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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105화 (105/350)

105화 선전포고 (1)

-라라랄 라라.

감미롭고 나긋한 바람 정령들의 노랫소리.

항상 나를 힐링시켜 주는 효과음을 들으며 들어와 보니, 길드원들은 어느새 전부 접속한 상태였다.

‘다들 엄청나게 열심히들이구나. 크크.’

그중에 특히나 라챤이는, 내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말을 걸어왔다.

[라스트챤스: 형님, 귓속말이 꺼져 있어서 전달드려요. 지옥불 형님께서 접속하시면 꼭 좀 연락 달라고 전해 달라시네요.]

[산드로: 응? 그래? 그럼 지금 바로 듀메인 성으로 찾아뵌다고 전해드려 줄래? 내가 아직도 귓속말을 켜지 못할 정도라...]

[라스트챤스: 히야ㅋㅋ 역시 타연 스타는 다르긴 다르네요 ㅋㅋ 알겠습니다!]

길드원들이 각자 어떤 특별 스킬들을 선택할지부터 묻고 싶었지만, 차차 알게 될 일이니 일단 듀메인 성으로 향했다.

지옥불은 그새 연락받았는지, 홀로 주성문 앞까지 나와 나를 반겨주었다.

“산드로 님 오랜만이군요. 먼저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늘 새벽에 정말 엄청난 사건을 터뜨렸더군요!”

“하하! 감사합니다. 실패할 가능성이 큰 도박이었는데, 운이 좋게도 겨우 성공할 수 있었네요.”

“이런 대형사건을 저한테까지 꽁꽁 숨겨두고 있었다니…… 약간은 서운합니다?”

“죄송합니다 지옥불 님. 레이드 자체도 어려웠지만 아무래도 보안이 정말 중요했던 레이드였어서요. 실패 가능성도 무척 컸던 터라 부담 드리고 싶지도 않았고요. 그래도 함께 하고 싶은 마음만큼은, 정말 굴뚝같았습니다.”

“하하! 농담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셔도 어떤 상황이셨을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아무래도 무리해서 진행한 레이드인 만큼 만전을 기하고 싶으셨겠죠. 차고 계신 검이 이번에 새롭게 얻은 보상인가 보군요?”

“네. 녀석이 떨군 디바인 템, ‘용살검’입니다.”

손에 빼들진 않았으나 못 보던 검을, 그것도 신검과 함께 두 자루나 찬 행색이다 보니 금세 알아보았다.

내가 ‘이도류 마스터리’ 스킬을 새로 찍을 만큼, 엄청난 검을 획득했다는 것을…….

신검 자체도 장검치고는 제법 긴 편이다.

한데, ‘샤크 투 메르타스’는 그보다 더 길었다.

드래곤 본 재질로 이루어진 푸른빛의 검신.

투박한 외형이지만 특별함이 더해져, 왠지 모를 고급진 느낌을 주고 있었다.

“이도류라…… 쉽지 않은 길을 택하셨지만, 벌써 디바인 검을 2자루나 가지신 분께 드릴 말씀은 아닌 것 같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산드로 님. 지금까지 이렇게 빠르게 성장한 케이스는 들어본 적도 없지만, 앞으로도 아마 두 번 다시 나타나기는 힘들 겁니다.”

“과찬이십니다. 아마 지옥불 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저 역시도 홀로 이 정도까지 잘되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이번 레이드에서 지웰 성의 고레벨 NPC 병사들을 빌려주신 것도 큰 도움이 됐었고요.”

“역시…… 퍼스트 킬 소식을 접하자마자 호위 기사 시스템을 활용한 게 아니었나 싶었는데 맞았군요. 그 종이 몸들을 데리고 레이드를 시도할 생각을 하시다니……. 보통 사람들은 떠올리기 쉽지 않은 발상일 텐데, 과연 산드로 님이십니다.”

“하하! 자꾸 비행기 태우시려고 절 부르신 건 아니죠? 이제 말씀 좀 해주시죠. 어떤 일 때문에 급하게 저를 찾으신 거세요?”

이대로는 도무지 끝이 없을 것 같아, 화제도 전환할 겸 본론으로 들어갔다.

“사실 그동안 말씀은 안 드렸었는데…… 7성을 달성한 지 24시간이 되던 다음 날 저녁, 수석 행정관 NPC로부터 전언을 하나 받았습니다. 가이라 제국으로부터 통보가 도착했다는 알림이었죠.”

“통보요?”

“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선전포고’였습니다. 최근 7번째인 지웰 성을 먹게 되면서 로젠타스와 칼젠을 포함한 3개의 성이 제국과 국경을 마주하게 되었지요. 통보의 내용은 그 성들중 하나를 당장 포기하지 않는다면 응당의 대가를 받게 될 것이란 내용이었습니다.”

