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레이드 준비 (3)
현재 특별 스킬인 테이밍 몬스터는 신검의 옵션 덕분에 4성인지라, 총 4마리까지 펫을 만들 수 있다.
비록 한 번에 한 마리씩 밖에 소환할 수 없지만, 일단 4마리의 펫을 모두 채워 놓는다면 순차적으로 전부 다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테이밍 몬스터로 펫이 된 몬스터는 레벨업이 가능했기에, 그동안은 굳이 다른 몹을 테이밍할 이유가 없었다.
내 레벨업도 바쁜 상태라 훼라리를 레벨업시켜 줄 시간도 모자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레드 드레이크라는 필드 보스를 꼬신 거였기에, 다른 몹은 전혀 성에 차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드래곤을 레이드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야만 했다.
그간 테이밍 몬스터을 사용하면서 느껴왔던 거지만, 이 스킬은 사용하기에 따라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진 스킬이었다.
만약 특별한 몹을 펫으로 만들어 적절히 소환한다면, 투 메르타스의 까다로운 공격 패턴 중 몇 가지에도 유용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가능성을 시험해보기 위해, 나는 일단 고레벨 유저들의 사냥터로 인기가 높은 ‘레던’으로 향했다.
‘대마법사 레인젤의 숨겨진 던전’.
총 10층으로 이루어진 이 필드 던전은, 각 층마다 가디언으로 만들어 놓은 여러 종류의 몬스터들이 나오는 지하 던전이었다.
각 층마다 속성이 전혀 다른 몬스터들로 이루어졌기에, 유저들은 자신의 무기나 스킬 속성에 적합한 층에 머무르며 자리를 잡고 사냥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가장 마지막 층인 10층에서는 리치가 되어버린 보스 몹 레인젤이 리스폰 됐는데, 놈이 레전더리 무기를 드랍하기에 굉장히 인기가 많은 던전이었다.
내가 최근에 골드로 구매한 레인젤의 장비 2피스도, 모두 이 던전에서 나온 비싼 아이템들이었다.
“6층 갈 원딜러 한 명 구합니다! 되도록 얼음 속성이면 더욱 환영입니다!”
“8층에 자리 맡은 6인 팟에서 보조 힐러 구합니다. 30분 후에 물려받을 자리 맡아 뒀습니다!”
“상급 체력 회복 물약 개당 42골드, 상급 마력 회복 물약 개당 78골드에 팝니다! 각종 버프 음식도 팔아요!”
칼젠 성 지역과 맞닿은 번스타인 성 최남단.
그곳에 위치한 한 야산의 중턱에 이르면, 오래된 폐(廢)저택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레인젤 던전, 일명 레던의 입구는 그 저택의 지하실에 숨겨져 있었다.
보통 대부분의 던전들은 마을이나 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레던은 유달리 멀리 떨어져 있는 던전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던전 입구인 지하실에는 파티 사냥을 하다 결원이 생겨 새로운 파티원을 구하거나, 각종 물약이나 소모 아이템을 비싸게 판매하는 유저, 무거운 잡템을 싸게 사는 장사꾼 등등으로 북적북적했다.
늘 그렇듯 항상 은신을 쓰고 다니는 나는, 그런 유저들 사이를 뚫고 던전으로 들어갔다.
[‘대마법사 레인젤의 숨겨진 던전’에 입장했습니다.]
인던과 다른 필드 던전답게, 입장한 후에도 몹들을 발견하긴 힘들었다.
계속해서 들어오는 유저들이 아래층으로 내려가며 몹들을 정리하기 때문에 휑했던 것이다.
‘헐, 3층에 도착할 때까지 몹을 한 마리도 마주치지 않았다고? 과연 핫플레이스 사냥터는 다르긴 다르구나.’
300레벨 초반대의 유저들에게 이렇게나 인기가 높은 레던이지만, 내가 찾아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마계의 악마와 계약을 맺고, 결국에는 리치가 되어버린 레인젤.
그는 혹시나 모를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수많은 가디언들을 만들었고, 층이 깊어질수록 상대하기 까다롭고 강한 몬스터들을 배치해 두었다.
그 중 유저들에게 유독 외면받은 층이 있었으니, 바로 내 목적지인 9층이었다.
이 9층은 ‘강화된 아이언 골렘’이 지키고 있는데, 이놈들은 10층의 맨티코어(Manticore)들보다 더 까다롭다는 평가를 받는 몬스터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잡기가 까다로운 것이지, 상대하기는 다소 편한 몬스터였다.
골렘답게 공속이 느려 데미지가 크게 위협적이지 않았고, 이속도 느린 탓에 그냥 무시하고 10층으로 내달리면 됐으니 말이다.
“확실히 9층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없구나.”
