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134화 (134/350)

134화 상인 연합 (2)

돈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상인이 존재하기 마련.

오직 현실 속 돈을 벌기 위해, 게임 플레이를 등한시하고 아이템 매매에만 종사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작게는 게반 마을의 주머니 퀘템 등을 사고파는 소매상부터…….

크게는 수억 원을 호가하는 레전더리 템도 다수 보유하고 있는 거상에 이르기까지!

어느 마을, 어느 도시를 가든…….

심지어 안전지대 밖 필드 위 사냥터같이 유저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그들 ‘장사꾼’이 없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때문에 장사꾼들 간의 경쟁은 필연적이었다.

바로 옆에서, 혹은 인근 마을에서…… 단돈 1골드라도 싸게 판매하고 비싸게 매입하는 경쟁자들이 끊임없이 생겨났다.

또는 시세를 모르는 유저들에게, 속된 말로 등쳐먹는 장사꾼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었다.

유저들은 그저 게임을 즐기고 쾌적한 사냥을 위해 템 거래를 하는 것뿐인데, 점점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고,

이를 발 빠르게 감지한 몇몇 장사꾼들은, 곧바로 그들을 위한 서비스를 시작했다.

장사꾼 모임의 ‘브랜드화’와 ‘가격 정찰제’.

지금은 ‘큰손’이라고 불리는 대형 매매상들의 탄생 배경이었다.

“레드독, 호박, 또머꼬, 벤티. 총 4개 브랜드의 큰손들을 만나볼 생각입니다. 그들 중 하나라도 저희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성을 지키는 것쯤은 걱정 놓으셔도 될 겁니다.”

“과, 과연…… 듣고 보니 가능할 것도 같아요! 아니, 왜 이런 생각을 못 해봤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괜찮네요! 역시 형님이십니다!”

“라챤이 요놈, 태세 전환하는 것 좀 봐라? 아까는 너무 이상적인 생각 같다며?”

“하핫! 형님의 깊은 뜻을 제가 몰라본 거죠. 앞으로는 절대 토 달지 않겠습니다. 충! 성!”

“경례가 어설픈데…… 너 현역 출신 맞아?”

“맞다니까요, 현중이 형!”

세금 2%.

고작 그 정도 가지고 뭐가 어떻겠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이 수치가 가진 파괴력은 강력했다.

한 명의 장사꾼만 해도 하루에 거래소를 이용하며 등록하고 구매하는 횟수만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 건에 이른다.

한데 그런 장사꾼들을 수십 명씩 운영하는 큰손들이라면, 하루에 세금으로만 빠져나가는 금액이 얼마나 될까?

단 5%의 이득만 남더라도 주저 없이 매입과 판매를 반복하는 그들에게, 갑자기 순수익 2%가 늘어난다는 것은 엄청난 의미가 될 수 있었다.

순전히 그렇게 해주는 성이 없었기에 생각 못 하고 있던 일.

그들의 환심을 사 아베르 성을 장사꾼들의 성지로 만드는 것.

이것이 내가 이 성을 우리의 아지트로 쭉 점령하는 방법으로 구상한 계획이었다.

[모든 공성전이 종료되었습니다.]

“어? 이번 달 공성전이 드디어 끝났네요!”

“그렇네? 다른 전체 알림창이 뜬 건 없는 걸 보니, 이번 공성전은 별 일없이 끝났나 보구나. 대단한데 피닉스? 아무리 아틀란티스가 도와준다 해도 6성을 지키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었을 텐데.”

“운 좋게 직접 보게 됐는데, 하마터면 올림푸스가 메인 성을 뺏길 뻔하긴 했습니다. 이번 달은 조용히 넘어가게 됐지만, 다음 달에는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아마 오늘 타이토닉TV에서는, 레디치 내성문 앞에서 있었던 전투를 메인 뉴스로 틀어줄 것 같았다.

그만큼 거대한 타이탄들 간의 전투는, 화려하고 박진감 넘쳤으니까.

아무튼, 공성도 끝났으니 큰손들을 만나볼 차례였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축굴아, 넌 이 성 전용 사냥터 좀 살펴보고 연락 줘. 다른 분들은 성안에 혹시 시공의 틈새와 관련 있는 부분이 있는지 살펴봐 주시면 감사하겠고요.”

“옥케이!”

“그래. 샅샅이 훑어볼게!”

믿음직한 길드원들.

그들을 뒤로한 채, 영업 뛰러 나가는 가장의 심정으로 큰손들을 찾아 나섰다.

* * *

[번스타인 외성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여긴 어째 사람들이 더 늘어난 것 같다? 하긴 이젠 유저들의 주력 레벨이 200대가 넘었으니까 당연한 건가?”

나와 인연이 깊은 번스타인 성.

주로 찾던 내성과 반대 방향인, 남부 광장 쪽으로 이어지는 중앙대로 위로 이동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헤치며 지나가자, 곧 대로 양옆으로 줄지어 서 있는 화려한 간판들이 눈에 띄었다.

<무기 상점>

<방어구 상점>

<잡화 상점>

번스타인 외성 마을 안 상업지대.

