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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114화 (114/350)

114화 업적 사냥 (3)

황제의 자문단이면서 견제 역할을 수행하는 기구, 원로원.

이곳은 영지는 없지만 나름의 업적을 세운 세습 귀족들로만 구성된 게 특징이었다.

유저로서는 그다지 알 필요가 없는 내용.

하지만 몇몇 퀘스트들과 연관된 NPC들이 이곳에 다수 존재했기에, 고레벨 유저라면 한두 번쯤 이곳을 찾을 일이 있었다.

그 외 몇 가지 특징들이 있지만 우리가 이곳을 찾아온 결정적인 이유는, 이곳의 구성원들 대부분이 나이든 고위 귀족들로만 구성되었기 때문이었다.

-준남작 8명을 죽였어도 1%밖에 오르지 않았던 업적이, 백작을 죽였더니 곧바로 다음 단계로 성장해 버렸어요. 업적의 이름대로 분명히 직책의 고하(高下)보다는 고위 귀족을 잡을수록 더 성장하는 업적일 게 분명해요!

길드원들을 소집하고 내가 밝혔던 계획.

그건 굳이 상대하기 까다로운 제국군을 잡는 대신에, 비전투형 귀족 NPC를 잡자는 것이었다.

이 건물 안 곳곳에는, 최소 남작 이상급의 고위 귀족들이 다수 존재했다.

그러니 이놈들을 모조리 잡아버린다면, 길드원 전부가 순식간에 귀족 살해자 업적을 성장시키고도 남을 게 분명했다.

띠딩!

그런 중요한 건물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순찰과 경계를 서던 정예 기사들이 몰려나왔다.

[덫 설치!]

하지만 이런 밀폐된 공간에서, 그것도 고작해야 백 명도 넘어가지 않는 NPC 기사들을 상대하는 것은 이제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먼저 연막을 터뜨려 녀석들의 시야를 제한시키고, 나와 길드원들이 하나씩 딜을 집중해서 숫자를 줄여나가자 금세 전멸시킬 수 있었다.

“뭐, 뭐야? 황궁 안은 전부 안전지대 아니었어? 근데 웬 싸움?”

“헐! 버닝스타 길드가 황궁을 습격해 온 거 같은데? 와! 산드로도 있다, 대박!”

“그게 시스템상 가능해?”

줄곧 오브젝트처럼 건물 안을 기계적으로 순회하던 기사들이 갑자기 이동하자, 이상함을 느낀 몇몇 유저들이 따라 나와 본 모양이었다.

그들은 우리의 전투에 놀라며 아는 척을 해왔다.

어차피 우리의 이번 습격이 비밀로 남을 순 없었기에, 최대한 무시한 채 위층으로 올라갔다.

귀족들은 이 건물의 2층부터 존재하는 각 집무실마다, 한 명씩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버러지만도 못한 놈들이 이곳이 어디라고 기어들어 왔느냐! 썩 꺼지지 못할까!”

첫 번째 집무실의 문을 열자, 그 안에 있던 자작 위(位)를 지닌 귀족 NPC 한 명이 우리를 보자마자 소리쳤다.

“어? 형님? 이놈들 따로 멘트가 있는데요? AI가 그새 학습시킨 건가?”

“몰라. 병사들과 다르게 귀족은 AI가 더 고급인가? 어쨌든 대뜸 욕부터 박는 거 보니깐 제대로 찾아온 거 맞네. 이놈들도 적대 관계라는 뜻이잖아?”

“뭐가 됐든 웃긴 놈들이네. 지들이 먼저 전쟁 걸어서 습격해왔으면서, 우리는 반격하러 오면 안 되냐? 그냥 죽어라 이 내로남불아!”

왠지 감정 이입된 듯한 어투와 함께 현중이가 검을 내리치자, 귀족 NPC는 반격도 못한 채 픽하고 죽어버렸다.

기사나 마법사 같은 전투 NPC가 아닌 터라, HP와 방어력이 무척이나 낮게 세팅된 모양이었다.

[전쟁 관계에 있는 가이라 제국의 백작을 처치하여, 길드 업적치 80,000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비전투형 NPC를 살해하여 제국의 수배자 명단에 오르게 됩니다. 수배자 명단은 전쟁이 종료해도 초기화되지 않습니다.]

“어? 비전투형도 업적치를 주네요? 근데 수배자 명단은 뭐지?”

“뭔가 페널티가 있나 본데? 아무튼 다들 업적 성장했어요? 전 그대로네요.”

“나도 그대로야!”

“저도요!”

이런…….

원로원의 귀족 NPC를 죽일 수 있다는 예측은 맞았지만, 아무래도 이런 식의 편법으로 업적을 성장시킨다는 건 막혀있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던 찰나, 현중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님들, 올랐습니다. 무려 2%나 올랐어요! 아무래도 파티와 상관없이 제가 이놈을 죽여서 그런 것 같은데요?”

