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128화 (128/350)

128화 랭커 진입 (2)

총 16개의 직업.

크게 탱커, 딜러, 힐러 및 버퍼, 소환 계열 등 4개 직군으로 나누어진 타연의 캐릭터들.

그중 각 직업군 레벨 순위 10위까지 존재하는 총 160명의 유저를, 우리는 흔히 ‘랭커’라고 부른다.

타연 전체 유저의 0.001%에 속하는 유저, 랭커(ranker).

그들은 이 안에서 연예인 못지않은 스타이자 최상위 권력층에 도달해 있는 특권 계층이나 마찬가지였다.

또한 그런 대접이 당연하게 느껴질 만큼, 대중들로부터 그들이 가진 게임 실력을 널리 인정받았다.

“아오! 뻐근해! 오늘 하루도 이렇게 끝!”

온종일 침묵의 숲에서 단 1분도 쉬지 않고 사냥했다.

무한 솔플 사냥이 가진 최고의 장점이자 단점.

이제는 몇 달간 반복해 온지라 일상이 된 지 오래지만, 그래도 항상 로그아웃한 후 하루를 되돌아보면 나 자신도 신기했다.

어떻게 이렇게 열다섯 시간이나 한 가지에 몰두할 수 있는지…….

그리고 지금은 할 수 있는 걸, 예전의 난 왜 할 수 없었는지…….

“동기 부여가 그만큼 중요한 건가? 어쨌거나 캡슐을 바꾼 건 확실히 잘한 결정이었어. 그게 아니었다면 이런 논스탑 사냥은 아마 10시간 정도가 한계였을 거야.”

돈을 벌고 난 후에야 뒤늦게 깨닫게 된 진리.

가성비만 따지던 시절에는 알 수 없었던, 아니 알면서도 외면했던 것.

확실히 비싼 건 비싼 만큼, 돈값을 톡톡히 했다.

조금 뻐근하긴 했지만, 사실 15시간을 연속으로 다이브했다 나온 건데 이 정도 수준이라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됐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오버테크놀로지인 캡슐.

거의 완벽에 가까운 싱크로율과 최고급 컨디션을 자체적으로 유지해주는 TX-Pro 버전은, 정말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이 캡슐을 쓰고 난 후부터는, 왠지 모르게 타연 속 사고 가속화 상태가 조금 더 자주 발동되는 느낌이었다.

아무튼 일단 대충 챙겨 먹고 샤워부터 한 뒤, 책상에 앉아 인터넷에 접속했다.

“이제 딱 5분 남았나…….”

현재 시각 오후 11시 55분.

매일 0시 자정이 되면, 타연 공식 홈페이지의 랭킹 게시판이 업데이트된다.

전일 모든 유저들의 레벨과 경험치를 토대로, 각 직업군 랭킹 10위까지의 변동 내역이.

도둑 랭킹 10위, ‘도나텔로’.

그의 레벨이 366으로 변한 게 바로 엊그제였다.

물론 그도 그동안 놀기만 했을 건 아니겠지만, 그가 3일간 사냥한 것보다 내가 366레벨을 달성한 뒤 사냥한 10시간이 훨씬 더 밀도 높을 게 분명했다.

경험치 추가 업적과 말도 안 되는 사냥 속도.

그게 내가 단 4개월여 만에 랭커들을 따라잡은 비결이었으니 말이다.

‘새로 고침. 새로 고침. 새로 고침!’

아직 2분이나 남았는데도 랭킹 페이지의 새로 고침을 계속해서 반복 클릭했다.

11:59:58.

11:59:59.

00:00:00.

팟!

자정이 됨과 동시에, 미세하지만 랭킹 페이지의 한 부분이 바뀌었다.

워낙 변동이 적은 랭킹 순위.

그것도 도둑 목록 중 가장 하단 단 1명의 아이디만 교체되어 알아차리기 힘들었지만, 분명 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8위 에이트리(Lv.367)

-9위 무적살라딘(Lv.366)

-10위 산드로(Lv.366) NEW

“됐다!”

혼자만의 조용한 외침.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며 짧은 탄성을 터뜨렸다.

랭커.

이제는 다리우스나 카이저가 전혀 겁나지 않을 만큼 성장한 터라, 큰 의미가 없을지는 몰라도…….

그리고 이제 막 랭크업되어 통합 랭킹 160위의 꼴찌라 해도…….

나로서는 정말 감회가 새로웠다.

‘그렇게 많은 게임을 해왔지만……. 드디어…… 이제야 처음 달아 보게 되는구나!’

딱 한 발자국.

조금만 더 노력하고, 더 도전하면 달성할 것만 같은 랭커라는 타이틀을!

항상 눈앞에 둔 지점에서 멈추고 뒤돌아서곤 했다.

