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몰려드는 사람들 (2)
“네? 대형 포탈을 설치하신다고요?”
“그렇습니다. 종종 막혀 있던 맵이 뚫리고, 처음 보는 인던이 활성화된 모습을 보신 경험이 다들 있으실 겁니다. 그동안 시공의 틈새라는 필드는 태성이 가장 먼저 개척한 공간이었기에, 그들만이 독점하고 있었죠. 이번에 저희도 그곳에 가는 루트를 운 좋게 발견한 것은 물론, 그곳을 공유할 수단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 이동 수단이 바로 포탈이고, 그 영구 포탈을 아베르 성 외성 마을에 설치하신다는 말씀이신 건가요?”
“네. 시공의 틈새라는 곳은 생각보다 큰 필드이고, 차후 흘러갈 타연의 스토리와도 중요하게 얽혀있는 곳입니다. 심지어 마을도 있을 정도죠. 이런 곳을 일루전이 소수만 독점하라고 만들어 뒀을 리는 없겠죠? 마침 저희가 태성보다 먼저 설치 권한을 얻은 김에, 유저분들에게 조건 없이 오픈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대, 대단하시군요! 아직도 타연에서는 사냥터 경쟁으로 인한 분쟁이 굉장히 빈번한 편인데…… 신규 사냥터를 과감히 공유하시겠다니! 역시 산드로 님이시라고나 할까요?”
“저희 버닝스타뿐만 아니라, 함께 힘써주신 피닉스 길드의 결단이기도 합니다. 사실 제가 쪼렙이던 시절, 좋은 사냥터만 발견하면 통제하려 들고 독식만 하던 거대 길드를, 썩 좋게 생각하진 않았거든요.”
“아…… 그러셨군요.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자신들이 개척한 신규 필드.
그리고 특혜로 주어지는 전용 인던.
이런 사냥터를 일반 유저들에게 선의로 제공하는 길드는, 지금껏 타연에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다.
특히 한정된 몬스터를 두고 사냥하는 ‘필드’ 사냥터 같은 경우는, 차마 언급하기도 귀찮을 정도였다.
카이저나 다리우스 같은 최정상급 랭커들이 랭킹을 장시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그건 그들이 유저들이 따라올 수 없는 최고 레벨의 사냥터를 옮겨 다니며, 쾌적하게 레벨업한 덕도 있다는 걸 모르는 이가 없었다.
한데 그런 메리트를 충분히 누릴 수 있는데도 과감히 포기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러려고 성을 먹었던 건 아니지만…… 마침 저희 버닝스타가 지난달 아베르 성 신규 점령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시설과 서비스 등에 매겨졌던 세금을 전부 없애버렸죠. 그래서 저희 외성 마을에 설치하게 되면, 많은 유저분께서 편하고 저렴하게 신규 필드를 이용하실 수 있을 것도 같네요.”
“아하! 공성에 관심 없으신 유저분들은 왜 추운 아베르 성에 설치하시는지 모르셨을 텐데, 먼저 말씀해주셨군요. 많은 유저분께서는 아베르 성에 세금이 없는 줄 모르셨을 것 같은데요. 한편으로는 그렇게 운영하실 거면 왜 힘들게 성을 점령하셨는지 의문이 드는군요? 돈도 벌어야 다음 공성전에서 수성할 여력이 생기는 것 아닌가요?”
드래곤을 잡을 NPC 병사들이 필요했고, 길드원들이 안전하게 레벨업할 전용 인던도 필요했다.
하지만 굳이 이런 이유들을 밝힐 필요는 없었으니 대충 얼버무렸다.
사실 시공의 틈새라는 최고의 사냥터가 갑자기 나타나서 그랬지, 성 전용 인던인 ‘봉인된 리치 퀸의 무덤’은 상당히 훌륭한 사냥터였다.
시공의 틈새에 유저들이 늘어나게 되면, 다시 한동안 이곳에서 레벨업을 하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을 정도로…….
