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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112화 (112/350)

112화 업적 사냥 (1)

“아, 이거 진짜 오지게도 안 잡히네. 이거 괜히 시간 낭비만 하는 거 아냐? 분명 돈지랄하면 엄청 쉽게 얻을 수 있다고 쓰여 있었는데?”

페이센 왕국 중심부에 위치한 대륙 최대 크기의 호수, 아이칼.

레벨업하기에도 바쁜 내가 지금 이곳에 와있는 이유는, 뜬금없지만 낚시 때문이었다.

까딱, 까딱.

10만 골드라는, 어지간한 현실 속 낚싯대보다 비싼 가격을 주고 산 낚싯대 찌의 움직임만 보고 있은 지도 어느덧 3시간.

이제는 포기하고 일어나야 하나란 생각만 벌써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물론 하나에 1천 골드라는 말도 안 되게 비싼 가격의 ‘가트웰 지렁이’를 미끼로 사용했기에, 간간이 물고기들이 잡히기는 했다.

허나 모두 허탕이었다.

목표로 한 물고기는 구경조차 못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던졌던 낚싯대의 찌가, 다시 한번 수면 아래로 잠겼다.

“여차! 이번엔 제발 좀 잡혀랏!”

현실에서 실제로 낚시를 해본 적이 없어 정확히 비교할 순 없지만, 지금까지 낚은 다른 잉어나 캣 피쉬와는 차원이 다른 손맛이 느껴졌다.

“뭐지? 이놈은 진짜 좀 다른데?”

그렇게 녀석과 5분여의 힘싸움을 벌인 결과.

돈값 하는 낚싯대 때문인지 녀석을 놓치지 않고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레인보우 피쉬를 획득했습니다.]

[업적 ‘보기 드문 낚시꾼’을 획득했습니다.]

[업적 : 보기 드문 낚시꾼(D)]

* 타이탄 연대기에 존재하는 희귀 어종을 낚았을 때 주어지는 업적입니다. (명중률 +1%)

* 업적 효과로 희귀 어종을 낚을 확률이 올라갑니다. (+5%)

“오예, 굿!”

역시 올타의 팁과 노하우 게시판은 위대했다.

불과 며칠 전에 올라온 이 업적의 획득 방법 게시글을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도해봤는데 정확히 들어맞은 것이다.

원래 타연 내에서 업적이란, 어느 정도 대단한 일을 이룩했을 때만 주어진다.

그만큼 희귀 어종을 낚는 것은 어렵고 어려운 일인데, 이 레인보우 피쉬가 잡히는 명당과 가트웰 지렁이 조합을 공개한 노하우 글 덕분에 상당히 쉽게 획득할 수 있었다.

물론 쉽게 얻은 만큼 D급 업적에 불과했지만, 내게 명중률은 너무 소중한 스펙이기에 C급 못지않게 느껴졌다.

“이로써 오늘만 2개째! 페이스 좋고!”

오전에는 라챤이로부터 빌린 여벌의 +2 드라코닉 보우로, ‘백발백중’이라는 명중률 2%를 높여주는 업적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일정 거리에서 활을 100번 쏴 100번을 연속으로 맞추면 얻을 수 있는 C급 업적.

현존하는 최고의 활인 탓도 있었으나, 사거리가 무지막지하게 길다는 옵션 덕분에 궁수를 택한 유저들보다 훨씬 수월하게 얻을 수 있었다.

내가 레벨업을 잠시 멈추고 이런 ‘업적 사냥’에 나선 이유.

그건 어제 있었던 제국군과의 전투에서 얻은 보상 때문이었다.

-와, 진짜 대박이에요. 무려 3,420,860포인트라니! 이번 전투만으로 길드 업적치를 무려 200만 가까이나 먹어버렸어요!

어제 우리는 상급 길드로 업그레이드하려던 계획을 무려 140만 포인트나 초과 달성하게 되었다.

뜬금없이 사령관을 죽이면서 120만이라는 놀라운 업적치를 얻게 된 덕이었는데, 뿐만 아니라 그에 못지않은 엄청난 보상 2가지도 함께 얻을 수 있었다.

먼저 ‘강화된 타이탄의 정수’.

다른 제국의 타이탄들을 파괴하면서 얻었던 것이 타이탄의 정수 ‘조각’이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정말 어마어마한 보상이었다.

곧바로 타이탄 1대를 소환할 수 있는 ‘완성품’이었으니 말이다.

-국가를 건국한 것도 아닌데 보유 타이탄이 이렇게 계속 늘어나도 되는 거냐? 이러다가 나중 가서는 우리 길드 자체가 국가급 전력으로 취급받게 되는 거 아냐?

호들갑을 떠는 현중이의 말이었지만, 농담으로만 들리진 않았다.

