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몰려드는 사람들 (3)
대탐험시대.
타연 최초로 수중왕국의 존재를 밝히고, 그린 드래곤 투 메르타스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알려준 유저.
그가 한 번씩 올리는 노하우 글들은 모두 조회수 최상단의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따로 수십만의 구독자를 보유한 너튜브 채널까지 운영 중인 그는, 타연 최고의 유명인 중 하나였다.
그런 그에게서 뜬금없는 타이밍에 귓속말이 들어온 것이었다.
“일단 신규 필드 맛 좀 먼저 봐 보자!”
“그래! 점검이고 나발이고, 앞에 사람들 얼른 좀 안 들어가냐!”
슈슝! 슝슝!
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던 유저들이 뭉텅이로 사라지는 걸 보니, 금지라는 출입 제한은 제대로 풀린 모양.
그러니 당장 점검이 있을 때까지 딱히 해야 할 일이 남아있진 않았다.
(나: 그러면 아베르 성 내성으로 오시겠어요?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대탐험시대: 감사합니다. 바로 갈게요!)
그 또한 방송을 보고 포탈 설치 현장에 있었던 건지, 내성으로 돌아오자마자 금세 찾아왔다.
한데 예상과 달리 혼자 방문하지는 않았다.
“안녕하세요, 탐험 님? 처음 뵙겠습니다. 한데 옆에는……?”
“안녕하세요!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온 유저는 제 친구이자 게임 파트너입니다. 아무래도 고레벨 지역은 혼자 돌아다니기 힘드니까요.”
알려진 대로 그의 클래스는 성기사.
한데 함께 온 파트너라는 유저는 아무리 봐도 흑마법사 계통 같았다.
‘성기사와 흑마법사 조합이라니……. 확실히 특이한 유저가 맞네.’
“반가워요 산드로 님! 저 님 엄청 팬인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아, 네……. 대탐험 님에 대해선 잘 몰랐었는데, 상당히 특특한 조합으로 다니셨네요? 성기사와 흑마법사시라니…….”
“흑마법사요? 아하! 제 복장 보고 오해하셨나 본데요. 전 흑마가 아니라 네크로맨서입니다. 하하!”
“그러게 게임 좀 열심히 하지 그랬냐? 산드로 님이 네 아이디도 몰라보시잖아?”
그거나 저거나.
여하튼 점검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굳이 모르는 유저와 잡담이나 나눌 시간은 없었다.
“근데 제게 하시고 싶은 얘기라는 게……?”
“아! 사실 저도 이미 진작부터 시공의 틈새라는 곳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다리우스 님을 비롯한 태성 길드의 극소수만 출입이 가능했다는 사실도 말이죠. 그런 저다 보니, 오늘 산드로 님의 인터뷰 방송을 보고 바로 달려올 수밖에 없었죠.”
“그러세요? 그럼 혹시?”
“네. 맞아요. 님께서 포탈을 설치해 주시자마자 바로 넘어갔다 돌아오는 길입니다.”
“흐음…….”
포탈이 설치되자마자 넘어간 몇몇 사람들 중 이 둘도 포함되었던 모양이었다.
하긴 타연의 곳곳을 탐험하는 재미로 게임하는 유저가 정말 맞다면, 한편으론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잠시 후면 점검으로 로그아웃도 해야 하고, 많이 바쁘신 분이실 테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아까 제가 드린 말씀, 혹시 대답해 주실 수 있나요? 그곳에 그런 NPC가 있는지요……?”
“죄송하지만 그건 직접 알아내시는 게 맞지 않을까요? 보아하니 무슨 퀘스트나 퀘템을 갖고 계신 것 같은데…… 전 포탈을 공유한 것만으로도 할 일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는데요.”
뛰어난 솜씨와 센스로 자신이 탐험한 것들을 재생산하는 그.
각종 지도와 미공개 지역의 일러스트 제작 등으로 제법 많은 수익을 벌어들이는 것답게, 그의 장비는 대부분 레전더리 템들로 보였다.
이런 부류의 유저들은 현실에서 버는 돈은 거의 대부분 GTB를 통해 골드 구매하는 데 사용하기 마련이라 말이다.
“태성이 먼저 왔지만 결국 버닝스타가 포탈을 열었다는 점. 그리고 이동 수단이 ‘포탈’이라는 점. 이 2개의 단서만 가지고도 그곳에서 공간 이동과 관련된 마법사 NPC의 퀘스트를 산드로 님이 먼저 클리어했다는 걸 유추할 수 있죠. 전 그저 확인을 바랄 뿐입니다. 그것도 말씀해주시기 어려운 건가요?”
