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127화 (127/350)

127화 랭커 진입 (1)

투 메르타스의 레어 앞.

가트웰 산맥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이곳은, 현재 주인을 잃은 채 비어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그런지 비록 소수에 불과하긴 했지만, 예전과 달리 유저들이 드문드문 이곳을 찾고 있었다.

갑작스러웠던 길드원 스카우트 이후, 내가 찾은 곳은 다시 사냥터였다.

시공의 틈새를 찾기 위한 본격적인 조사에 앞서, 당분간 레벨업에 몰두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라, 아직도 계시네요? 밤새셨어요?”

“오셨어요, 산드로 님? 뵐 때마다 진짜 부럽네요. 전 여기 한 번 오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데…….”

침묵의 숲 최북단.

이곳은 와이번의 둥지를 뚫어야만 도달할 수 있기에, 아무리 그리폰 라이더들이라 하더라도 이속이 느려 여기까지 날아오지는 못했다.

공중 탈것이 있는 그들도 그럴진대, 순전히 두 발로 걸어와야 하는 다른 유저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곳을 손쉽게 오고 갈 수 있는 건, 오직 최강의 비행 몹을 가진 나만의 특권이었다.

“그래도 성공하신 거 아니에요? 인벤토리를 완전 꽉꽉 채워 가시면 쏠쏠하실 텐데요.”

“하하! 그거야 그렇긴 하죠. 덕분에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긴 완전 노다지 중의 노다지거든요! 숙련도는 또 얼마나 잘 오르는지 몰라요!”

그래도 드래곤이 없는 지금처럼 채집 천국인 순간은 없을 터.

채집으로 골드를 버는 유저들에게는 몇십 번이고 목숨을 바쳐 볼 보람은 충분하고도 남았다.

특히 이곳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우리 버닝스타 길드원 중에, 채집 숙련도가 높은 사람이 없어 더욱 그러했다.

어쨌든 이렇게 레어에 오면, 예전과 달리 유저 몇 명 정도는 항상 만나볼 수 있었다.

내 앞에 있는 ‘꿈틀이’란 유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꿈틀이 님.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지금 채집 숙련도 최고신 분이 8성이잖아요? 만약 숙련도가 9성에 이르면 어떻게 될까요?”

“9성이요? 흠…… 아마 모르긴 몰라도, 전설 등급 영약도 채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와! 전설 등급도요?”

“네. 제가 딱 2명뿐인 8성 유저 중 한 분을 알고 있는데, 그분이 전설 등급은 채집 시도조차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전설 채집물은 지역 랜덤으로 일정 시간만 나타났다 사라지니깐, 만약 9성을 찍는다 하더라도 채집에 성공하려면 로또만큼이나 힘들 거예요.”

채집이나 채광, 낚시와 요리 같은 일명 ‘생산’ 스킬들.

이것들은 전투 스킬과 달리 스킬 포인트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고, 어떤 것들이든 제한 없이 자유로이 익힐 수 있었다.

하지만, 숙련도를 올리려면 무조건 일정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만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유저들은 각자 한 가지 생산 스킬을 정한 다음, 그와 관련된 숙련도만 집중해서 올리는 편이었다.

물론 나처럼 전투 위주로 타연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은 이런 것들에 시간을 투자할 여력이 없어서, 사실상 생산 유저들의 주요 고객층으로 전락하곤 했다.

나도 낚시 정도나 3성이었지 나머지는 대부분 숙련도 1성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러나 일반 유저들이 장비를 장만하고 물약값을 마련하는 데는, 역시 생산 스킬만 한 게 또 없었다.

“실례지만 꿈틀이 님은 지금 몇 성이세요?”

“저요? 전 지금 7성 58%예요. 원래 7성 극초반이었는데, 여기서 2주 동안 채집만 했더니 엄청 빨리 올랐네요.”

2주 동안 오직 땅만 보고 채집만 했는데…… 고작 그 정도 오른 게 엄청 빨리 쌓인 거라고?

생산 스킬을 고숙련도까지 쌓은 유저들의 노가다 수준은, 어지간히 노가다에 도가 튼 나로서도 미지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와! 그래도 7성 중반이면 엄청 높은 거 아니에요? 8성도 얼마 전에야 처음 등장했다고 들은 거 같은데…….”

“최초로 8성 찍으신 덴티스트 님 말씀이시죠? 맞아요. 그분도 여기 채집하러 도전하시다가 몇 번 죽고는, 이젠 안 오시는 거 같더라고요. 죽으면 숙련도도 떨어지니까 8성이라면 그러실 만도 하죠.”

“아 그래요? 채집의 세계도 뭔가 복잡하고 오묘하네요.”

이곳 투 메르타스의 레어에서는 만드라고라의 잎사귀, 세계수 줄기 조각, 침묵의 독초 등의 채집물이 생성된다고 들었다.

전부 유니크 등급에 달하는 고급 재료템들.

