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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139화 (139/350)

139화 실마리 (3)

필드 보스 몹의 종류는 다양하다.

대규모 소환을 하는 놈이 있는가 하면, 하늘을 날아다니는 놈마저 있다.

물론 대부분이 평범한 놈이긴 하지만, 모두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정해진 곳에서 리스폰이 되지 않는다는 점.

일정 지역에서 랜덤으로 리스폰이 되기 때문에, 유저들이 그렇게나 출몰 시간을 철저히 체크하면서 순찰 도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랜덤으로 뜨지 않는 놈은 딱 한 놈밖에 본 적 없어. 그린 드래곤 ‘투 메르타스’! 암만 봐도 이 고르곤이란 녀석이 드래곤에 비빌 급으론 보이지 않아.’

넓은 필드 위에 무작위로 리스폰 돼야 할 놈이 저렇게 꼼짝 못 한 채로 서 있다?

처음 보는 녀석이라 순간적으로 오해했지만, 저건 어떻게 보더라도 누군가가 일부러 ‘가둬’ 놓은 모양새였다.

“크르르…….”

착.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녀석의 머리 위에 위치한 빙하 벽 위까지 다가가도 으르렁대기만 할 뿐 선공해오진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어그로가 끌렸음에도 지형에 가로막혀 공격해오지 ‘못’했다.

“참…… 암만 봐도 참 기가 막히는구나. 어떤 식으로 겜을 해왔길래 이런 발상이 가능한 거야? 보스 몹을 특정 지형에 가두고 몹들로 막아둬서, 유저들이 존재 자체도 모르게 만들다니? 운영자도 이렇게 된 걸 모르고 있었나?”

맵의 끝자락이라 원래 고르곤이라는 보스 몹이 있다는 걸 발견하지 못했을 수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다리우스가 선행 퀘스트를 해서 뒤늦게야 활성화되어 나타난 놈일 수도 있다.

하지만 뭐가 됐든지 간에 지금껏 고르곤이라는 보스 몹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적이지만 태성에 대한 존경심이 들 정도였다.

도닥통으로부터 시공의 틈새라는 곳에 대해 들은 지도 벌써 보름여.

그러니 놈들은 최소한 한 달 가까이 이 보스 몹의 존재를 숨기는 데 성공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했다.

무려 타연 전 서버의 유저들을 대상으로!

“혼자 잡을 만하려나?”

이곳은 현중이와 라챤이가 있는 빙벽 입구에서도 한참을 들어와야 도달할 수 있는 곳.

도중에는 각종 몹들이 알차게도 들어차 있었다.

둘뿐만 아니라 전 길드원을 부른다 하더라도, 입구부터 차근차근 뚫어가며 도착하기엔 반나절은 족히 걸릴 정도.

“아까 태성 놈들을 죽여서 내가 이곳에 왔다는 게 알려졌을 테니…… 꾸물대다간 앞뒤로 막힌 상태로 뒤치기 당할지도 몰라.”

루이투스와 훼라리 소환이 안 되는 상황에서 대규모 뒤치기를 당하게 된다?

오히려 몹들에게 수십 겹 쌓여 있는 지금이, 더 안전하게 고르곤 레이드를 진행할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몰랐다.

마음을 굳힌 나는 길드 채팅창에 글을 남겼다.

[산드로: 고르곤 발견했어요. 축굴아, 라챤아. 일단 나 혼자 잡아볼 테니까 태성 놈들이 오는지 순찰 좀 돌고 있어 줘! 눈에 띄면 바로 얘기해주고!]

[라스트챤스: 형님! 혼자서 잡으려고요? 무리 아니겠어요? 저희랑 함께 잡으시죠?]

[산드로: 아냐. 일단 한번 해보고 안 되면 전부를 부르든가 할게!]

새로 마쉴 도둑을 키우며 오크 로드의 목걸이와 마나 흡수 반지까지 얻은 후.

