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최고의 도둑 (2)
어떤 게임을 하든, 빠르게 키 포인트를 파악해서 금세 최상위권에 도달했던 경험.
스스로가 게임에 재능 좀 있다고 자부해왔던 내 자신감의 근원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로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유형의 사람들이 존재했다.
어지간한 수준에서는 알 수 없는 천외천(天外天)의 세상.
오직 최상위권에 도달해야지만 만날 수 있는 그 특별한 클래스가.
‘타고난 천재…… 일명 재능러인 유저들!’
일대일 전략 시뮬레이션에서는 말도 안 되는 멀티 태스킹을 자랑했고,
FPS에서는 벽 밖으로 잠깐 고개만 내밀어도 헤드샷이 날아왔다.
트랙의 신규 루트를 연구해 기록을 경신하려 들면 벽을 핥는 인코스로 나를 좌절케 했고,
죽일 수 있을 것 같아서 한타 각을 잡으면 도리어 펜타 킬을 해버렸다.
도전할 의욕조차 들지 않게 만들어버리는, 상위 0.01%에 존재하는 사람들.
가상현실인 타연에서 전직 프로게이머들이 기를 펴지 못하는 걸 볼 때마다 생각해 왔다.
이 게임에 걸맞은 천재 또한, 분명 어딘가엔 존재하고 있을 거라고.
난 오늘에서야 드디어, ‘그들’ 중 하나를 만난 모양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린 거 같긴 하지만…… 랭킹 1위 도둑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믿을 수밖에 없겠네요.”
“네? 그게 뭔 말씀이세요? 제가 거짓말했다는 거예요? 내가 왜요?”
“아, 아닙니다. 저로선 생각도 못 했던 이유라서……. 아무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런 곳에 계실 줄은 몰랐네요.”
그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조금 더 다가가는 순간.
그가 뒷걸음질 치며 외쳤다.
“어허! 다가오지 마시죠? 계속 다가오면 당근 뽑습니다?”
“네?”
그러고 보니 방금 그가 벌인 짓 답게, 아이디는 진작부터 새빨간 상태.
그가 이런 PK를 벌인 지도 근 한 달이 다 돼가니, 누군가 그를 잡고자 했던 시도가 없었을 리 만무했다.
갑작스러운 내 방문과 은신은, 그에게 충분히 오해의 소지를 줄 수 있었다.
“아하! 죄송합니다, 당당 님. 무적살라딘 님 아시죠? 이번에 그분이 저희 길드에 들어오시게 됐는데, 한번 만나 뵙기를 추천하셔서 이렇게 찾아오게 됐습니다.”
“네? 무살 님이 버닝스타에 들어갔어요? 그리고는 저를 추천했다고요? 뭘요?”
“뭐겠습니까, 당연히 길드 가입이죠.”
“에이, 뭐야? 뜬금없이 최강 도둑과 일대일 필드전을 벌이게 생겼나 싶었는데…… 별일 아니었네? 됐습니다. 전 길드 따위는 생각도 없으니까 안녕히 가세요!”
아직 랭커도 아닌데 최강 도둑이라니…….
날 고평가해 준 건 고마웠지만, 그를 이대로 그냥 보내줄 순 없었다.
“잠시만요! 혹시 지금 PK하고 계신 건 업적 때문이신가요? 역시 만인살?”
“어?”
스륵.
은신으로 몸을 감춘 그가 다시 은신을 풀며 나타났다.
내 눈엔 어차피 계속 보이고 있었지만, 어쨌든 그가 조금이나마 관심을 표한 건 다행이었다.
“반응을 보니 알아맞힌 사람이 별로 없었나 보죠?”
“네, 업적 때문이 맞아요. 다들 하나같이 저보고 미쳤냐고 그러던데, 님은 좀 다르군요? 역시 최단 시간 만에 최강 도둑이 됐던 거엔, 이유가 있다 이건가요?”
“근데 왜 자꾸 저보고 최강이니 최고니 하시는 거세요? 정작 본인이 도둑 랭킹 1위잖아요.”
