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142화 (142/350)

142화 추적 (3)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됐어요. 혹시라도 이곳에 있다가 태성 놈들이 다시 찾아오면, 귓말 좀 주세요. 그러면 이번처럼 꼭 보답하겠습니다.”

“아니, 이렇게 비싼 걸……!”

빛나는 무기 강화석.

좋은 정보를 나눠준 대가로 각각 하나씩 건네주자, 두 사람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이 준 정보에 비하자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어쩐지 여기 넘어오자마자 뭔가 분주해 보인다 했다!’

놈들이 이런 방식으로 나를 방해할 줄 몰랐지만 이로써 확실해진 게 몇 가지 있었다.

이곳 로낙쏜의 클랜 마스터가 바로 시공의 틈새로 향하는 키 NPC라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드워프들과 전쟁을 벌여서라도 다리우스가 시공의 틈새를 포기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산드로: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니, 시공의 틈새에 뭔가 있는 모양이에요. 죽어도 그곳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네요.]

[축복받은얼굴: 그곳에 꿀단지라도 발라놨나?]

[라스트챤스: 꿀단지라니.... 부디 저 아재를 용서해 주소서.....!]

[축복받은무빙: 무슨 일인데 그래? 잘 안됐어?]

[산드로: 태성 놈들이 제가 만나려고 했던 NPC들을 다 죽여버렸네요. 저희가 도착하기 전에 전쟁까지 걸어서요.]

[축복받은파볼: 뭐?? 무슨 그딴 자식들이 다 있엉!!]

나 또한 비슷한 일을, 심지어 먼저 했던 터라 욕이 나오진 않았다.

그저 녀석들의 발 빠름에 감탄했을 뿐.

‘역시 세상은 내 생각대로만 돌아가진 않아…….’

하지만 그 점이야말로, 다른 게임들과 달리 내가 타연에 계속 ‘재미’를 느끼는 부분이기도 했다.

“아쉽지만 그만 돌아가죠. 저번처럼 이번 NPC들도, 길어봤자 하루면 부활해 있을 거예요.”

“…….”

“당당검 님?”

“뭔가 이상하단 생각이 드네요. 하루면 복구될 NPC들을 죽이자고 이런 일을 벌였다니……. 시공의 틈새 안에서 절대 뺏겨선 안 되는 뭔가의 퍼스트 클리어를 노리는 걸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설마……?”

“설마라니, 뭐가요?”

“아닙니다. 부활하든 부활하지 않든, 내일이 되면 그 의미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죠. 그럼 전 이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당당검은 재빠른 몸놀림을 쓰고 공간이동술사를 향해 뛰어갔다.

“놈들이 이렇게까지 나를 막으려 들었는데, 다른 곳에서 퀘스트를 찾을 필욘 없겠지. 다들 수고했다. 이만 레벨업하러들 가 봐.”

“그래. 뭐가 됐든 이곳이 정답인 거 같으니까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겠네. 난 이만 성 전용 사냥터로 가야겠다. 라챤아 같이 사냥할래?”

“좋죠! 형님, 저흰 이만 가보겠습니다!”

티격태격하면서도 길드 내에서 죽이 가장 잘 맞는 콤비가 된 둘.

새로 찾아낸 우리 성의 인던을 향해 귀환 주문서를 사용해 떠나갔다.

‘타연 최강의 탱커와 최고의 원딜러 조합이라……. 날 버리고 라챤이로 갈아탈 만한 조합이긴 하네. 그나저나 라챤이는 현중이를 히든캬드처럼 잘 따르는 모양이네…….’

문득 처음 라챤이를 봤을 때, 유독 같은 길드의 형을 잘 따르던 모습이 오버랩됐다.

미접속한 지도 한참이 되어, 성기사 랭킹 1위에서 어느덧 랭킹 밖으로 밀려난 히든캬드.

그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되는 일이 없으니 괜스레 잡생각만 많아지는구나! 나도 얼른 사냥이나 가야겠다. 이것저것 신경 쓰느라 며칠 동안 사냥을 제대로 못 했네!”