난 내가 타연에 두 번 다시 나오기 힘든 사기 캐릭이 되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꾸준히 강해지던 내가, 또다시 ‘퀀텀 점프’라고 말할 만큼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낸 것.

그건 바로 ‘샤크 투 메르타스’라는 용살검을 얻어 이도류를 들게 된 순간이었다.

* 암 속성 몬스터 및 악마 계열, 언데드 몬스터에게 물리 데미지 +4840(+968)

* 모든 종류의 대형 몬스터에게 물리 데미지 +2280

* 동일 대상을 상대로 공격 시마다 추가 데미지 +10%(최대 100%까지 누적)

디바인 무기다운 두 검의 미친 옵션 덕분에, 혼자서도 충분히 랭커급 딜러 10명과 맞먹을 데미지를 줄 자신이 들었다.

차분히 자버프부터 시전한 난, 땅을 박차 녀석의 뿔 달린 머리 위로 착지했다.

“크르륵! 크릉, 크르르!“

『이곳은 대체 어디란 말인가! 마계도, 비옥한 중간계도 아닌 곳을, 난 왜 헤매고 있는 거냐!』

지옥의 사자와도 같은 놈의 그로울링(growling).

그와 함께, 마치 누가 같은 목소리로 통역하는 것마냥 녀석의 말이 번역되어 들려왔다.

나름 마계에서도 대화가 가능한, ‘격’이 있는 몬스터라는 증거.

과연 네임드 보스 몹다웠다.

“알겠으니 그만 여기서 풀어주마!”

[연속 베기!]

챙!

검은 강철로 이루어진 녀석의 목덜미에 검을 쑤셔 넣자, 금속음과 함께 불꽃이 튀겼다.

하지만 시각적으로만 그런 것.

무려 신검과 용살검으로 공격하는 건데, 검이 막혔다고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을 리 없었다.

역시나 눈곱만큼이긴 해도, 녀석의 네임바 체력이 벌써부터 깎여나가는 게 보였다.

‘진짜 개사기 캐릭이 돼버렸네……. 암만 그래도 네임드 보스인데, 피가 뭐가 이리 잘 빠지냐!’

[마나 쉴드가 3,211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

[마나 쉴드가 5,588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

……………………

지형 덕분에 네 발로 서 있는 고르곤의 등 위로 쉽게 올라탔지만, 놈이 반격할 수단이 없는 건 아니었다.

몸을 감싸고 있던 강철 껍질이 일정 간격으로 총알처럼 쏘아졌고, 긴 꼬리는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내가 서 있는 자리를 강타했다.

허나 녀석의 가장 강력한 공격 수단으로 보이는 ‘물어뜯기’와 ‘발굽’ 공격.

그리고 거친 입김을 토하며 돌진을 준비하는 자세, 나름의 차징 모션 후에 이어지는 저돌적인 ‘몸통 박치기’는 전혀 겁내지 않아도 되었다.

쾅! 쾅!

녀석이 크레바스 사이에 딱 맞게 끼인 상태라, 애꿎은 빙벽만 들이박고 있었기 때문.

덕분에 난 등 위에서 비교적 편안하게 딜을 먹일 수 있었다.

“쉽구나, 쉬워! MP가 도무지 닳지를 않아!”

강철로 이루어진 우락부락한 등 근육.

게다가 잠시도 쉬지 않고 돌진을 반복하며 들썩이는 탓에, 원래라면 로데오(rodeo)를 하는 것처럼 유저가 계속 등 위에 서 있긴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난 벽도 거꾸로 내달릴 수 있는 ‘대도 부츠’를 신은 상태.

덕분에 재빠른 몸놀림과 약점 포착 버프를 돌려가며, 많고 많은 놈의 HP를 꾸준히 소진시킬 수 있었다.

[마나 쉴드가 4,232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

[마나 쉴드가 812의 마법 피해를 흡수합니다.]

……………………

[상태 이상 ‘석화’에 저항합니다.]

