 스킬을 시전했다.

[몬스터 라이딩!]

10초간 이동 속도를 80% 높여주는 액티브 스킬!

이 돌진을 발동하여 순식간에 튀어나간 훼라리 덕에, 거리 차이가 꽤 나는 상태였으나 곧바로 따라붙을 수 있었다.

“야 이 개자식아! 네가 그러고도 부길마야? 스파이도 아니고 부길마나 된 놈이 고작 돈 때문에 길드원들을 배신해? 돈이 그렇게나 좋았냐?”

“네까짓 게 알긴 뭘 안다고 배신이란 단어를 그리 쉽게 지껄이냐? 아무튼 형님과 길드원들한테는 죄송하다고 전해드려라.”

그 말과 함께 히든캬드는 가까스로 닿게 된 내 검을 피해 그리폰에서 뛰어내렸다.

그렇게 잠시 공중에서 떨어지던 녀석은, 뒤따라온 다른 그리폰의 등 위로 착륙하듯이 내려앉았다.

이제 돌진 효과가 끝났지만 그래도 워낙 이속이 빠른 훼라리기에 다시 방향을 바꿔 녀석을 쫓아가려했다.

하나 30마리에 이르는 모든 그리폰들.

이 그리폰 라이더 부대 전부가 내게 부딪쳐오며 이동 경로를 방해했다.

그래도 이를 악물며 그리폰을 뚫고 다가가는 순간, 누군가의 등 뒤에 앉아 있던 히든캬드가 빛과 함께 사라졌다.

10초간의 귀환 주문서 사용 시간을 모두 채워, 순간이동한 것이었다.

서둘러 히든캬드에게 귓속말을 넣어보았으나 소용없었다.

[상대방은 현재 귓속말을 전부 차단한 상태입니다.]

‘이럴 수가…….’

다리우스가 나타나지 않길래 결국 별일 없이 끝나나 싶었는데…….

1분도 안 되는,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크하하하! 너희들만 배신이란 걸 할 수 있는 줄 착각한 건 아니지? 역시 복수를 하려면, 이렇게 당한 그대로 갚아 줘야 제대로 하는 거 아니겠어? 하하하!

다리우스가 통쾌해하는 모습이 마치 어렴풋이 보이는 듯싶었다.

신검 대신 마신검을 택한 다리우스.

나보다는 지옥불을 노렸던 녀석의 모략이 그대로 적중했다.

덕분에 이제 녀석은 나와 동등한, 아니 나보다 모든 조건이 월등한 상태에서 7신기와 로드급 타이탄까지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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