어릴 적 겪었던 트라우마 때문인지.

그게 아니면 ‘진짜’들의 경쟁 속에 들어가, 치이게 될 게 미리 겁났던 건지…….

산드로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기 전까지는, 그렇게 평생 제대로 된 도전은 해보지도 않고 살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달성한 첫 ‘랭커’라는 타이틀은 묘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었다.

‘나도 하면…… 정말 되는 놈이었어!’

해보지도 않고 그저 ‘가능성’이라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뒀던.

마치 내용물을 확인하지 않고 기대감만 갖고 있었던 선물 상자를, 마침내 뜯어본 느낌이었다.

징- 징-

기쁘기도, 허무하기도 한 감정에 휩싸여 멍하게 있던 도중, 현중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 우리 길마님 오늘부로 랭커 되셨네?

-크크. 벌써 봤냐? 어때? 네 형님 진짜 클라스 있지?

-뭐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지만, 결국 여기까지 도착했네. 축하한다. 그리고 그동안 고생했다.

처음 신검을 줍고 녀석에게 이 검을 직접 쓰겠다고 말한 순간이 떠올랐다.

내 손안에 들어온 거대한 행운을 겁내지 않고, 이걸 토대로 내 인생의 주인공이 돼 보기로 마음먹은 그 날이.

막상 그렇게 다짐했지만, 사실 겁이 났던 순간도 많았다.

사실 말이 100억이지, 막상 그걸 쥐고 다닐 때마다 신나기보단 불안할 때가 더 많았다.

몇몇 위험한 순간이 닥쳤을 때는 정말 식은땀이 줄줄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우여곡절 끝에, 결국 처음 계획했던 일차 목표까지 무사히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남들은 신검빨이라고 폄하할 수 있겠지만,

곁에서 모든 걸 지켜본 현중이는 담담히 축하와 함께 위로를 건네왔다.

-아직 멀었지 뭐. 통합 랭킹 1위가 되기 전까지 이 형님은 멈추지 않을 거다. 아니, 그 후에도 절대 안 멈출 거야. 그러니까 너도 좀 분발해 짜샤. 형님이 너 역전할 동안 뭐 했냐?

-뭐 하긴? 니 뒤치다꺼리 해주느라 형님이 고생한 건 다 까먹었냐? 이 자식이 배은망덕한 것 좀 봐라?

-하하! 맞다 맞아. 너도 고생을 하기는 했지. 아무튼 레벨업에 좀 더 집중해 봐. 앞으로 우리 길드원들을 전원 다 랭커로 구성돼야 하니까.

-근데 디바인 방패를 갖고 있다 보니 필드 나가기가 겁나서 뭘 할 수가 없다. 인던만 돌다 보니 렙업 속도도 좀 정체된 거 같은데, 뭔 수가 없을까?

-그래? 아무래도 역시 우리 길드 전용 인던을 하나 장만해야겠네. 거기서 당분간 렙업 좀 하고, 다리우스가 사냥 중인 곳을 빼앗든가 해야겠어.

-필드 쟁탈전? 우리 지환이, 시공의 틈새가 어딨는지도 모르는데 벌써부터 김칫국 마시네?

태성 길드가 즐겼던 ‘사냥터 통제’.

경험치와 좋은 아이템을 드랍하는 사냥터를 발견하면, 자신들이 독식하기 위해 타 유저들을 배척하던 놈들의 시스템.

그들이 해왔던 것을,

이제는 고스란히 똑같이 당해볼 차례였다.

당연히 꿀 사냥터가 분명할 그 시공의 틈새라는 곳에서!

-그동안 나름 소득이 있긴 했어. 이제 목표했던 랭커도 달성했으니 차근차근 조사해보려고.

-어? 어떻게?

-무살 형님과 당당 님이 역시 아는 게 많더라고. 지옥불 님께 전해 들은 바도 있고. 아무튼 조사는 이 길마님이 다 해놓을 테니까, 렙업에나 전념하고 있어라.

-뭐야? 우리 마스터, 왜 이렇게 믿음직한 건데? 그럼 난 완전 신경 끄고 있는다!

-이게 제대로 업혀 가려고 하네. 오냐 어부바다 자식아! 얼른 사냥이나 하게 도로 접속해!

-크크크. 형님의 하루는 이제부터 시작이지!

무슨 얘길 해도 실실 웃음이 나올 만큼, 기분이 좋았다.

다리우스를 죽이고 태성 길드까지 무너뜨리게 되면, 도대체 얼마나 더 큰 환희가 기다리고 있을지 더욱 기대될 수밖에 없었다.

여하튼 이제 처음 목표했던 바를 1차 달성했으니,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이제 음지에서 벗어나, 양지를 맞이할 준비.

