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83화 (83/350)

83화 던전 스틸 (3)

“으아아! 또 너냐, 산드로!”

남아 있는 궁수에게 다가가 공격을 가하려는데, 포탈이 있는 뒤편에서 커다란 고함이 들려왔다.

일도양단이 뒤늦게 인던에서 나온 것이다.

“여어, 이렇게 직접 만나는 건 오랜만이네? 반갑다 호구야!”

“이 개자식, 여긴 도대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너희가 그렇게 슬그머니 어디론가 향하는데, 끝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서 쫓아와 봤지. 근데 뭐 중요한 게 있는 곳인가 봐? 뭘 그리 열을 내고 있어? 날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면서?”

일단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이 다혈질의 단순한 놈이라면, 내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크게 당황해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뭐, 뭔 소리냐! 여, 여긴 그냥 흔한 던전이다! 우린 렙업하러 왔을 뿐이고!”

저렇게 티 나게 허둥대는 꼴도 쉽지는 않을 텐데…… 역시나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일도양단이었다.

“에이, 내가 다 들었는데? 아까 네가 직접 말하더구먼. 다리우스에겐 ‘그것’이 필요 없을 거라고. 도대체 그것이란 게 뭔데 그러실까?”

“다, 닥쳐라! 죽어 이 자식아!”

뒤늦게나마 현명한 선택이었다.

나와 계속 대화를 나누며 밑천이 드러나는 것보다는, 이렇게 닥치고 검부터 휘두르는 게 백번 나은 선택이었을 테니.

하지만 또한 멍청한 선택이기도 했다.

“오, 굿! 머더러 주제에 덤벼들면 나야 땡큐지!”

이놈은 예전에 내게 검을 바치고도 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린 상태였다.

처음에 나를 가장 분노케 했던, 하지만 이제는 어쩐지 가엾게 느껴지는 녀석의 검을 맞아줬다.

물론 그와 동시에, 나도 똑같이 녀석을 향해 검을 휘둘렀지만 말이다.

“컥! 뭐야? 뭐 이리 아파!”

“형님! 조심하세요! 저 자식 딜이고 몸빵이고 둘 다 미쳤어요. 답이 없는 놈입니다, 그냥 튀세요!”

옆에서 내게 계속해서 딜을 넣는 중이던 전사가 소리쳤다.

어쨌든 나는 다시금 쿨이 돌아온 재빠른 몸놀림까지 쓰고 제대로 딜을 넣기 시작했다.

그냥 검도 아니라 무려 신검인데, 녀석이 버틸 수가 있으랴?

[차징!]

기사 캐릭의 돌격기로 주로 쓰이는 차징을, 일도양단은 비굴하게도 포탈로 다시 튀는 탈출기로 사용했다.

기세 좋게 다가오자마자 차징으로 되돌아가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 남아 있던 녀석에 대한 분노가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었다.

“양단아! 안 쫓아갈 테니까 넘어지게 않게 천천히 도망가라! 오늘따라 네 뒷모습이 왜 이렇게 불쌍해 보이냐?”

“저 개자식이 진짜! 아오, 스턴만 걸리면 주옥도 아닌 게 진짜 있는 대로 깝죽거리네!”

“주옥도 아니면 좀 잡아 보든가? 어? 너랑 놀다 보니 벌써 쿨타임이 다 찼네? 매직 미사일! 그림자 밟기!”

내가 녀석과 굳이 노닥거려 준 이유.

그동안 난 그림자 밟기의 쿨이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아직 포탈과 조금 거리가 떨어져 있던 궁수에게 불시에 시전했다.

그러자 내가 후방에 도착함과 동시에, 먼저 쓴 매직 미사일이 날아와 궁수에게 적중됐다.

퍽, 퍽, 퍽, 퍽, 퍽!

5성이라 5발이 발사된 매직 미사일을, 날아오는 족족 맞은 궁수.

