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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156화 (156/350)

156화 불청객 (1)

쉬이익- 쉬이익!

죽인 NPC의 시체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옆에 있던 궁병들도 순식간에 죽어버렸다.

태성 측 탱커와 딜러가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다시 달려왔지만…….

[그림자 밟기!]

또 한 번의 이동기로 녀석들의 공격을 헛방으로 만들어 버렸다.

‘남은 마나는 4만 2천!’

그러는 한편, 현재 내 MP를 체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가 끌고 왔던 와이번들은 연막을 흩트리고 나를 공격하느라 날아온 광역 스킬에 맞아, 여기저기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래서 혼자 적진 한복판에 뛰어든 것 치고는 제대로 일점사가 들어오지 않고 있었지만, 이건 그야말로 임시방편이었다.

아무리 악명높은 가트웰의 고레벨 몬스터라 할지라도, 드래곤을 잡으러 가는 놈들에게 위협이 될 순 없는 법.

태성이 금세 정리하고 무차별적인 광역 공격을 날려댈 것은 시간문제였다.

맞추기 힘든 타겟팅 스킬보다는 데미지는 약하더라도 광역 스킬이 더 효과적일 테니까.

[회전 베기!]

둘러싼 놈들에게서 한순간 MP를 훅 쓸어 담고는, 곧바로 곁에 있던 궁병에게 극딜 스킬을 쏟아부었다.

마나 소모량이 10배인 상태라 스킬 한 방에 마나 1천가량이 훅훅 깎여나갔지만, 워낙 막대한 공격력을 갖게 된 상태라 흡수되는 마나량도 만만치 않았다.

격렬한 춤을 추듯 쉴 새 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MP 칸.

집중 회피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날아오는 공격은 최대한 피하는 무빙.

다음 공격 대상을 찾는 시야와 동선 계산.

마음속으로 시작할 때부터 카운팅 중인 스킬 가속 시간 체크까지.

무엇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동시에 수행해나가면서 이 전장 한복판을 휩쓸었다.

단 0.1초도 잡생각이 들 수 없는 극한의 상황이지만, 그걸 알면서도 내 발로 직접 걸어 들어온 길.

까닥하면 바로 죽어버릴 수도 있는 이 아수라장에서 난,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저, 저 미친놈!”

“예전보다 더한 사기캐가 돼서 돌아왔어…….”

“피가 도대체 몇만이야!!”

일당백.

아니, 일당천(一當千)의 유저가 된 지금의 산드로.

나 자신도 내 캐릭의 위력에 도취되어 버릴 만큼, 어마무시한 캐릭이 되어 있었다.

픽!

[마나 쉴드가 5,228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

그러던 중, 상당히 강력한 화살 공격이 내게 적중됐다.

풀 차지된 파워 샷을 정확히 내 뒤통수에 맞춘 궁수.

시공의 틈새에서 내게 죽은 적이 있는 랭커 ‘페퍼민트’였다.

“졸라게도 나대네, 진짜!”

“그러게. 누가 보면 지가 타연 주인공인 줄 알겠어?”

그외 태성의 자랑인 랭커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착지했을 때는 주변에 있는 아무나 달려들었지만, 금세 정예 멤버들이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픽! 픽!

페퍼민트뿐만 아니라 다른 궁수가 쏜 화살이 몸통에 박혀 들었다.

집중 회피로도 피할 수 없는 부분만 겨눈 공격.

이리저리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 터라 노린다고 맞출 수 있는 게 아닐 텐데, 확실히 지금까지 날아오던 화살들과는 궤적부터 달랐다.

‘지금껏 잡은 병사는 30명. 아직 40초나 남았지만 벌써 반피도 안 남았어. 이제 써야 할 타이밍이다!’

타임 어택 당시처럼 NPC 병사들을 효율적으로 잡기 위해 최대한 멀티 히트를 먹이면서 공격했다.

덕분에 짧은 시간만에 제법 많이 죽였지만, 아직 70명이나 남은 상태.

이대론 절반도 죽이지 못하고 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내게는 마지막 카드가 남겨져 있었다.

