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136화 (136/350)

136화 상인 연합 (4)

“용의 부산물…… 당신네 길드원들이 장착한 그 드라코닉 장비들 말인가요?”

제국의 수도 오스타그는 가장 번화한 도시답게 특별한 곳이 여럿 존재한다.

현 세계관 최고의 대장장이 중 하나인, 드워프 ‘달켄 실버액스’.

그가 주인인 타연 최대 규모의 대장간도 그중 하나였다.

무기 레시피를 습득하기 위한 퀘스트를 주는 인물로 유명한 그는, 대장장이 NPC답게 장비 제작 의뢰 또한 받고 있었다.

유저들에게 그의 명성이 널리 알려진 가장 큰 이유.

제작 의뢰 목록 중 최상단에 위치한 무기와 방어구들이, 워낙 어그로가 끌릴 수밖에 없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드라코닉 장검>

<드라코닉 보우>

<드라코닉 방패>

……………………

짧지만 무엇보다 강렬한 수식어, ‘드라코닉’!

몇 년간 유저들의 입방아에 오르락내리락하며 수없이 많은 환상과 망상에 빠져들게 만든 그 이름!

우리 버닝스타 길드원들이 최초로 제작 의뢰 버튼을 눌렀던…….

아직은 우리만이 가진 이 특별한 장비들에 쏟아진 관심은, ‘폭발적’이란 표현으로도 모자란 수준이었다.

사실 요즘 안팎으로 굉장히 바빴던 탓에, 방송이나 올타를 살펴볼 시간이 모자랐다.

헌데도 현중이의 드라코닉 갑옷 세트와 라챤이의 드라코닉 보우가 얼마나 이슈가 됐는지는 모를 수가 없었다.

스펙무새, 룩덕유저 등 모두를 만족시키는 압도적 위력과 화려한 외관.

가격 상관없이 제발 팔아만 달라는 부탁이 쇄도해, 귓속말을 꺼둬야 사냥이 가능하다는 현중이의 말은 엄살이 아니었다.

그런 초 핫이슈인 아이템, ‘드라코닉 장비’를 호박마켓 길드에서 독점 판매하게 된다면?

“무기 만들 재료는 다 쓰고 없지만…… 비늘 갑옷 반 세트 분량 정도 남아 있습니다. 이걸로 일단 장갑만 몇 피스 만들어서 판매해 보면 어떨까요?”

많은 돈을 쓰고도 별 효과가 없는 광고가 종종 있다.

하지만 반대로 돈 한 푼 쓰지 않고 막대한 홍보 효과를 보는 경우도 있었다.

타연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드라코닉 장비 판매처.

거기에 은연중 버닝스타의 선택을 받은 상인 길드라는 암시까지!

‘급매처’를 찾는 유저들에게 ‘호박’이라는 새로운 대안처가 각인되는 데, 충분한 이벤트가 되고도 남았다.

“호, 혹하는, 이번 제의는 정말 매력적인 제안이긴 하군요. 하지만 부산물을 다 써버리고 나면요? 다시 드래곤을 잡긴 힘들 테니 재료 수급이 안 될 거 아닙니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네요. 계속 잡을 생각이 있었으니까 굳이 아베르 성을 먹은 겁니다. 장담하건대, 저희 버닝스타말고는 투 메르타스를 단독으로 잡을 수 있는 길드는 없을 겁니다. 다리우스가 이끄는 태성이라 할지라도 첫 트라이로는 절대 못 잡을 놈이 녀석입니다.”

기본적으로 레벨이 어느 수준 이상이어야지 참여할 수 있는 드래곤 레이드.

거기에 광역 공격인 브레스를 난사하는 녀석이라, 특정 조건들이 갖춰지지 않는 이상 공략 인원의 수는 무의미했다.

분명 지난번 레이드는 우리에게도 위험하고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도박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필승의 자신감이 충만해진 상태!

다름 아닌 투 메르타스, 녀석이 우리에게 준 선물들 덕분이었다.

* 모든 종류의 대형 몬스터에게 물리 데미지 +2280

* 모든 용종의 몬스터에게 물리 데미지 +2280, 마법 데미지 +2280

* 동일 대상을 상대로 공격 시마다 추가 데미지 +10%(최대 100%까지 누적)

* 이 아이템은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용살검이라는 별칭에 걸맞은 놈에게 천적인 무기가 내 손안에 있었고.

이 검은 디바인 템답게, 파괴되지 않는 이상 나 이외엔 누구도 새로 얻을 수 없었다.

