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마탑주 (2)
[매직 미사일!]
하지만 나 또한 마법 공격 수단이 있었다.
서둘러 매직 미사일을 날려 경직을 유도하며, 빙결이 풀리자마자 녀석에게 다가가 연속 베기를 시전했다.
“블링크!”
하지만 허공을 가로지르는 2자루의 검.
녀석은 내 후방 쪽으로 블링크를 써서 피해버린 것도 모자라, 곧바로 내가 있던 자리에 원형의 벽을 만들어 나를 가둬버렸다.
고속 캐스팅으로 완성시킨 아이스 월(ice wall)이었다.
잠시 당황할 법도 했지만, 난 그대로 대도부츠를 활용해 아이스 벽을 타고 올라가 녀석을 향해 점프했다.
그렇게 이번에야말로 내 검이 녀석에게 닿으려는 순간, 눈앞에 무언가가 나타나 내 공격을 대신 맞아주었다.
녀석이 나를 가두자마자 서먼 몬스터를 캐스팅해서 소환한, 거대한 싸이클롭스였다.
[마나 쉴드가 2,112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
[마나 쉴드가 1,889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
쿵, 쿵!
무시 못 할 데미지가 들어왔지만, 당장 몸빵이 센 이 싸이클롭스를 잡아낼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몇 대 맞으면서까지 뷔잔드에게 달라붙은 결과, 드디어 녀석에게 첫 공격을 먹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하나 그마저도, 미리 몸에 쳐둔 쉴드를 뚫고 들어간 공격이라 큰 데미지를 입히지는 못한 듯싶었다.
[약점 포착!]
그래도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기에 연속 공격을 먹이기 위해 약점 포착을 쓰는 순간, 갑자기 내 온몸이 그대로 멈춰버렸다.
‘뭐야 이 상태 이상은? 설마 그 마법?’
데미지는 전혀 없지만 가장 긴 전투불능 상태 이상을 자랑하는 스킬.
비록 한 대라도 맞으면 바로 깨버린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하는, ‘슬립’ 마법에 당해 잠들어 버렸다.
[10초간 수면 상태 이상에 빠집니다.]
“드로야! 뭐지? 이 자식 좀 이상한데? 우리가 도와줄까?”
[산드로: 아냐! 아직은 할 만하니깐 계속 혼자서 싸워볼게!]
그러나 괜한 고집을 피우며 승부욕을 불태울 때가 아니었다.
“정화!”
“정화! 어? 둘 다 실패가 떴다고?”
“그럼 어떻게 깨워요! 황궁 안에선 유저끼리 공격도 안 되는데!”
축빙 형님과 라푼젤은 둘 다 타연에서 손에 꼽히는 힐러 유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놈이 건 슬립을 푸는 데는 실패했다.
덕분에 난, 꼬박 10초 동안을 수면 상태로 제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녀석은 길고 길었던 캐스팅을 무사히 끝마치게 되었다.
“헬- 파이어!”
다른 화염 마법과는 색깔부터 다른 푸른 빛 화염!
단일 타겟팅 최강의 공격 마법으로 알려진 ‘헬 파이어’가, 녀석의 스태프 앞에 생성되더니 나를 향해 뿜어져 나왔다.
[마나 쉴드가 72,331의 마법 피해를 흡수합니다.]
콰쾅!
아슬아슬하게 슬립 상태를 벗어나기 직전 직격한 헬파이어.
그 한 방에 나의 MP는, 거의 20%가량이 날아가 버렸다.
‘미, 미친! 데미지가 돌았잖아!’
마나 쉴드와 높은 마법 방어력 덕분에 이 정도였지, 랭커급 탱커였다 할지라도 이 한 방에 죽어버렸을지 모를 말도 안 되는 데미지였다.
하나 진짜 문제는, 이 헬파이어란 마법이 한 방 맞는다고 끝나는 스킬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치명적인 화염 마법에 적중당하여 10초간 상태 이상 ‘화상’에 빠집니다.]
“그림자 분신!”
1초.
단 1틱 만에 MP의 10%가 날아간 것을 본 순간, 본능처럼 그림자 분신을 사용해서 화상 디버프를 없애는 데 성공했다.
모든 버프와 디버프를 전부 삭제해주는 그림자 분신이 아니었더라면, 속수무책으로 죽었을지도 모르는 순간이었다.
아무리 주변에 힐러가 둘이나 있다 하더라도, MP를 채워주는 힐링 스킬은 없었으니 말이다.
“이 자식, 아무리 봐도 뭔가 이상해! 우리도 공격할게! 신성한 가호!”
“신벌의 망치!”
“차징 샷!”
내 업적이 제대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도록 참아오던 길드원들도, 보다 못했는지 마침내 참전했다.