몸이 둘이라도 모자란 요즘.

짬이 생겼으니, 잡생각도 떨쳐버릴 겸 쉴 새 없이 검을 휘두를 차례였다.

* * *

『최근 버닝스타가 점령한 마지막 성, 아베르로 향하는 유저들의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는데요. 양민아 앵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계기는 상인 길드 연합 중 하나로 유명한 ‘호박마켓’ 길드의 이전이었습니다. 대형 장사꾼 길드 중 한 곳인 호박이 아베르 성에 정식으로 개점하자, 많은 장사꾼 유저들이 따라서 이전했는데요. 사실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베르 성은 타연 최초로 세금 0% 지역으로 운영하겠다는 버닝스타의 선포가 있었거든요!』

『오, 그거 정말 놀라운 소식이군요! 세금을 그렇게 운영하면 어렵게 성을 먹은 보람이 없을 텐데, 버닝스타 길드가 정말 대단한 결심을 한 모양입니다.』

“어라? 아베르 성 뉴스가 나오네? 근데 방송에 우리 얘기가 나오는 걸 보는 게 왜 이렇게 적응이 안 되고 어색하냐?”

“……석용 아재가 힘 좀 썼나 보다. 귓말로 우리 얘길 뉴스거리로 사용해 보시라고 제보해 뒀었거든. 덕분에 광고 효과 좀 보겠어.”

“햐…… 이 자식, 이젠 노는 물이 정말 한참 달라지긴 달라졌구나! 석용 아재한테 다이렉트 귓말이라니!”

“형님이 누구냐? 그 유명한 스페셜 원 아니겠냐?”

생산 유저들이 하나둘씩 넘어오자, 덩달아 새로운 사냥터를 찾아오는 이들도 늘어나던 참이었다.

한데 그게 더욱 가속화되게 할,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뉴스였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그러하듯, 나쁜 소식이 연달아 들려왔다.

『다음 소식입니다. 벌써 로낙쏜의 클랜 마스터들이 사라진 지도 3일이 흘렀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하늘 산맥 지역 유저들의 원성이 자자한데요. 도대체 태성 길드는 왜 이런 짓을 벌인 거고, 그들이 부활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튿날까지만 해도 태성이 잠복하고 있다가, 마스터들이 부활하자마자 죽인 게 아니겠느냔 추측이 돌곤 했었죠. 한데 부활만을 기다리며 상주하는 유저들로 인해 그게 아니란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일루전에도 문의를 해보았으나, 아직 정식으로 답변받은 건 없다고 하군요.』

“아무래도 안 되겠다……. 부활할 놈들이라면 진작에 하지 않았겠어? 어제부로 다리우스가 다시 통합 랭킹 1위를 재탈환했는데, 더 이상은 못 기다려!”

“다른 뾰족한 방법이라도 있냐? 방송에도 나올 일인데 네가 무슨 수가 있다고?”

“제국에서 죽은 놈들, 심지어 마탑주 같은 고위 NPC도 잡히자마자 임시 점검 한 번에 바로 살아났었잖아! 근데 왜 우리 드워프 자식들만 부활이 안 되고 있는 거냐고!”

“그러고 보니 점검을 하지 않아서 그러는 거 아냐? 그럼 설마 다음 정기 점검 때나 돼야 퀘스트를 할 수 있다는 소리?”

지금처럼 함께 TV를 볼 사람이 생겼다는 건 나름 괜찮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불평을 토로할 일도 늘어났다는 건, 정신 건강에 오히려 악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됐다! 밥 먹고 쉴 만큼 쉬었으니, 들어가서 이것부터 해결해봐야겠다. 어련히 되겠거니 놔뒀더니만 더는 못 참겠어. 너도 더 놀지 말고, 얼른 접속해서 뭐라도 해라.”

“어떻게 해결하려고? 무슨 수로?”

“만나봐야지. 이걸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을!”

전에 한 번 스치듯 만났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인연.