조금 전 9층으로 향하는 입구만 해도 자리를 잡고 사냥중인 파티가 많았다.
하지만 9층에 들어서자 비교적 안전한 계단 주변임에도 불구하고, 사냥하는 유저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10층으로 향하는 주요 길목에서 벗어나, 조심스럽게 구석에 위치한 연구실 중 하나로 들어갔다.
안에는 몬스터 대신 거대한 쇳덩이들이 나동그라져 있었다.
태초의 섬에서 레벨업하던 시절에 지겹도록 본, ‘골렘’ 특유의 흔적이었다.
“9층이 다른 층보다 층고가 2배 이상 높은 건 다 이유가 있지. 바로 이놈들이 한 덩치 하니깐 말야.”
캉캉! 캉!
쌓여있던 쇳덩이들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곧바로 요란한 쇳소리와 함께 거대한 아이언 골렘으로 합쳐졌다.
5미터 정도 되는 높이로, 솔저급 타이탄과 엇비슷한 크기.
하지만 조잡하게 뭉쳐졌기에 균형 잡힌 기사 형태의 타이탄보다는 마치 스모 선수같이 옆으로 푹 퍼진 모습이었다.
골렘은 완성과 동시에 주먹을 높게 들어 나를 향해 망치질하듯 내려찍었다.
피슛!
난 그런 녀석의 공격을 그림자 밟기를 써서 피해버린 다음, 타이탄을 상대하는 것과 같이 다리를 밟고 올라가 등 뒤에 올라타서 공격했다.
챙! 챙챙!
검과 철이 부딪치는 금속음이 들려왔지만, 내 막강한 공격력에도 불구하고 아이언 골렘의 피는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거기에 보통 4방에 한 번꼴로 터지는 신검의 빛 속성 데미지는, 들어가는 둥 마는 둥 했다.
‘역시 듣던 대로구나. 일반 몹이라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비정상적인 몸빵이야. 하지만 그래서 더 여기까지 꼬시러 온 보람이 있는 놈이지!’
일반적인 아이언 골렘만 해도 물리 방어력이 무척이나 높아 잡기 힘들었다.
그러나 물리 방어력과 대비해서 마법 방어력은 상당히 취약한 편이라서, 파티에 마법사나 마법 무기를 든 유저가 껴 있다면 비교적 수월하게 잡을 수 있었다.
하나, 레인젤 던전의 이 ‘강화된 아이언 골렘’은 다른 아이언 골렘들과 사뭇 달랐다.
레인젤이 아이언 골렘의 약점이었던 마법 방어력을 미친 듯이 뻥튀기해서 강화해 놓았던 것이다.
가뜩이나 HP도 많은 놈이, 이 던전에서는 마법 방어력까지 사기적인 수준으로 뻥튀기되어 있었다.
물론 보스급이 아닌 정예 수준의 일반 몹이었기에, 공격력은 비교적 약해 위협적이진 않았다.
하지만 이 어마어마한 방어력 때문에, 유저들에게는 필연적으로 버림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놈 한 마리 잡을 시간이면 8층이나 10층에서는 네다섯 마리의 몹을 잡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거기다가 이 던전의 다른 층에는 속성 몹들이 많아 파티에 마법사가 필수 멤버인데, 이 아이언 골렘을 잡을 때는 마법사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제정신이 박힌 유저라면, 굳이 다른 층의 몹을 놔두고 이 아이언 골렘을 잡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내가 필드 보스도 아닌 이놈을, 굳이 테이밍하러 온 이유였다.
골렘은 긴 팔을 휘둘러 등 뒤에 있는 나를 향해 공격을 해왔지만, 후방 공격 판정으로 쭉쭉 차오르는 MP 덕분에 간지럽지도 않았다.
“정말 몸빵만큼은 보스 몹 급이 맞네. 신검을 든 내가 인정한다.”
그렇게 한참을 치고 나자, 먹색의 몸체 곳곳에 보이지 않게 새겨져 있던 마법진들이 마치 불이 켜지듯 밝게 빛났다.
녀석이 모든 유저들에게 더더욱 버림받게 만들어준, 방어력 강화 스킬의 이펙트였다.
“와! 진짜 나나 되니깐 혼자 잡지, 이걸 누가 파티로 사냥하겠어? 일루전도 참 생각도 없이 던전 디자인했네.”
녀석이 스킬까지 사용하자 데미지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져 들어갔다.
신검을 착용한 후 처음으로 공격력이 갑갑하다는 느낌마저 받을 정도였다.
[마나 쉴드가 1,778의 물리 데미지를 흡수합니다.]
[마나 쉴드가 1,634의 물리 데미지를 흡수합니다.]
그래도 녀석의 공격이 그다지 아프지는 않았기에, 결국 네임바의 피를 10% 미만까지 깎아 낼 수 있었다.