빙고.

이번에도 결국, 내 도박이 또 한 번 제대로 들어맞았다.

* * *

그 후 우리에겐 거칠 것이 없었다.

제국의 심장, 무려 황궁 한복판에서 이루어지는 습격치고는 너무도 수월하고 순조로웠기 때문이었다.

“꺄! 이 사람들 NPC들을 다 죽이고 있어요!”

“뭐야? 어떻게 NPC를 공격할 수 있는 거야? 당신들 버그 쓰는 거 아닙니까?”

원로원 건물 안에 있던 유저들은 우리가 무얼 하는지 구경하러 왔다가, 이제는 아예 어딘가에 신고라도 하는지 멈춰 서 있었다.

‘생각보다 금세 몰릴 수도 있겠는걸? 좀만 더 서둘러야겠다!’

[산드로: 안 되겠습니다. 유저들은 미처 신경 쓰지 못했는데 곧 있으면 사람들이 몰려올 수도 있겠어요. 이러다 방송사나 기자들도 냄새 맡고 붙으면 좀 그러니깐, 후딱 흩어져서 해치웁시다!]

[축복받은얼굴: 응? 흩어지자고?]

[산드로: 각자 방마다 뒤지면서 잡고, 5층 꼭대기에 있는 원로원장 방에서 뵙기로 해요!]

[축복받은파볼: 아하~ ㅇㅋㅇㅋ!]

지금 우리가 벌이고 있는 일.

이건 보는 관점에 따라 상당한 노매너 플레이란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다.

물론 전쟁 상태라 공격이 가능해졌기에 이루어진, 적법한 반격이라고 변명할 순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죽이고 있는 NPC들에게 퀘스트를 받았거나 받을 예정인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 모든 게 그저 ‘꼬장’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하나 우리가 그런 후폭풍도 예상하지 못한 채로, 아무 생각도 없이 이곳에 온 건 아니었다.

지금껏 공공의 적으로 찍히지 않도록 그토록 이미지 관리에 애써왔는데, 그걸 한순간에 무너뜨릴지도 모르는 일인데 말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NPC는 마을 같은 안전지대에만 존재했고 유저들은 선공이 불가했다.

그래서 NPC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는 유저들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난 어떻게 되는지 익히 알고 있었다.

예전 내가 칼젠 성을 먹었을 당시.

남아도는 업적치로 호위 기사 시스템을 이것저것 연구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게 있다.

네임드 NPC 기사였던 랜포드나 패트릭을 차출했다가 죽더라도, 금방 부활해서 재소환이 가능했다는 사실을!

그러니 지금 우리가 귀족 NPC들을 죽이더라도, 당장은 아닐지 몰라도 부활할 것이 분명했다.

‘일루전이 그동안 NPC별로 만들어둔 퀘스트들을, 모조리 폐기할 게 아니라면 말이지.’

그래도 굳이 수백, 수천 명의 유저들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었으니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 타이탄 연대기에 존재하는 귀족 NPC 다수를 처치했을 때 주어지는 업적입니다. (공격력 +11%)]

[* 타이탄 연대기에 존재하는 귀족 NPC 다수를 처치했을 때 주어지는 업적입니다. (공격력 +12%)]

틈날 때마다 확인해 보니, 확실히 최소 남작이나 자작급의 귀족을 죽이고 있어서 그런지 업적 효과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었다.

원래였다면 전장에서나, 그것도 직접 지휘관급을 처리해야만 힘겹게 올랐을 업적 효과.

그래서 상당 기간이 소요됐을 업적의 성장이, 너무도 쉽고 빠르게 이루어졌다.

‘이러다 15%가 아닌 20%까지 성장하는 거 아냐? 10%만 해도 어지간한 5성급 스킬 효과인데…… 정말 쩌는 업적을 얻어 버렸는데?’

무기 마스터리 5성을 찍었을 때 주어지는 효과가 공격력과 명중률 10% 추가였다.

물론 나야 치트키 마냥 불굴의 용맹함 효과를 항상 40%씩 적용받고 있어서 체감이 덜했다.

하지만 원래는 얻기 힘든 레전더리 템인 데다가 체력이 25% 미만 시에 발동된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있는 효과였다.

한데 그런 페널티 하나 없이 공격력의 20% 추가 효과를 주는 업적이라니?

상상만 해도 즐거운 보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원로원장은 후작인데…… 도대체 얼마나 오를까나?’

그렇게 부푼 마음으로 원로원장의 집무실에 들어간 순간.

안에서 뜻밖의 유저 두 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소란인가 했는데, 너였구나 산드로.”

“반가워요 산드로 님!”

“카, 카이저 형님?”