이건 마치 만 원권 지폐가 땅에 툭툭 떨어져 있는 수준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중 간혹 ‘만드라고라의 뿌리’라는 영약도 캘 수 있었으니, 여긴 젖과 꿀이 넘쳐 흐르는 채집꾼들의 낙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대로 레어가 빈 상태로 이어지고 소수가 독식하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그야말로 인생이 역전될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우리 길드원 중에서, 단 한 명도 이 노다지에 참여하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언제나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 주어지는 법.

이곳의 채집물은 고급 등급인 만큼, 숙련도가 최소 7성 이상인 유저들만이 채집 시도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니 기를 써서 이곳에 오려는 유저들은 생각보다 많진 않았다.

괜히 오려다가 죽으면 레벨다운은 물론이고, 필사적으로 올린 피 같은 숙련도도 함께 떨어질 수 있었으니 말이다.

‘듣다 보니까…… 이거 생각보다 투자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겠는데?’

채집 스킬을 9성까지 찍으면 레전더리급 수준의 채집물도 얻을 수 있다.

물론 생각보다 성공 확률은 낮을 수도 있겠지만,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일.

무엇보다 원래 이런 건 ‘최초’로 9성을 찍는 사람에게 가장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구조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숙련도 때문에 캘 수 없던 채집물들이, 지천에 널려있을 테니 말이다.

“저기 꿈틀이 님…… 혹시 제안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네? 갑자기 무슨……?”

“괜찮으시다면 여기서 9성까지 찍을 수 있도록, 제가 도와 드릴까요? 대신 나중에 9성이 되는 데 성공하시면, 획득하신 희귀 채집물을 제게 우선 판매하는 조건으로요. 어떠세요?”

“억? 정말요? 저야 뭐가 됐든 9성만 빨리 찍을 수 있다면 완전 베스트긴 한데……. 뭘 어떻게 도와주신다는 말씀이세요?”

현재 채집 숙련도가 7성인 사람도 오기 힘든 이곳.

사실상 랭커 수준의 유저들에게만 방문을 허락하는 여기 드래곤 레어까지, 편안하고 안전하게 모실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이곳이 최고긴 하지만, 오는 게 힘들어서 고생이라고 하셨잖아요? 제가 짬 날 때마다 태워다 드릴게요. 제 드레이크로요!”

“와! 대박! 제가 훼라리를 탄다고요?”

“어? 이름도 알고 계시네요?”

“흐흐, 과연 타연 유저 중에 훼라리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요? 아무튼 저야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완전 오케입니다!”

“대신 몬스터 라이딩 스킬 1성 정도는 찍어 주셔야 저도 태워 드릴 수 있습니다. 괜찮으시죠?”

“그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죠! 그럼 혹시 지금 마을에 다녀와도 괜찮을까요? 여기까지 온 게 아까워서, 계속 조금 덜 비싼 건 버리면서 숙련도를 올리고 있었거든요.”

“설마 무게 때문에요? 와! 그 정도셨다면 방금 오긴 했지만, 첫 기념으로 바로 한 번 태워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산드로 님!”

돈이나 다름없는 채집물들을, 숙련도 때문에 버리는 심정은 어땠을까?

그러고 보니 한쪽 구석에 채집물들이 조그맣게 쌓여 있는 모습이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여하튼 꿈틀이는 곧바로 귀환 주문서를 사용해서 돌아갔고, 난 그를 친구 목록에 추가했다.

장사꾼 핑크래빗에 이어, 새롭게 만들게 된 채집꾼 동료였다.

* * *

“크헝!”

쾅!

싸이클롭스의 공격을 스치듯 피해버려, 거대한 나무 몽둥이는 애꿎은 지면만 강타했다.

늘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회피하는 버릇을 들이다 보니, 웬만해선 이제 몬스터와 일대일 상황에서는 이런 평타 공격 따위는 거의 맞지도 않게 되었다.

‘아무리 봐도…… 여기서 사냥할 땐 용살검이 신검보다 더 좋은 것 같다.’

현존하는 모든 무기 중, 옵션의 다양한 유틸성 측면에선 신검을 따라올 무기가 없을 게 분명했다.

허나 특정 상황.

특히 ‘대형 몬스터’를 그저 노가다성으로 ‘사냥’만 하기에는, 내 왼손에 들고 있는 용살검 ‘샤크 투 메르타스’를 넘어설 게 없어 보였다.

기본적으로 대형 몬스터에게는 무기 데미지의 2배가 들어갔고, 동일 대상을 공격할 때마다 추가 데미지가 100%까지 누적됐다.

거기에 비록 장검 한정이지만, 스킬 레벨과 스킬 쿨감 50% 옵션까지 붙어 있었다.

덕분에 어이없게도, 이 검을 차고 난 후부터는 9성으로 변한 연속 베기의 쿨타임이 3.5초로 급감해 버렸다.