[난도질(고유 스킬): ★☆☆☆☆)]

* 마나 소비: 200

* 사용 대기시간: 600초

* 25초 동안 도검류의 공격 속도를 100% 증가시킵니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효과.

도둑 레벨 370에서 배울 수 있는 것치고는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스킬이었지만, 효과만큼은 무시무시했다.

시공의 틈새에서 광렙업을 한끝에 이제 막 배운 난도질은, 용살검의 옵션도 중복 적용받아 바로 5성인 100% 증가 효과를 받을 수 있었다.

쿨타임이 길다는 치명적인 단점 때문에 스킬 가속 상태에서도 아껴 뒀던 스킬을, 마침내 사용했다.

[난도질!]

이미 몇 번 써 봤지만,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스피드.

그간 장검인지라 다소 아쉽게 느껴졌던 답답함이 한번에 뻥 뚫리듯 사라져 버렸다.

“뭐, 뭐야! 이 공속은!”

“산드로 자식, 벌써 난도질 찍을 레벨이야?”

“아니야! 난도질 쓴다고 저렇게 빨라지진 않아!”

1성의 난도질 효과는 5초간 공속 증가 60%.

템빨 덕분에 5성이 찍혀버린 걸 모르는 입장에선,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뭐가 어찌 됐건 이 미친 공속이 적용된 상태에서의 나는, 속된 말로 ‘무적’이었다.

타타타탓!

길게 먹이던 멀티 히트 한 번을 휘두를 시간에 두 번을 휘두를 수 있었고,

쉭! 쉭!

연속 베기로 죽여야만 했던 궁병을 빠른 평타만으로도 비슷하게 죽일 수 있었다.

빨라진 공속 덕분에 DPS가 폭증한 것도 폭증한 것이지만, 더 대단한 건 마나 흡수였다.

지속된 공격에 노출되어 1/3까지 떨어졌던 내 MP가 순식간에 쭉쭉 차오른 것이다.

‘역시 내 캐릭은, 이런 대규모 병력을 상대할 때 더 빛을 발하는 캐릭이야!’

멀티 히트와 회전 베기.

이 두 가지만 있다면 백 명이고 천 명이고 밤새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번쩍! 번쩍!

신검에서 터지는 빛 속성 데미지와 이곳저곳 순간이동하듯 나타나는 그림자 밟기 때문에, 녀석들의 속도 터져나갔다.

“이런 제기랄!”

“길동아 뭐 하고 있냐! 진짜 홍길동 좀 잡아봐!”

이쯤이면 NPC들을 데리고 도망이라도 쳐볼 만할 텐데, 보호하겠답시고 병력 한가운데에 있던 터라 사방이 막혀 있었다.

그렇게 30여 초.

어느덧 와이번이 정리되어 광역 스킬과 마법들이 본격적으로 날아왔지만, 이미 볼일은 끝나 있었다.

100명이었던 NPC 궁수병들.

비록 몇 명 놓치긴 했어도, 집요하게 병사들만 노린 덕에 거의 다 잡아버린 것이다.

남은 스킬 가속 시간은 이제 10초뿐.

이건 오롯이 도망치는 데 사용해야만 했다.

“다리우스한테 전해! 오늘 레이드는 텄다고!”

[그림자 밟기!]

[은신!]

다가온 랭커들에게 한 차례 소리쳐준 뒤, 곧바로 바깥의 아무나 타겟팅해서 이동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은신을 시전했다.

퍼퍼펑!

내가 사라지자마자 곧바로 쏟아진 광역 마법들.

그림자 밟기의 사정거리에 맞춰 무작위로 쏟아진 터라, 그중 하나에 맞아버릴 수밖에 없었다.

쓰자마자 벗겨진 은신.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난 달려가는 걸 멈추지 않았다.

“여기다! 죽여!”

“절대 못 지나간다!”

내 앞을 막아서며 검을 휘두르는 근접 딜러들.

집중 회피 상태라 머리와 몸만 닿지 않게 피하면서 어떻게든 틈새를 비집고 전진했다.

‘진짜 까딱하면 죽을 수도 있겠다.’

