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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123화 (123/350)

123화 투 트랙 (1)

컥! 컥!

끊임없이 이어지는 연속 경직으로 인해, 녀석은 단 한 발자국도 떼지 못했다.

“으으윽! 이이게에 무어어야아!”

신검을 처음 줍던 순간.

그날 이후 종종 이런 경험이 몇 번 있었다.

마치 시간이 느려진 것 같이, 사고(思考)가 급가속된 상태에 빠져버린!

‘칠, 팔! 다시 또, 하나!’

[급소 공격!]

0.5초가 끝나는 정확한 타이밍.

일부러 내 원래 공속보다 더 느리게 휘두른 8번째 공격이 들어간 순간!

다시 한번 급소 공격을 재시전했다.

이번이 3번째 급소 공격이었다.

“쉬이일 드으!”

“그으레에이트어 히-일!”

펑! 펑!

둘러싼 길드원들이 허수아비가 아닌, 정예 중의 정예 멤버였기에 쉴드를 비롯한 힐링 스킬이 잊지 않고 들어왔다.

하지만 제대로 들어오지 못하는 이유.

그건 간만에 모습을 드러낸 레벤다스의 활약이, 미치도록 눈부셨기 때문이었다.

“다아 주욱 거어 라아앗!”

쾅! 콰앙!

어른 키 2배도 넘을 만큼 거대한 방패와 육중한 두 다리가, 우리 둘의 곁을 끊임없이 스쳐 갔다.

그리고 그때마다 묵직한 타격음과 블로킹 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졌다.

‘죽어! 죽어! 이번만큼은 좀 제발 죽어 줘라, 이 자식아!!’

“크억! 크억!”

다시 시전된 4번째 급소 공격.

그러자 시야 한켠에서 뭉텅이로 깎여나가는 MP 칸이 보였다.

풀 버프로 공격력을 최대한 뻥튀기 시킨 뒤 벌써 25대째 공격.

아무리 랭커라 해도 다른 놈들이었으면 진작 죽었을 데미지를, 다리우스는 여태 버텨내고 있었다.

‘지옥불 님으로부터 받은 마신검 정보에는, 방어 옵션 따윈 없었어…….’

축볼 누님과 라챤이의 원거리 공격도, 경직 상태라 회피 없이 들어박히고 있었다.

그러니 아무리 풀 강화 레전더리 방어구에 강력한 업적들을 다수 보유했다 치더라도 이상했다.

그런 의문이 드는 순간.

난 녀석이 이토록 오래 버틸 수 있었던 이유를 번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뭐야! 영혼 연결에 걸린 상태였다고?’

무아지경으로 공격하는 데만 정신 팔려 몰랐는데, 녀석이 피격 시마다 그 부위가 조금씩 일렁이고 있었다.

이건 분명 최근 축빙 형님이 배운 히든 스킬.

‘영혼 연결’ 특유의 이펙트였다.

“누가 이 자식한테 영혼 연결을 걸었다!”

집중이 깨지자 시간이 다시 정상으로 흘러갔다.

난 일단 다급히 소리치며 주변부터 둘러봤다.

영혼 연결도 스킬인지라, 등급이 올라갈수록 당연히 쿨타임 감소와 시전 범위가 늘어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유효거리가 짧은 스킬.

그래서 보일 듯 말듯 두 사람을 연결하고 있는 아지랑이 같은 흰 선이, 누구에게 연결되어 있는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일도양단이다! 축굴아, 일도양단!!”

항상 그렇게나 다리우스에게 구박당하며 지내더니, 이럴 땐 충신이 따로 없었다.

애초에 날 잡기 위한 함정이었던 터라, 여기 모인 대부분은 딜러.

그래서 고작해야 가까이 있던 성기사의 힐이나 조금 들어왔는데, 사실 그 정도로는 내 무지막지한 데미지를 상쇄시키기에 한참 모자랐다.

허나 다리우스가 가져가야 할 피해의 50%가 딴 곳으로 새고 있었다면 얘긴 달랐다.

쉬익! 쾅!

빠르게 상황 파악을 마친 현중이가, 주변 진형을 흐트러뜨리는 대신 일도양단으로 타겟을 바꿨다.