뒤로 다가온 나를 보고 반사적으로 사용한 회피기 ‘백스텝’은, 시간차를 두고 날아온 미사일의 경직 효과 때문에 쓰자마자 캔슬되고 말았다.

나는 그런 궁수에게 연속 베기 평캔과 은밀한 일격 평캔을 정확히 적중시켰다.

그러자 후방에서 그 공격들을 전부 다 맞아버린 궁수는,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죽어버리고 말았다.

조금 전까지 피를 깎아 뒀고, 일도양단과 노닥거리느라 공격이 멈춘 줄 알고 방심했던 틈을 노린 기습이었다.

“아, 안 돼!!”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산화되어 버린 궁수.

그리고 그가 있던 자리에는 세계수(世界樹) 가지로 만든 장궁 하나가 다소곳하게 떨어져 있었다.

[+9 엘프 순찰자의 장궁(유니크)을 획득했습니다.]

“와우! 9강 유니크? 이게 뭐야, 진짜 태성 애들은 다들 알부자뿐이구나?”

궁수를 집요하게 노렸던 건, 총 HP가 적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머더러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그 보상으로 죽으면서 대박을 드랍해 버렸다.

9강 유니크 무기라니…… 이 정도면 얼추 저강화 레전더리 무기와 동급의 아이템이었다.

확실히 도닥통이 괜히 태성만의 전문 암살단을 조직하려던 게 아니구나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야 이 개자식아! 그거 도로 뱉어내지 못해? 그게 얼마짜린데 그걸 처먹어?”

“양단아, 너도 예전에 내 유니크 퀘템 먹었으면 돌려줬겠냐? 랭커씩이나 된 놈이 무슨 초보들도 안 할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냐?”

“와, 내가 저 새끼 때문에 진짜 돌아버리겠네! 아오! 저 개자식을 어떻게 하지!”

“뭐가 이리 시끄러워? 넌 싸움을 칼 대신 입으로 하냐? 내가 진짜 쌈이 뭔지 좀 가르쳐 줘?”

돌연 내가 녀석을 향해 달려가는 척을 하자, 녀석은 화들짝 놀라며 포탈 안으로 뛰어들듯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그 뒤를 남은 두 명도 황급히 쫓아 들어갔다.

[산드로: 아직 도착 멀었나요? 전 이미 정리 끝냈는데...]

[축복받은무빙: 거의 다 와 가! 5분 거리에 있으라고 해서 그렇게 대기 중이었는데, 벌써 다 잡은 거야?]

[산드로: 2명은 잡고 4명은 놓쳤어요! 포탈로 튀었으니 아마 인던 안에서 귀환 주문서로 돌아갔을 거예요.]

[축복받은파볼: 와, 우리 산드로 정말 대단하구나? 랭커급 6명이랑 혼자서 싸워 이긴 거야? 어떻게 잡은 것인지 난 상상이 안 가네. 구경 좀 했으면 좋았으련만...]

[산드로: 누님께 구경시켜 드릴 날이 아마 조만간 있을 거예요. 아무튼 적은 없으니 안심하시고 곧장 포탈 앞으로 오세요~]

내가 두려워서인지, 아니면 정말 귀환 주문서를 사용했는지 포탈 안은 잠잠했다.

곧 우리 버닝 스타 길드원들이 전부 모였고, 다들 푸르게 일렁이는 포탈을 보고는 놀라워했다.

“와! 이런 곳에 인던 포탈이 있었다니…… 어떻게 지금까지 안 알려졌지? 타연에 탐험 유저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건 근래에 태성 놈들이 퀘스트로 활성화시켜 놓은 모양이에요. 아마 길드 내에서도 비밀로 하느라, 일도양단도 고작 6명만으로 이곳에 온 것 같고요. 길드원들을 대동하면 안전하기는 했겠지만, 그러면 아무래도 스파이들 때문에 이 던전이 금방 노출됐을 테니까요.”

“하긴 그렇겠네. 어쨌든 빨리 들어가 봐야 하는 거 아냐? 다시 올 수도 있으니까?”

