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104화 (104/350)

104화 퀀텀 점프 (3)

단검, 혹은 장검을 양손으로 사용하는 이도류.

상당한 간지를 뽐낼 수 있음은 물론, 두 무기에 붙은 옵션이 중복으로 적용된다는 굉장한 메리트가 있는 테크트리.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저들이 잘 선택하지 않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는 피 같은 스킬 포인트를 투자해서 쌍검을 들어봤자, 1성 마스터리는 공격력과 명중률이 50%나 감소했다.

과감히 5성까지 투자해도 여전히 30%나 감소했기에, 아무리 중복 옵션 효과가 적용된다는 장점이 크게 희석됐다.

두 번째는 어찌 보면 더욱 까다로웠는데, 다름 아닌 현실적인 제약 때문이었다.

이도류는 두 검을 번갈아 가며 휘둘러야 했기에 두 개의 검을 비슷한 공격력의 템으로 세팅해야 했던 것이다.

보통 타연의 템들 중에는 무기가 제일 비쌌기에 좋은 무기를 맞춘다는 건 힘든 일이다.

한데 그런 무기를 2개나 같은 급, 같은 강화 수준으로 갖춘다는 것은 대다수의 근접 딜러에게 너무나 가혹한 조건이었다.

그렇기에 간혹 볼 수 있는 이도류 유저들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유저거나 속칭 말해 돈지랄 좀 할 수 있는 부자 유저, 이렇게 두 부류로 나뉘어 있었다.

하지만 페널티가 줄어들수록, 그리고 템이 좋아질수록 이도류만큼 좋은 테크트리도 없었다.

현재 레전더리 쌍검도 드문 타연 속 세상.

한데 벌써 난 디바인 쌍검을 들게 됐으니, 앞으로의 내 포텐셜은 나조차도 가늠이 안 될 정도였다.

‘흠……. 퀘스트를 준 NPC가 원로원장이라고 했지?’

어느새 오스타그 황궁의 내성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지만, 워낙에 넓은 곳인 탓에 원로원을 쉽사리 찾기 힘들었다.

새벽인지라 몇 명 안 보이는 유저들에게 위치를 물어보며 한참을 헤맨 결과, 결국 겨우겨우 제국의 43대 원로원장인 루퍼스를 찾을 수 있었다.

알고 보니 황실 경비병들에 의해 일반 유저들은 접근하지 못하는 ‘제한 지역’이었는데, 퀘스트를 가진 사람만 출입이 가능한 곳이라 그랬다.

“오! 용맹한 용사여, 그리고 제국을 다가올 위기에서 구해 준 영웅이여! 그대의 용맹함을 내 진작 알아보지 못한 것은 아니건만, 그래도 이렇게 무사히 성공해내다니 더욱 대단하도다. 마탑주로부터 제국의 근심이었던 사악한 용의 기운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전달받고, 얼마나 안도했는지 그대는 아마 모를 것이네.”

“됐으니깐 보상이나 빨리 좀 주슈.”

처음 보는 NPC가 아는 척과 함께 얼굴에 금칠까지 해 오자 뻘쭘하기 그지없었다.

퀘스트를 중간에 공유받게 되면 흔히 겪는 폐해 중 하나였다.

“새롭게 탄생한 영웅에 걸맞은, 천년제국 옛 영웅들의 비전 중 하나를 그대에게 전해주겠네.”

띠링!

[‘드래곤 슬레이어 : 연계 퀘스트, 일회성 퀘스트’를 해결했습니다.]

[업적 ‘새 시대의 영웅’을 획득했습니다.]

[보상으로 특별 스킬(선택) 습득 기회가 제공됩니다.]

[지난 연계 퀘스트를 클리어하지 않았기에 후속 연계 퀘스트는 부여받지 못합니다.]

비록 연계 퀘스트는 받지 못했지만, 이번 퀘스트의 보상은 차질 없이 전부 받을 수 있었다.

[업적 : 새 시대의 영웅(S)]

* 옛 영웅의 행보를 잇는, 이 시대의 영웅에게 주어지는 업적입니다. (공격 속도 +5%, 이동 속도 +5%)

* 업적 효과로 레벨 차이에 의한 보정 효과가 다소 줄어듭니다.

‘공속과 이속 증가 효과? 이것만으로도 개쩌는데 레벨 보정 효과까지 줄여준다고? 이러면 앞으로 고레벨 몬스터를 더 쉽게 잡을 수 있다는 말이잖아! 역시 S급이 다르긴 다르구나!’

이제 랭커급에 이르러 유저들을 대상으로 레벨로 손해 볼 일은 없지만, 계속해서 빠른 레벨업을 유지하려면 고레벨 몹 위주로 사냥해야만 했다.

이 업적은 그런 폭업을 이어가기에 아주 괜찮은 업적으로 보였는데, 덤으로 받은 것이나 다름없어 절로 흐뭇해졌다.

다음으로는 특별 스킬을 고를 수 있는 창이 떴는데, 이 또한 압권이었다.