영혼 연결 상태가 되면, 반대로 일도양단이 입는 데미지의 50%도 다리우스가 입게 된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스펙이 딸리는 일도양단에게 데미지를 입히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쾅! 쾅!

멀리서 원거리 공격을 더해주던 축볼 누님과 라챤이의 공격도, 방향을 바꿔 일도양단을 향해 날아갔다.

[급소 공격!]

다시 시작된 5번째 급소 공격.

이제는 데이네스를 소환하는 걸 포기라도 한 듯, 다리우스는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이제는 놈의 얼굴에도 뭐 이딴 자식이 다 있냐는 듯 황당하다는 표정만이 가득했다.

‘확실하지 않았다면 이곳까지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 새끼야!’

녀석은 진작 차징, 자버프 따위를 쓰려다 경직 효과에 캔슬당했다.

간간이 물약 먹는 효과만이 번쩍였지만, 들어오는 데미지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할 게 뻔했다.

그러니 이제 그만 이대로 죽어주는 것이, 함정을 파다 오히려 역함정에 빠진 녀석에게 합당한 최후!

하지만 변수가 생겼다.

[마나 쉴드가 912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

[마나 쉴드가 1,239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

……………………

‘이런 제길!’

현중이의 레벤다스가 일도양단에게 잠시 집중한 순간을 틈타, 잠시 이리저리 흩어졌던 태성 길드원들이 정신을 차린 것이었다.

“일점사 해!”

“산드로만 죽이면 다 끝난다!”

다리우스를 무한 경직 상태로 빠트려, 타이탄을 소환하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작전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하지만 여기엔, 4초에 8대밖에 공격하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했다.

죽이는 데 제법 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어떻게든 레벤다스가 시간을 벌어줄 것을 믿고 시작된 이번 작전.

한데 일도양단이 전부 망쳐버렸다.

60%, 55%, 50%!

갑자기 가중된 공격에 내 MP는 순식간에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안 돼! 이대론 절대 포기 못 해! 누가 먼저 죽는지 끝까지 가보자!!’

여기서 죽으면 무조건 신검이나 용살검, 둘 중 하나를 떨구게 된다.

하지만 다리우스 또한 죽게 되면 무조건 마신검을 드랍할 터!

내게 루이투스 소환이라는 탈출 카드가 남아있는 이상, 아주 조금이라도 먼저 죽이기만 한다면 승리는 나의 몫이었다.

“으악!”

그 순간, 반가운 비명이 들려왔다.

제법 잘 버텨내던 일도양단.

녀석이 죽으며 외친 단말마였다.

‘이제 곧!’

피해 데미지를 반씩 공유하던 일도양단이 죽었다.

그건 다리우스 또한 HP 또한 이젠 거의 바닥이라는 뜻!

때가 됐음을 깨달은 난, 급소 공격을 멈추고 극딜 모드로 전환했다.

[연속 베기!]

[급소 찌르기!]

[회전 베기!]

1초도 안 되는 사이에 쏟아지듯 부어진 즉발 공격 스킬들.

덕분에 내 MP 또한 급속도로 소모되며 마나 쉴드 비활성화 직전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녀석에겐 이 극딜 싸이클을 견뎌낼 체력이 절대 없을 게 분명하니까!

번쩍!

하지만 그건 내 오판이었다.

놈이 죽든 내가 죽든지 간에, 끝까지 급소 공격을 멈추지 않고 끝장을 봤어야 했다.

“뭐, 뭐야!”

놈이 착용 중이던 붉은 망토.

경직에서 잠깐 풀린 그 0.1초 사이에, 갑자기 망토가 밝은 빛을 뿌리며 녀석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는 마치 붉은 공처럼 변해 녀석을 철통같이 보호했다.

“씨앙! 뭔데!”

쾅! 쾅!

곧바로 검을 휘둘러봤지만, 놈을 감싼 망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런 개자식! 하마터면 진짜로 죽을 뻔했잖아?”

망토 안에서 녀석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녀석은 온통 붉은 천에 뒤덮여 있어, 그림자 밟기로 후방으로 넘어가도 소용없어 보였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약 1초 정도.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스치듯 사라진 찰나가 지났고…… 결국 난 결정을 내렸다.