“네. 금방은 못 오겠지만 빨리 들어가 봐요! 우리는 첫 트라이니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어요!”

축빙 형님과의 대화를 끝으로, 우리는 신비롭게 일렁이는 인던 포탈을 차례로 통과했다.

[‘잊혀진 마도 시대의 지하 도시(데스라 서부)’에 들어왔습니다.]

“어? 여기 마도 시대 유적지였네?”

“마도 시대요?”

“아, 우리 드로는 아직 메인 퀘를 안 해서 잘 모르겠구나? 350레벨에 도달하면 받는 메인 퀘를 하다 보면, 옛 ‘마도 시대’에 관한 내용들이 등장하거든…….”

확실히 우리 길드 최고 레벨인 축빙 형님답게, 아직 우리가 모르는 내용들에 대해 알고 계신 것들이 많았다.

하긴 원래 현중이만 해도 나보다 이것저것 많이 알고 있는 편이었는데, 세인트 길드의 최고 렙이자 길마셨던 축빙 형님은 말할 것도 없을 터였다.

“마도 시대는 스토리상 천 년 전에 있었던 마계와의 전쟁, ‘신마전쟁’ 전에 있었던 시대를 일컫더라고. PC 버전에서도 나오지 않았던 타연의 오리지널 설정이야. 아직 그 시대와 관련된 퀘스트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아서, 일반 유저들은 잘 모르겠지만…….”

“아하, 예전 CF에 등장했던 신마전쟁 이전 시대를 말하는 거구나.”

“어, 맞아. CF와 트레일러에서는 인간들이 타이탄을 가지고 대항했잖아? 그게 다 스토리상 마도 문명이 극에 달해, 인간들이 신들의 천사장(archangel) 모습을 본떠서 타이탄을 만든 거였다고 하더라.”

7신기로 소환이 되는 로드급 타이탄은 마도 문명이 아닌 ‘천계’에서 만들어졌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이건 오직 7신기의 주인들만 알고 있는 정보였다.

어쨌든 여태껏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마도 시대의 첫 번째 던전.

그리고 연우님에게 들었던 보스 몹의 정체.

심증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역시……. 형님 누님들, 제가 미처 말씀드리지 못한 게 있는데요. 사실 이 던전의 보스 몹이 다름 아닌 타이탄이라고 합니다.”

“뭐?”

“헐?”

형님들뿐만 아니라 현중이와 라챤이까지도, 예상치 못했던 놀라운 사실에 탄성을 터뜨렸다.

“제가 왜 비상이라고 했는지 이제 아시겠죠? 저희가 스틸하려고 하는 이 던전의 최초 클리어 보상은, 아마도 ‘타이탄’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트라이만으로 꼭 이 던전을 클리어해야 해요. 이제 던전이 노출됐으니까 태성도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다리우스가 직접 트라이하러 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지금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예요.”

“와, 살다 살다 타이탄이 보상인 던전을 트라이하게 생겼네?”

“저는 좋습니다! 산드로 형님, 근데 괜찮을까요? 저희 5명만으로 타이탄을 잡을 수 있겠어요? 전 가뜩이나 레벨이 낮아서 화살도 제대로 안 박힐 텐데요…….”

이제 막 300레벨을 넘긴 라스트챤스에게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물론 라챤이의 레벨이 낮긴 했으나 다른 길드원들의 레벨은 오히려 다들 나보다 높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합이 나쁘지 않았다.

힐러와 성기사, 그리고 마법사와 궁수 조합은 파티 사냥의 이상적인 조합 중 하나.

한데 어쩌다 보니 우리 길드원들은 겹치는 포지션 없이, 딱 알맞은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어차피 타연 최고 레벨 랭커라고 해도 360구간인데, 이 던전 활성화시킨 거 보면 몹들도 높아 봐야 400은 안될 거야. 그 정도면 딜 감소가 있기는 해도 보우 마스터리 때문에 박히긴 할 테니 도움은 될 거다. 넌 특히나 템도 좋은 편이니깐 말야.”