세상이 조금씩 산드로가 아닌, ‘강지환’을 받아들일 차례였다.

* * *

“어머, 벌써 와 계셨네요? 갑자기 집 보러 온 손님이 있어서 잠시 자리를 비웠었네요.”

“괜찮습니다. 얼마 기다리지 않았어요. 사무장님 덕분에 커피도 잘 마셨고요.”

테라팰리스.

서울 강남에 위치한, 총 2천 세대가 넘는 거대 주상복합 단지의 이름.

난 날이 밝는 대로 상경해, 그곳 1층에 있는 한 공인중개소부터 찾았다.

“목소리로 들을 땐 몰랐는데 생각보다 젊으시네요? 실례지만 어떤 일을 하시길래 이렇게 비싼 집을 덜컥 전세 계약 맺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냥 운이 좋았습니다. 하던 일이 잘돼서 나름 대박이 좀 터졌거든요. 어떤 일인지는…… 아마 말씀드려도 잘 모르실 거예요.”

“어휴, 뭔진 모르겠지만 정말 대단하네요. 우리 아들도 비슷한 나이인데 아직 취업도 못 하고 집에서 가상현실 게임인가 뭔가만 하느라 밥만 축…… 어머!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아무튼, 기다리셨을 테니 집부터 보러 가볼까요?”

“네. 좋습니다, 사장님.”

앞으로는 지금까지와는 많이 다른 방식으로 타연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음지에서 홀로 게임하던 기존의 방식을, 계속 고수할 순 없었다.

타연에서 가장 핫한 인물이자 랭커답게, 이제는 방송에 출연할 수 있고 광고를 찍을 수도 있다.

길드를 성장시키기로 마음먹었으니, 제대로 된 기업 스폰을 받을 일이 생길지도 몰랐다.

또한 접하는 인물마다 타연 속 거물들 투성이니, 언제까지나 현실에서 ‘익명인’으로 남아있을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이제는 나도, 제법 이름값을 알리게 됐고 나름 얽히고설킨 인맥도 많아졌다.

그래서 이제는 신변이 밝혀지더라도, 태성으로부터 직접적인 보복을 받게 될 확률이 굉장히 낮아졌다.

내가 처음에 목표로 했던 수준.

놈들이 게임 속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건들기 어려울 만큼, 어느새 핫한 유명인이 돼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잖아?’

그래서 이사 가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리 돈이 많아져도 불편함을 몰랐던 작은 원룸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안이 철저하다는 최첨단 주상복합 단지로!

얼마 전 전화로 이 테라팰리스에 있는 부동산에 전부 전화를 돌렸더니, 운 좋게도 급 전세 매물 하나를 구하는 데 성공했다.

바로 가계약금을 쏜 다음, 집주인과 계약하기로 날을 잡았는데 그게 하필 랭커에 진입하게 된 오늘이었다.

“여기에요. 48층답게 전망이 끝내주죠?”

“아……. 네. 대단하네요, 정말.”

역시 이런 게 서울인 건가?

끝없이 이어진 고층 건물들 사이로 하천과 수목이 푸르게 어울려진 시티뷰가 아름다웠다.

양면 개방 구조의 거실 창.

거기에 5동의 49층 건물 중 끝쪽인지라, 시야에 걸리는 게 없어 개방감이 끝내줬다.

“정말 운이 좋으신 거예요. 이런 로열 동 로열층은 매물로 잘 나오지도 않는데. 하긴 그래서 바로 계약금을 쏘셨겠지만…….”

“사실 이렇게나 전망이 좋을 줄을 미처 몰랐어요. 말씀대로 운이 좋았네요.”

손닿을 듯 가까운 옆 동 빌라 때문에, 창문을 열어도 볕이 잘 들지 않던 원룸.

어두컴컴한 골방이나 마찬가지인 곳에서, 불과 반년 만에 강남 한복판의 중대형 아파트로 이사 오게 됐다니…….

나조차도 믿어지지 않는 현실이었지만, 이젠 이게 내 몫이 맞았다.

이렇게 현실에서도 맛을 보니 다시 한번 리마인드됐다.

내가 잡은 타연 속 행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걸 절대 내 손아귀에서 놓치지 않겠다고!

* * *

“이게 도대체 무슨 돈이냐? 간만에 찾아와서 이러면, 내가 옳거니 좋다고 덥썩 받을 줄 알았냐?”

“그래, 아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니? 이건 도대체 무슨 돈이야?”

“별거 아니에요 아버지. 그리고 엄마, 뭐 나쁜 거로 돈 번 거 아니에요. 저 성공했어요. 그것도 완전 대박으로요!”

반년 만에 본가에 도착하자마자, 두 분 명의 계좌로 각각 5천만 원씩 송금해 드렸다.