아직 뭔가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어 내심 경계하고 있던 그녀를, 다시 만나볼 순간이 다가왔다.

* * *

“안녕하세요, 지옥불 님. 오랜만에 뵙네요. 그동안 잘 지내고 계셨었죠?”

“반갑습니다, 산드로 님. 저야 늘 정신없이 지내고 있었지요.”

접속하자마자 지옥불이 접속해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귓속말을 넣어, 사냥 중이던 칼젠 성으로 와 단둘이 작은 서재에 들어왔다.

“그나저나 어떤 일 때문에 그러신 건지……?”

“다름 아니라 지옥불 님의 도움이 좀 필요해서 찾아왔습니다. 혼자서 해결해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알게 모르게 그에게 너무 많이 의지하는 것 같아서…….

요즘은 의식적으로 우리 버닝스타 길드원들에게만 도움을 요청했다.

그래서 지난 공성전과 시공의 틈새를 찾는 일 등을 모르고 있던 지옥불에게, 그동안 내게 있었던 일들을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안 그래도 태성이 로낙쏜의 NPC들을 죽였다는 소식은 전해 들었습니다. 업적이나 아이템과 관련된 일인 줄 알았는데, 산드로 님을 견제하기 위해 그랬던 것이군요.”

“혹시 제가 저번에 부탁드렸던 운영자와 태성 간의 유착 관계에 대해 알아내신 게 있으신가요? 아무래도 이번 일도 그 일의 연장선이 아닌가 싶어서요.”

“예? 그건 또 무슨……?”

“시공의 틈새로 들어가는 법을 찾아놨더니, 제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일부러 시간을 끄는 느낌이 듭니다. 그렇게나 빨리 부활시켰던 제국의 NPC들과 달리, 3일이 넘도록 클랜 마스터들이 부활하지 않는다는 게 너무 이상하지 않나요?”

“듣고 보니 그렇군요. 저희 같은 공성쟁이들이야 그런 NPC가 있든 말든 상관없겠지만, 일반 유저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테니……. 그렇다면 저를 찾아오신 이유는 역시?”

“네. 테오시스를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혹시 무슨 방법이라도 없을까요?”

“운영자와 단둘이 만나고 싶다라…….”

무리한 부탁일 수 있었다.

아니, 분명 무리한 부탁이었다.

하지만 타연 개발 발표회에도 초청될 정도로 게임업계에 오래 몸담으며 쌓아온 인맥.

그리고 이미 십수 년 전부터 실제 알고 지냈던 사이였다는 테오시스와는, 그만이 가진 연락 수단이 있을지도 몰랐다.

내 그런 예측은 비록 빗나가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를 찾아온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

“사실 그동안은 별다른 연락 수단이 없긴 했습니다. 타연이 특정 유저들에게 특혜를 베푸는 그런 게임은 또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정말 공교롭게도 얼마 전 제게 그런 특혜가 주어지게 됐습니다. 유저지만 국왕이 됐다는, 그 이유로 말이지요.”

“오, 잘됐네요! 하긴 단 세 명뿐인 국왕이라면 운영자에게 건의할 수 있는 핫라인 정도는 있어야 정상이겠죠!”

“바로 한번 불러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태성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아직은 내비치지 말도록 유의해 주시지요. 그들에게 미리 경고해줄 필요는 없으니까요.”

“……알겠습니다.”

확실히 연륜이 있어 그런지 조심성이 철저한 지옥불.

그가 인벤토리 안에서 뭔가 특별해 보이는 피리를 꺼내어 불었다.

특이하게도 한참을 불어도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곧 우리 앞에 누군가가 순간이동으로 스르륵 나타났다.

보라색 숏커트가 잘 어울리는 그녀, 다름 아닌 테오시스였다.

“어라? 이거 무슨 기시감이 드는 것 같은데 저만의 착각인가요? 오랜만에 다시 뵙는데 지옥불 님과 신드로 님이 또다시 함께 계시다뇨?”

