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166화 (166/350)

166화 카오스 스톤 (2)

“군단장이 가진 카오스 스톤은 여타 마족들이 갖고 있는 귀환석과는 궤를 달리하네. 말 그대로 군단도 넘어올 수 있는 포탈이 열릴 정도로, 극상의 순도를 자랑하는 놈으로 만들어졌지…….”

“그것이 바로 우리가 되돌아가지 못하고 이곳 시공의 틈새에 갇혀 있던 이유였네. 베르몬이 가진 단 하나의 카오스 스톤만이 중간계로 돌아갈 포탈을 열 수 있는데…… 놈은 오히려 심연에 잠식된 이후로 더욱 강력해졌으니 말일세…….”

“하지만 그대들이 이 카오스 스톤을 가지고 왔으니 문제는 전부 해결됐네! 빛을 잃었다 해도 순수한 카오스 스톤에 내장된 힘은 그리 쉽게 소진되진 않으니. 지금은 이리 보여도, 예전의 난 차기 공허의 마탑주로 기대받던 몸……. 충분히 시공 포탈의 마법진을 수정할 자신이 있네! 그럼 시작하겠네!”

대부분의 게임들이 그러하듯이, 메인 퀘스트는 거의 예외 없이 연계 퀘스트로 이어진다.

모든 게임에는 고유의 스토리가 있기 마련이고, 그 내용을 유저들에게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메인 퀘스트’였기 때문이다.

타연 또한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극한의 자유도를 자랑하고 표방하고 있었지만, 메인 퀘스트만큼은 목적과 과정이 뚜렷이 제시됐다.

메인 퀘스트 달성 여부에 따라 타이탄 연대기 세계관에 유무형(有無形)의 변화가 있었기에, 다소 제한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

태성이 데스라 사막의 인던을 활성화시킨 것과, 지금 우리가 하려는 중간계와 시공의 틈새를 이으려는 시도는 확실히 메인 퀘스트로 분류될 만한 이벤트였다.

‘그래서…… 분명히 연계 퀘스트가 더 주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형님! 상황 보니까 바로 퀘스트 깨지는 게 맞는 거 같죠?”

“라챤아, 조용히 좀 해봐! 지금 주나스 집중하고 있는 거 안 보이냐?”

제법 넓은 마탑 안의 실내 공간.

온갖 마법 도형들이 새겨진 스크롤과 본인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책들이 정신 사납게 휘날렸다.

진원지는 바로 주나스의 품.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두 손 사이에 있는 카오스 스톤으로부터 새어 나오는 빛과 바람이었다.

“에베 론 페투, 로오나 페이 룬 카토!”

갑자기 양옆으로 펼친 두 손 위로, 알 수 없는 원형의 마법진들이 허공에 새겨졌다.

“얘 지금 뭐라는 거냐, 축볼아?”

“몰라요 오빠. 마도 시대에나 쓰였다는 고대 룬어 아닐까요?”

“굳이 뭐 이런 것까지 설정해둘 필요가 있나? 뭐, 타연 세계관에 좀 더 몰입은 되는 것 같다만…….”

“에? 저게 제대로 만든 언어겠어요? 그냥 아무거나 조합해서 대충 만들어 둔 거겠죠.”

우리의 잡담 속에서도 주나스는 주문을 멈추지 않았고, 마법진의 숫자는 어느새 2개에서 4개, 곧 8개까지 중첩되어 전 방향을 감싸게 되었다.

“메티아 룬 카토! 페메시아!”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흐르고.

마법진들은 한순간 환하게 빛나기 시작하더니, 선홍빛 카오스 스톤 안으로 빨려들듯이 모조리 다 흡수되었다.

“헉, 헉……. 다 끝났네…….”

“그럼 이제 카오스 스톤은 원상 복구된 건가요?”

“복구된 것이 아닐세. 이 스톤에 새로운 좌표를 새긴 것이지. 그대가 중간계로 돌아가 이 카오스 스톤을 사용한다면, 호라이즌 마을과 연결되는 영구적인 시공 포탈이 열리게 될 걸세……. 자, 여기 있네.”

[주나스로부터 ‘좌표가 새겨진 카오스 스톤’을 건네받았습니다.]