어쨌든 다른 솔저급보다는 뛰어나 보이는 이 타이탄은, 다음 타자였던 축빙 형님의 몫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길드 업적치와 타이탄이란 보상은 내게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 보상이었지만, 그 모든 걸 상쇄하고도 남을 마지막 보상이 남아 있었다.

바로 새롭게 얻게 된 ‘업적’이었다.

[업적: 귀족 학살자(A)]

* 타이탄 연대기에 존재하는 귀족 NPC 다수를 처치했을 때 주어지는 업적입니다. (공격력 +10%)

* 업적 효과로 일부 NPC들로부터 선제공격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 고위 귀족을 추가로 살해할수록, 이 업적은 더욱 뛰어난 효과로 거듭나게 됩니다.

귀족 살해자 업적이 업그레이드 된 귀족 학살자 업적은, A급 최상위 업적답게 공격력을 무려 10%나 올려주었다.

예전에 얻은 ‘오벨리스크 파괴자’ 또한 공격력을 3% 올려주기는 했으나, 수치가 다소 낮을 뿐 아니라 이미 많은 유저들이 획득한 제법 얻기 쉬운 업적이었다.

하지만 이 귀족 학살자 업적은, 현재 타연에서 오직 나만이 갖고 있는 유일한 업적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까지 NPC 귀족을 살해할 수 있었던 유저는, 타연 최초로 제국과 전쟁을 벌이게 된 피닉스와 그 동맹 길드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타이탄 라이더였던 장교를 잡은 유저들은 우리 길드원을 비롯한 극소수 몇 명에 불과했고, 그중 사령관을 잡은 유저는 오직 나뿐이었다.

-좋은 것도 좋은 거지만, 이 업적은 정말 특이하기는 하네. 벌써 드로는 한 번 업그레이드했는데도 아직도 더 성장 가능하다고 적혀있는 걸 보니까.

-타임 어택 업적 효과가 누군가 경신하면 낮아지거나 없어지는 것처럼, 효과가 변하는 업적에도 여러 종류가 있나 봐요. 아무튼 대박이네요!

업적 효과는 크게 절댓값을 올려주는 효과와 비율로 올려주는 효과로 구분할 수 있다.

당연하겠지만 두말할 것도 없이 ‘비율’로 올려주는 효과가 훨씬 더 좋은 업적이었다.

물론 올 스탯을 30씩이나 올려주는 ‘드래곤 학살자’ 같은 업적은 예외였지만.

어쨌든 난 어제 귀족 학살자 업적을 획득하면서 드디어 때가 됐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은 레벨이 낮아서 미뤄왔던, 대략 랭커쯤에 다다르면 도전하려고 미뤄뒀던 ‘업적 획득’에 도전할 때가.

‘다리우스를 잡기 위한 마지막 준비…….’

그건 녀석보다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업적의 절대량을 메우는 일이었다.

현중이도 20개 넘게 가지고 있는 업적을, 고작 반 정도밖에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상당한 페널티였다.

일단 자잘한 것들은 제외한 채 일정 비율로 스펙업을 시켜주는 업적들만 얻기로 결정 내렸고, 그렇게 시작한 것이 바로 오늘 아침부터 도전했던 활쏘기와 낚시였다.

“보기 드문 낚시꾼을 획득했으니 다음은 ‘천인살’인가? 이건 뭐 내버려 둬도 쉽게 얻을 업적이지만, 간만에 태성 애들 뒤치기 좀 틈틈이 해야겠네.”

PK 누적 횟수 천 번을 달성하면 얻을 수 있는 업적, 천인살(千人殺).

생각보다 비율로 효과를 주는 업적은 많지 않아 목표 업적은 그다지 많진 않았는데, 다음 순서가 이 천인살이었다.

일반 유저들에게는 천 명이나 PK를 해야 한다는 미친 난이도의 업적이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게는 낚시만큼이나 얻기 쉬운 난이도로 보였다.

[현재 누적 PK 횟수: 956명]

“그동안 진짜 많이도 죽였구나!”

한번 필드전과 뒤치기를 벌일 때마다 그 규모가 상당히 커서 그런지, 이미 거의 다 채운 상태였다.

공성전에서 킬한 것도 포함했으면 그 몇 배는 될 텐데, 오직 필드에서 머더러가 되며 킬한 것만 카운팅 됐기에 그나마 적은 숫자였다.

“내친김에 바로 시작해 볼까? 훼라리 소환!”

오늘은 어디 있는 태성 길드원들을 뒤치기할까 고민하던 중, 현중이가 길드 채팅창에 새롭게 올린 글이 눈에 들어왔다.

[축복받은얼굴: 와, 큰일 날 뻔했네! 다들 오스타그 가지 마세요! 방금 저 오스타그 갔다가 죽을 뻔!]

[축복받은파볼: 응? 무슨 일인데 또 호들갑이야? 거기엔 볼일도 없지만, 왜 가지 말라는건데ㅇㅇ?]