굉장히 뜬금없는, 그리고 그 어떤 유저도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였다.

NPC 황제가 다스리는 대륙 유일의 제국.

그 가이라 제국이 유저를 대상으로 ‘전쟁’을 벌이겠다니?

‘최초로 발생하는 이벤트 중 하나인 건가?’

타연에서 가장 앞서간다는 것.

거기에는 주어지는 혜택만큼이나 리스크 또한 존재했다.

그동안 5성 길드도 드물었던 터라, 아무래도 최초로 7성을 달성한 리버스국이 타연 최초로 겪게 된 콘텐츠인 듯싶었다.

“아…… 전해들은 저도 황당한데, 정말 많이 당황하셨겠네요……. NPC가 유저를 먼저 공격하겠다니, 뭐 이런 게임이 다 있는지, 원. 아무튼 아직은 태성을 견제하는 것만으로도 힘드실 텐데, NPC와 전쟁을 벌이실 수 있으시겠어요? 아무래도 포기하실 생각이셨다면, 굳이 저를 부르진 않으셨을 테니……?”

“사실 진지하게 성의 소유권을 포기하려고 고민했습니다. 한데 이제는 그러지도 못하게 돼서 산드로 님을 찾은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신지……?”

“당장 무슨 일이야 생기겠냐는 생각에 저희 간부진에게만 이 사실을 공유했었는데, 오늘 아침 새로운 전언이 추가로 도착했습니다. 72시간. 당장 3일 후에 공격해 오겠다는 마지막 통보가요.”

“네? 3일 후라고요?”

“그렇습니다. 이번 전언에 따르면 공성이 끝난 지 15일 후에 첫 공격, 그리고 다음 공성전이 있을 30일이 되는 날 후속 공격이 있을 예정입니다. 운 좋게 첫 공격을 막아내더라도 다음 공격인 공성전 날에는 전력이 분산될 테니 무조건 질 수밖에 없겠지요.”

겉으로는 제국의 통치 방식이라는 설정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건 보나 마나 일루전이 선두 길드의 독주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 놓았던 시스템적 장치였다.

하여간 일루전이 이미 만들어 둔 설정과 콘텐츠가, 아직 얼마나 더 숨겨져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원래라면 당연히 태성이 먼저 제국의 선전포고를 받으며 밝혀졌을 콘텐츠였겠지…….’

한데 요 근래 피닉스가 급부상하면서, 2인자가 대신 얻어맞게 된 상황이었다.

내가 많은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결과론적으로 보면 피닉스가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에 내 책임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최초의 7성 길드가 되어 길드원들을 더 모집하라고, 내가 옆에서 적극적으로 부추겼으니 말이다.

“항복! 이제라도 항복하면 되지 않을까요? 국경에 있는 성을 2개로 줄이면 괜찮다면서요?”

“맞습니다. 당연히 그 생각도 해봤지요. 하지만 이번 통보에서 제국이 대상으로 꼽은 곳이 바로 로젠타스 성입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아무 성이나 선택해서 포기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오직 로젠타스 성을 바쳐야만 전쟁을 멈출 수 있게 되었지요. 아시다시피 로젠타스는 협박 몇 마디에 지레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성입니다. 아직 쳐들어올 제국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는데 말이지요.”

“그러니 공성전 때는 다른 성을 포기하면서 항복하겠지만, 이번 한 번은 시험 삼아 붙어보겠다 이 말씀이신 거죠? 제국군이 어떤 수준인지 파악도 할 겸요?”

“네, 그렇습니다. 어떻겠습니까 산드로 님. 이번에도 저희 피닉스를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번에도 내가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

또한 대화중에 문득, 이번 돌발 이벤트가 어쩌면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떠올랐다.

들어보니 이건 말만 전쟁이지, 사실 전쟁이라고 보기 힘든 전투였다.

이건 흡사…… 다른 게임에 흔히들 있는 ‘몬스터 웨이브’와 비슷해 보였던 것이다.

“그럼요! 이미 제가 피닉스는 무슨 일이든 성심성의껏 도와드리겠다고 몇 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들어보니깐 이건 제 전문이기도 합니다.”

“전문이요?”

“네. 제가 소싯적에 디펜스 게임만큼은, 또 완벽히 통달했던 놈이거든요.”

사실 예전부터 타연에 없어서 아쉽다고 생각했던 것이 있었다.

쉴 새 없이 몰아닥치는 몬스터 무리들의 공격을 유저들이 단합해서 막아내는 게임 모드.

바로 폭렙과 득템의 상징, 몬스터 웨이브(monster wave)였다.