현존하는 총 36개의 특별 스킬.

그 목록이 전부 빠짐없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마나 감옥] [연쇄 파편] [지배의 목소리]

[가시 반사] [살기 표출] [기억 분쇄]

……………………

크게 좋지도 않으면서 1성마다 스킬 포인트를 2개나 요구하는 특별 스킬들.

보통 희귀한 일회성 퀘스트를 통해서, 그것도 랜덤으로만 주어졌기에 갖고 싶은 스킬을 획득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특별 스킬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보상이자 특권이었다.

원래였다면 카이저가 익힌 ‘마나 드레인’을 주저 없이 선택했겠지만, 근래 다리우스를 상대해보면서 생각이 크게 바뀌었다.

마나 드레인을 익혀 ‘생존’에 중점을 두는 것보다는, 기회가 생겼을 때 놈을 죽일 수 있도록 ‘PK’에 중점을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리우스가 파괴된 데이네스에서 튀어나왔을 때, ‘넉백’이나 ‘스턴’ 같은 스킬은 못 쓰더라도 최소한 도망가지 못하도록 붙잡아 둘 수단이 절실했다.

[급소 공격(특별 스킬)을 선택하셨습니다. 습득하시겠습니까?]

[습득을 선택하시면 스킬 포인트 2개가 소모되거나 향후 레벨업 시에 제공될 스킬 포인트 2개가 미리 차감됩니다.]

[급소 공격(특별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물론 밸런스 때문인지 특별 스킬 중에는 이동 불가나 넉백, 스턴 같은 ‘고유 스킬’ 특유의 상태 이상기가 있진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공통 스킬에도 종종 붙어있는 ‘경직’ 효과만큼은 특별 스킬 중에도 몇 가지 존재했다.

[급소 공격(특별 스킬): ★]

* 마나 소비: 100

* 사용 대기시간: 120초

* 대상의 급소를 1회 공격해 150%의 데미지를 입힙니다. 공격에 적중당한 대상은 0.5초간 경직 상태에 빠집니다.

모든 스킬이 그렇듯이 이 스킬도 1성일 때는 보잘것없었다.

하지만 8성을 만들어 한번에 8회 공격을 쓸 수 있게 되는 순간, 나는 상대를 최대 4초 동안 경직 상태에 빠뜨릴 수 있었다.

물론 경직 상태로는 물약도 먹을 수 있고, 심지어 방패나 무기로 막아 데미지 감소도 받을 수 있었다.

순전히 스킬 캔슬 효과와 이동 방해 정도의 페널티만 부과하는 상태 이상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즉발 상태 이상기가 없는 도둑 캐릭에게는 그런 ‘경직’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내게서 도망치지만 못하도록 발을 잡아 둘 수만 있다면…….

그 효과를 극대화시켜 줄 수 있는 단테리오의 팔찌, ‘스킬 가속’이라는 비장의 한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특별 스킬을 5성까지 찍으려면 10개의 스킬 포인트.

즉, 50번의 레벨업을 오롯이 이 스킬 하나에 투자해야만 했다.

‘이게 과연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스킬인 걸까?’

내 적들은 지금도 새로운 스킬 등을 익히며 강해지고 있을 텐데, 섣불리 이걸 선택했다가 캐릭을 망치는 건 아닐까?

심지어 결정적인 타이밍에 허점을 찌르기 위해서는, 내가 이 스킬을 익히고 있다는 사실도 숨긴 채 성장해야 할 텐데?

그렇게 당분간 써먹지도 못할 스킬을 찍어야만 한다고?

이곳까지 걸어오는 내내, 그리고 조금 전까지도 이런 망설임은 멈추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결국 이 스킬을 선택했다.

‘말 그대로 히든 스킬……. 내 비장의 한 수가 생기는 거야!’

오직 다리우스, 그 자식을 죽일 수만 있다면 절대 아까운 투자가 아니게 될 테니 말이다.

또한, 내가 PK에만 눈이 돌아가서 이 스킬을 선택하는 건 아니었다.

‘생존’은 내 캐릭의 알파이자 오메가였기에, 그에 맞춘 스펙업도 이미 준비됐으니 말이다.

“자, 드디어 드래곤 하트가 무슨 맛인지 맛볼 때가 왔구나!”

다른 모든 것들이 정리된 이상, 마지막으로 남은 일은 투 메르타스의 심장의 효과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나는 인벤토리 창에서 고풍스런 테두리로 장식되어 있는 심장을 터치해 꺼냈다.

‘아이템 제작에 쓰면 디바인급 장비를……. 혹은 타이탄 제작에 쓰면 나이트급은 만들 수도 있는 재료 템인데……. 이걸 영단용으로 써먹는 유저는 아마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겠지?’

마치 열매, 혹은 커다란 보석과도 같은 모습의 녹색 심장.

이 특별한 재료 아이템을 잠시 눈여겨보다가, 그대로 입으로 가져가 삼켜버렸다.

[투 메르타스의 심장을 복용하였습니다.]