물론 생각해둔 수익 모델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그건 이번 인터뷰가 방영된 후에 차츰 해결될 일이었다.
여하튼, 그 후로도 많은 질문과 답변들이 계속 이어졌다.
“신규 사냥터에서 태성 길드와 버닝스타 길드가 그런 혈투를 벌였었다니……. 방송을 시청 중이신 많은 분이 그런 명장면을 구경하지 못한 것에 크게 아쉬워하실 것 같군요.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두 번째 드래곤 레이드에서는 각 길드들의 치열한 전략들이 돋보였었군요. 실제로 전투에 참여하신 유저분들은 정말 흥미진진했을 것 같습니다!"
"최근 버닝스타의 분투 때문인지는 몰라도, 태성 길드의 통제나 척살 등이 급격히 줄었다는 평가가 줄을 잇고 있는데요. 앞으로도 태성과의 전투는 지속하실 생각이신지요?"
“마나 쉴드 테크트리를 최초로 개척하신 건 이미 모르는 유저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죠! 혹시 스탯과 스킬 빌드업이 어떻게 되는지 공개하실 수 있을까요? 가장 많은 유저분께서 선정해주신 질문입니다."
첫 인터뷰 이후로 공식적인 방송은 처음이었으니, 궁금한 것들이 많이 쌓였던 모양이었다.
인터뷰에 응한 가장 큰 이유였던 시공 포탈의 홍보는 잘 마쳤으니, 김석용 아재의 질문 세례는 밝힐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성심껏 답변해 주었다.
“오늘 하루 많은 궁금증을 풀게 되어 정말 감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혹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사실 하나 홍보하고 싶은 내용이 있긴 있습니다. 괜찮을까요?”
“얼마든지요! 이건 책임지고 편집되지 않도록 힘써드리겠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사실 저희 버닝스타 길드는 소수정예를 모토로 만들어진 길드입니다. 그 때문에 아직 인원이 7명밖에 되지 않고 있죠. 물론 앞으로도 이 컨셉은 유지할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폐쇄적으로 운영할 생각은 없습니다. 실력 있는 중립 유저분들 중에도 뜻이 있는 유저분이라면, 언제든지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하하! 뭔가 했더니 길드 홍보셨군요? 아직 7인이시라면 얼마나 엄격하게 길드원을 뽑고 계시는지 짐작되는데요. 과연 새로운 길드원으로 누가 들어가게 되실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난 관전 포인트가 되겠네요!"
"아? 그러려나요?"
내내 편하게 얘기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덕에, 큰 실수 없이 인터뷰를 마칠 수 있었다.
다소 올드해 보일 수도 있는데도, 여전히 왜 김석용 아재가 최첨단 가상현실 게임 프로그램에서 메인 역할을 하고 계시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다시 다음 인터뷰를 기약하며, 김석용 아재와 헤어졌다.
* * *
『포탈은 방송이 끝난 뒤 1시간 후에 설치하겠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시공의 틈새에 가보고 싶으시다면, 아베르 성 외성 마을 광장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인터뷰에서 했던 마지막 멘트.
어느 정도 방영된 직후의 반응을 예상했었지만, 이토록 파급력이 클 줄은 몰랐다.
“장난 아니네요 진짜……. 이렇게 사람들이 한곳에 몰린 것은 처음 봐요.”
“운영자가 가끔 이벤트 열 때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대박이다 정말!”
다들 본방을 보고 접속한 터라, 다 함께 내성에서 만나 마을로 걸어 내려갔는데 길가는 이미 유저들로 인산인해였다.
-각종 유니크 무기와 방어구 판매합니다. 둘러보고 가세요!
-시공의 틈새에서 사냥할 궁수분 구합니다! 현재 2자리 남았어요! (4/6)
그 와중에 곳곳에 좌판을 깔고 앉은 장사꾼과 막파티를 모집하는 유저들까지…….