내성이 있는 북문과 달리 남문은 곧장 몬스터들이 돌아다니는 필드와 직결되기에, 이쪽에 모든 소모품 상점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런 NPC 상점들 사이로, 누가 봐도 유저들이 만든 특색있는 이름의 상점 간판들이 섞여 있었다.

<레드독 백화점>

“여전히 여기 있구나! 예전엔 비싼 템만 팔아서 올 일이 없던 곳이었는데!”

그중 유난히 큰 건물에 빨간 지붕이 인상적인 상점을 찾아내서, 은신을 풀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어서 오십쇼!”

각각 무기와 방어구, 주문서와 요리 등의 소모품 코너에 서 있던 장사꾼 유저들이,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환영 인사를 외쳤다.

그중 가장 가까이 있던 유저에게 다가가 물었다.

“실례지만 사장님 계신가요?”

“어라? 산드로 님? 와! 여기서 이렇게 뵙네요. 팬입니다! 아참, 사장님은 3층 VIP실에 계십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올라가 보겠습니다.”

북적북적했던 1층과는 달리 3층은 조용했다.

‘과연 최소 유니크급만 취급한다는 곳답구나.’

VIP실이라고 적힌 방의 문을 노크하고 들어서니,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의 모습이 보였다.

가상현실 아바타답지 않게 배가 불룩 나온 유저, 그가 바로 장사꾼 길드 ‘레드독’의 수장이었다.

“반갑습니다, 산드로 님. 방금 성주가 되셨다는 알림창을 본 것 같은데, 갑자기 저를 찾아오셔서 놀랐습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말씀 많이 들어왔는데, 직접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장사꾼이라면 누구나 탐낼 희귀 아이디, ‘무한매입’.

장사꾼답게 매일같이 풀 접속해있는 특성 덕분에, 그를 만나는 건 그다지 어렵진 않았다.

“굉장히 바쁘신 분으로 알고 있는데…… 직접 이곳에 온 이유는 역시 소문을 들으셨나 보죠?”

“네? 소문이요?”

“흠? 저희 레드독이 ‘테네시의 바람 단검’을 매입했다는 소식을 들어서 오신 게 아니었군요?”

‘테네시의 바람 단검’.

도둑 랭킹 2위인 머독에게 ‘살신’이라는 별명이 붙도록 만들어준 레전더리 무기.

이 역시 필드 드랍 템인지라, 아직 그 외에는 이걸 착용한 유저가 없다고 알려진 초희귀템이었다.

“오! 레드독에서 그 무기를 매입했나 보죠? 모르던 사실이었지만 혹하는데요? 혹시 바로 판매하실 예정인가요?”

“저희 레드독은 당연히 모든 템들을, 판매를 염두에 두고 매입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저희 측 사설 경매를 통해 판매할 생각이었는데, 값만 제대로 쳐주신다면 산드로 님께는 특별히 즉시 매입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돈이 급해 급매를 원하는 유저, 혹은 먹자 등으로 얻어 빠른 처분을 원하는 유저.

인맥도 없고 시세도 잘 몰라 헐값에 판매할 것을 두려워하는 유저까지…….

그들이 신뢰하며 가장 먼저 찾는 판매처.

그곳이 바로 장사꾼들이 연합해서 일종의 ‘브랜드’를 형성한, 이렇게 유저가 운영하는 대형 상점이었다.

이번에 매입했다는 ‘테바단’ 같은 경우도, 항상 골드를 충분히 보유하고 있는 레드독 정도의 장사꾼이 아니었다면 매입하지 못할 만큼 비싼 템이었다.

‘이러려고 찾아온 건 아니었는데……. 테바단이라면 안 살 수가 없잖아?’

이런 순간을 위해 그간 골드를 열심히 모아왔던 것.

돈은 충분한 데다가, 여기서 호구 잡힐 만큼 시세를 모르지도 않았다.

(나: 래빗 님. 혹시 테바단 시세가 어느 정도나 되는지 알고 계세요?)

(핑크래빗: 엇! 테네시의 바람 단검이요? 전에 머독님이 550만 골드쯤에 구매하신 거로 알고 있어요! 그분이 쓰신 뒤로 입소문이 타서 더 올랐을 수 있지만, 아무래도 단검이라 공격력은 좀 부족하니 650만 골드 정도면 적당하지 않을까요?)

(나: 아! 그렇군요. 빠르고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다른 일로 왔다가 뜬금없이 쇼핑이라니…….

그것도 주력 무기가 2개나 있는 상태에서, 6억이 넘는 돈을 오직 ‘그’ 용도만을 위한 보조 무기 구입에 태워버린다?

‘미쳤구나…… 정말!’

예전의 나라면 상상도 못 했을 일.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런 일을 주저 없이 선택할 수 있었다.

“제값이란 게 얼마나 되는 걸까요?”

“이런 희귀템은, 원하시는 분에 따라 시세가 정해지는 거라 딱히 말씀드리기가 힘들겠군요.”