덕분에 혹시나 벌써 퇴사한 건가 싶어 하시던 부모님께서는 깜짝 놀라시고 말았다.

“작은 게임 회사에 취업했던 거라면서? 한데 어떻게 반년 만에 이렇게나 많은 돈을 벌었다는 거냐?”

“사실 만들던 게임이 대박 나서 스톡옵션을 받았어요. 놀라셨죠?”

“넌 이 아비가 아무 것도 모르는 뒷방 퇴물인 줄 아냐? 어느 회사가 반년 만에 스톡옵션을 줘? 아비가 회사 생활만 30년도 넘게 했다는 걸 잊어버린 게야?”

‘잘 알죠 아버지. 그리고 가장 오래 다니셨던 회사에서 왜 쫓겨나셨는지도요…….’

돈을 벌게 되면, 아니 성공하게 되면 누구나 변하기 마련인 걸까?

간만에 뵌 부모님의 주름이 깊어진 걸 보고 나니, 도대체 내가 3년 동안 왜 그따위로 살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삶이 못났던 건 결국 내 탓이었던 건데.

꿈도 없이 허송세월로만 낭비하던 청춘을, 왜 집안 탓이나 했는지…….

“농담입니다 아버지. 쉽게 믿지 않으실까 봐 그랬어요. 사실 저 게임합니다. 타이탄 연대기라고 들어보셨죠? 그걸로 돈 벌었어요.”

“뭐? 타이탄 연대기?”

“아들, 네가 그걸로 돈 벌었다고? 안 그래도 수현이도 그걸로 돈 번다고는 들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나 많이 뭔 수로 벌었다는 거니?”

외종사촌 동생 최수현.

작년에도 타연에서 제법 잘 나간다는 소식을 문뜩 들은 기억이 났다.

“어쩌다 보니 제가 거기서 좀 잘 됐어요. 그러니까 돈은 알아서 벌리더라고요.”

‘사실 그거 태성을 잡고 번 돈이에요. 아버지를 괴롭혔던, 그 태성 그룹 놈들에게서요.’

속으로는 다른 말이 하고 싶었지만, 걱정하실까 봐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다.

“지환아. 난 네가 그 골방에 처박혀 있어도 별 걱정하지 않았다. 내 아들을 아비인 내가 모를까? 잠시 방황하더라도 언젠가 네가 마음만 잡으면 뭐든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지……. 한데 이건 좀 갑작스럽구나? 정말 네가 게임으로 번 돈이 맞는 거니? 그러기엔 너무 큰 액수 같구나.”

“그래. 사실대로 말해보렴, 지환아. TV를 보니 랭커인지 뭔지 하는 사람들이나 그 게임으로 돈을 벌지, 돈을 갖다 바치다가 패가망신한 사람도 많다고 하더라. 그런 곳에서 무슨 수로 벌었다는 거니? 너 뭐 못된 짓으로 돈 번 건 아니지?”

“엄마. 그리고 아버지. 사실 제가 그 랭커 중 하나예요. 천만 타이탄 연대기 유저들 중, 단 160명만 존재한다는 그 랭커.”

“뭐라고?”

태성과 싸우는 중이라고 말씀드렸다간 걱정이 태산 같으실 게 뻔했다.

그래서 간략하게 좋은 템을 먹어 운 좋게 잘 풀렸다고 설명해 드렸지만, 그래도 썩 내켜 하시는 기색은 아니셨다.

그래도 결국, 내가 꺼낸 매매 문서를 보시고는 믿을 수밖에 없으셨다.

평생 전세로만, 낡은 아파트를 전전하셨던 생활의 끝을 알리는 계약서였다.

“네, 네가 집을 사뒀다고? 벌써?”

“네. 항상 신축에 살아 보시고 싶으셨죠? 이제 그냥 이사만 가시면 돼요.”

이것저것 바쁜 와중이었지만, 짬을 내어 어머님의 평생소원이셨던 자가를 마련해 드렸다.

그것도 평소 부러워만 하셨던 옆 동네 재건축 아파트로.

서울에서 제법 먼 경기도인 터라, 신축이라곤 해도 크게 비싸진 않았다.

“이럴 수가! 이게 꿈이냐 생시냐!”

“지환아! 우리한테도 이런 날이 찾아오는구나! 장하다 정말!”

엄마는 무척 기뻐하시다가 이내 눈물을 보이셨다.

아버지는 믿기지 않으신 듯, 매매 계약서를 몇 번이고 다시 또 훑어보셨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못난 아들 때문에 속 많이 썩으셨고요. 대신 앞으로는 제가 호강만 시켜드리겠습니다. 기대하세요!”

그간 우리 가족에게 드리워있던 먹구름이, 이제 조금씩 걷혀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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