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129화 (129/350)

129화 뉴 하우스 (1)

현실에서 해야 할 일들을 대략 마무리 지은 후.

막상 이사를 하려니 이것저것 신경 쓸 게 많았다.

최대한 게임 플레이에 지장 없도록 한다고 노력했는데, 아까운 시간 로스가 조금은 발생하는 걸 피할 수 없었다.

‘이래서 연예인들이 매니저를 두고, 임원들이 비서를 두는 거였구나.’

이런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로 나 자신의 가치가 급격히 상승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지만…….

사실 정확한 속마음은, 이럴 것들에 신경 쓸 시간에 그저 타연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몇 날 며칠 하루 13시간 이상을 필드에서 사냥만 반복했지만, 그래도 접속하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렸다.

생에 처음으로 느껴보는 ‘성취감’이란 녀석은, 이렇게 마약과도 같이 달콤했다.

[산드로: 다들 좋은 아침입니다.]

[축복받은얼굴: 왔냐?]

[라스트챤스: 좋은 아침입니다 형님.]

[무적살라딘: ㅎㅇㅎㅇ]

접속하면 바로 사냥터로 달려가던 몇 달 전과 달리, 이제는 길드원들과 인사부터 나눈다.

내가 만든 길드.

그리고 내가 모은 사람들.

어느덧 버닝스타 길드는, 내 또 다른 분신인 산드로만큼이나 소중한 존재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난, 우리 버닝스타 길드원 전원에게 조그만 선물을 하나 안겨줄 생각이었다.

[산드로: 렙업들은 많이 하셨어요? 이제 딱 3일 남았네요. 다들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축복받은파볼: 아~ 하루종일 지하 도시에 처박혀 개대가리들만 잡다 보니 죽겠어~ 언제쯤 여길 졸업할 수 있으려나ㅇㅠㅇ]

[산드로: 누님~ 그러니 이번 기회에 저희도 집 좀 장만해야죠. 편안하고 안전하게 사냥할 수 있는 곳으로요.]

한 달이란 시간은 길게 보면 길지만, 어떨 때는 정말 짧게만 느껴졌다.

유저가 만든 첫 타이탄의 등장으로, 타연에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알린 지난 공성전.

그로부터 벌써 한 달이 지나, 이번 공성전이 3일 앞으로 다가왔다.

(축복받은무빙: 드로야. 안 그래도 그것 땜에 귓말하는데.... 혹시 어디를 공격할 건지 정했니? 아무래도 우리 길드는 소수라, 공성전은 좀 힘들지 않을까 싶은데...)

(나: 걱정 마세요 형님. 성은 아베르 성으로 정했어요. 아무래도 그곳 전용 인던이 저희 길드원들 레벨 구간과 맞아떨어질 테니까요.)

(축복받은무빙: 마지막 남은 미점령 성을? 우리만으로 그게 정말 가능하겠어?)

(나: 저희만으로는 힘들 수도 있죠. 한데 공성전에 혼자 참여하는 길드는 거의 없잖아요? 이번엔 저희도 다른 길드와 함께 쳐들어가 볼까 합니다.)

(축복받은무빙: 그런 길드가 있을까? 어지간히 큰 길드가 아니라면 도움도 안 될 텐데, 그런 길드가 과연 우리가 메인인 공성을 도울까?)

(나: 그러니까 이제부터 잘 찾아봐야죠. 우리 뜻대로 잘 따라와 줄 길드가 있는지를요.)

피닉스의 도움을 받는 것이 베스트지만, 이번에도 역시 수성하는 것만으로도 빠듯할 터라 도움을 기대하긴 힘들었다.

예전이었다면 진작 포기했을 상황.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앞으로 난, 나 하나만이 아닌 우리 버닝스타 길드원 전체의 성장도 책임져야 했다.

그러니 최고의 선택이 아니라면, 최선의 선택이라도 찾아내서 어떻게든 목적을 달성해야만 했다.

길드 마스터로서의 책무.

일단 우리 길드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안전한 사냥터를 마련하는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성을 꼭 하나는 점령해야 했다.

물론 맨땅에 헤딩하듯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건 아니었다.

타연 랭커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유저.