[축복받은얼굴: 좀 전에 올라온 게시글 보고 확인할 겸 가봤는데, 진짜로 마을 경비병들이 공격하네요. 저야 천상의 방패가 있으니 튈 수 있었지만 다른 분들은 위험하겠어요.]

[라스트챤스: 머더러들도 안 치는 경비병이 형님을 쳤다고요? 그런 케이스는 처음 듣는데... 아! 설마 혹시 아직 전쟁 상태라서?]

[축복받은얼굴: 맞아 라챤아. 피닉스 길드원이 올린 게시글이었는데, 아직 제국과 전쟁 중인 상태라 그런지 제국의 영토에 들어가면 NPC 병사들이 선공한다더라. 다들 조심하세요! 뭐 이거 땜에 지옥불님이 곧 제국에 항복할거라는 얘기가 돌기는 하더라고요.]

NPC 경비병들이 선공한다라……?

머더러도 공격하지 않는 놈들이 마을에 왜 필요하나 했더니만, 적대 국가만큼은 선공하도록 세팅됐던 모양이었다.

‘재밌는 정보네. 근데 NPC가 선공을 하면 유저도 반격할 수는 있는 건가? 평소에는 유저가 절대 NPC를 공격하지 못하게 돼 있었는데, 일방적으로 맞기만 하는 거라면 억울하잖아?’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뜩 궁금한 점도 떠올랐다.

[산드로: 축굴아, 혹시 경비병한테 공격은 해봤어? 공격 들어가디?]

[축복받은얼굴: 아니. 후딱 공간이동술사 타고 되돌아오느라 미처 공격은 못 해봤다. 근데 게시글 보니까 경비병 잡은 사람도 있다던데? 피닉스 길드원 중에?]

마을 경비병을 잡았다고?

그럼 타연에서 유저가 마을 경비병을 잡은 것은 최초인 거 아닌가?

현중이는 이 사실이 지닌 의미를 간과한 것 같은데, 사실이라면 상당히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지금 뒤치기가 중요한 게 아냐. 얼른 이것부터 확인해 봐야겠다!’

나는 그길로 곧바로 로젠타스 성으로 이동한 뒤, 훼라리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제국의 변방 지역을 향해 날아갔다.

휘이잉!

역시나 빠른 이동 속도를 자랑하는 훼라리 덕분에, 금세 제국 최외곽에 위치한 항구 도시 뤼젠 근처에 도착했다.

아무래도 수도 오스타그로 직행하는 건 위험했기에, 내게 익숙한 도시를 찾았다.

<뤼젠 외성 마을 경비병>

마을로 들어가는 외성문 입구.

그곳을 향해 다가가자, 심드렁하게 외곽을 응시 중인 경비병들이 보였다.

‘평소에는 저렇게 마네킹마냥 멀뚱멀뚱 서 있기만 하던 놈들이었는데, 과연……?’

그런 경비병들이 조금 더 다가가자 갑자기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띠딩!

동시에 울리는 어그로 감지 효과음!

제국의 경비병들은 정말로 유저를 선공하는 상태였다.

“리버스 국의 졸개가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리버스 국의 졸개가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똑같은 멘트를 외치며 달려드는 8명의 경비병.

하지만 상대는 제국군 군단 사령관도 잡아버렸던 나, 산드로였다.

[마나 쉴드가 3,332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

[마나 쉴드가 2,978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

마을 경비병답게 제법 막강한 공격력.

하지만 드래곤의 평타 공격도 버텨낸 내게 이 정도가 위협적일 순 없었다.

무엇보다 언젠가부터 웬만한 몹들의 공격은 상당히 느리게 보여, 이제는 대부분의 일반 공격 따위는 보고 피해버릴 수 있었다.

스윽! 연속 베기! 쉭! 회전 베기!

하나하나 침착하게 딜을 누적해 경비병들을 순식간에 잡아나갔다.

“뭐야? 저거 산드로 아냐?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냐?”

“이젠 태성도 모자라서 제국군까지 잡는겨? 저 자식, 마을 경비병을 죽이고 있잖아!”

그렇게 경비병들을 모조리 잡았지만, 새로운 업적을 받지는 못했다.

물론 예상했던 바였다.

고작 경비병들 따위를 잡은 걸 ‘업적’이라고 칭하기에는 민망하지 않은가?

적어도 ‘귀족’ 정도는 잡아줘야, 업적이라고 부를 만했다.

“정말 경비병을 잡을 수 있는 상태라니……. 그럼 역시 다른 제국군 NPC들도 잡을 수 있도록 활성화됐다는 뜻이겠지?”

평소 공격 활성화가 안 되어 있던 경비병과 마찬가지로, NPC들 또한 공격 불가인 상태였다.

한데 경비병이 정말로 잡힌다?

그걸 직접 확인한 지금, 제국에 있는 귀족 NPC들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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