“설마 그 유명한 레드독의 사장님께서, 지금 ‘선제시’ 타령을 하고 계신 건 아니죠?”

“하하하! 이 정도 템이라면 그 값어치를 아시는 분이 사가시는 게 맞지 않을까요? 죄송하지만 저희도 매입한 가격이 가격인지라, 먼저 좀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군요.”

“650만 골드요. 부탁하신 대로 먼저 제시해드렸으니, 흥정하실 생각은 마시고 답변해 주세요.”

“죄송하게 됐습니다. 나쁜 가격은 아니지만, 저희도 매입한 가격이 있어서 그렇게는 어렵겠습니다.”

“700만 골드에 구매하죠. 시세는 정확히 알고 있으니까, 처음에 말씀하신 대로 값은 제대로 쳐 드리는 겁니다.”

흥정은 끝.

이제부터는 기세 싸움이었다.

질질 끌려가다간 1000만 골드까지 부를 수도 있는 게, 이런 장사꾼들의 속성이었다.

아무리 가격 정찰제를 표방하는 큰손이라도, 말 몇 마디에 몇억씩 왔다 갔다 하는 이런 거래에서는 본색을 드러냈다.

‘더 높은 가격에 팔 수는 있어도, 그런 매입자가 언제 나타날지는 모르는 법이지. 아무리 큰손이라도 몇억을 굴리지 못하고 묶여만 있는 건, 손해라고 생각할걸?’

무한매입이 테바단을 구입한 금액은 얼마일까?

비싸게 쳐봤자 600만 골드를 넘진 않았을 것이다.

그저 이 VIP실까지 찾아온 손님에게 구매했던 걸, 며칠 만에 팔기만 해도 1억이 넘는 차액을 버는 셈.

타연에 장사꾼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사냥해서 득템하는 것보다, 가만히 앉아서 매매만 하는 게 돈을 훨씬 더 잘 벌 수 있으니 원…….’

그리고 그런 장사꾼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골드 흐름’이 막히지 않는 것이었다.

“좋습니다! 판매하겠습니다! 저도 장사꾼이기 이전에 한 명의 타연 유저로서, 이런 초희귀템을 산드로 님 같은 분이 써주신다면 환영입니다! 어떻게 골드를 구해올 시간을 좀 드릴까요?”

“아니요? 돈은 들고 있으니까 바로 거래하시죠.”

“와우! 이렇게 골드를 많이 들고 다니시는 분은 정말 오랜만이군요! 1층에 매물이 있으니 바로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밑에 직원을 시켜도 될 텐데 직접 헐레벌떡 내려가는 모습을 보니, 비록 가상현실이지만 과연 장사꾼으로 성공한 사람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서울에 집을 구하고 부모님 집을 사느라, 들고 있던 골드의 절반을 바이트 코인으로 정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500만 골드라는 엄청난 거금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이것만이 전부가 아니지……. 들고 있는 빛마석만 해도 얼만지 가늠이 안 되는 상태니까 말야.’

돈이 돈을 부르는, 그야말로 ‘황금의 선순환’ 단계에 이른 지도 시간이 꽤 흘렀다.

내가 이런 부자가 된 데는, 역시나 소탐대실이었던 내 예전 성격을 애써 떨치려 했던 게 주효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내 캐릭이 강해지는 데 도움이 된다면!

이번 충동구매처럼 아무리 거금이 들더라도 무조건 투자하는 게 옳은 선택이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저희 손에 들어온 지 딱 3일 된, 따끈따끈한 신상품을 대령했습니다!”

[상대방이 거래를 요청합니다.]

[YES]

[거래가 완료되었습니다.]

우연히 살신 머독의 전투 영상을 한번 본 후로, 예전 매그넘 시절에 가장 갖고 싶어했던 단검.

원래 장검이 아닌 단검 도둑이었기에 언감생심 꿈에서라도 차보고 싶던 그 무기를, 엉겁결에 획득하게 되었다.

<테네시의 바람 단검(레전더리, 한 손 무기)>

* 공격력: 620

* 근력 +40, 민첩 +40

* 타격 시 6% 확률로 바람 속성의 마법 데미지 +620

* 소형 몬스터에게 물리 데미지 +310

* 무기 투척 시 ‘바람 회수’ 발동 가능.

-바람 회수: 봉인된 바람 정령의 도움으로 몸에서 벗어난 단검을 즉시 손아귀로 회수합니다. (사용 대기시간: 2초)

* 알려지지 않은 누군가에 의해, 바람 정령왕의 힘이 담기게 된 단검입니다.

* “잊혀진 시대의 기록에 따르면, 고대인들은 바람에 숨겨져 있는 진정한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비록 지금은 알지도 못하는 힘이지만, 간혹 그 시절의 힘을 간직한 무장들이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위대한 모험가 찬나 로크-

‘바람 회수’.

머독이 한번 대상을 찍으면, 웬만해선 그에게서 죽음을 피할 수 없도록 만들어준 옵션.

‘무기 던지기’ 스킬로 던질 수 있는 무기 중, 가장 높은 데미지를 자랑하면서 ‘무한 투척’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레전더리 단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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