“루이투스 소환!”

순식간에 높아진 시야.

한쪽에서 방패를 휘두르던 레벤다스는 루이투스의 갑작스런 등장에 당황한 듯 멈춰섰다.

[축복받은얼굴: 뭐야? 잡은 거야?]

[산드로: 실패다. 일단 여기서 뜨자]

길게 대화 나눌 시간이 없었다.

난 곧장 심판의 전진으로 성벽 쪽으로 이동한 뒤, 축볼 누님과 라챤이를 어깨 위에 태우고 성 밖을 향해 달려나갔다.

“드로야! 마지막에 왜 포기한 거야! 거의 다 잡은 거 아니었어?”

“누나. 지금 가장 아쉬운 사람은 드로 형님일 거예요. 그리고 제가 보기에도, 형님의 판단이 옳았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

양쪽 어깨 위에서 둘의 대화가 오갔다.

하지만 난 대답 없이 그저 묵묵히 마을을 향해 전진했다.

‘어쩐지 색깔은 같지만 뭔가 다른 것 같더라니……. 그걸 몰라봐서…….’

분명 대관식과 공성전에서 놈과 마주쳤을 때 봤던 망토와 미세하게 다른 외형이었다.

그걸 간과했지만, 설령 다른 템이라는 걸 미리 알아차렸더라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망토에 천상의 방패 스킬과 비슷한, 무적에 가까운 방어 옵션이 붙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산드로!!”

막 내성문 입구를 통과하려는 순간.

뒤편에서 날 호명하는 고함이 들려왔다.

길드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다리우스였다.

“내가 판 함정에 함정을 파놨었다고? 하하! 기특하다지만, 그래 봤자 결국 실패인 거냐?”

여유가 생긴 모양인지, 특유의 허세가 그새를 못 참고 근질댔던 모양이었다.

“저 개자식! 죽다 살아난 주제에 또 입을 거하게 터네?”

“아, 진짜 뭐야 저거! 하여간 저 주둥이를 확!”

라챤이와 축볼 누님이 나를 대신해 화를 내주었다.

무슨 소리를 하나 싶어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지만, 들을 필요도 없는 소리만 계속 지껄여댔다.

“넌 날 절대로 못 죽여! 오늘 실패했으니까 앞으로는 더더욱! 이 건방진 새끼, 오늘 내 집에서 날뛰었던 대가는 앞으로 톡톡히 치르게 해주마!”

대꾸해줘봤자 시간 낭비.

난 그저 루이투스의 거대한 주먹을 들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주는 것을 끝으로, 문을 나섰다.

* * *

“아! 진짜 아까워요! 거기서 영혼 연결이 나왔을 줄은!!”

“…….”

“그래도 거의 잡을 뻔하지 않았어요? 그니까 다음번엔 꼭 잡을 수 있겠죠?”

“…….”

함께 모인 여관방.

라챤이가 분위기를 띄우려고 노력해봤지만, 다들 침울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다들 고생했다. 라챤이 말대로 거의 다 잡은 걸 놓쳐서, 무척 아쉽긴 하다만…….”

“죄송합니다 축빙 형님. 제가 마지막에 방심한 탓에…….”

“네가 뭘? 너야말로 이 작전을 만들고 가장 위험한 곳에서 고생했는데. 드로야, 네 덕에 정말 오늘 다리우스를 잡는 줄 알고, 엄청 가슴 떨렸다. 고맙다. 그리고 수고했어!”

“그래 드로야. 다음에 또 기회가 오겠지.”

축빙 형님과 축볼 누님의 위로가 이어졌지만, 여기서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번처럼 놈이 방심했던 탓에 죽을 뻔한 순간은, 두 번 다시 찾아오기 힘든 절호의 찬스였다는 걸.

놈의 스펙과 템빨, 그리고 무시무시한 업적들은 물론 대단하고 훌륭했다.

하지만 우리를 가장 힘들게 방해한 것은, 그따위 것들이 아니었다.

바로 녀석의 부하들.

즉, ‘태성 길드’ 그 자체였다.

티에스국의 국왕이란 자리.

