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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113화 (113/350)

113화 업적 사냥 (2)

이제까지는 누구도 NPC를 죽인다는 발상은 한 명도 해본 적이 없었다.

당연하겠지만, 그동안은 공격 자체가 안됐으니 말이다.

한데 유저 최초로 제국과 전쟁 상태에 돌입하게 되었고, 이 상태에서는 NPC로부터 선공만 받는 게 아니라 반대로 공격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산드로: 잠깐만요! 모두 바쁘지 않으시죠? 서둘러 시도해 볼 게 생겼습니다! 다들 바로 모일 수 있을까요? 잘못하면 급히 패치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당장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라스트챤스: 형님, 뭐 땜에 그러세요? 혹시 싸움났어요?]

[산드로: 아니, 그런 거 아냐. 잘하면 우리가 어제 얻은 업적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야.]

[축복받은무빙: 무슨 업적? 드로야, 혹시 귀족 살해자 업적 말하는 거야?]

[산드로: 네, 맞습니다 형님. 바로 그 업적입니다.]

그렇게 길드원들을 모집하고는 곧바로 지옥불에게 귓속말을 넣었다.

(나: 지옥불님, 산드로입니다. 계세요?)

(지옥불: 네. 안 그래도 오늘 내로 자그마한 성의 표시라도 드리려고 막 연락하려던 참이었습니다.)

항상 한결같은 반응.

심지어 이번 건은 따로 보답을 대가로 참여한 일이 아니었는데 또 이랬다.

아무리 봐도 천성이 이렇게 퍼주는 사람이다 보니, 그의 주변에 사람이 끊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 저희 사이에 무슨 성의 표시입니까? 저도 어제 일 덕분에 레벨업도 하고 업적치도 많이 먹었는걸요.)

(지옥불: 하하! 그 정도는 어제 전투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가 얻은 것 아닙니까? 산드로님의 조언과 도움 덕분에 로젠타스 성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길드원들도 순식간에 500명이나 늘었습니다. 동맹은 그 2배가 넘게 늘었고요. 또한 당분간은 이런 추세가 계속 이어질 것 같습니다. 모두 산드로님 덕분이지요.)

(나: 자꾸 그러시면 제가 앞으로 편하게 못 대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여쭤볼 게 있어서 이렇게 귓말 드렸습니다.)

(지옥불: 네, 말씀하시지요 산드로님.)

칭찬은 언제 들어도 늘 낯간지러웠기에 서둘러 화제를 전환했다.

(나: 피닉스가 조만간 제국이 걸어온 전쟁에 항복하실 거라는 말이 돌던데, 정말이신지 여쭤보려고요.)

(지옥불: 흠... 말씀드렸다시피 접경에 있는 성 3개 중에서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한데 하필 로젠타스 성을 포기하라기에 싸워 봤던 것이지요. 제국군의 숫자로 봤을 때 보름 후의 공성전 도중 습격해 온다면 그 피해를 가늠할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조만간 지웰 성을 대신 포기하며 제국에 항복하려고 생각 중이었습니다.)

(나: 그렇군요. 혹시 죄송하지만... 항복하시려면 며칠만 미뤄 주실 수 있겠습니까? 공성전 전까지 세금도 더 걷으시고 전용 던전도 이용하는 게 더 나은 편이기도 하시잖아요?)

(지옥불: 그 정도야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해드릴 수 있지요. 한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나 : 아니요, 지금 막 도전해 볼 게 생겼거든요. 만약 예상대로 된다면..... 지옥불님께도 꼭 바로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 * *

“이게 정말 통할까? 된다면 정말 장난 아닐 거 같긴 한데 말이지.”

“그거야 세라자드가 어떻게 구현해 놨느냐에 달린 거겠죠? 하지만 지금까지의 제 촉으로 봤을 때, 이번 건도 적중할 가능성이 아주 높아요. 설정상, 이것만 적용이 안 되도록 따로 막아놓았을 이유가 전혀 없거든요!”

사령관이었던 NPC, 카르 테미트 백작.

원래는 죽지 않고 도망갔을 놈을, 포탈에 들어가는 그 짧은 시간을 틈타 무한 경직과 폭딜로 죽일 수 있었다.

물론 내 순발력과 판단이 좋았던 것도 있지만, 이런 사소한 것만 봐도 애초에 타연이 어떤 모토로 만들어진 게임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바로 유저의 자유도를 최대한 보장해 주는 게임!