순식간에 수십 명을 지나쳤지만, 이 인(人)의 장막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래왔듯, 난 무슨 일을 할 때 항상 퇴로부터 확보해 두는 성격이었다.

“훼라리 소환!”

“날개 돌풍!”

일부러 공중에서 뛰어내렸던 것.

그건 훼라리의 체력을 최대한 아껴두기 위함이었다.

풀피 상태로 나타난 훼라리는, 이 많은 군중들 사이에 소환되자마자 곧바로 명령대로 날개돌풍을 사용했다.

순식간에 나자빠지는 수십 명의 유저들.

워낙 많이 뭉쳐있던 곳에서 써버린 탓에 역대급 광역 넉백이 시전됐다.

그 틈에 나는, 곧바로 다시 날갯짓을 해서 떠오르는 훼라리에게 그림자 밟기를 사용해 올라탔다.

그리고는 풀액셀을 밟아 태성 유저로 가득찬 이 전장에서의 탈출을 시도했다.

“몬스터 라이…… 컥!”

허나 펫의 이동 속도를 가속해주는 스킬, ‘몬스터 라이딩’의 시동어를 끝까지 외칠 수 없었다.

훼라리의 몸체와 함께, 나도 뒤집히며 고꾸라졌기 때문에!

“어딜 가냐, 이 거지 새끼야!”

날아오르던 훼라리를 지상으로 내팽개친 존재.

그건 바로 다리우스가 소환한 타이탄, 데이네스였다.

‘이런 제기랄! 근처에 와 있었구나, 다리우스!’

녀석의 타이탄은 특이하게도 점프 스킬을 하나 갖고 있었다.

절망의 울림이라 불리는 리프 어택.

다리우스는 내 훼라리가 날아올라 이곳을 벗어나려 하자, 순간적으로 타이탄을 소환해 점프부터 했던 것이었다.

그리곤 내가 투 메르타스를 잡을 때와 같이, 타이탄의 중량을 이용해 훼라리를 낚아채 추락시켜 버렸다.

[안식의 검!]

턱! 턱! 턱!

데이네스는 그렇게 지상에 내팽개쳐진 우리를 향해 특유의 삼연격 스킬부터 먹였다.

그와 동시에 근접 딜러들 다가와 다양한 스턴과 넉백 스킬을 시전했다.

키엑! 쿵!

마나 쉴드로 물상 면역인 나와 달리, 비록 훼라리는 필드 보스 출신이라지만 일개 펫에 불과했다.

따라서 연이어 들어온 연계 스턴과 넉백에 정신을 못 차리고, 모든 후속타들을 고스란히 맞아줄 수밖에 없었다.

[훼라리의 체력이 전부 소진되어 소환이 해제됩니다.]

순식간에 14만이라는 HP가 날아가 사라진 훼라리.

하지만 아직 그림자 밟기의 쿨타임이 돌아오기엔 2초 정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볼포 소환!”

그런 내가 선택한 수단.

그건 내 펫 중 하나인 아이언 골렘을 소환해 잠시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

“이건 또 뭐야?”

“가지가지 한다, 이 개드로!!”

타이탄만큼이나 거대한 몸체로 순간 데이네스의 시야를 가린 볼포.

난 녀석에게 전진을 명령하고는 함께 뒤따라 이동하다, 그림자 밟기의 쿨타임이 채워지자마자 최대한 바깥을 향해 사용했다.

[스킬 가속의 지속 시간이 끝났습니다.]

쉭!

그리고 방금 쓴 그밟을 마지막으로, 단테리오의 팔찌 효과도 끝이 나 버렸다.

“잡아! 저기에 있다!”

데이네스의 거대한 검이 나를 가리키는 모습이 얼핏 보였다.

허나 방금 고유 전진기를 사용한 터라 바로 따라붙지 못했다.

난 곧바로 녀석을 뒤로한 채 다시 뛰기 시작했다.

날아서 도망치지 못했으니, 어떻게든 뛰어서 도망치는 방법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40%, 38%, 39%, 37%…….

수없이 많은 공격이 나를 향해 쏟아졌지만, 생각보다 내 MP 칸은 느린 속도로 줄어들었다.