“컨이나 실력으로 최강을 가리면 아마 제가 맞긴 할 거예요. 근데 현실과 달리 게임 속에서는 승패가 명확하잖아요? 혼자 수백 번 시뮬레이션 해 봤지만, 님과 붙으면 백전백패예요. 아무리 레벨 차이가 난다 해도 절대 못 이깁니다. 그러니까 역시 최강은 님이 맞는 거죠.”
“별말씀을요.”
도통 근황을 알 수 없는 다리우스와는 달리, 당당검은 올타에 접속하자마자 그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근 한 달 전부터 데스라 사막 오아시스로 인근에서 무한 PK를 벌이고 있다는 유저.
최근 300레벨대 유저들에게 갑자기 공공의 적으로 등극했을 정도로, 그에게 죽임을 당한 유저의 수는 천 명 단위를 가뿐히 넘어서고 있었다.
올타에 각종 꿀팁을 공유하고, 그간 거대 길드에도 가입한 적 없어 나름 매너 플레이를 해왔던 그.
갑자기 악질 머더러로 돌변한 이유가 화제일 정도로, 그의 근황은 충격적이었다.
“아닌데요? 제가 만인살을 얻으려고 마음먹은 이유에는 님도 포함되어 있는데요? 만약 만인살을 얻게 되면, 그래도 백 번 싸우면 한두 번은 이길 것도 같았거든요.”
“저를요? 아니, 절 언제 봤다고 자꾸 그렇게 말씀하세요?”
제자리에서 허리춤의 당근을 빼 들었다 넣기를 반복하면서, 그가 말했다.
“님은 다리우스에게만 신경 쓰느라 몰랐겠지만, 이미 전 몇 달 전부터 님을 주시하고 있었어요. 처음 타임 어택을 경신하며 타연에 등장했을 때부터요. 그리고 계속 근황이 들려올 때마다 조금씩 확신이 들었죠. 조만간 내가 디바인 템을 얻지 못한다면, 곧 님에게 추월당할 거라는 걸.”
“…….”
“뭐 제 성격을 아실진 모르겠는데, 사실 전 랭커니 명예니 이딴 건 별로 관심 없어요. 돈은 이미 벌 만큼 번 상태고, 얼마든지 더 벌 자신도 있거든요. 제가 관심 있는 건 오직 하나뿐! 근데 님네 길드에 들어오라고요? 절대 절대 싫은걸요?”
역시 무살 형님이 말한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래서 더 욕심이 들었다.
직접 만나보고 나니, 이런 성격의 소유자라면 나중에 뒤통수 맞을 걱정만큼은 덜어도 될 것 같았다.
“그 관심 있다는 하나를 제가 제공해 드린다면요? 이를테면 타이탄 같은?”
“하하! 고작 타이탄으로 절 꼬시려고요? 한데 어쩌죠? 전 이미 타이탄에 대한 분석도 끝내놓은 상태인데요.”
“분석? 그건 또 무슨 뜻이죠?”
“출시된 지 3년이나 지난 후에야 처음 공개돼서, 정말 얻기 힘든 줄로만 알고 있었죠. 한데 근래 국가를 세운 유저들이 뽑아내는 속도를 보니 그렇지도 않던데요? 최근에 님네 길드원 중 한 명도 디바인 템으로 타이탄을 얻었죠? 그럼 타이탄이 드랍되기도 한다는 뜻이잖아요. 무엇보다 타이탄의 정수, 그걸 제가 아직 모르고 있을 줄 알았나요?”
“…….”
이미 타이탄의 정수까지 알고 있었다니…….
그건 이번 제국의 습격 때 우리 버닝스타가 절반 이상을 독식했기에, 존재를 알고 있는 유저조차 극소수에 불과했다.
“딱 6개월 보고 있어요. 아무리 늦어도 그 정도면 자력으로 타이탄을 얻을 수 있을걸요? 근데 굳이 제가 자유를 포기하고 길드란 곳에 얽매이라고요? 내가 왜요?”