반 피 이상이 빠진 페이즈부터는, 녀석으로부터 특별한 공격이 들어오기도 했다.

마치 사전 경고라도 하듯 검붉은 두 눈이 경광등처럼 빛나면, 곧바로 고유 스킬로 보이는 ‘석화’ 브레스를 쏟아냈던 것이다.

근 15초마다 광역 석화가 시전되는 미친 패턴.

하지만 이 말도 안 되는 패턴도 ‘더 미친’ 마법 방어력 앞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수십 번의 석화 공격이 반복됐지만, 단 한 차례도 허용하지 않고 전부 다 저항해버린 것이다.

쾅! 쾅!

여전히 벽이 부서져라 맹렬히 들이받는 고르곤의 모습.

노스랜드는 몹도 많은 필드였으니, 어쩌면 오크 로드를 잡을 때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필요했을지도 몰랐다.

‘석화 상태에 빠진 뒤에 저런 후속 연계를 맞았다면, 상당히 레이드하기 까다로운 보스 몹이었을 거야. 광역 석화를 쓰는 놈이라 다수의 고레벨 유저와 조합이 필요했을 테고…….’

하지만 어찌 됐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

굳이 길드원들을 부르지 않고 혼자 레이드를 트라이한 건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다.

부하를 소환하는 타입도 아니었던 터라, 네임드 보스 몹치곤 혼자 잡기에 이보다 더 최적화된 놈을 찾아보기 힘들어 보일 정도였으니.

‘그러고 보니 이런 기회는 흔치 않은데…… 태성이 차려둔 밥상에 어디 한번 숟가락 좀 얹어볼까?’

내 인벤토리에는 무게를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혹시 몰라 항상 넣고 다니는 아이템들이 여럿 있다.

타이탄 소환을 위한 빛나는 마력석, 각종 버프 효과를 주는 주문서와 음식들.

그중 ‘구속의 숨결’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한가지였다.

20%, 15%, 12%, 9%!

어느덧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인 고르곤의 체력이 10% 이하로 떨어지자, 오랜만에 회심의 스킬을 시전해 보았다.

[대상을 향해 ‘구속의 숨결(4)’을 사용하여 테이밍을 시도합니다.]

“하하핫! 성공만 한다면 훼라리를 뛰어넘는 역대급 펫이 탄생하겠구나!“

몇 가지 특수한 조건이 겹쳐져 생기게 된 테이밍 찬스!

거기에 혼자서 대상의 HP를 10% 이하까지 떨어뜨리고, 캐스팅 시간 10초를 오롯이 버텨내야 하는 특수 조건마저 완벽히 충족시킨 상태였다.

테이밍 몬스터 스킬은 무리 없이 시전되었고, 10초간 마나를 흡수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MP는 50% 밑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팅!

[대상이 이름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테이밍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너무 날로 먹으려 했던 걸까?

내 바람은 그저 바람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젠장! 애초에 안 되는 놈이면 시전도 안 되게 만들든가! 어쩐지 펫 슬롯이 다 차 있는데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어차피 이곳에 오기 전까지 고르곤을 테이밍하겠단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아쉬움을 접고 다시금 공격에 집중하자, HP가 얼마 남지 않던 녀석은 곧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크릉…… 크르르…….”

『고향…… 땅으로…….』

쿵!

[고르곤의 뿔(퀘스트 아이템)을 획득했습니다.]

[업적 ‘괴수 사냥꾼’을 획득했습니다.]

[업적 ‘무모한 도전’을 획득했습니다.]

……………………

모로 쓰러지는 고르곤.

워낙 좁은 곳이라 발 디딜 곳 없을 정도로 꽉 차버렸던 크레바스가, 시체가 사라지자 텅 비워졌다.

그리고 그곳엔 네임드 필드 보스를 잡은 것답게, 드랍 아이템들이 수북이 남겨져 있었다.

[축복받은무빙: 갑자기 길드 업적치 20만 늘어난 거 뭐야? 드로야, 너 설마 벌써 고르곤을 잡아버린 거야?]