그러나 녀석은 세심한 컨트롤로 길드원들의 원거리 공격 하나하나를 모두 쉴드로 맞추면서, 내게 디버프 마법을 거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이번에는 이동 불가 디버프, ‘속박의 손길’이었다.
“저놈, 아까는 이중 영창을 연속으로 쓰더니 이번엔 저주 마법까지 쓰네? 뭔 마법을 이렇게 다양하게 쓸 수 있어? 아무리 마탑주라도 이게 말이 돼?”
“그것보다 스킬 쓰는 컨트롤 좀 봐! 미친, 지가 무슨 프로게이머야 뭐야?”
유명한 보스 몹들의 AI는 사람 못지않다고 유저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하지만 지금 녀석이 보여주는 움직임과 공격 패턴은, 아무리 봐도 AI치고는 과해 보였다.
‘윽! 저 이펙트는 설마?’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저 녀석이 캐스팅 중인 마법을 당장 피하지 못한다면, 이번엔 정말로 생존이 위태로웠던 것이다.
“마나 드레인!”
녀석은 먼저 이동 불가 상태인 내게 지속해서 마나를 뺏어가는 마나 드레인을 시전해 놓고,
“블리자드!”
나뿐만 아니라 모든 길드원들을 꽁꽁 얼려버리는 절대 궁극의 빙한(氷寒) 마법을 연달아 캐스팅했다.
‘마나가 급격히 빠져나가는 도중에 동결 상태까지 돼버린다면? 이거, 반드시 죽는다!’
처음이었다.
신검을 줍고 지금까지 캐릭을 키우는 동안, 정말 처음으로 절체절명의 순간이 찾아왔다는 자각이 엄습해왔다.
공성전이나 드래곤 레이드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전율을, 고작 NPC 몹 하나를 상대하는 도중에 느껴버렸다.
“볼포 소환!”
하지만 항상 위험한 순간이 닥쳐왔을 때마다 발휘됐던 순발력과 판단력.
그게 이번에도 또 한번 나를 살렸다.
어쩌면 최근 연속된 레이드에 성공하면서 쌓인 경험치가, 무의식중에 도움을 줬는지도 몰랐다.
여하튼 마탑주를 중심으로 회오리치며 번져오던 얼음 폭풍은, 다행히도 아슬아슬하게 내 바로 코앞에 소환된 거대한 아이언 골렘에 막혀버렸다.
볼포의 표면 위로 강화 마법진의 문양이 환하게 빛나며 마법을 막아주길 몇 초.
결국 내 발을 붙잡고 있던 속박의 손길도 시간이 다 됐는지 스르륵 사라졌다.
[마나 쉴드가 2,280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1
[마나 쉴드가 2,071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
……………………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나를 공격 중이던 싸이클롭스.
이런 사소한 로스 데미지도 이젠 무시 못 할 만큼 전투가 치열해졌기에, 난 일단 가진 공격 스킬들을 있는 대로 쏟아부어 녀석부터 죽여버렸다.
그리고 블리자드가 끝나는 타이밍에 맞춰, 람보를 소환했다.
“아올!”
순식간에 눈앞에 튀어나온 내 거대한 애견.
녀석의 등 위에 올라타자마자 마탑주를 향해 뛰어가도록 지시했다.
펑! 펑! 펑! 펑!
그런 우리를 저지하기 위해 수십 개의 매직 미사일이 또 한 번 날아왔지만, 람보의 은빛 갈기 스킬을 활성화시켜 반 이상을 반사해 버렸다.
드득! 드득!
그래도 매직 미사일 특유의 짧은 경직은 피할 수 없었지만, 어떻게든 견뎌내며 녀석에게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힘겹게 다가간 람보가 앞발 공격을 휘두른 지 몇 대, 결국 쿨 타임이 도는 이동 스킬이 없었는지 직접 몸을 움직여 회피하던 마탑주가 한 대를 허용했다.
그런데 정말 운이 좋게도, 그 한 방에 빙결이 걸려버렸다.
[은밀한 일격!]
[연속 베기!]
녀석이 빙결 상태로 느려진 모습을 본 나는, 주저 없이 람보의 등 위에서 뛰어내려 평캔 공격을 섞어가며 공격했다.
그 순간 진작부터 천상의 방패를 활용해 블리자드를 뚫고 다가오던 현중이가, 마침내 뷔잔드에게 아껴뒀던 스킬을 사용했다.
확정 스턴을 유발하는 상태 이상기, 방패 휘두르기였다.
“스턴 걸렸습니다! 전부 극딜 모드요!”
워낙에 마법 방어력이 높은 녀석으로 보여, 일부러 연계 스턴 덫이라든지 메즈기 따위는 시도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람보의 연속된 공격으로 인한 빙결 때문에, 녀석의 무빙과 마법 캐스팅이 매우 느려져서 상대할 만 해졌다.
