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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147화 (147/350)

147화 킹 슬레이어 (2)

디버프 효과가 적용되어 살짝 서리가 껴버린 데이네스.

물론 원래 감소 효과인 50%가 전부 들어가는 건 아니었다.

사전에 확인해 둔 바, 타이탄에는 보스 몹과 마찬가지로 절반인 25%만 적용되었다.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고도 남지!’

타이탄은 6미터의 크기답게 보폭이 큰 터라 유저들보다 빠르다.

하지만 25%의 이속 감소만 걸려도 전진기와 이속 버프를 쓴 유저들에게 따라잡힐 수준으로 떨어진다.

놈이 절망의 울림을 쿨타임마다 쓴다 하더라도 잡을 자신이 있던 이유였다.

“두 번이나 널 놓쳤는데, 오늘 그냥 왔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닥쳐! 고작 이 정도로 내 발길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냐!”

“응. 충분히 그럴 것 같은데?”

풀버프 상태로 데이네스의 등을 미친 듯이 찌르면서, 다리우스의 염장도 함께 질러 주는 걸 잊지 않았다.

픽! 픽! 퍼펑!

널찍한 타이탄의 등판 위로 화살과 파이어 볼도 계속해서 날아왔다.

와순이에 함께 탄 라챤이와 축볼 누님.

타이탄에게 어지간한 디버프는 의미없다는 걸 아는 두 사람은, 오직 최고의 DPS를 내기 위해 최선의 딜사이클을 돌리고 있었다.

쿵, 쿵, 쿵, 쾅!

그리고 마침내 레벤다스가 도달했다.

“쉴드 어택!”

타이탄, 심지어 초월종이라는 드래곤마저 기절시키는 세계관 최강의 스턴 기술.

그에 맞은 데이네스가 달리던 와중에 땅에 못 박힌 듯 멈춰서 버렸다.

“우리 애들은 뭐 하는 거냐! 어떻게 이런 잡놈들이 따라잡는 거 하나를 못 막아!!”

“자꾸 소리만 지르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 너도 이젠 가망 없다는 걸 눈치챘을 거 아냐?”

녀석의 부르짖음에도 나머지 태성 길드원들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악마 군단장과 심연의 몹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탓?

물론 그것도 한몫했지만, 우리가 사전에 계획했던 역할 분배가 완벽했던 게 더욱 큰 이유였다.

<강화된 가이라 나이츠>

축빙 형님이 소유한 우리 길드의 3번째 타이탄.

슬쩍 고개만 돌려 뒤쪽을 바라보니, 두터운 외장갑으로 둘러싸인 타이탄 한 기가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보였다.

일도양단이 소환한 타이탄은 진작 역소환됐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새롭게 나타난 할버드와 창을 든 타이탄 2기를 외로이 막아내고 있었다.

다리우스를 잡는데 딱히 힐러의 역할은 필요하지 않았기에, 진작부터 형님은 만약 놈들에게 다른 타이탄이 있다면 자신이 막아서겠다고 자처해왔다.

-죽는 걸 직접 못 보는 건 아쉽지만, 막자 역할을 하는 것도 나름 재밌는 일이겠지!

그 외 타이탄이 없는 다른 랭커 유저들은, 몹들의 어그로가 집중된 녀석부터 적절하게 공격하는 당당검에 의해 통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완벽해. 오늘 이 자식을 죽이지 못한다면…… 다시는 죽일 기회가 없을 정도로!’

여러모로 최적의 조건들이 갖춰져 있었다.

귀환 주문서와 고도 비행이 불가한, 몹들로 가득 차 있는 필드.

덕분에 녀석의 퇴로는 차단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녀석의 자랑이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수많은 태성 길드원들 또한, 이곳엔 얼마 넘어오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이 시공의 틈새라는 필드를 독차지하겠다는 녀석의 욕심.

그게 없었다면 이렇게 완벽한 상황은 다신 갖춰지기 힘들었다.