또한 창설된 순간부터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가장 핫한 길드의 마스터.

그 자리에 있다는 건, 매일같이 수많은 유저들에게 러브콜을 받는 위치에 있다는 걸 의미했다.

* * *

(제독: 어디쯤 왔지 산드로?)

(나: 다 도착해 갑니다 형님.)

지난 공성전 직후, 난 올림푸스의 길마인 제독으로부터 하나의 제안을 받았다.

-산드로, 너희가 갖고 있는 타이탄 중 하나만 어떻게 구매할 수 없을까?

-형님. 죄송하지만 저희 길드가 가진 타이탄들은 제 개인 소유가 아닙니다. 물론 제 거라 할지라도 판매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요.

-너도 알겠지만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이야. 건국해서 앞서나가는 길드에게만 타이탄이라는 혜택이 더 주어지는 상황이라니! 후발 주자들은 그저 당하기만 하라는 거야 뭐야!

-아마 이런 상황이 오래 이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생산 말고도 템이라든지 퀘스트 보상이라든지, 제법 다양한 루트로 풀리게 될 테니까요.

-그거야 느긋한 놈들 얘기고! 우리같이 당장 성 하나하나가 소중한 길드 입장에서는, 이건 정말 너무나 큰 페널티야! 그러니까 제발 부탁한다. 옛정을 생각해서 한번만 고려해주면 안 되겠니?

그의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줄곧 타이탄으로 공성전에 참여해왔기에, 그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나일지도 몰랐다.

그간 내가 참전했던 전투들을 되짚어보면, 타이탄이 공성전에 끼치는 영향력은 막대했다.

혼자서 깽판을 칠 수 있을 만큼 막대한 공격력과 방어력을 갖고 있진 않았다.

하지만 순간적인 진형 파괴나, 내성문과 바리케이드를 무너뜨릴 시간을 벌어주는 탱킹 능력 등은, 정말 대체 불가한 수준이었다.

전투와 전쟁은, 모름지기 한 끗 싸움에서 승패가 갈리기 시작하는 법.

타이탄이 있고 없고는, 그 한 끗 싸움을 자신이 먹고 가느냐 아니면 적에게 내주게 되느냐란 향방을 갈랐다.

물론 타이탄은 앞으로 늘어나면 늘어나지 줄어들 일은 없었기에, 밸런싱 문제는 차차 해결될 것이다.

허나 문제는 지금이 그런 상황으로 진행되고 있는 ‘과도기’란 점이었다.

이 과도기에 타이탄을 가장 강한 두 개의 길드만 소유했다는 건, 어찌 보면 다른 길드에겐 엄청난 역차별이자 페널티로 비추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타연이 언제는 안 그래왔나? 선두 주자들이 혜택을 싹쓸이하니까, 그렇게나 기를 쓰고 돈도 써가며 앞서나가려 경쟁해 왔던 거잖아.’

근 반년 넘게 안정적으로 3성을 점령 중인 올림푸스 길드.

심지어는 한 달뿐이었지만 태성의 번스타인 성을 점령하기도 해, 유력한 두 번째 건국 길드로 손꼽혔던 게 얼마 전이었다.

근 두세 달 사이에 그 위상이 피닉스 길드와 완전히 뒤바뀌긴 했지만, 당시 폭주했던 가입 행렬로 포텐셜만큼은 남부럽지 않은 상태.

제독, 지금 그에게 부족한 것은 돈도 유저도 아닌 오직 ‘타이탄’ 하나뿐이었다.

“왔구나? 잘 왔다 드로야.”

“이게 몇 달 만이죠? 잘 지내고 계셨어요? 구입해 가신 도끼는 쓸 만 했구요?”

“그럼. 아직 서버에 하나밖에 풀리지 않은 것 같더라. 덕분에 매달 공성전과 사냥터에서 비싸게 주고 산값은 톡톡히 했다.”

“그럼 아마 다음번 드랍 도끼는 더 비싸게 팔릴지도 모르겠네요. 축하드립니다, 형님.”

레디치 성 외성 마을 여관방.

이제는 우리 둘이 만나는 모습조차 조심해야 할 수준에 이르렀기에, 비밀리에 이곳을 찾았다.