“그런데 그 말은 다시 말해, 타이탄을 얻고는 싶으시다는 거 아니세요? 보아하니 공성전이나 레이드를 하실 것도 아닐 텐데, 이유가 뭐죠?”
“그, 그건…….”
“제가 한 번 알아맞혀 보죠. 혹시 당신은 타연의 최고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타연의 콘텐츠를 최초로 경험해보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닌가요? 마치 현실 속 얼리어답터들처럼요.”
“님……. 뭔가 알고서 절 찾아온 거였군요?”
“말씀드렸잖아요. 무적살라딘 님께 추천받고 왔다고요. 랭킹 1위. 사실 그 자리에 있다는 건, 타연을 좋아하는 거로도 1, 2위를 다툰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길드도 없이 랭커인 사람들은, 플레이 방식은 전부 제각각일지 몰라도 뭔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게임은 게임으로 즐기고 싶다던 카이저.
그와 비슷하게도, 당당검 또한 타연 그 자체를 재밌게 즐기고 있는 즐겜 유저 중 하나였다.
다만 그는, 유독 신규 콘텐츠에 빠져드는 성향이 강하다고 전해 들었다.
-카이저 님은 아직 밝혀지지 않거나, 남들이 놓친 콘텐츠를 개척하는 데 집중하는 편이지? 당당검은 미묘하게 좀 달라.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신규 업데이트나 아직 발견하지 못한 곳을 가장 먼저 경험해보고 싶어 하거든. 아마 그런 부분을 건드려본다면, 어쩌면 혹해 할지도 몰라.
무살 형님의 조언.
그게 제대로 먹혀드는 것 같았다.
“아 됐고요! 아무튼 길드 따위에는 관심 없어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싸움질만 하느라 시간 낭비만 하는 족속들. 제가 가장 극혐하는 부류라고요!”
“그러지 마시고 잘 생각해 보세요. 자유롭게 플레이하시다가, 한 번씩 길드 행사에 참여해주신다면 님이 원하는 일에 최대한 협조해 드리겠습니다. 새로운 콘텐츠나 신규 지역 공개? 타연에서 가장 먼저 경험해보도록 만들어 드릴게요.”
“…….”
갑자기 딴 일 제쳐두고 그의 스카우트에 열 올리게 된 이유.
그건 이번 다리우스 킬에는 실패했지만, 엄연히 따져보면 사실 방법은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도닥통이 배신하지만 않았더라면…….
그때 모인 도둑들이 전부 한편이었다면…….
분명 다리우스를 죽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10명의 최상위권 유저보다 1명의 랭커가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
다시 찾아올 ‘그 순간’을 대비해서, 이제부터 난 손수 뛰어난 멤버들을 미리 갖춰 놓을 생각이었다.
“조만간 마계가 업데이트될 거란 사실은 아시죠? 그럼 천계도 함께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신대륙이나 수중 왕국은 어떻고요? 혹시 시공의 틈새라고는 들어보셨나요?”
“시공의 틈새를 알고 계시군요.”
“당당 님도 이미 아시는군요? 물론 저희 버닝스타는 태성과의 전쟁이 최우선이지만, 앞으로는 게임 콘텐츠 공략에도 그만큼 힘써볼 생각입니다. 그러니 이런 미개척 지역도 저희와 함께라면, 누구보다 빨리 경험해보실 수 있을 거예요.”
“태성과의 전쟁이라……. 뭐, 그건 뭐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을 것도 같은데…….”
-랭커들 중에 태성 길드와 악감정이 없는 유저는 단 한 명도 없을걸? 근데 직업군 1위인데 노 길드 상태다? 장담해. 아마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인 게 많아서, 태성이라면 학을 뗄 거다.
저레벨이거나 타연을 깊이 플레이하지 않은 사람들일수록, 태성 길드에게 호감을 느끼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한데 고레벨 유저가 될수록, 거의 무조건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들을 좋게 평가하는 유저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 이렇게 하죠.”
“네?”
“저와 한 번만 붙어 봐요. 그러면 다시 생각해 볼게요.”
“여기서요?”