그러니 오늘 녀석은 반드시 내 손에 죽게 된다.

이래도 못 죽인다면 더는 복수한답시고 떠벌이지 못하리라!

“절망의 울림!”

녀석이 또다시 쿨타임이 돌아온 고유의 전진기를 사용했다.

덩달아 매달려있던 나도 순식간에 솟구치는 바람에 자세가 흐트러졌다.

다른 유저였다면 자세 걱정은커녕 진작에 떨어졌을 일.

이럴 걸 대비해서 대도 부츠를 구한 건 아니지만 정말이지 유용하게 잘 쓰이고 있었다.

“발버둥 쳐도 소용없어. 넌 오늘 여기서 무조건 죽는다!”

“대체 왜 이렇게 내게 집착하는 거냐! 고작 게임 속에서 원한 살 짓 좀 했다고 이렇게까지 한다고?”

잠시 점프로 인해 둘만 남겨진 사이.

녀석과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됐다.

하긴 서로 귓속말을 차단한 사이라 이렇게밖에 시간이 나지 않기는 했다.

“아직도 고작 그것뿐만이라고 생각해? 평소 네가 해왔던 만행들이 기억 안 나나 보지?”

하지만 서로 죽이고 죽을 사이에 불필요한 대화는 사치.

비록 게임이라 할지라도 전투 중에는 검으로 대화를 나누는 게 맞았다.

‘로드급 타이탄이라 그런지, 몸빵 하나는 기가 막히는구나.’

타이탄 킬러라고 불릴 만큼…….

대(對)타이탄전에 특화된 내 공격력은, 이미 상식을 초월한 수준이었다.

실제로 NPC나 유저가 탔던 솔저급 타이탄들은, 내 공격력 아래 1분 이상 버티는 놈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로드급은 솔저급에 비해 체력도 4배가량 될 뿐만 아니라 방어력도 두 배 이상 높았다.

‘그간 공성전에서 수십, 수백 명에게 집중 공격을 받는 입장이라 체감하지 못했는데…….’

역시 로드급 타이탄!

지금같이 소수의 유저를 상대하는 동안만큼은 가히 ‘무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놈이었다.

“크릉! 크릉!”

하지만 무적도 다른 ‘무적’과 만나니 의미가 퇘색됐다.

땅에 내려오자마자 뒤따라온 램보가 다시 이속을 저하시켰고, 그 사이 레벤다스도 금세 따라붙어 공격을 재개했다.

또한 타연 최강을 자처해도 될 원딜러 2명이, 와이번을 탄 채로 마음껏 프리 딜을 먹이고 있었다.

반면 녀석은 어떠한 반격은커녕 그럴 정신도 없었다.

그저 타이탄의 체력이 다 닳기 전, 어떻게든 자신의 포탈로 돌아가고 싶어 할 뿐.

이 커다랗고 막강한 최강의 타이탄이, 졸지에 훈련소의 허수아비가 돼버린 셈이었다.

어느덧 심연의 몹도 몇 마리 어그로가 끌려 다가왔다.

그리곤 고맙게도 우리와 함께 데이네스의 체력을 깎는 데 합세해 주었다.

“내, 내가 다 잘못했다! 잘못했으니 이번 한 번만 눈감고 넘어가 줘라!”

“……뭐라고?”

“너희들한테 했던 모든 것들을 잘못했다고! 용서해 줄 순 없겠나!”

설마 천하의 다리우스가 이따위 꼬락서니라니…….

그간 수많은 사람과 우리 앞에서 무게를 잡아 왔던 놈이, 정말 이 안에 있는 게 맞는 건가?

“추한 꼴 보이지 말고…… 그냥 조용히 죽어라. 게임하다 보면 한 번쯤은 누구나 죽을 수 있는 거잖아?”

“산드로! 내가 그땐 미안했다. 원래 그렇게까진 하지 않는데 그날은 대관식이라 예민한 상태였어! 세인트 길드 여러분께도 사죄하겠습니다. 이번만 봐주시면 다시는 척살 같은 건 하지 않겠습니다!”