만약 다른 게임이었다면, 사령관의 피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는 순간 무적 상태로 돌입하거나 순간이동하는 식으로 절대 죽지 않도록 세팅해뒀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게임은 스토리상 도망가도록 설정해 놓은 놈도, 경우에 따라서는 잡아 죽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그러니 내 예상 또한 충분히 현실성 있어 보였다.

“만약 네 말대로만 된다면, 우리 길드원 전원이 또 한 번 급성장할 기회가 되겠네.”

“맞아. 거기다 이건 아마 통하더라도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어. 그러니 향후에는 패치가 될 수도 있겠지. 그러니 그렇게 되기 전에 전원 다 바싹 몰아서 업그레이드해놔야 해. 버그만 악용한 게 아니라면, 일루전이 유저가 이미 획득한 걸 회수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자! 뭐든지 간에 통했을 때의 문제니까 이제 집중하자. 곧 도착이다!”

축빙 형님의 말씀대로 조금씩 제국의 수도 오스타그가 보이기 시작했다.

도시를 감싸고 있는 수십 km의 거대한 외성벽.

그 안을 절반 가까이 채우고 있는, 장엄할 정도로 아름다운 황궁.

그 풍경을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것은 타연 내에서도 보기 힘든 장관 중의 장관이었다.

공간이동술사로 오면 돈은 좀 들지만 금방 올 수 있는 곳을, 훼라리와 와순이에 나눠 타서 굳이 날아온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저 거대한 도시를 지키는 NPC 병사들 모두가 지금은 선공 몹이 된 거나 마찬가지인 상태.

그 때문에 제국의 외곽에서부터 직접 이동해 올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도시와 연결된 정문으로 가봤자 경비병들밖에 없어요. 그러니 바로 황궁 안까지 다이렉트로 날아가겠습니다!”

“그래!”

“넵! 뒤따라 가겠습니다 형님!”

그렇게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다른 성들에 들어가듯 황궁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과연 제국은 제국이었다.

다른 성들과 달리 황궁을 둘러싼 성벽 곳곳에서 무엇인가 하나둘씩 떠오르더니, 우리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라스트챤스: 그리폰 라이덥니다! 페가수스도 몇 마리 보여요!]

[산드로: 나도 봤다. 따돌릴 수도 있겠지만 일단 어그로가 끌린 김에 한번 잡아보겠습니다!]

[축복받은무빙: 알겠다!]

그동안 레벨업을 많이 달성하고 와순이까지 타게 된 라챤이는 무시무시한 원딜러, 그야말로 날아다니는 ‘폭격기’ 그 자체로 성장해 있었다.

특히 공격력을 올려주는 불굴의 용맹함 효과는 드라코닉 보우와 굉장한 시너지를 발휘하는 꿀 조합을 자랑했다.

특별한 옵션은 붙지 않았지만, 그걸 만회라도 하겠다는 듯이 무지막지한 공격력이 책정된 활이었기 때문이다.

즉 내가 신검을 휘둘렀을 때 느꼈던 어마어마한 공격력에 크게 꿀리지 않는, 옵션 좀 부족한 디바인급 활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라챤이의 화살 한 발 한 발은, 과장 좀 보태자면 거의 대포알 수준이었다.

픽, 픽, 픽, 픽!

“커헉!”

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멀찌감치 떨어진 거리에서 쏘아진 화살이 몇 대 박히는가 싶더니만, 날아오던 그리폰 라이더 하나가 그대로 고꾸라졌다.

“오! 정말 잡혀요! 경험치도 오르는데요?”

“애초에 잡을 수 있는 놈들이니깐, 지들도 알아서 이렇게 어그로 끌려서 다가온 거겠지!”

현중이의 말마따나 성의 병력, 그것도 이런 그리폰이나 페가수스 라이더 같은 특수 비행 유닛들이 먼저 다가온 것은 어느 성에서도 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공성전 때는 물론, 그동안 훼라리로 이곳저곳의 성을 날아다녔어도 처음 겪어보는 케이스.

확실히 이 국가 간 ‘전쟁 상태’라는 것은 타연에서 최초로 등장한 만큼, 여러모로 연구해볼 구석이 많아 보였다.

[매직 미사일!]

[신벌의 망치!]

[파이어 볼!], [파이어 볼!]

각자 무기 던지기나 화살 공격, 원거리 스킬들을 쏟아내며 날아오는 제국군들을 공격했다.

“근데 이 자식들 생긴 거 답지 않게 약하지 않아?”

“그러네요?”