짧은 시스템 메시지가 올라오더니, 녹색 기운이 나타나 내 몸을 감쌌다.

그리고는 금세 회오리처럼 거세게 몰아치더니, 곧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내게로 모두 흡수되고 말았다.

띠링!

[영약 복용의 효과로 최대 마나 수치가 15,000만큼 영구적으로 상승합니다.]

[영약의 효과는 종류에 상관없이 단 한 번으로 제한됩니다.]

“대, 대박이다!!”

아무래도 마법 방어력이나 누적 효과가 적용되는 마력 스탯이 올라가면 좋겠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MP를 이 정도나 올려준다면야 뭐가 됐든지 간에 대환영이었다.

아무리 디바인급 영단이라 해도, 1만 단위가 넘어가는 MP 수치의 상승은 기대 이상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일루전 놈들……. 처음 드래곤을 디자인할 때만 해도 설마 심장을 먹을 줄은, 그것도 나 같은 놈이 그럴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겠지?’

일루전과 세라자드가 만든 이 타이탄 연대기의 세계관과 설정들.

게임이 방대한 만큼이나 자유로웠기에, 이 안에는 다양한 성장 루트와 수없이 많은 테크트리 조합 등이 가능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나와 같은 마력 몰빵 캐릭의 탄생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조차도 지금처럼 성장이 잘 이루어질 줄, 처음 레벨다운을 하던 시절만 해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내가 테크트리와 성장 루트를 잘 디자인했던 건 맞다.

하지만 매 순간 찾아왔던 결정적인 상황마다 최적의 판단을 내리고 주변의 서포트를 잘 활용했던 것이 주효했다.

거기에 운마저 따라줬던 수많은 ‘득템’들 또한, 큰 보탬이 되었고 말이다.

그 결과, 운이 따랐지만 현존하는 타연의 최고 몬스터인 드래곤마저 잡아내게 되었다.

드래곤의 퍼스트 킬은 보상도 보상이었지만, 사실상 내가 다리우스를 따라잡았고 일정 부분에서는 추월까지 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 사건이었다.

‘급속도로 올라가던 중에 점프를 한 거나 다름없어. 그러니 따라잡을 수밖에 없지.’

나, 그리고 우리 버닝스타 길드.

드래곤 레이드를 통해 우리는 최상위권에서 랭커급으로 순식간에 도약, 다시 말해 퀀텀 점프를 해버렸다.

* * *

한숨 자고 일어난 다음 인터넷에 잠깐 접속해 보니, 타연 커뮤니티는 온통 드래곤 레이드에 관한 뉴스들로 난리가 나 있었다.

-[속보] 오늘 새벽, 타연 최강의 보스 몹 드래곤이 기습적으로 잡혀버리다!

-드래곤을 레이드한 길드는 어디? 태성은 묵묵부답!

-일루전에서는 레이드 과정에서 어떠한 버그도 사용되지 않았다고 밝혀.

-드래곤의 드랍 아이템 예상 목록 TOP 5!

불과 반나절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이런저런 추측성 기사가 수십 개나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한동안 잠잠했던 올타의 자유 게시판도 간만에 불타올랐다.

-당연히 태성이 잡은 거겠지? 공성전 때 보니까 이미 타이탄을 많이 갖고 있더만. 거기다가 다리우스에겐 마신검도 있잖아?

└ 소식 느리구나? 아까 태성 길드원 중 한 명이 자기들은 아니라고 밝혔어. 태성에 사람이 몇 명인데 몰래 레이드가 가능할 것 같음?

-그럼 어딘데? 피닉스? 올림푸스? 설마 또 산드로가 한 건 아니겠지? 수천 명이 넘는 태성 길드도 엄두를 못 냈던 드래곤이니까 말야?

└ 아직 누군지 모름. 그러니까 일루전이 공략이 정상적으로 이루어 졌다고 이례적으로 아침 발표까지 한 거 아니겠어? ㅋㅋ 진짜 넘나 궁금하다 도대체 누가 무슨 수를 써서 잡은 거야?

└└ 뭐가 됐든 잡은 놈들은 인생 폈네. 레전더리 무기만 해도 어지간한 집 한 채 값인데, 드래곤은 도대체 몇 억 치, 아니 몇 십 억 치를 떨궜겠어ㄷㄷㄷ

워낙 극비리에 진행했던 터라, 유력한 후보로 꼽히긴 해도 우리가 잡았다고 확신까지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래도 드래곤이 토벌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수많은 리젠 글이 올라오긴 충분했다.

게시판의 글들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할 정도였던 것이다.

그 사이에 직접 레어에 다녀와서 정말 드래곤이 사라졌다는 걸 확인해봤다는 유저마저 나왔다.

내가 벌인 일들이 언제 안 그런 적 있겠냐마는, 아무래도 드래곤이 가진 상징성 때문인지 평소보다 반응이 더욱 뜨거운 느낌이었다.

수많은 도전에도 꿋꿋이 버티던 성이 아니라, 도전할 엄두조차 못 냈던 성이 어느 날 갑작스럽게 함락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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