포탈 설치를 해야 할 나조차도 뚫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마을 안은 사람들로 미어터지고 있었다.
“쪼렙들은 가 봤자일 텐데 뭐 하러 이렇게 몰려온 걸까요, 오빠? 공격도 안 박히고 툭하면 죽을 텐데……?”
“축볼이 넌 주로 파티 사냥만 해와서 잘 모르는구나?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넘어갈 때가 오히려 가장 안전한 순간이야. 그리고 사냥하러 갈 거란 생각도 편견이지. 일반 유저들 중에는 관광 다니려고 타연하는 사람도 많을뿐더러, 채집만 전문으로 하는 유저는 또 얼마나 많은데!”
“누나가 모를 수도 있죠. 앞으로도 솔플할 일은 없을 건데요 뭐!”
“누가 뭐랬냐? 왜 축굴이 니가 발끈이야?”
이 경이로운 광경을 목격하는 도중에서도 투덕거리고 있다니.
뭐, 어차피 우리는 성안에 전용 포탈이 따로 있으니, 굳이 함께 갈 필요도 없이 혼자 설치하기로 했다.
“함께 광장까지 가긴 힘들겠죠? 그럼 혼자 들어가 보겠습니다.”
“어? 어떻게 들어가게? 귀환 주문서로?”
“요즘 잘 안 꺼내드려서 깜빡 잊으셨어요? 저한텐 이게 있잖아요! 훼라리 소환!”
예전 같으면 그림자 밟기 쿨타임을 기다려가며 한참이나 걸렸을 거리를, 훼라리를 타고 단숨에 뛰어넘었다.
한데 마을 광장 안은 내려앉을 곳이 보이질 않아, 일단 유저들 머리 위 상공에 훼라리를 멈춘 채 머물렀다.
“와아아! 산드로의 드레이크다!”
“왔다! 왔어!”
“산! 드! 로!”
“산! 드! 로!”
‘뭐, 뭐야……?’
유저들이 몰린 것까지 그럴 수 있다지만, 도대체 이 환호성은 뭐지?
족히 수천 명은 넘어 보이는 유저들이 다 함께 상공에 떠 있는 나를 올려다보며 반겨주었다.
심지어는 박자에 맞춰 내 아이디를, 광장이 떠나가라 입 맞춰 외치기 시작했다.
[라스트챤스: 와~ 이거 장관인데요? 이런 건 타연하면서 처음 봐요! 우리 길마 형님, 생각보다 대단한 분이셨는데요?]
[축복받은얼굴: 그러게.... 저 자식이 언제 이렇게나 인기가 많아졌지?]
와순이를 타고 쫓아온 라챤이와 현중이도, 이 믿지 못할 광경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 안녕하세요 여러분! 이렇게나 많은 분이 찾아주실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반갑습니다!”
“산드로 님! 방송 잘 봤습니다! 사냥터 오픈해 주셔서 감사해요!”
“역시 대인배 산드로! 이러니까 다리우스가 졌지!”
“맞아 맞아!”
성을 먹은 것도.
세금을 없앤 것도.
그리고 지금 하려는 포탈을 조건 없이 공유하는 것까지도…….
사실은 모두 유저들을 배려하기 위한 마음으로 했던 일들이 아니었다.
말만 대의를 위하고 태성과 다른 길드가 되고자 한답시고 포장한 것이었지.
전부 우리 길드, 그리고 나의 이득이 될 만한 방법을 모색하다 보니 행하게 된 일들이었다.
‘근데 이렇게나 좋게들 봐주실 줄이야…….’
양심에 찔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그저 악플 좀 덜 달리고 호감 좀 얻을 수 있는 이미지 개선용 이벤트일 거라 생각한 일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대인배 소리까지 듣게 됐다.