타연은 수백만에 이르는 동시접속자들이 사냥에 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인던과 넓은 필드를 자랑한다.

올림푸스의 메인 성이 된 이곳 레디치 또한 그런 지역 중 하나.

250레벨 안팎의 유저들이 사냥할 곳이 많은 이 지역은, 태성의 번스타인만큼이나 알짜배기로 소문난 성이었다.

“아무튼, 우리가 그런 얘기나 하러 모인 건 아니니까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그동안 생각이 바뀐 거야? 새롭게 제안해 보겠다는 게 도대체 뭔데 그러지?”

“제가 다리우스를 죽이려고 시도했던 건 들으셨죠? 비록 실패했지만,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현재 태성 길드의 배후에는 일루전 측 인사가 연관되어 있고, 그가 게임 속에서 비밀리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주었다.

“……놀라운 얘기다만, 전부 다 추측일 뿐인 거 아니냐? 타연은 놀라울 정도로 게임 내에서 개발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던 게임인데 말야. 그리고 조 단위급 부자가 된 개발자들이 굳이 태성과 붙어먹을 이윤 없을 텐데?”

“뭐가 됐든 일단 전 제가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토대로 판단 내릴 생각입니다. 그 결과, 전 이미 그들이 한 편이라고 간주하기로 했습니다. 태성만으로도 벅찬 상대인데 운영자들까지…… 그렇다 보니 이제는 저도 수단과 방법을 가릴 처지가 아니더군요.”

“그 말은……?”

“네. 팔겠습니다. 저희가 가지고 있는 타이탄 중 한 대를.”

“으하하! 그게 정말이냐?”

루이투스, 레벤다스, 티에스 나이츠, 강화된 가이라 나이츠.

우리 길드가 소유한 총 4대의 타이탄들.

현 시점에서 이렇게나 많은 타이탄을 보유한 길드는 타연에 우리밖에 없었다.

전원 타이탄 라이더 길드로 만들겠단 생각은 변함없지만, 지금이 타이탄을 가장 비싸게 써먹을 수 상황이란 건 분명한 사실.

비록 타이탄 한 대가 줄어들겠지만, 이것이 내가 고심 끝에 결론 내린 가장 비싸게 팔아먹는 방법이었다.

“단, 골드에는 판매하지 않을 거예요. 돈이야 충분히 있으니까요.”

“어? 그럼 뭐에? 아하, 예전 대도 부츠처럼 희귀 아이템을 원하는 거냐?”

“그것도 아니에요. 제가 필요한 건 형님네 길드원입니다. 이번 공성전에서 저희 버닝스타가 성을 먹도록 도와주세요.”

용병.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피닉스의 용병으로 고용됐던 내가, 이제는 오히려 의뢰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그것도 일개 개인이 아닌, 올림푸스라는 타연 4강 길드 중 하나를!

“근데 타이탄은 성을 먹게 되면 주겠다고? 순전히 네 말만 믿고 길드원들을 먼저 투입해 달라는 소리냐?”

“못 믿으시겠다면 어쩔 수 없어요. 한데 피닉스가 어떻게 성장하셨는지 옆에서 다 지켜보셨잖아요? 제가 한 번이라도 약속을 어기거나 뒤통수친 적 있었나요? 죄송하지만, 사실 성은 먹으나 안 먹으나 저희 쪽은 크게 상관없어요. 타이탄 한 대로 거점 성을 하나 마련해볼까 싶은 거죠. 그리고 그럴 일은 없지만, 만약 제가 약속을 지키지 않더라도 크게 손해 보실 일은 없으실 텐데요?”

“흠…….”

이번 공성전 직전, 피닉스는 어렵게 점령했던 지웰 성을 포기할 계획이었다.

제국의 견제 때문에 7성을 유지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내린 선택.

이 때문에 공성이 시작되자마자, 무주공산이 된 지웰 성은 각 길드 간의 쟁탈전이 벌어질 장소가 될 것이 뻔히 예상됐다.

‘분명히 태성도 오겠지……. 녀석들이 지난 공성전에서 노렸던 성이었으니까.’

피닉스는 수성하기 바쁘고, 태성은 지웰 성을 쳐들어갈 게 뻔하다?