어지간한 MMORPG 게임에는 설령 몬스터 웨이브가 없더라도 비슷한 것은 꼭 들어가 있었다.

혹은 이런 모드만 따로 빼 와서 만들어 ‘디펜스(defence)’만 주야장천 하는 게임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나 또한 이런 디펜스 류의 게임에 심취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니 충분히 자신 있었다.

이번 제국의 습격을 잘 막아내는 것뿐만 아니라, 최대한 잘 이용해서 뽕 뽑아먹을 자신이!

“그렇습니까? 산드로 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역시 든든하군요.”

“지옥불 님, 한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제가 길드 경험이 짧아서 그러는데, 혹시 이번에 제국군과 싸우게 되면 업적치도 오르게 될까요?”

“아마 99%는 그럴 겁니다. 물론 제국군과 적대해 본 유저가 없기에 속단하긴 이르지만, 명목상으로는 명백히 국가 간 ‘전쟁’이니 말이지요. 무엇보다 상대가 NPC 국가인 제국이지 않습니까? 처음 계획했을 당시부터 당연히 업적치를 주도록 설정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오, 그렇다면 너무 좋은 데요? 지옥불 님, 괜한 걱정을 하셨네요.”

“네? 그게 무슨……? 저는 사실 산드로 님께서 도와 주시긴 하더라도, 디펜스에 성공 못 할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 중이었습니다만.”

“에이, 생각해 보세요. 업적치를 준다면 참석하려는 길드가 얼마나 많겠어요? 개인 유저들은 또 어떻고요?”

“……!”

모든 길드전에는 승리한 길드에게 보상으로 전쟁 업적치가 주어진다.

물론 패배한 길드는 대신 업적치를 어느 정도 뺏기게 되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를 이용한 짜고 치기, 속칭 말하는 ‘어뷰징(abusing)’으로 업적치를 획득하는 길드도 존재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았다.

일루전이 이를 방지하기 위해, 오픈 당시부터 길드전을 연속해서 치를 순 없도록 시스템적으로 제한을 두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업적치를 추구하는 유저들에게 길드전은, 그저 어쩌다 생기는 보너스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레이드나 퀘스트 클리어, 혹은 공성전 등을 통해 업적치를 획득하는 편이 훨씬 더 많았다.

하지만 제국과의 전쟁을 통해 업적치를 얻을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제국군은 유저가 아닌 NPC 병사.

다시 말해, 인간 형상을 한 ‘몬스터’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명색이 제국군인데 가오 상하게 몇천 명 보내고 말진 않겠지? 만약 수만 명 이상이라면 이건 역대급 업적치 이벤트나 마찬가지야!’

따라서 이건 경험치도 얻으면서 업적치까지 쌓을 수 있는 최고의 단발 이벤트였다.

뭘 얼마나 줄진 모르지만, 놈들이 아이템까지 드랍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 유저나 참여하진 못할 듯싶습니다. 제국이 저희 리버스국에게 선전포고한 이상, 저희 길드원과 산하 길드, 혹은 동맹을 맺고 있는 몇몇 길드들만이 가능하겠지요. 일단 정보 자체가 하나도 없는 게 변수입니다. 정말 몇몇 길드 연합만으로 제국의 침공을 버텨낼 수 있을는지요?”

“아니, 도대체가 무슨 걱정이세요? 오히려 잘된 일이라니까요?”

“네? 그게 무슨…?”

“이제까지 공성전에 관심이 없었거나 중립을 표방하던 길드들을, 피닉스의 동맹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잖아요!”

“맙소사……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군요!”

“네 맞습니다 지옥불 님. 업적치를 단시간 내에 먹을 수 있다고 선전한다면 열에 한둘은 무조건 관심 가질 길드가 있을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것만 해도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랬다.

업적치를 쌓으면 길드 단계를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별한 퀘스트를 받을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유저들의 영원한 관심인, 장비 아이템과 교환하거나 뽑기를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호시탐탐 업적치를 쌓을 기회만 노리고 있는 유저의 수는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저들이 적극적으로 업적치를 얻지 못했던 이유.

그건 필드 레이드나 공성전등에 참여해서 얻으려고 하면, 사망 페널티나 아이템 드랍 같은 리스크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흔히들 누구나 사람이라면 이익보다 손해에 더 민감하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평범한 유저들은 고작 안전한 투기장에서 조금씩 노가다를 하며 업적치를 쌓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몹이나 다름없는 NPC를 상대로 업적치를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보나 마나 길드 가입 신청이나 동맹 제의가 물밀 듯이 들어올 게 분명했다.

전화위복(轉禍爲福).

잘만 하면 제국과의 전쟁은, 피닉스가 타연 내에서 가장 큰 길드로 성장하도록 만들어줄 AI의 선물이 될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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