인파를 뚫고 달리고 있어 원거리 공격이 잘 박히지 않은 게 첫 번째였고,

내가 양손에 나눠 든 검을 쫙 펼친 채 달리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슉! 슈슉!

나를 둘러싼 수많은 유저.

그들을 뚫고 지나가며 스치는 내 검을 통해, 어이없지만 마나가 쭉쭉 흡수됐다.

가상현실 게임이라 멀티 히트가 가능한 것과 같은 원리.

펼친 검에 스친 것만으로도, 태성 놈들은 일반 공격 판정을 받아버린 것이었다.

그러니 내 MP가 위태로울래야 위태로울 수가 없었다.

“도대체 피가 얼마나 많은 거야?”

“죽기 직전일 거야! 전부 달라붙어!”

“그래! 오늘 드디어 신검 드랍하는 날이 왔다!”

이 멍청한 자식들…….

최소한 내가 다리우스의 망토를 먹은 사실만 떠올렸어도 그런 생각은 못 했을 텐데.

아프지도 않으면서 마나는 잘 주는 탱커들이 죽자사자 달라붙자, MP는 오히려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달리길 잠시.

마침내 홍길동을 비롯한 도둑들의 쿨타임이 다 돌았는지, 한꺼번에 그림자 밟기를 사용해 내 뒤로 다시 재집결했다.

얼핏 봐도 30명은 넘는 인원.

수없이 겹쳐 있는 상태로 공격해오는 그들을 향해, 간만에 나도 반격 스킬을 하나 사용했다.

[회전 베기!]

60%, 80%, 100%!

그리고 내 MP 칸은 이 한방을 통해 처음 이곳에 오던 때와 같은 상태가 돼버렸다.

‘미쳤다, 미쳤어!’

이게 진정 혼자서 수천 명의 적진 한복판에 뛰어든 유저의 피란 말인가?

이 어이없는 상황에 나도 모르게 잠시 멈칫하자, 그 모습을 본 홍길동이 외쳤다.

“이 자식 포기했다! 죽기 직전이야! 신검이 드랍되면 절대 줍지 마라!”

“…….”

풀피가 돼버렸는데 뭔 신검을 드랍한다고 호들갑을 떠시는지…….

이 급박한 상황에서도 하도 한심해서 홍길동을 잠시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진짜 넌 어디 가서 랭커랍시고 깝죽대지 마라. 졸라게 한심하네.”

“뭐, 뭐라고?”

그 말을 끝으로 잠시 멈췄던 걸음을 다시 재촉했다.

놈들의 수가 아무리 많더라도, 기본적으로 와이번의 둥지는 계곡 지형.

그래서 결국엔 도달할 수 있었다.

탱커들이 없는 태성 부대의 최외곽으로!

“램보 소환!”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이놈들을 전부 따돌리려면 이속이 빠른 탈것은 필수였다.

“안 돼! 어떻게든 붙잡아!”

뒤에서 데이네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는 쿨타임이 돌아왔는지 절망의 울림으로 점프해서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몬스터 라이딩!]

하지만 램보는 가장 빠른 지상 몬스터 중 하나.

여기에 아까 캔슬된 몬스터 라이딩 스킬을 활성화하자, 앞으로 튕기듯 쏜살같이 뛰쳐나갔다.

쿵!

방금 전까지 내가 서 있던 자리에 착지하는 데이네스를 뒤로한 채, 난 다시 침묵의 숲으로 향했다.

‘막판에 뜬금없이 풀피가 되긴 했지만…… 갑자기 훼라리가 당해버려서 깜짝 놀랐네.’

이 또한 전장에 뛰어들 때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

하지만 이번 변수는 재미뿐만 아니라 나름의 소득도 안겨준 일이었다.

‘아직 레어에 도착도 하기 전인데 데이네스를 꺼내버렸네? 그럼 이만 되돌아갈 수밖에 없겠구나? 박태후 넌…… 쫄보니까?’

허무하게 날려버린 데이네스란 안전 카드.

다른 태성 놈들은 몰라도, 다리우스만큼은 드래곤 레이드에 끼기도 전에 리타이어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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