마나 과소비만 신경쓰지 않는다면, 3.5초마다 평타 공격력의 거의 3배에 달하는 크리티컬이 펑펑 터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근력과 민첩을 단 한 개도 찍지 않았는데…… 이 정도 DPS가 말이나 되는 거냐? 내 캐릭이지만 진짜 상상을 초월하는 괴물이 돼버렸구나!’

쿵.

방금 마주친 싸이클롭스도 역시 10초를 견디지 못하고 금세 쓰러졌다.

일반 필드에선 유저들에게 거의 준 필드 보스로 군림하는 녀석이, 내겐 그저 흔하디흔한 골렘을 잡는 수준에 불과했다.

하나로도 엄청날 디바인 무기를, 벌써 2자루나 차고 있는 자의 위엄다웠다.

[122골드를 획득했습니다.]

[빛나는 무기 강화석을 획득했습니다.]

“아니, 빛강석이 또 나왔어? 여기 진짜 개쩌는 사냥터구나! 경험치도 미친 듯이 오르고 있는데, 템까지 이 정도라니!”

한창 레이드를 준비 중일 때는 이동만 하느라 잘 몰랐는데, 본격적으로 자리 잡고 사냥을 시작하니 이곳 침묵의 숲이 달라 보였다.

아무리 정예 수준급의 대형 몬스터가 출몰하는 가장 고레벨 지역이라 하더라도, 이곳의 아이템 드랍률이 너무 좋았던 것이다.

다른 곳에선 간혹 나오는 골드를 거의 모든 몹들이 꾸준히 드랍할 뿐만 아니라, 고가의 아이템도 심심찮게 나왔다.

거기에 아직 먹어보진 못했지만, 이곳 몹들은 하나같이 다 유명한 대형 몹이니만큼 종족 고유의 장비 또한 드랍할 것이 분명했다.

과연 카이저.

그가 진작부터 이곳을 주력 사냥터로 점찍은 이유가 충분한 곳이었다.

“그러고 보니 카이저 형님은 이곳을 완전히 떠나신 모양이네. 벌써 사냥한 지 3일째인데 한 번도 마주치질 못하는 걸 보니. 어디 계시려나……? 귓속말 좀 켜시던가…….”

현재 통합 랭킹 1위인 카이저의 레벨은 372.

현재 나와는 7레벨 정도로,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상태였다.

그 말은 아직은 형님도 이곳에서 사냥하는 편이 썩 괜찮을 거란 뜻.

한데 이곳을 전혀 찾지 않는 걸 보니 둘 중 하나였다.

그동안 더 좋아 보이는 사냥터를 발견했든지,

아니면 중요한 퀘스트 등을 진행 중이라 사냥할 시간이 없든지.

‘아마 분명 후자 때문이겠지. 그때 말씀하셨던 제국 황제와 연관된 퀘를 하느라 바쁘신 모양이야.’

제국 황제가 주는 퀘스트라니…….

모르긴 몰라도 타연에서 가장 퀘스트를 깊이 진행한 유저는, 분명 카이저 형님일 것이다.

[마나 쉴드가 2,880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

[마나 쉴드가 상태 이상 ‘넉백’에 저항합니다.]

[상태 이상 ‘침묵’에 저항합니다.]

그새 거대 나무 뒤에서 흉폭한 오우거와 침묵의 비홀더가 나타나 선공해왔다.

그러나 1개 파티 수준으로 사냥해도 위험할 환상의 듀오(duo) 몹이더라도, 내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상대가 미친 데미지 경감률과 사기적인 마법 방어력을 함께 갖춘, 도둑 주제에 어쩌다 타연 최고의 탱커가 돼버린 나였기 때문이다.

“잠시도 쉴 틈을 안 주는구나, 쉴 틈을 안 줘! 물론 나야 좋다만!”

퍽, 연속 베기!, 회전 베기!

곁에서 열심히 마법 공격을 시전하는 비홀더는 무시하고, 흉폭한 오우거부터 말뚝 딜로 후딱 잡아버렸다.

그리고는 닳아버린 MP를, 비홀더를 두들기며 쭉쭉 흡수해 버렸다.

탱커, 딜러, 힐러 조합으로 파티를 꾸려야만 하는 타 유저들이 보게 된다면, 그야말로 기가 찰 노릇.

심지어 이곳에선 카이저조차 힐러를 필요로 했는데, 난 피 타임도 없이 솔플로 무한 사냥을 이어나갔다.

물약을 먹을 일조차 없어, 말 그대로 한번 이곳에 오면 온종일 사냥해도 마을에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아무리 경험치 추가 20%라는 사기적인 S급 업적을 유일하게 가지고 있다 해도, 이런 사냥법이 뒷받침해줬기에 지금과 같은 눈부신 업적을 쌓을 수 있었다.

번쩍!

싸이클롭스, 오우거와 비홀더를 끊임없이 잡던 도중.

한순간 내 몸에서 환한 빛이 솟아올랐다.

‘드디어!’

마침내 366레벨.

며칠 전 도둑 랭킹 10위가 도달한 것과 같은 레벨에 도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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