“그만 좀 추해지라고 내가 말했지!!”

이번엔 정말 죽는다는 것이 실감 났는지…….

아니면 부하들과 멀리 떨어진 채 혼자 남겨져서, 쓰고 있던 가면을 거리낌 없이 벗어던질 수 있던 것인지…….

그간 무한 필드전을 벌이며 태성 놈들을 수도 없이 죽여 왔지만, 죽음 앞에 이토록 비굴하게 굴었던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는 내게 몇 번이나 죽었던 일도양단이나 홍당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고작 이런 놈을 잡겠다고 그토록 죽자 사자 노력했다니…….’

거대한 타이탄의 뒤에 매달려 있지만, 실상은 한없이 작은 등을 공격하고 있었던 느낌이었다.

더불어 더더욱 놈을 놓쳐선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정도 깜냥밖에 안 되는 놈이 그동안 타연의 톱이자 국왕이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니!

‘지존’에겐 ‘지존’만의 품격이 필요한 법.

다시 한번 생각해봐도 이 자식에겐 과분한 자리와 감투였다.

“파워 샷!”

“파이어 월!”

전속력으로 이동한 터라, 어느덧 다리우스의 검붉은 포탈이 보이기 시작했다.

놈은 계속해서 그곳을 향해 뛰어가던 터라 동선이 뻔히 보이는 상태.

축볼 누님이 거기에 맞춰 파이어 월(fire wall)을 가로가 아닌 세로로 깔아버렸다.

서리가 낀 채로 불길을 내달리는 데이네스.

최대한 동선을 단축하고자 잠시 옆으로 빼지도 못하는 놈의 다급함에, 마침내 때가 왔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번쩍!

아니나 다를까 곧 밝은 빛과 함께 사라지는 데이네스의 모습!

100만에 가까운 무지막지한 HP가 무색할 만큼, 결국 녀석이 포탈에 도달하기 직전에 우리는 데이네스를 역소환시킬 수 있었다.

“됐다! 모두 극딜이요!”

“이제 드디어 녀석을 잡는구나!”

칭!

또한 이순간이 바로, 내가 오랜만에 단테리오의 팔찌를 가동시킬 타이밍이었다.

[연속 베기!]

[은밀한 일격!]

쾅! 쾅! 쾅!

이제는 더는 낯설지 않은, 녀석의 온몸을 감싸버린 망토를 향해 공격했다.

어차피 쉴드 같은 형태라 경직이 먹힐 것 같지 않아, 급소 공격이 아닌 극(極)데미지 위주의 스킬만 사용했다.

“하핫! 공이 굴러가는구나!”

옆에서 레벤다스에 탄 현중이가 거대한 전투 망치를 내려찍으며 신이 난 듯 외쳤다.

여기까지 온 이상, 라챤이와 축볼 누님도 와순이에서 뛰어내린 뒤 놈의 앞에서 근접 스킬까지 써가며 극딜을 쏟아부었다.

포탈이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지만, 녀석이 살아나갈 가능성은 없었다.

이 망토의 쉴드 옵션이 얼마나 뛰어난진 몰라도, 놈의 타이탄도 우리의 맹공 앞에서 무너졌으니 말이다.

“그, 그만 좀 치라고! 돈을 원해? 계좌만 말해, 얼마든지 부쳐줄 테니까 말야!”

“거참 아까부터 엄청 시끄럽네. 이 자식은 입으로 게임 하나?”

“축굴아, 너도 그만 말하고 공격에 집중해!”

망토 안에서 다리우스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지만, 나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놈이 죽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절대로 방심해선 안 됐다.

놈의 망토 쉴드가 부서지는 순간, 무한 ‘급소 공격’을 쑤셔 넣으려면 최고의 집중력을 유지해야만 했다.