“아…… 내가 어쩌다가 이런 신세가 된 거지? 진짜 피닉스의 숨겨진 에이스 하면 나였는데……. 안 되겠다, 이번 일만 끝나면 잠을 3시간만 자더라도 폭업 좀 해야겠어요!”

“그래 라챤아. 후딱 렙업해야지 피닉스에서 버닝 스타로 온 보람이 있지 않겠냐? 화이팅이다?”

“으……. 빈말로라도 걱정은 못 해 주시는 겁니까?”

“자, 잡담은 이제 그만하고 어서 공략해 보자. 축굴아! 앞장서라!”

“넵, 축빙 형님!”

던전 안은 고대 유적지의 지하로 내려가는 긴 돌계단이 입구였다.

현중이의 앞장으로 차근차근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거대한 지하 세계의 모습이 드러났다.

곳곳에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고대 양식으로 지어진 벽돌 주택이 있었고, 그런 집 수백 채가 거대한 지하 공동을 꽉 채워 도시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건물들이 줄어드는 도시의 가장자리 끝에는, 하나의 거대한 신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저긴가 보네요, 저 거대한 지하 신전! 맵이 심플해 보여서 좋네요.”

“오케이! 일단 무슨 몹이 나올지 모르니까 조심히 이동하자. 오픈된 맵인 만큼, 이런 맵은 한꺼번에 몹이 몰리면 감당이 안 되니까 조심하고!”

“옛썰!”

신검을 주운 후부터, 늘 돌던 던전 대신 새로운 던전에 도전하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그런데 오늘은 처음으로 그런 새 던전을 혼자가 아닌 길드원들과 함께 도전하려고 보니, 새삼 기분이 묘했다.

마치 3년 전, 타연을 접한 뒤 처음 던전에 들어가던 때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내가 그동안 너무 지레 포기했었던 건 아닐까?’

태성이라는 공동 목표로 모였기에, 우리 길드원 간에는 가식이란 게 전혀 없었다.

덕분에 아직 친하다고 표현하기에는 무리여도, 서로에게 뭔가 부담을 주는 사이는 아니었다.

초창기에 잠시 들었던 올림푸스에서도, 딱 한두 달만 더 버텼더라면 길드원들과 이런 사이로 발전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솔플이 편하고 효율적이라는 핑계와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 놓고만 지냈던 건 아닐까?

왠지 점차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자꾸 반성하는 일도 덩달아 많아지고 있었다.

“오! 뭐야? 케로베로스? 이거 마계 몹 아닌가?”

그런 생각도 잠시, 어느새 선두의 현중이에게 어그로가 끌려 이 던전의 첫 몬스터가 다가왔다.

일반 사냥터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한번씩 ‘마계’ 관련 퀘스트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케로베로스’였다.

그 녀석을 보고는 역시나 경험이 풍부한 축빙 형님이 바로 분석을 시작했다.

“케로베로스가 나온다는 것은 여기가 마계화된 지역이란 건가? 아니면 중간 지대? 어쨌든 간에 마물이나 마족도 나올 수도 있겠네? 확실히 난이도는 좀 있는 던전이겠는데?”

“아니요. 어렵기는커녕 완전 대박, 아니 초대박이에요.”

“응? 어째서 드로야?”

“그동안 잊어버리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제 룬 페이토나가 사실 누구껍니까? 빛의 신 루이튼 꺼 아니겠습니까? 그동안 잘 써먹을 일이 없었지만, 마계 놈들한테 직방인 옵션이 하나 붙어있어요. 추가 물리 데미지가 몇 배? 무려 2배! 우하하하!”

타이탄이 잠들어 있는 마도 시대의 지하 도시.

이 던전은 뱀파이어 던전 이후 오랜만에 다시 찾게 된, 최고의 레벨업 사냥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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