또한, 그뿐만이 아니었다.

* 같은 업적을 가진 사람과 파티를 형성할 시, 원래보다 더욱 뛰어난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됩니다.(파티 시 공격력 +10%)

* 업적 효과로 드래곤 계열 몬스터에게 더욱 강력한 피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모든 종류의 데미지 +25%)

* 드래곤을 추가로 학살할수록, 이 업적은 더욱 뛰어난 효과로 거듭나게 됩니다.

업적 ‘소수정예’와 ‘드래곤 학살자’에 붙어있는 특수 효과들.

그동안 레벨과 장비 수준, 스킬 등이 스펙업 된 걸 고려하지 않더라도, 자신감이 넘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믿을 수 없습니다. 그간 잡을 엄두도 내지 못하던 걸, 계속 독점 공급할 수 있다고요?”

“물론 독점은 아니겠죠. 다른 길드에서 성공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희 길드가 최초로 잡았던 놈이라, 레이드 성공 확률이 가장 높은 거라곤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저희가 잡게 된다면 호박마켓에게 계속 독점 공급하겠다는 거고요. 물론 값을 제대로 쳐준다는 가정 하의 일이겠지만!”

“…….”

사람의 인식과 습관이란 무서운 법.

누구나 한번 익숙해진 단골이 생기면 좀처럼 바꾸지를 않는다.

알바마스터도 전문 장사꾼인 이상, 다른 브랜드화된 상인 길드들의 인지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차별적인 부분이 필요하다고 평소 느껴왔을 것이다.

“분명…… 계속해서 세금을 0%로 유지하실 거라고 하셨죠?”

“저희 버닝스타가 성을 뺏기지 않는 한, 절대 변동 없을 겁니다.”

숨 고를 틈도 없이 몰아붙였던 게 먹혔던 것일까?

마침내 기대해왔던 첫 반응을 이곳 호박마켓의 주인으로부터 듣게 되었다.

“저희 길드가 아베르 성의 최우선 협력 길드로 남을 거고요?”

“후에 얼마나 많은 길드들이 저희 성에 올진 모르겠지만, 과감히 힘든 길을 선택해주신 분께 신의를 지키겠습니다.”

“좋습니다. 저희 길드 산하 모든 장사꾼과, 아는 모든 생산 유저들까지 전부 다 아베르 성에 투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잘 결정하셨습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어려웠던 첫걸음.

하지만 결국 난, 우리 아베르 성을 지킬 기반을 가까스로 마련하게 되었다.

* * *

뭉그적댈 필요가 없었기에 발 빠르게 움직였다.

먼저 현중이에게로 돌아가 남은 용의 부산물을 건네받았다.

-어째 요즘에 줬다 뺏는 경우가 잦아진 것 같다?

-하하! 쏘리쏘리! 어차피 갑옷 한 세트는 완성했잖아. 이번 한번만 좀 봐주라.

-농담이다 자식아. 친구 놈이지만 엄연히 길마님이신데, 길드원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하십쇼!

용의 비늘 12개와 뼈 4개.

‘드라코닉 스케일 갑옷 상의’와 ‘하의’를 만들면 끝날 양이었지만, ‘건틀릿’은 4개나 만들 수 있었다.

나는 곧바로 거래소에 찾아가 제작에 필요한 다른 재료들을 검색했다.

‘제련된 상급 미스릴 주괴’와 ‘빛나는 방어구 제련석’이 5개씩 4세트.

비교적 제작 난이도가 쉬운 장갑이라 그런지, 이외에 크게 특별한 재료 템이 요구되는 건 없었다.

대부분의 유저들은 무기나 방어구 제작 스킬 숙련도를 주괴 제작이나 가죽 연마 같은 단순 노가다 등을 통해 쌓는다.

채집이나 채광 같은 생산 스킬과는 다르게 돈이 꽤 많이 투자되는 셈.

그래서 제련된 주괴나 연마된 가죽 등은, 사실 원재료 상태일 때보다 오히려 더 저렴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래도 숙련도가 높아지기만 하면 이후부턴 대박이니까…… 가장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인 생산 스킬인 거지.’

NPC에게 제작을 맡기면 딱 그 등급에 맞는 템으로만 돌려주는 건 아니었다.

‘대성공’.

일명 ‘크리티컬(critical)’이 운좋게 뜨게 되면, 원래 도안(recipe)에 적혀있던 등급보다 한 단계 높은 등급의 아이템이 떠버리곤 했다.