그 직후 나는, 오랜만에 새로운 대상을 향해 테이밍 몬스터 스킬을 시전했다.
[대상을 향해 ‘구속의 숨결(2)’을 사용하여 테이밍을 시도합니다.]
25%, 50%, 75%!
10초간의 캐스팅 바가 천천히 차오르는 걸 묵묵히 지켜본 결과, 마침내 아이언 골렘의 몸에서 환한 황금색 빛이 터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띠링!
[‘강화된 아이언 골렘’의 테이밍에 성공했습니다!]
“굿! 역시 일반 몹답게 테이밍이 비교적 쉽구나!”
곧바로 녀석의 정보를 살펴봤더니, 훼라리와 비교해서 스펙은 상당히 떨어지지만 방어력만큼은 훨씬 상회하고 있었다.
[강화된 아이언 골렘, Lv. 330]
* HP: 98500/98500 * MP: 12000/12000
* 공격력: 980 * 물리 방어력: 3420 * 마법 방어력: 4235
* 전용 스킬: 강화 마법진(!)
-강화 마법진(고유 스킬): MP 1500을 소모하여 5초간 물리 및 마법 방어력을 2배 증가시킵니다. 사용 대기시간 30초.
무엇보다 이 녀석의 고유 스킬, ‘강화 마법진’의 설명창이 나를 흡족하게 만들어줬다.
이 몸빵과 방어력, 그리고 이 방어 스킬 때문에 굳이 이곳까지 행차해서 꼬신 거였으니 말이다.
[펫이 된 ‘강화된 아이언 골렘’의 이름을 새롭게 지어줄 수 있습니다. ‘강화된 아이언 골렘’의 이름을 변경하시겠습니까?]
내 애룡 훼라리처럼 나와 오랫동안 함께할 것 같진 않았다.
그래도 내가 두 번째로 꼬신 놈이니 이름을 지어주지 않을 순 없었다.
“튼튼한 것으로 치면 역시 그 브랜드지! 네 이름은 이제부터 볼포다. 볼포!”
[산드로님의 펫 ‘강화된 아이언 골렘’의 이름이 ‘볼포’로 변경되었습니다.]
듬직하기 이를 데 없는 녀석의 소환을 해제하고 다시 다른 놈을 찾아 헤맸다.
이래 봬도 정예 수준의 몹이었기에 연구실에는 오직 한 마리의 아이언 골렘만 자리 잡고 있었던 것.
잠시 후 다른 연구실에서 또 한 마리의 아이언 골렘을 테이밍해 ‘폴보’라고 이름 지어 줬다.
그리고는 곧바로 귀환 주문서를 사용했다.
나머지 1개 남은 테이밍 몹 슬롯은, 아이언 골렘과 같은 일반 몹이 아닌 필드 보스급으로 생각해 둔 녀석이 있었다.
* * *
휘이잉.
놀랍도록 차가운 감촉의 바람이, 훼라리를 타고 비행하고 있는 나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마지막 테이밍을 시도하려고 찾아온 이곳은, 혹한의 북풍이 불어 닥치는 얼어붙은 땅 ‘노스랜드’였다.
‘아무리 그래도 게임인데, 이건 너무 추운 거 아니냐? 가상현실에서 이 정도 추위를 느껴보는 건 생전 처음인 것 같네.’
상, 중, 하로 나눌 수 있는 감도 설정을 항상 ‘상’으로 세팅해 둔 나였지만, 사실 타연 유저의 절반 이상은 모두 나처럼 감도를 ‘상’ 수준에 맞춰서 타연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정도의 서늘함이라니?
역시 노스랜드가 제국의 영토에 속해 있음에도 유저들에게 인기가 없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건 시원한 걸 한참 넘어서, 몸이 으슬으슬할 정도의 추위였다.
그래도 묵묵히 훼라리를 타고 눈 덮인 설원(雪原)을 저공비행으로 날아갔다.
화이트 울프, 아이스 트롤, 성난 에티 등등.
지상에는 수많은 몬스터들이 곳곳에 리스폰된 채로 할 일 없이 서 있었다.
얼핏 봐도 추후 유저들의 레벨이 조금 더 상향 평준화가 된다면, 많은 유저들이 자리를 잡고 사냥할 만큼 제법 괜찮은 사냥터로 보였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그러했듯이 붐비는 사냥터는 사냥감을 찾기 힘들 정도로 유저들 간의 자리싸움이 치열했지만, 이렇게 인기 없는 사냥터는 유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한산했다.
추위도 하나의 영향일 수 있겠지만, 역시나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얼어붙은 동토를 끝없이 배회하는 늑대, 바로 ‘프로스트 울프’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