확실히 나름의 명성이 있는 유저라 그런지 평범한 사람과는 다르게 보였다.
이런 성향의 유저라면 호라이즌 마을에서의 퀘스트도 순식간에 전부 완료한 뒤, 주나스의 행적을 찾는 일 따윈 식은 죽 먹기일 것.
결국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고 나도 질문을 하나 물어보는 편이 나아 보였다.
“맞습니다. 대충 알고 오신 걸 보면 남들보다 앞서나갈 정보를 원하신 거겠죠? 시공의 틈새는 천 년 전 마도 시대의 주민들이 갇혀버린 곳으로, 그곳 사람들에게는 그동안이 10년의 세월밖에 흐르지 않은 곳이었죠. 따라서 고대 마도 시대의 마법사 NPC도 그곳에 살아있었습니다.”
“역시…….”
“어? 대탐아! 네가 말했던 게 전부 사실이었네? 와! 그럼 대박이잖아?”
내 말이 끝나자, 오히려 옆에 있던 네크로맨서 ‘기파랑’이 더욱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데 놀란 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응? 이걸 다 짐작했었다고? 어떻게?’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대탐험시대는 곧 무언가 결심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이미 눈치채셨겠죠? 제가 왜 갑자기 이런 걸 여쭤보고, 직접 찾아도 왔는지……. 사실 최근에 혼자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오늘 인터뷰 방송을 보고 마음을 거의 굳혔습니다. 직접 만나 뵙고 나니 더욱 그렇네요.”
“그게 무슨 뜻이시죠……?”
“저와 제 친구의 레벨은 각각 363와 365입니다. 눈에 차시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아슬아슬하게 랭커급이라고 불릴 만한 수준이죠. 템도 저강화긴 해도 둘 다 풀 레전더리고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희가 버닝스타 길드에 가입할 수 있을까요?”
“네?”
갑작스러운 길드 가입 요청이라니…….
분명 인터뷰에서 홍보하기는 했다지만, 방영된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만에 바로 요청이 들어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두 분이시라면 믿을 만하실 거예요, 드로 형님. 형님은 잘 모르실 수 있지만 태성과 얽히셨을 분들이 아니거든요. 제가 알기로 수많은 길드들의 스카우트 제의도 모두 거절하신 분으로 알고 있어요.”
“엇! 당근 님이시다!”
“안녕하세요, 당당검 님. 직접 만나 뵙는 건 오랜만이네요!”
쭉 내 뒤에서 은신 상태로 듣고만 있던 당당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나 최정상급 유저들이라 그런지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인 듯싶었다.
‘무 길드에 중립 성향. 그중에서도 실력과 신원까지 검증된 최적의 유저들이네…….’
그야말로 딱 맞춘듯한 유저들이 찾아온 셈.
그렇다고 검증 절차를 생략할 순 없었다.
“먼저 저희 길드에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왜 저희 길드를 선택하셨는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저희가 친목 길드가 아닌, 무려 태성과 척지고 있는 전투 길드란 걸 아실 텐데요.”
“전투 길드긴 하지만, 모험 길드라는 사실도 끌렸다고나 할까요? 투 메르타스의 퍼스트 킬, 제국 마탑주와의 결투, 긔고 이번 시공의 틈새 개척까지……. 그동안 최강의 길드라던 태성도 하지 못한 많은 업적을 단시간만에 세우셨잖아요? 저도 그 현장에 함께하고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탬이요?”
“네. 그리고 이것 좀 한번 봐 보시겠어요?”
이유를 설명하던 그는 내게 다가와 교환을 걸고는, 교환창 위에 한 개의 아이템을 올렸다.
<+2 힘을 잃은 펠아린의 날개 부츠(레전더리, 신발)>
* 방어력 130(+26)
* 마법 방어력 80(+16)
* 모든 스탯 +10(+2)
* 모든 속성 내성 +5%(+1%)
* 이동 속도 +10%(+2%)
* 현재 힘을 잃은 상태(!)
* 신마전쟁 12영웅 중 하나, ‘도약의 펠아린’의 무구 중 하나입니다.
* “모든 것을 파괴하는 마왕의 불꽃은 위대한 영웅의 업적마저도 훼손시켰다. ‘도약’이란 이름을 얻게 했던 그 힘을 되찾기 위해서는, 펠아린 님의 지난 행적을 좇는 수밖에 없으리라.” -역사학자 드미트리 란테스-
부츠는 레전더리답게 준수한 스펙에 뛰어난 옵션을 자랑하고 있었다.