한데 유저가 제작하는 경우에는 크리티컬이 뜰 확률이 최소 서너 배 이상 더 높았다.

아직 레전더리급 레시피를 익힌 생산 유저가 없어 유저도 디바인급을 제작할 수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니크급을 제작하다 레전더리급이 완성되기도 한다는 사실은 검증된 지 오래였다.

‘비록 유저가 띄우는 경우도 여전히 낮은 확률이란 건 마찬가지지만…….’

몇억을 호가하는 레전더리 템이 계속 찍혀 나온다면 타연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생산 스킬은 대장장이일 터.

허나 실제로 가장 선택률이 낮은 걸 생각해보면 숙련도를 쌓는 게 얼마나 어렵고, ‘크리티컬’이 뜨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알 법했다.

여하튼 그런 건 당장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 곧바로 훼라리를 타고 오스타그로 향했다.

쉭- 쉭-

공간이동술사 없이 가장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데도, 워낙 맵이 넓은 터라 한참을 비행한 후에야 오스타그 상공에 도착했다.

띠링! 띠링!

피닉스가 제국에 항복하며 전쟁 관계가 끝났음에도, 도시가 가까워지자 어그로 감지 효과음이 귓가에 울렸다.

‘역시 여전히 적대 관계구나. 아니, 이제는 수배 중이란 표현이 맞는 건가?’

제국의 귀족 NPC를 미친 듯이 잡은 후폭풍이자 페널티.

타연에서 가장 크고 유저들이 많이 찾는 도시를 이제는 마음대로 이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유저들에게 가장 퀘스트를 많이 주는 곳이기도 했기에, 페널티가 나름 상당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었다.

“라리야! 밑으로 가자!”

몇 번 봤다고 다가오는 제국의 그리폰 라이더들이 전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날아오는 화살들을 피하며 목표로 한 도시 안 건물 지붕까지 도착하자, 훼라리의 소환을 해제시키며 뛰어내렸다.

착!

그리곤 내려서자마자 곧바로 8성 은신을 시전했다.

“굿바이다, 요놈의 비둘기들아!”

하늘을 뒤덮은 족히 3, 40기는 돼 보이는 그리폰들.

조금 전까지 나를 쫓던 놈들이 목표가 사라지자, 제자리에서 잠시 멍 때리다 다시 황궁 쪽으로 돌아갔다.

황궁 안에 들어가야 은신 감지 병사가 있다는 건 이미 지난번에 확인했던바.

황궁 밖 도시 안에선 은신이 있는 도둑에 한해, 방문이 불가능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물론 잠시 한눈팔거나 까닥했다간 죽을 수도 있는 위험이 곳곳에 도사렸지만 말이다.

“부지런한 대장장이의 망치는 식을 새가 없지! 무슨 일로 나를 찾아온 게냐?”

“돈 벌게 해주려고 찾아왔수다 영감님. ‘방어구 제작’ 좀 맡기려고요.”

그리고 내가 찾아온 NPC는 다행히도 제국에 속해있지 않은 드워프.

덕분에 수배 중임에도 이렇게 직접 제작 의뢰를 맡길 수 있었다.

[‘드라코닉 건틀릿’을 선택했습니다. 제작에는 필요한 재료와 12,000골드의 비용이 필요합니다. 의뢰하겠습니까?]

[YES]

[모든 재료를 충족했습니다. 제작을 시작합니다.]

땅! 땅!

인벤토리에서 골드와 재료가 빠져나가자마자, 본인의 거대한 망치를 힘차고 빠르게 두들기는 달켄.

당최 장갑이 모루 위에서, 그것도 망치로 만들어지는 상황이 이해되진 않았지만, 눈앞에서 조금씩 조금씩 모습을 갖춰갔다.

띠링!

[‘드라코닉 건틀릿(레전더리, 장갑)’을 획득했습니다.]

유저도 재료를 손질하는 과정이나 오래 걸리지, 막상 제작 버튼을 누르면 금방 뚝딱 제작해버린다.

NPC는 말할 것도 없어서, 재료를 건네준 지 10초 만에 레전더리 장갑을 건네받았다.

“어? 산드로 님이잖아?”

“뭐야! 진짜네? 여기서 뭐 만들고 계세요?”

가장 큰 대장간에 유명한 NPC 앞이라 그런지, 다른 유저들이 아는 척을 해왔다.

요즘은 어딜 가나 이런 상황이 흔하게 벌어졌기에, 가볍게 대꾸하며 연신 제작 의뢰를 맡겼다.