그동안 간과하고 있었지만, 그건 녀석이 타연에서 이룩한 모든 것들 중에 가장 대단한 스펙이었다.

일사불란하게 녀석의 뜻대로 움직이는 수백 명의 정예 멤버들.

위기에 빠진 순간, 마신검을 탐내 녀석을 배신하지 않고 오히려 몸 바쳐 녀석을 구하려던 충성심.

그걸 전부 뚫고 녀석을 죽인다는 건, 죽음이 꽤 쉽게 이루어지는 타연임에도 불구하고 가히 불가능에 가깝다고 느껴질 난이도였다.

“자자, 다들 너무 침울해 있진 마세요! 그래도 소득은 있었으니까요!”

“응? 축굴아, 그게 무슨 소리야?”

“다리우스는 못 잡았지만, 저희가 일도양단은 죽이지 않았습니까? 근데 하필 막타를 라챤이의 화살이 쳐버렸어요!”

“어! 뭐야, 그럼 너 설마?”

“네 네. 머더러 새끼면 머더러답게! 장비 정도는 떨궈줘야 예의겠죠? 흐흐!”

[축복받은얼굴: <+2 봉인된 악마 군단장의 암살검> 다들 이거 옵션 보면서 울분들 좀 푸세요.]

“미친! 장비 드랍도 드랍이지만 또 검이야? 일도양단은 정말 레전설이다. 하하하!”

“뭐, 뭐야? 근데 이거 스펙이 봉인된 거 맞아요? 옵션도 처음 보는 완전 좋은 게 붙어있는데요?”

길드원들의 다양한 반응만큼 여러 가지 의미로 놀라운 일이었다.

한데 난 옵션도 옵션이었지만, 정작 다른 곳에 더 눈길이 갔다.

<+2 봉인된 악마 군단장의 암살검(레전더리, 한 손 무기)>

* 공격력: 720(+144)

* 근력 +50(+10), 민첩 +100(+20)

* 소형 몬스터에게 물리 데미지 +360(+72)

* 현재 봉인 상태(!)

* 타격 시 5%의 확률로 ‘회복 감소’ 발동

- 회복 감소: 상처를 헤집어 5초간 모든 회복 효과를 50% 감소시킵니다.

* 모종의 이유로 힘이 봉인된, 마왕군 군단장이 쓰던 명검입니다.

* “천운이 닿아 그들이 사용하던 검을 빼앗았으나, 중간계에서는 미처 그 위력을 다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허나 역사 속의 명검들과 견주어 봐도, 이 검이 부족할 일은 없으리라.” -검은 폭풍 기사단장 테이런 파울-

‘악마는 마계의 몬스터. 그래서 이런 템이 나온 적은…… 아직 한 번도 없었어!’

가장 최근에 활성화된 인던 중 하나, 데스라 사막의 지하 고대 도시.

그곳에서 마계 몹이 나오긴 했지만, 여전히 이와 비슷한 템은 구경도 못 해봤다.

한데 느닷없이 레전더리 무기가 등장했다?

이 사실이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이 템은 퀘스트 보상으로 얻은 특별한 템이거나…….

혹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비밀 사냥터에서 드랍된 아이템일 거라는 것!

“다들 잠시만요!”

“응? 드로야, 왜?”

“혹시 템 설명에 적혀있는 테이런 파울이라는 놈. 이 NPC에 관해서 들어보신 분 계세요?”

집단지성의 힘.

항상 게임 스토리 관련은 상당 부분 스킵해온 나였지만, 우리 길드원 중에 스토리에 관해 빠삭한 사람이 한둘쯤은 있을 법했다.

그리고 역시나, 그런 내 기대에 부합하는 인물이 한 명 있었다.

“어? 그 자식 아베르 성에서 퀘스트할 때 들어본 것 같은데? 검은 폭풍 기사단의 초대 단장 이랬던가?”

현중이 이 자식.

정말 어지간히도 타연에 진심인 녀석이라는 걸, 새삼 뒤늦게 깨닫고 있었다.

“그럼 답 나왔네요. 도닥통이 말했던 다리우스의 비밀 사냥터. ‘시공의 틈새’라는 곳은 분명 아베르 성 인근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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