[축복받은파볼: 뭐어!!? 미쳤네 진짜! 클래스 어쩔 거야 너~]

[산드로: 네ㅎㅎ 마계 몹이라 그런가 생각보다는 간단했네요. 제가 또 놈들의 완전 상성캐잖아요^^]

아이템을 주우면서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새삼 놀라운 건 나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필드 난이도와 상대하면서 느낀 레벨 등으로 예상해 볼 때, 고르곤은 줌바카와 비슷하거나 근소하게나마 더 강한 몬스터 같았다.

‘그런 놈을 혼자서…… 그것도 타이탄 소환 없이 손쉽게 잡아버리다니……!’

직업과 테크트리, 템 상성 등을 활용하면 적수가 될 유저들이 있을 순 있다.

하지만 보스 몹을 상대로 이런 일이 가능할 유저는, 아무리 봐도 나 말고 또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솔플로 네임드 보스를 잡은 위업에 대한 감상은 이쯤에서 끝내고, 먹은 아이템들을 살펴보았다.

<고르곤의 비늘>

<고르곤의 꼬리>

<고르곤의 숨결>

……………………

이 외에도 수십 개의 빛나는 무기 강화석 등이 있었지만, 주 드랍 템은 녀석의 몸에서 나온 제작 재료 템이었다.

그중에는 처음 보는 형태의 특별한 아이템도 하나 있었다.

<고르곤의 숨결(레전더리, 특수 아이템)>

* 마계의 마수 고르곤의 숨결이 담겨 있는 마석입니다.

* 사용 시, 주변 10m 안에 있는 모든 대상을 석화 상태로 빠뜨립니다. (사용 가능횟수: 3회)

“와! 이거 개사기 템이네! 비록 세 번 쓰면 끝나는 소모템이긴 하지만 광역 석화를 쓸 수 있는 템이라니! 장비도 아니라서 자리도 차지하지 않네!”

뭔가 녀석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템 중에 가장 좋은.

결코 쉽게 얻기 힘든 초희귀 템을, 운 좋게 단번에 얻은 느낌이었다.

[축복받은얼굴: 뭐 하는데 이렇게 조용해? 빨리 말해 봐. 어떻게 됐어, 떴어?]

[산드로: 어. 뭔지 모르겠지만, 곧 시공의 틈새로 가는 방법을 찾을 순 있을 것 같다.]

그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았지만, 그래도 인벤토리 창의 가장 마지막 칸에 자리 잡은 아이템만큼은 아니었다.

<부서진 귀환석(퀘스트 아이템)>

* 어디론가 향하는 귀환 마법진이 새겨진, 정체를 알 수 없는 돌입니다.

* 현재 사용 불가 상태(!)

스토리상 마계에서 중간계를 침공해왔다면, 분명 그들이 돌아갈 방법도 있었을 터.

고르곤이 돌아가지 못하고 배회하게 된 배경에는, 이 ‘귀환석’이란 템에 문제가 생겨서 그랬는지도 몰랐다.

‘그런 것까지는 스토리 좋아하는 타연 분석러들이나 신경 쓰라고 하고…… 아무튼 간에 이게 분명히 맞겠지?’

어쩌다 다리우스가 마계도 아닌 시공의 틈새로 가게 됐나 했는데, 이 돌의 설명을 읽어보니 감이 왔다.

이제 이 돌에 얽힌 퀘스트만 깨게 된다면…… 다시금 녀석과 조우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불운하게도 내가 노스랜드에 온 사실을 조금 전 알게 됐으니, 미리 그곳에서 도망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과연 그 최고의 필드 사냥터는 누구 몫이 돼버릴까?

‘박태후……. 네가 있는 그곳에 금방 찾아가 줄게. 근데 안타깝게도 네가 그곳을 포기했다면? 그럼 하는 수 없겠지. 그 꿀 사냥터를 통해 랭킹 1위 자리는 내가 접수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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