띠링!

마치 길고 긴 퀘스트 완료를 막 달성한 것처럼, 귓가에 효과음이 울린 것만 같았다.

그만큼 포탈을 열게 해줄 완성된 카오스 스톤은, 너무도 쉽게 내 손아귀에 들어왔다.

“드디어 얻었다!!”

“그럼 그렇지! 이렇게나 개고생시켜 놓고, 여기서 또 퀘스트 시키면 사람 새끼가 아니지!”

행여 전투나 사냥 퀘스트들이 추가로 주어질까 봐, 전원이 모여서 찾아온 이곳이었다.

한데 일루전도 양심은 있었는지, 다행히 마지막 보상만큼은 깔끔하게 넘겨주도록 세팅되어 있었다.

“바로 설치하실 거세요, 형님?”

“아니. 아직 이 필드는 소수만 사용할 수 있으니까, 조금만 더 꿀 좀 빤 다음에 오픈하려고. 어차피 이제 오픈 여부는 우리 선택에 달려있으니까.”

태성에게 이 카오스 스톤이 넘어갈까 봐 그렇게나 서둘렀던 거지, 결국 무사히 손에 넣은 이상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신나서 떠들다가 이내 돌아가려는 순간, 당당검이 주나스 앞에서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당당아, 뭐 해? 함께 안 돌아가?”

“아…… 죄송해요. 이제 다들 돌아가시나 봐요?”

“어. 뭐 하고 있었어? 얘한테 무슨 퀘스트라도 남아있어?”

“얘라뇨 형님……. NPC긴 해도 할아버지신데요.”

“응……?”

뭔가 낌새가 이상해서 다시 한번 살펴보니, 녀석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아련해 보이면서도 어찌 보면 짜증 나 보이는.

가상현실이 아니었다면 눈에 눈물이라도 맺혔을 것 같은,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당이가 왜 이러는 거지? 잘 어울리진 않아도 쾌활한 녀석이었는데?’

백발의 노신사가 연상되는 깔끔한 복장의 주나스.

그 외에는 특별한 구석이 없는 NPC에게, 갑자기 무슨 이유로 감정 이입을 한 건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녀석이 타연 속에서 감정 변화를 보여준 건 딱 한 번밖에 없었는데…… 설마?

“길드원들 기다리시는데 그만 갈까요?”

“어? 어, 그래.”

귀환 주문서를 사용할 수 없는 곳인지라 다 함께 걸어서 돌아가는 중에, 슬그머니 당당검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 봤다.

“좀 전엔 왜 그런 거야? 평소답지 않게?”

“확인하러 오신 거세요? 바로 눈치채신 것 같던데.”

“역시…… 아버님과 관련된 일 맞지?”

“맞아요. 주나스 스타시커…… 저희 외할아버지와 똑같이 생기셨더라고요. 우연히 이런 일이 벌어질 리는 없으니까, 분명 일부러 만들어 두신 거겠죠. 아버지께서…….”

“뭐?”

너튜브도 초창기에는 일반 시민들의 모습을 동의도 없이 영상에 담아 업로드해도 별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전부 개인정보 보호법에 둔감했던 시대적 해프닝인 셈.

그런 과도기를 진작에 거친 지금에 이르러서는, 개인의 정보나 초상권 등이 무척이나 엄격한 법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현실의 외모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은 대부분의 가상현실 게임에서, 자유로운 동영상 촬영이나 실시간 송출 등의 개인 방송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원인이었다.

한데 실존 인물의 외모를 그대로 게임 속에 구현시켜 둔 NPC가 있다고?

그것도 실수일 리가 없는, 개발자 지인(知人)의 외모로?

“뭔진 모르겠지만, 사전에 동의가 있지 않았을까?”

“잘 모르겠어요. 돌아가신 지 하도 오래되셔서……. 이런 곳에서 이런 식으로 뵙게 될 줄을 상상도 못 해 봐서 한참을 바라만 봤네요. 목소리마저 똑같으셔서, 깜짝 놀랐어요.”

“아…… 돌아가신 분이셨구나……. 많이 놀랐겠다.”