“아…… 드라코닉 장비 좀 만들 게 있어서요.”

“와! 진짜 대단하세요! 드라코닉 템은 그냥 달켄의 허세용 목록인 줄 알았는데 그걸 만드시다뇨!”

[‘드라코닉 건틀릿(레전더리, 장갑)’을 획득했습니다.]

“근데 조금 전에 성도 드시지 않았어요? 전체 알림창에 뜨시던데…….”

“맞습니다. 이번에 아베르 성을 먹게 됐어요. 노스랜드엔 사냥할 곳도 많으니까 앞으로 자주 찾아와 주세요.”

[‘드라코닉 건틀릿(레전더리, 장갑)’을 획득했습니다.]

“버닝스타는 길드원 충원 안 하시나요? 모집하면 사람들이 엄청 몰릴 텐데요!”

“죄송합니다. 오직 소수 추천제로만 운영하는 길드라서요. 양해 부탁드리겠…… 어?”

번쩍!둘러싼 유저들 사이에서 마지막 4번째 건틀릿 재료를 건네준 순간.

갑자기 달켄의 망치에서 황금빛이 터져 나왔다.

“허허헛! 오랜만에 망치질이 신명 나는구나!”

따당! 따당! 따당!좀 더 빨라지고 묘하게 리드미컬해진 망치질 소리가 대장간에 울려 퍼졌고, 사람들의 탄성이 추임새를 넣었다.

“미쳤다! 크리티컬이야!!”

“뭐? 누구 건데?”

“대박! 산드로 님이 만들고 있는 드라코닉인가 봐!!”

“뭐라고? 말도 안 돼!!”

말이 안 되는 건, 정말 말이 안 나오는 건 당사자인 나였다.

유저도 아닌 NPC에게 제작 의뢰를 맡겼는데…… 대성공이 떴다고?

그것도 원래부터 레전더리로 제작되는 템이?

‘나한테 이런 날이……? 아니, 것보다 설마 디바인급으로 만들어지는 건 아니겠지?’

1시간 같은 10초의 망치질이 끝나고.

간만에 떨리는 심정으로 건틀릿을 건네받았다.

“네 덕분에 평생의 역작을 오늘에서야 만들게 되었구나!! 켈켈!”

<달켄의 드라코닉 건틀릿(레전더리, 장갑)>

* 방어력: 420

* 공격력 +10%

* 공격 속도 +10%

* 공격 시 2%의 확률로 ‘필중’ 발동

* 드래곤 비늘과 뼈로 만들어져 뛰어난 공방 능력을 자랑하는 장갑입니다.

* “진정한 대장장이의 망치는 식을 새가 없지. 하지만 이제 조금은 쉬어도 될 것 같군. 내 두 손으로 이 장갑을 만들게 됐으니! 켈켈!” -은도끼 대장간의 마스터 달켄 실버액스-

안타깝지만 디바인급으로 제작되진 않았다.

하긴 어쩌다 우리 길드에 3개나 들어오긴 했지만, 디바인급 아이템은 오직 단 1개밖에 존재하지 않는 가장 특별한 템.

아쉽긴 했어도 이렇게 네이밍이 붙은 레전더리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래도 좀 전에 뽑은 것과는 급이 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거의 인던 드랍템과 필드 드랍템 수준만큼 차이 나는 것 같아!’

장갑 주제에 인던용 레전더리 갑옷 상의보다 더 높은 방어력을 자랑하는 건 드라코닉 템다웠다.

하지만 이미 인벤토리에 3개나 들어와 있는 그냥 드라코닉 건틀릿과 비교해보니, 기본 스펙이 더 뛰어날 뿐만 아니라 특별한 옵션도 1개 더 붙어있었다.

바로 ‘필중(必中)’ 효과.

상대의 방어력과 회피율을 무시한, 착용자의 ‘트루 데미지(true damage)’가 들어가는 옵션이었다.

“와! 뭐예요! 산드로 님, 설마 디바인 템 만드신 거예요?”

“레전더리 템 의뢰했다 크리 떴다는 얘기는 올타에서도 본 적 없는 망상인데! 이걸 눈앞에서 직접 보게 되다니!”

“아니, 아닙니다. 크리 뜬 건 맞지만 디바인 템으로 만들어지진 않았어요. 그래도 대박이긴 하네요.”

이러려고 달켄을 찾아온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평생템 중 하나를 손에 넣었…… 아니, 착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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