그건 이번 공성전에서 다른 성길들은, 평소보다 수성에 덜 신경 써도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혹시 모르니까 오래는 못 내준다. 그리고 점령하자마자 타이탄을 바로 넘겨야 해. 물론 소환 쿨타임은 채워진 상태로. 어때, 괜찮겠냐?”

“300레벨 이상 200명. 딱 10분만 쓰고 바로 복귀시켜드리겠습니다.”

내 속내를 모르겠지만, 난 이미 제독 형님의 속내를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다.

지옥불로부터 올림푸스가 고조선 길드와의 합병으로 세 번째 건국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게 두 달 전이었다.

내가 칼젠 성을 판도라에게 판매하고 타연 정세가 급변하면서 미뤄져 왔지만, 이번 공성전이 끝나면 합병을 발표할 것이 분명했다.

내가 대놓고 미점령 성을 먹도록 도와달라고 말하는 데도, 반감을 표하지 않는 것이 바로 그 증거.

건국 요건인 5성은 이미 충족됐다고 여길 제독 형님으로선, 태성이나 피닉스를 따라잡기 위해 어서 빨리 타이탄을 한 대라도 갖춰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좋다. 네가 성을 먹어서 뭘 하려고 타이탄까지 거는지 모르겠지만, 네 말대로 진행해 보지. 약속은 꼭 지켜라.”

“그럼요, 형님. 태성만으로도 바쁜데, 설마 올림푸스까지 적으로 돌릴 만큼 멍청하지는 않습니다. 잘 결정하셨습니다.”

버닝스타라는 이름으로 처음 갖게 될 성.

아베르 성 점령을 위한 준비가 거의 다 마무리됐다.

* * *

“아직 그대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 충분한 경험을 쌓고 난 후, 그때 다시 찾아오길 바란다!”

“여전히 그 소리야? 도대체 그게 언젠데?”

정보 길드의 마스터, 용병 길드의 마스터, 탐험 길드의 마스터 등등.

또 한 번 레벨업한 김에, 혹시나 싶어 도시에 있는 각 직업군의 마스터들을 다시 만나봤다.

하지만 멘트는 변한 게 없었다.

[미완성 스킬북(퀘스트 아이템)]

드래곤 투 메르타스를 잡고 획득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스킬북.

어쩌면 놈이 드랍한 아이템 중에 가장 높은 가치를 지녔을지도 모르는 이 템을, 하루빨리 활성화하고 싶었다.

하지만 도통 퀘스트조차 주질 않았다.

‘400레벨쯤 돼야 주는 건…… 설마 아니겠지?’

뭔가 끝자리가 딱 떨어지게 설정하기 좋아하는 개발사들 특성상, 왠지 그럴 확률이 높게 느껴졌지만 애써 부정했다.

“아! 어찌 됐든 간에 줬다 뺏는 입장이 돼버렸네. 누님이 서운해하시진 않으려나!”

우리가 가진 타이탄 중 가장 값어치가 떨어지는 건, 아무래도 ‘티에스 나이츠’.

그래서 축볼 누님에게 드렸던 타이탄을 도로 돌려받아야 했다.

사실 당장 지킬 방도가 마땅찮은 성을, 그것도 미점령 성이라는 난이도 높은 성을 무리하며 먹을 필요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건 너무 안일한 생각이었다.

투 메르타스가 토벌된 지 어느덧 보름.

놈은 아직까지도 리스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한번 잡혔다고 사라질 녀석이었다면, 굳이 그렇게 큰 레어와 각종 고유 아이템들을 제작해 두었을 리 없었다.

‘아마…… 리스폰 시간은 한 달이 분명할 거야.’

워낙 대단한 놈에다가 상징성도 있는 놈이라 최대한 잡은 기간이었다.

그 이상의 기간이라면,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이런 오픈 월드 게임의 필드 보스 역할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이미 레이드 방법이 알게 모르게 노출된 이상, 다음 레이드는 ‘경쟁’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피닉스도 참가할 게 뻔했기에, 그들로부터 NPC 병사들을 빌릴 수 없을 게 뻔했다.

다소 무리하는 것 같고 출혈도 크지만, 이번에 아베르 성을 점령하려는 주요 이유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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