“저만 머더러인데 지면 누구 좋으라고요? 투기장으로 가서, 제대로 한번 붙어 봐요.”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여하튼 원하는 대로 가까운 도시의 투기장을 찾아가, 일대일 결투장으로 들어갔다.
“이유가 뭐예요? 굳이 저하고 붙어보고 싶은?”
“그냥 제가 생각하는 당신과 실제 당신이 얼마나 비슷한지, 확인해 보고 싶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이제 시작하시죠!”
그와의 레벨 차이는 겨우 6.
이 정도면 레벨 차이에 따른 보정은 거의 없다시피 한 수준이었다.
그가 당근을 꺼내 들어 자버프를 쓰는 것을 보고, 나 또한 자버프를 하나씩 걸었다.
도둑들끼리 결투에서 선 그림자 밟기를 쓰는 건 하수들이나 하는 짓.
그래서 먼저 서로를 향해 달려가는 순간, 그가 갑자기 제자리에 멈추며 스킬을 사용했다.
[덫 설치!]
도둑의 밥줄 스킬, 덫 설치였다.
허나 저렇게 대놓고 사용하면, 아무리 보이지 않는 덫이라 해도 밟으려야 밟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냥 마음 놓고 계속 다가간 순간, 당당검이 자신의 덫을 스스로 밟아 터뜨렸다.
펑!
효과음과 함께 퍼지는 하얀 빛줄기.
‘뭐지? 갑자기 웬 재생 분진?’
도둑을 플레이하는 사람도 잊어먹곤 했지만…… 도둑도 힐링, 그것도 다수에게 적용되는 광역 힐링 스킬이 하나 있었다.
최고의 유틸성을 자랑하는 ‘덫 설치’ 스킬을 이용한!
물론 힐링 수준이 워낙 낮은 도트 회복에 불과해서, 재생 분진의 재료인 ‘터레이안 조개 가루’를 갖고 다니는 도둑은 거의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 힐링 스킬이, 지금의 내게는 상당한 타격을 주는 디버프 스킬로 사용되고 있었다.
‘설마?’
그간 마력 스탯만 찍어온 내 풀 HP는 고작 1만을 조금 넘는 수준.
그걸 딱 25%만 유지하고 있었으니, 단 2, 3백 정도만 회복되더라도 내겐 치명적이었다.
어느덧 내 주요 메인 템이 되어 버린 ‘용맹한 오크 로드의 증표’의 주요 옵션.
불굴의 용맹함 효과가 갑자기 사라졌으니 말이다.
쉭, 연속 베기!
겨우 다가간 끝에 공격을 먹이는 데는 성공했으나, 평소 같은 손맛이 아니었다.
공격력과 공속이 급감한 것은 물론, 그마저도 후속 공격은 피해버렸던 탓이다.
[난도질!]
그는 오히려 연계기가 전혀 겁나지 않는다는 듯, 옆 무빙을 하며 스킬로 맞딜 반격을 해왔다.
과도한 실력차로 인한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유저 간 전투에는 도입하지 않았다는 패링 시스템.
덕분에 일대일 결투는 상대의 딜사이클 계산과 적절한 타이밍에 스킬을 구사하는 것이 승패를 좌우했다.
[마나 쉴드가 2,332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
[마나 쉴드가 2,112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
……………………
순식간에 깎여나가는 MP 수치.
‘윽! 생각보다 아픈데?’
역시 랭킹 1위 도둑다운 막강한 화력!
한 방 한 방이 단검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데미지였다.
[매직 미사일!]
하지만 적의 스킬을 계속 맞고만 있을 이유는 없었다.
즉발 스킬답게 순식간에 튀어나간 5발의 미사일은, 비록 데미지는 하찮더라도 당당검을 연속 경직에 몰아넣으며 시간을 벌어주었다.
난 곧바로 뒷걸음질로 거리를 벌리면서 마나 쉴드를 해제했다.
피슛.
보일 듯 말듯 내 몸을 감싸던 푸른 쉴드가 꺼지듯 사라졌다.
이런 변화를 눈치채지 못할 유저는 숱하게 많았지만, 상대가 그럴 리 없다.