마검사 카이저와 힐러 라푼젤.

얼마 전까지 함께 레이드를 진행하며 우리 버닝스타의 임시 길드원이기도 했던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와! 이 넓은 타연 안에서 이렇게 또 마주치네요, 반갑습니다 카이저 님!”

“무빙 님, 파볼 님, 얼굴 님. 다들 반갑습니다.”

“라챤 오빠도 안녕하세요!”

“어, 그래. 반갑다 라푼아. 금방 또 만나게 됐네?”

뒤따라 들어온 길드원들도 엉겁결에 재회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다들 장비가 훨씬 좋아졌군요. 보기 정말 좋습니다.”

“다들 드라코닉 장비들 제작을 완료했거든요. 한 개도 못 챙겨 드려서 죄송합니다, 형님.”

“무슨 그런 소리를? 챙겨준다는 것을 내가 굳이 거절했던 건데. 아무튼 산드로, 보아하니 이곳에 있는 NPC들을 죽이고 있는 것 같더군.”

“네. 현재 전쟁 상태라 NPC들을 죽이는 게 일시적으로 가능해졌더라고요.”

“볼 때마다 재미난 일을 벌이는군. 그래, 무엇 때문이지? 퀘스트? 아니면 드랍 아이템?”

“업적 때문입니다, 카이저 형님. 어쩌다 보니 귀족 NPC를 죽이면 죽일수록 효과가 좋아지는 업적을 받았거든요.”

“뭔지 알 것 같다. 드물게 얻을 수 있는 성장형 업적인가 보군. 경험상 그런 업적은 다른 업적에 비해 특출나게 좋은 효과를 가지고 있더군. 그래, 무슨 상황인지 알겠다. 역시나 이 녀석이 맛나 보여서 여기 온 거겠지?”

확실히 나와 다른 방식으로 게임하고 있긴 하지만, 통합 랭킹 1위를 이어받은 유저다웠다.

스토리와 퀘스트 위주의 플레이를 주로 하는 카이저.

그는 내가 자신의 옆에 NPC, 원로원장 루퍼스를 찾아온 이유를 곧바로 이해한 모습이었다.

<가이라 제국 원로원장 카일 루퍼스 후작 >

얼마 전 우리에게 좋은 스킬과 업적을 주었던 원로원장.

하지만 지금은 적대 관계라서 그런지, 우리를 전혀 알아보지 못한 채 우리가 들어온 순간부터 뭐라고 쉴 새 없이 중얼대고 있었다.

하나 개의치 않고 공격하려는 순간, 카이저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말을 꺼냈다.

“산드로. 한데 이놈만큼은 죽이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안 되겠나? 이건 부탁이다.”

“네? 왜 그러시죠?”

“드로 오빠, 사실 저희가 지금 길고 길었던 연계 퀘스트를 끝내가는 중이거든요. 이제 한 가지만 더 클리어하면 얘가 저희를 황제와 연계되는 퀘스트를 주기로 했어요. 그러니 얘만큼은 어떻게 안 될까요? 혹은 나중에 잡으시면 안 돼요?”

어쩐지 이곳에서 만난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이 두 사람은 원로원장으로부터 퀘스트를 받아 진행 중이던 모양이었다.

그러다 정말 우연히도, 우리와 동선이 겹친 듯싶었다.

“어차피 죽여도 곧 살아날 놈 같아 보이긴 하지만…… 괜히 저희 때문에 두 분이 피해를 보시면 안 되겠죠? 그런 사정이 있다면 당연히 포기하겠습니다. 운이 좋네요, 이 자식. 이 큰 건물에서 자기 혼자만 살아남다니. 흐흐!”

“그래도 혼자만 후작인데 아깝네! 우리야 전부 다 귀족 학살자로 업그레이드됐지만, 드로 너는 업그레이드 못 했을 거 아냐?”

“괜찮아. 아직 여유가 있는 것 같으니 다른 곳을 좀 더 찾아보지 뭐.”

확실히 비전투형 고위 귀족 NPC가 몰려있던 곳이라 그런지, 짧은 시간 만에 길드원들 전부 다 귀족 학살자로 업적을 성장시켰다.

나 또한 업적 효과를 13%까지 성장시켰기에, 성과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럼 어디로 가지? 황족들이 사는 궁전 안쪽은 경비가 너무 삼엄할 테고, 그렇다고 기사단장이나 군단장들이 있는 병영 쪽은 더 말이 안 되는데…….’

퀘스트를 그리 즐겨하지 않는 편인지라, 오스타그 황궁 어느 곳이 좋을지 고민하던 찰나였다.

카이저가 내게 말을 건네왔다.

“귀족 NPC만 잡으면 되는 건가? 그럼 이 원로원장이 후작이니, 내가 비슷한 급이 있는 곳을 알려주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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