고수 간의 전투는 스킬 공방에 대한 이해와 수 싸움, 그리고 타이밍을 뺏는 것이 가장 중요한 법.
그런데 가뜩이나 힘든 다대일 전투에서 갑자기 들어온 30%의 감소 효과는, 녀석에게 넉백만큼이나 치명적이었다.
“크악!”
[전쟁 관계에 있는 가이라 제국의 후작을 처치하여, 길드 업적치 480,000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업적 ‘귀족 학살자’가 조건을 충족하여, ‘귀족 처단자’로 진화했습니다.]
다수의 공격이 적중되기 시작하자마자 녀석의 자랑이던 빠른 캐스팅도 툭툭 끊기더니, 결국 별다른 멘트도 없이 죽어 버렸다.
HP가 다소 많기는 했지만 보스 몹까지는 아니었던 탓에, 우리 길드원들의 어마어마한 공격력을 오래 버티지는 못했던 것이다.
‘보는 눈이 많아 일부러 스킬 가속과 급소 공격은 봉인해두고 싸웠는데…… 하마터면 진짜로 죽을 뻔했다. 정말 처음 보는 패턴의 몹이었어.’
구경중인 유저들도 많던 이곳에서 신검을 드랍할 뻔했다니.
생각만 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여러모로 정말 대단한 상대였다.
내 자랑이던 높은 마법 방어력 또한, 녀석이 워낙 고레벨 마법사인지라 단 한 번의 저항도 뜨질 않아 위험한 순간도 유독 많이 발생했다.
그래도 어쨌든 결국 잡는 것에는 성공했고, 원하던 대로 귀족 처단자라는 S급 업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데 성공했다.
전장에서 싸운 게 아니라 그런지, 이곳의 마법사들이 난이도에 비해 업적치도 조금 낮았고 하나같이 아이템을 전혀 드랍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워낙 많이 죽였기에 업적치가 제법 쏠쏠히 쌓여, 업적 외 보상이 전혀 없지만은 않았다.
“와! 진짜 뷔잔드를 죽였어!”
“카하하! 이러다 산드로가 제국 황제까지 죽이는 거 아냐? 황제를 죽이면 황제가 되려나?”
“근데 뷔잔드 엄청 잘 싸우더라? 난 중간에 천하의 산드로가 죽는 거 아닌가 걱정했다니까?”
“산드로가 설마 이런 데서 죽겠냐? 그냥 살살한 거겠지. 뭐가 됐든 이런 명경기를 직관하다니 개이득이었다. 오늘따라 왠지 일찍 접속하고 싶더라!”
주변을 둘러싼 유저들은 전투가 끝나자마자 언제 조용했냐는 듯이 소란스러워졌다.
그에 반해 이 마탑 부근은 여전히 제국군 하나 없이 조용했다.
아무리 봐도 황궁 안은, 적군의 침략에 대한 대응 콘텐츠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인 게 확실해 보였다.
[산드로: 여러분, 저 업적 업그레이드했습니다. 일단 처음에 세운 목적은 전부 달성한 것 같으니, 유저들이 더 몰리기 전에 귀환부터 할까요?]
[축복받은무빙: 그래. 다 같이 동시에 귀환 주문서 사용하자! 지금!]
“카이저 님 그리고 라푼젤 님,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일단 저희는 전쟁 상태라 먼저 귀환하겠습니다.”
“그래.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보는 눈이 많으니 그건 귓말로 하마.”
“네?”
10초간의 귀환 주문서 사용 시간.
주문서를 터치하고 이곳에 남아있는 카이저와 라푼젤에게 인사를 건넸는데, 카이저가 의미심장한 말을 전해왔다.
그리고 이내 등록해둔 휴포드 산악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그로부터 충격적인 내용의 귓속말이 들어왔다.
(카이저: 산드로, 방금 네가 상대했던 마탑주 뷔잔드는 분명 NPC가 아니었다.)
(나: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분명히 NPC라서 저희가 잡고 업적치까지도 먹었는데요?)
(카이저: 전에 나도 한번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평범한 NPC를 상대하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놈 안으로 다른 사람이 들어가기라도 한 것처럼 돌변해 버렸었지. 상당히 위험했던 순간이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나: 네? 그게 정말이에요?)
생각보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끝이나 안심했던 가슴이 다시 한번 철렁였다.
애써 외면하고 싶었지만 이쯤 되면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을, 마침내 내가 알게 된 것 같아서였다.
AI치고는 뛰어났던 컨트롤.
그건 다시 말하면, 내가 상대했던 게 AI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카이저: 그 후 지금까지, 몇십 번이나 생각해 보았다. 한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범인은 운영자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