한데 생각보다 싱겁게 잡아낼 수 있었다.

항상 농담 따먹기나 하고 다녀서 그렇지, 지금 우리 길드원들은 장비와 스펙은 한 달 전과 비교하면 2배 이상 강해진 상태.

즉, 전원이 랭커급과 맞먹는 최강의 파티로 성장했기 때문이었다.

“이 자식들아 또 먹어라, 파이어 볼! 파이어 볼!”

특히 특별 스킬로 ‘이중 영창’을 선택한 축볼 누님의 화력이 유달리 돋보였다.

한번에 두 개의 파이어볼을 차징한 뒤 동시에 쏘는 모습은, 아이디 그대로 파볼의 화신이 강림한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멋지다 버닝스타! 하긴 이런 길드원들이 있으니 이렇게 믿고 쳐들어 가보는 것이지만 말야.’

내가 아무리 똘끼가 충만하다곤 해도, 혼자였다면 이 오스타그 황궁에 쳐들어올 생각 따위는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타연 최고 수준의 든든한 실력을 갖춘 우리 길드원들.

그리고 내 말이라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단 따라와 주는 맹목적인 신뢰가 있었기에, 이런 무모한 도전도 계속 시도해 볼 수 있었다.

공성전, 던전 스틸, 드래곤 레이드 등등.

불가능해 보였던 도전들에 전부 다 성공해냈던 것처럼, 이번에도 우리 길드원들과 함께라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업적 업그레이드를 위한 이번 ‘귀족 사냥’이!

그렇게 우리에게 날아온 열기 정도의 그리폰과 페가수스 라이더를 정리하고, 황궁의 성벽 안 한적한 곳에 착륙했다.

“확실히 게임은 게임이네요. 현실에서 이렇게 쳐들어왔으면 경보 뜨고 엄청 난리 나서 우르르 몰려왔을 텐데, 고작 어그로 끌린 애들만 잡고 땡이라니요.”

“차근차근 어그로만 조심하면서 이동할 수 있다면, 인던을 조금씩 클리어하는 것하고 별반 차이가 없겠는데?”

가장 우려했던, 황궁의 모든 병력이 몰려오는 일은 다행히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축볼 형님의 말처럼, 장소만 황궁일 뿐이지 거대한 던전을 레이드하는 것과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몇 명 쳐들어왔다고 그곳에 전 병력이 몰려오는 것은, 오히려 주요 건물과 인물들을 보호하는 데 더욱 취약한 대처일 수도 있었다.

황궁이니만큼, 제국의 황제도 이 안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을 테니 말이다.

“은신을 못 보는 NPC 병사들도 있으니 위험하면 은신 망토를 꼭 활성화하고요, 정말 위급하면 무조건 각자의 생존에만 신경 쓰세요.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타이탄 소환이 안 되니깐 극도로 조심해야 합니다.”

“또 그 소리야? 지금부터 우리가 잡을 애들은 그렇게 위험한 놈들이 아니잖아. 그러니 너무 걱정만 하지 말고 얼른 이동하자.”

아무리 7군단의 전력을 직접 싸워보면서 확인해 봤다지만, 제국군의 숨은 저력이나 주 병력이 얼마나 강할지는 아직 예측 불가인 상태.

그러니 이렇게 제국의 본진으로 침투하듯이 잠입한 것은, 사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나의 모토와는 모순된 행동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던가?

남들이 보기엔 위험천만해 보이는 도박들이었을지 몰라도, 내가 세운 모든 위업은 항상 나름의 확신을 갖고 도전했던 것들이었다.

이번 일 또한 그 연장선이었다.

이 오스타그 황궁에 온 것은 황제를 죽이거나 제국의 보물 창고를 턴다거나, 기사단장을 죽이면 타이탄을 드랍하는지 확인해 보려고 온 게 아니다.

그저 길드원들의 ‘귀족 살해자’를 ‘귀족 학살자’로, 그리고 나의 ‘귀족 학살자’가 무슨 업적으로 업그레이드가 되는지 확인해 보고자 온 것이다.

그걸 달성하기 위해선 다수의 귀족 NPC를 죽여야만 했는데, 마침 그에 딱 적합한 장소를 잘 알고 있었다.

왜냐면 우리 길드원 모두는, 얼마 전 그곳에 들린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다 왔네요. 다들 와보신 곳이라 헤맬 필요가 없으니 좋네요.”

그건 바로 눈앞에 있는 이곳, 제국의 원로원(元老院)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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