이곳에서 주나스를 만날 정도의 고레벨 유저는,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도 전체 유저의 1%를 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유명인도 아닌 일반 노인을 NPC로 만들어뒀다 해도, 알아볼 사람은 극소수일 터.

어쩌면 젠티스, 그가 이 NPC를 만든 이유는 본인 아들에게 남겨놓은 어떤 메시지일 수도 있지 않을까?

벌써 1년 가까이 그가 두문불출하고 있는 이유의 단서를 찾은 느낌이었다.

“별생각 없이 만들어 두신 걸 수도 있어요. 워낙 장난기가 많으신 분이라……. 아무튼! 오랜만에 할아버지 얼굴을 봬서 전 좋았네요. 종종 이곳에 찾아와야겠어요!”

애써 쾌활한 척 앞서나갔지만, 평소와 많이 다른 모습이란 걸 모를 수가 없었다.

‘만약 내가 돌아가신 할머니를 이 안에서 만났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NPC 역할로 서 계신 모습을 우연히 마주치게 됐다면…….

기뻤을까?

아니면 분노했을까?

순조로운 퀘스트 진행에 기뻤던 것도 잠시.

갑작스럽게 조우한 특별한 만남에, 복잡한 기분을 안은 채 복귀했다.

* * *

“허헛! 이거라면 잘 찾아왔다네! 테론 대륙 최강의 대장장이인 이 몸이 아니라면, 누구도 이걸 손볼 수 없었을 테니! 암, 그렇고말고!”

“네네. 잘 알겠으니까 바로 시작부터 합시다. 그만 좀 떠벌이고.”

‘그렇게나 뛰어난 대장장이라서 암살검의 봉인은 풀지 못했던 거냐?’

전에 무살 형님께 드렸던 ‘봉인된 악마 군단장의 암살검’.

이번에 군단장으로부터 얻은 ‘악마 군단장의 숨결’이 바로 이 암살검의 봉인을 해제할 수 있는 재료 템이었다.

그래서 바로 봉인을 풀도록 무살 형님께 넘겨드렸는데, 로낙쏜의 세 클랜 마스터들을 다 둘러봐도 풀지 못해 결국 내게 다시 맡기며 부탁했다.

자신은 들어가기 힘든 제국 수도에 한 번만 다녀와 달라고.

그렇게 다시 찾은 달켄에게서 의외로 쉽게 봉인을 해제할 수 있었는데, 반면 녀석은 또 이 아이템은 고치지 못했다.

바로 이번에 얻게 된 ‘망가진 악마 군단장의 채찍’.

서로 전문 분야가 다른 건지, 그저 유저들이 편한 걸 봐주지 못하는 개발자의 농간인지 모르겠지만…….

귀찮은 발걸음을 끝마친 후에야, 드디어 두 개의 새로운 아이템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2 진(眞) 악마 군단장의 암살검(레전더리, 한 손 무기)>

* 공격력: 820(+164)

* 근력 +60(+12), 민첩 +120(+24)

* 소형 몬스터에게 물리 데미지 +460(+92)

* 타격 시 25%의 확률로 추가 데미지 +820(+164)(봉인 해제)

* 타격 시 10%의 확률로 ‘회복 감소’ 발동

- 회복 감소: 상처를 헤집어 5초간 모든 회복 효과를 50% 감소시킵니다.

* 마왕군 군단장의 숨결로 봉인이 해제되어 진정한 힘을 되찾은 명검입니다.

* “이 검을 하사받은 이후로…… 얼마나 많은 그분의 대적자들을 베었는지 셀 수 없다……. 그렇다……. 이제 이 검에는 적들의 피뿐만이 아니라, 내 영혼까지도 담겨 있다…….” -마계 괴수군단장 베르몬-

봉인이 해제되자 공격력과 추가 스펙업 옵션들의 수치가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특수 옵션의 발동 확률도 5%에서 10%로 2배나 증가했다.

이 정도면 몇 대 치기만 해도 곧바로 ‘회복 감소’가 걸려버릴 수준.

사냥이든 PK든, 모든 방면에서 무시무시한 활약을 벌일 수 있는 검으로 거듭나 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봉인이 풀리면서 새롭게 추가된 옵션의 효과 또한 기가 막혔다.