다리우스를 죽이는데 성공하고 태성과 전면전을 벌인 만큼 강해졌는데도,
변하기는커녕 세금도 없이 성을 운영하고 어렵게 오픈한 신규 콘텐츠는 아낌없이 공유하는 유저!
유저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만큼, 이상적인 최강자의 모습으로 비춰졌던 건 아니었을까?
“너무나 많은 분이 모이셨네요! 그러니 더 시간 끌지 않고, 곧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오예! 좋습니다!”
“어서요, 어서!”
“갑시다! 고고!”
탁!
건물들로 둘러싸인 광장 한복판으로 이동한 후, 훼라리를 역소환시키며 착지했다.
그리고는 인벤토리창에서 카오스 스톤을 꺼내 들었다.
복구된 귀환석보다 10배는 크면서 더욱 선명한 빛을 띠고 있는 돌을 터치하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좌표가 새겨진 카오스 스톤’을 활성화하겠습니까?]
[YES]
[이곳에 시공의 틈새에 있는 ‘호라이즌 마을’과 연결되는 포탈이 설치됩니다.]
띠링! 띠링!
[테론 대륙에 숨겨진 세 번째 금지, ‘시공의 틈새’의 출입 제한이 사라졌습니다.]
[업적 ‘금지를 개척한 자’를 획득했습니다.]
여러 메시지가 연달아 떠올랐지만, 눈앞의 이적(異跡)을 쳐다보느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귀환석 때와 비슷한 모양의 검붉은 빛의 포탈.
하지만 그 높이와 넓이는 10미터가 넘어 보일 만큼 거대했던 탓에, 마을 광장은 한순간에 뭔가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공간으로 탈바꿈됐다.
“우와아!”
“뭐야? 엄청 큰 포탈이네?”
“이런 크기는 처음 보는데? 포스 쩐다!”
그리고, 워낙 유저들이 넘쳐났던 터라 곧바로 폭발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응? 업적을 획득했네?’
그제야 올라온 메시지창을 읽다 보니, 역시나 카오스 스톤 설명창에 적혀있던 대로 포탈 설치와 동시에 금지라는 제약도 사라진 상태였다.
[한 시간 후, 게임의 업데이트를 위해 임시 점검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예상 시간은 약 2시간입니다.]
[모두 안전한 곳에서 로그아웃해 주시기 바랍니다.]
"응? 임시 점검이라고?”
"아 뭔데! 이제 막 신규 사냥터로 넘어가 보려고 했는데!"
슈슝! 슝! 슝!
그새를 못 참고 포탈로 넘어가는 유저들로 정신없는 와중에도, 메시지창 하나가 새롭게 떠오른 것을 놓칠 수 없었다.
오랜만에 임시 점검을 알리느라 뜬, ‘전체 알림창’이었기 때문이다.
‘뭐지? 금지가 해금돼서 그런 건가? 그래도 굳이 업데이트가 지금 이뤄져야 하는 건가?’
시공의 틈새와 연결된 것이, 스토리상 신검의 등장으로 타이탄 시스템이 업데이트될 때와 비슷한 정도의 사건이었나?
그런 의문이 드는 찰나, 갑자기 한 유저로부터 귓속말이 들어왔다.
(대탐험시대: 안녕하세요, 산드로님. 저를 아실지 모르겠는데, 혹시 괜찮으시다면 대화 좀 잠깐 나눌 수 있을까요?)
(나: 네? 지금요?)
(대탐험시대: 네, 급한 일이라 이렇게 귓속말을 드리게 됐네요. 혹시 시공의 틈새라는 곳에 공간 이동과 관련된 마법사 NPC가 숨겨져 있나요?)
뭐지, 이 사람?
혹시 주나스를 말하는 건가?
누구한테 들어보거나 본 적도 없을 NPC의 존재를, 도대체 이 사람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나: 뭐 알고 계신 게 있는 건가요?)
(대탐험시대: 맞나 보군요. 그럼 지금 당장 좀 만나 뵐 수 있을까요?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