“안녕하세요, 테오시스 님. 바로 응답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에 본 것과 조금도 달라진 게 없는, 하이 텐션이 여전한 그녀는 역시나 공적인 모습과는 다르게 프리한 말투로 대꾸해왔다.

“어쩐지 저를 왜 부르셨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네요? 저한테 볼일이 있으신 거죠, 산드로 님?”

“잘 알고 계신 것 같으니 바로 말씀드리죠. 도대체 왜 로낙쏜의 NPC들이 부활하지 않는 건가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문의드렸는데 오늘에서야 정상이라는 이상한 답변이 오더군요. 제가 보기엔 한참이나 비정상인 것 같은데 말이죠.”

“안 그래도 그와 관련된 보고를 진작 받기는 했답니다. 그리고 확인해본 결과, 게임상으로는 아무런 문제점도 발견하지 못했어요. 산드로 님의 사례는, 악용으로 인한 긴급 패치의 중요성이 시급했기에 서버 리셋을 통해 빠르게 부활했던 거랍니다. 당시 제국과 전쟁 상태인 유저들이 워낙 많았잖아요?”

이래서야 그녀를 어렵사리 직접 만난 의미가 없었다.

다리우스 놈은 지금 이 순간에도 꿀을 빨며 강해지고 있는데, 다음 정기 점검 때까지 기다릴 여유는 없었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진 않았는데…… 아무리 봐도 일루전이 태성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소문은 사실인가 보군요?”

“뭐라고 하셨습니까? 저희가 누구 뒤를 봐주고 있다고요?”

“사, 산드로 님!”

옆에서 나를 저지하는 지옥불의 외침이 무색하게도, 순간적으로 표정을 굳히며 정색하는 테오시스.

눈 깜짝할 사이에 돌변한 그녀의 기색 때문인지, 신기하게도 실내임에도 불구하고 세찬 바람이 불어닥쳐 방안이 온통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제가 틀린 말을 했습니까?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지난 다리우스와의 전투에서 그가 실언했던 내용에 대해서요. 분명 그는 신검을 미리 뽑을 걸 알고 있었다고 밝혔죠!”

“…….”

“그뿐만인가요? 노스랜드의 고르곤은 왜 꼼짝도 못 하고 갇혀 있었고, 몹들은 자기가 리스폰된 장소로 돌아가지 않았던 건가요? 하필 시공의 틈새로 향하는 퀘스트 NPC는 한 번 죽었더니 도무지 부활할 생각을 하지 않는 건데요? 누가 봐도 타연에서 태성 길드만이 편파적인 수준으로 게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진 않습니까?”

폭포수처럼 쏟아진 내 비난과 원성.

차분히 듣고만 있던 그녀의 심정에 변화가 있었는지, 돌풍이 차츰 잦아들었다.

“억측이고 사실이 아닙니다. 다리우스 님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이유로 일부로 거짓을 말했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겠죠. 노스랜드 건은 저도 알아봐야 할 것 같은데, 태성 길드는 예전부터 상당히 기발한 방식으로 레이드에 성공하거나 난관을 헤쳐 나가곤 했습니다. 마치 산드로 님, 당신처럼요.”

“뭐라 말씀하셔도 전 이미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을 꺼낸 이유도 다름이 아닙니다. 전 당신이 아닌, 다른 운영자가 놈들의 배후에 있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죠.”

“……네?”

“이오네스. 그 사람이 태성과 붙어먹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와 관련된 내용을 저희에게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그걸 여쭙고자 이렇게 직접 찾아뵙길 원했습니다.”

“당신이 뭔데 그런 소리를 태연하게 말하는 겁니까?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이오네스 님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의심하는 거고요!”

“그건 제가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그 순간.

서재의 문이 열리며 또 한 명의 유저가 은신을 풀며 들어왔다.

“시, 시혁 군……?”

그는 다름 아닌 당근당근단검.

‘젠티스’라는 이름을 가진 운영자이자 타연 개발의 총괄 디렉터.

일루전의 부사장이 되기도 했던 ‘장현수’의, 하나뿐인 혼외(婚外) 자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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