‘와……. 이 정도면 내가 쓰고 싶을 정도인데? 무살 형님, 진짜 제대로 대박 터졌구나!’

봉인됐을 때도 레전더리였던 검이라 그런지, 봉인 해제 후의 스펙은 감히 모든 레전더리 무기 중에서도 최상급이라고 부를만한 수준이었다.

예전이었다면 아깝다는 생각이 들 법도 했지만, 지금은 순수히 형님에 대한 죄책감을 완전히 덜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그렇게 봉인을 해제한 암살검을 형님께 드리고, 지금 막 로낙쏜에 있는 무릭쏜을 찾아 마저 남아있던 숙제를 해결한 것이었다.

“뭐지? 이 옵션은? 전혀 기대도 안 하고 있었는데…… 나도 대박이 터져버렸잖아?”

노스랜드의 고르곤을 레이드하고 얻었던 재료 템 ‘고르곤의 꼬리’.

이게 또 알고 보니, 망가진 악마 군단장 채찍의 수리용 재료 템이었다.

<악마 군단장의 채찍(레전더리, 한 손 무기)>

* 공격력: 1140

* 근력 +80

* 공격속도 -50%

* 모든 종류의 소형 몬스터에게 물리 데미지 +1140

* 특수 효과 ‘포획’ 사용 가능(사용 대기시간: 60초)

- 포획: 15m 안의 대상을 채찍으로 감아 바로 앞까지 끌고 옵니다. (저항시 3초간 상대의 이동 속도 감소 50%)

* 고르곤의 꼬리로 만들어진 강력한 금속형 채찍입니다.

* “감히 단언하건대, 고르곤의 꼬리야말로 채찍을 만들 수 있는 가장 뛰어난 재료임이 틀림없다. 물론 하나뿐인 꼬리를 쉽게 내어줄 고르곤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겠지만……!” -아이언해머 클랜 마스터 무릭쏜-

높은 공격력 대신 공격속도는 포기할 수밖에 없는 무기, 채찍.

제법 긴 사정거리를 자랑함에도 불구하고, 동급 무기와 비교할 때 워낙 떨어지는 DPS 때문에 외면받는 불운의 무기였다.

하지만 이번에 얻게 된 군단장의 채찍은 달랐다.

기존의 어떠한 채찍에서도 볼 수 없었던 희귀 옵션이 붙어있었기 때문.

대도 부츠가 스펙보다는 옵션 덕분에 귀한 대접을 받고 매물은 구경조차 못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채찍은 모든 유저들의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엄청난 옵션을 달고 있었다.

아니, 최초로 얻은 유저가 나라서 그렇지…… 공개만 된다면 수없이 많은 유저들로부터 선망의 템으로 등극할 만한 무기였다.

‘포획이라니……. 설명에 적힌 대로라면, 나한테서 절대 도망갈 수 없다는 뜻이잖아?’

레전더리 무기인 만큼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주력으로 쓰일 만한 무기였다.

하지만 디바인 검을 두 자루나 갖춘 나에게는 의미가 없는 템.

허나 포획이라는 옵션 하나만으로도, 항상 내 인벤토리창에 모셔져 있어야 할 이유로는 충분했다.

‘전투 중에 도망친다거나 캐스팅 중인 놈을 캔슬시킬 때만 스위칭해서 쓴다면……? 이것도 내 평생 템 목록에 추가다!’

아주 비싸게 팔릴 게 분명한 아이템이지만, 어떻게 보면 팔지 않는 대가로 디버프 스킬 하나를 꽁으로 얻게 된 셈이었다.

군단장.

레이드를 위한 많은 준비 조건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퍼스트 킬답게 수많은 보상이 주어졌다.

훌륭한 업적과 희귀 아이템 득템에 묻히긴 했지만, 막대한 길드 업적치와 어비스 수치도 얻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다 합치더라도, 우리가 고생 끝에 얻게 된 퀘스트 템 ‘카오스 스톤’ 하나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제…… 슬슬 연락을 넣어 볼까나?”

이 돌이 타연에 가지고 올 파급력.

포탈을 설치하기 전,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사전준비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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