역시나 예상한 대로, 마쉴을 끄자마자 곧장 그림자 밟기를 사용해서 후방으로 이동해왔다.
[약점 포착!]
그리고는 폭딜 모드로 전환하며 두 자루의 당근을 휘둘렀다.
하지만 난 줄곧 아껴뒀던 스킬, 재빠른 몸놀림을 사용하며 지그재그로 뒷걸음질 쳤다.
마나 쉴드의 쿨타임은 10초.
선공했던 당당검은 먼저 재림의 액티브 효과가 떨어졌기에, 거리는 다시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몇 대 맞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게 내 HP를 줄여 다시금 불굴의 용맹함 버프가 적용되어버렸다.
[마나 쉴드!]
이윽고 10초가 지나자, 뒷걸음질 치던 걸 멈추고 오히려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면서 다시금 온몸에 푸른 쉴드를 둘렀다.
쉭! 연속 베기! 쉭! 급소 찌르기!
당당검은 서둘러 당근을 들며 무기 막기와 집중 회피를 시도해봤지만, 그래도 얼마 버티질 못했다.
이 풀버프가 적용된 신검의 공격력은, 다리우스조차도 견디지 못하던 폭딜이었으니 말이다.
“그만 그만! 항복이요!”
결국, 유효타를 몇 대 허용하는가 싶던 당당검이 결투 중지를 요청했다.
“와! 님, 마력 스탯만 찍은 거 맞아요? 뭐가 이렇게 아파요? 버프도 몇 개 적용 안 된 상태로 맞은 것 같은데…… 생각보다 훨씬 더 미친 데미지네요? 제가 모르는 뭔가가 더 있나 보죠?”
“아무래도 공격력이 딸릴 수밖에 없는 테크트리라, 그쪽을 보완하는 데 신경을 많이 쓰긴 했습니다. 그나저나 재생 분진은 뜻밖이네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수라, 순간 많이 당황했습니다.”
“지금 저랑 장난해요? 단테리오의 팔찌와 급소 공격은 사용조차 않으셨으면서 그런 말을 하세요? 암만 신검을 들었다 해도, 제가 우습게 보여요?”
“그러는 님이야말로 뭔가 숨기는 것 같던데요? 아무튼 어떠신가요? 원하시던 대로 결투까지 해드렸으니, 이젠 결정하셨나요?”
도둑 랭킹 1위란 자리는 허투루 차지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하물며 아무런 서포터도 없는 무길드 상태로 한 달간 유저 PK나 하고 있으면서 유지할 수 있는 자리는, 더더욱 아니었다.
분명 아직 알 수 없는, 그만의 비밀과 노하우가 무궁무진할 터.
허나 그걸 전혀 공유해주지 않는다 해도, 그를 영입할 수만 있다면 상관없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가 우리 길드 소속이 됐다는 사실은 많은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건, 우리 길드가 나아갈 다음 행보에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나도 어느새 다른 길드 마스터들처럼 생각하고 있네.’
길드 생활이 어색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적응한 걸 넘어 적극적인 길마가 되어 있다니…….
역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흠……. 정말 귀찮게 안 하실 거죠? 그리고 신규 콘텐츠가 업데이트되면 가장 최우선으로 그것부터 진행할 게 확실하고요?”
“네. 혹시나 제가 약속을 안 지키거나 불만이 생기신다면, 언제든지 떠나셔도 괜찮습니다. 배신만 하지 않으신다면, 뭘 해도 저희가 따로 보복하거나 귀찮게 굴 일은 없을 거예요.”
“풋, 배신이라니…… 크크. 어쨌든 간에…… 가입할게요. 다른 길마들은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사실 님은 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었거든요. 대신 부른다고 전부 참석하거나 그러진 않을 거예요?”
“네? 정말요? 감사합니다 당당 님. 저희 버닝스타에 오신 걸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편의도 얼마든지 봐 드릴게요!”
타고난 재능러이자, 직업군 랭킹 1위.
내가 구상한 향후 버닝스타 길드원의 완성형이나 다름없는 멤버가……
오늘부로 한가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