틈을 줬다가는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놈.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렇게 무시하듯 도발할 수 있었지만, 자그마치 3년 넘게 이 타연의 톱 자리에서 온갖 이득을 챙겼던 몸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나 집중했는데도 틈을 놓치고 말았다.

놈이 망토 쉴드의 체력이 다 닳기 전에 일부러 해제해서, 모두가 예상 못 한 타이밍이었기 때문이었다.

피슛!

놈의 손아귀에서 회색빛이 번쩍이더니, 정확히 반경 10미터까지 퍼진 뒤 사라졌다.

그러자 놈을 둘러싼 모든 파티원들이 덜컥 굳어버렸다.

‘고르곤의 숨결!’

광역 석화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레전더리 소모템!

녀석도 고르곤을 잡으면서 이걸 얻은 모양이었다.

[상태 이상 ‘석화’에 저항합니다.]

하지만 천운이 뒤따랐는지 오직 나만은 이 광역 석화를 멀쩡히 저항해버렸다.

놈을 잡겠다고 올 마력 스탯을 찍어 최강의 마법 방어력을 얻은 탓이었으니,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림자 밟기!]

곧바로 놈에게 다가가 급소 공격을 먹이기 위해 그밟으로 뒤를 잡는 순간!

번쩍! 번쩍!

또다시 연달아 놈의 품 안에서 회색빛이 터져 나왔다.

[5초간 ‘석화’ 상태 이상에 빠집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한 번 더 저항하는 데 실패해버렸다.

“이, 이런 씨앙……!”

허나 욕설은 내가 아닌 다리우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녀석이 절망적인 목소리를 토해낸 이유.

그밟을 쓴 나는 급소 공격을 쓰는 대신, 인벤토리 안에 있던 ‘고르곤의 숨결’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꼴 좋구나, 박태후!”

전원이 석상으로 변해 잠시 시간이 멈춘 듯한 이곳에, 내 통쾌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급소 공격과 녀석의 석화 공격이 동시에 적중되더라도, 녀석은 짧은 경직이 풀린 후 곧바로 도망칠 수 있었다.

하지만 둘 다 동시에 석화에 빠져버린다면?

단 3회밖에 쓸 수 없는 고르곤의 숨결을 먼저 쓴 녀석이, 당연히 필패(必敗)할 수밖에 없었다.

번쩍! 번쩍!

5초간의 석화가 풀리는 순간, 필드엔 다시 한번 2개의 회색빛이 번쩍였다.

“제발…… 제발 한 번만 살려줘라! 디바인은 돈 주고도 다시 못 구하는 템이란 말이다!”

“내 알 바냐! 넌 이제껏 사정 봐가면서 PK하고 척살했냐고!”

“제, 제발 좀!”

항상 괴롭히던 입장에 서 있었을 박태후.

이번에야말로 반대편에 있던 나 같은 유저들의 심정을 느껴볼 차례였다.

그것도 뼈저리도록 아프게!

[급소 공격!]

석화가 풀리자마자 마침내 급소 공격이 시작됐다.

퍽, 퍽, 퍽, 퍽!정확한 타이밍에 휘둘러지는 경직 공격에 녀석은 옴짝달싹 못 했고, 곧바로 석화가 풀린 우리 길드원들의 추가타도 합세했다.

온갖 고강화 레전더리 템과 타연에서 가장 많은 업적을 보유한 다리우스.

또한 통합 랭킹 1위답게 높은 레벨 보정 효과까지 적용된 녀석이었으나…….

“안 돼!!”

털썩.

우리 버닝 스타의 복수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업적 ‘킹 슬레이어’를 획득했습니다.]

[‘버닝스타’ 길드가 ‘태성’길드와의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

재가 되어 사라지는 순간까지도 고함을 지르던 다리우스.

놈을 배경으로 시스템 메시지가 주르륵 올라왔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것보다 다른 게 먼저 들어왔다.

‘드디어!’

디바인 템을 가진 유저들의 숙명.

놈이 사라진 자리에는 한 아이템이 다소곳하게 드랍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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