다만 중요한 옵션 하나가 힘을 잃었다는 점이 못내 아쉽게 느껴지는 템이기도 했다.
“제국 황제에게서 받았던 S급 업적을 클리어하고 얻은 템이에요. 황실 창고에 처박힌 템 중 하나를 받게 되는, 일종의 랜덤 보상이었죠.”
“어라? 타연에 황실 창고란 것도 있었나요?”
“아마 보상까지 받아본 유저는 타연에 다섯 명을 넘지 않을걸요? 아무튼, 그 후로 제 타연 속 목표는 이 템을 완성하는 것으로 정해졌습니다. 처음 직업을 고를 때, 마법사는 나중에 플라이를 배울 수 있다는 걸 몰랐던 게 내내 한이었거든요!”
레벨 제한 330에 풀리는 마법사의 고유 스킬, ‘플라이’.
구하기 힘든 스킬북에다 워낙 느린 비행 속도 탓에 실전에서는 거의 쓸모가 없지만, 타연 속 가장 배우고 싶은 스킬 중에서는 언제나 수위를 다툴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이유는 단 하나,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다는 사실 때문.
훼라리란 펫을 통해 극한의 자유로움을 충분히 느껴본 나였기에, 그의 열망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한참을 조사한 끝에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도약의 펠아린이 자가 비행이 가능했던 건 역시 이 날개 부츠 때문이라는 걸. 그리고 그가 천계에서 이 부츠를 얻게 됐다는 역사도요. 제작사가 이런 템을 만들어두었는데, 다음 단계는 유저가 천계를 갈 수 있는 게 맞지 않을까요? 한데 모든 곳을 뒤져봐도 천계로 향하는 방법이나 단서는 찾을 수 없었죠.”
그는 예전 당당검이 내게 해준 말과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다.
당당검은 천계로 향하는 루트로 막연히 수중왕국을 추측했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대탐험시대는 이미 그곳이 연관 없는 곳이란 사실마저도 알고 있는 뉘앙스였다.
“결론은 하나였죠. 후에 업데이트되거나, 완전 새로운 필드에 단서가 존재한다는 것. 어쩌다 보니 이 두 가지가 바로 조금 전에 공개되게 됐네요. 시공의 틈새와 게임 업데이트. 이번 업데이트는 보나 마나 천계와 관련된 내용일 겁니다. 그래서 바로 더 고민할 것도 없이 귓말을 드렸죠.”
그가 말한 내용 중에 앞뒤가 안 맞거나 거짓이라고 느껴지는 부분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가 이런 목표를 갖고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필연적으로 나를 찾아올 수밖에 없어 보였다.
왜냐면 현재 타연 속에서는 내가, 그의 꿈을 이뤄줄 수 있는 가장 높은 확률을 가진 사람이었으니까.
[산드로: 축빙 형님. 모두 들으셨죠? 어떤가요? 일단 저는 받아들이고 싶은데요...]
[축복받은무빙: 나도 찬성이다. 사실 난 대탐님 구독자이기도 하고ㅎㅎㅎ]
[산드로: 그럼 잠시 기다렸다가, 다른 반대의견이 없으면 이 두 분을 길드원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축복받은파볼: 웅~그래~]
[당근당근단검: 저도 찬성입니다.]
다들 내성 안에서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던 터라, 결론은 빠르게 나왔다.
“……그렇다면 잘 찾아오셨습니다. 환영합니다. 저희 버닝스타의 길드원이 되신걸! 점검 전까지 들어와서 길드원들과 인사부터 나누죠!”
간만에 새롭게 받아들인 길드원 2명.
특히 대탐험시대는 당당검 못지않게 신규 콘텐츠 공략에 많은 도움을 줄 유능한 유저였다.
내가 구상하는 이상적인 길드의 모습이 점차 갖춰가는 것에 흡족하며 대화를 나누다가, 어느덧 임시점검이 다가와 로그아웃했다.
* * *
“시공의 틈새가 풀리니까 바로 업데이트라니…… 역시 천계로 통하는 중간 역할이 맞았던 모양이지?”
“응. 당당이도 그렇고 새로 오신 대탐 님도 그렇고. 고수들이 그렇게 확신한 이유가 있었더라.”
“근데 대탐 님은 성기사시던데, 나랑은 포지션이 좀 겹치겠네.”
“뭘 걱정이야? 탱커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잖아!”
로그아웃한 뒤, 나는 현중이와 2시간의 업데이트 시간을 기다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둘밖에 없어 대화인 거지, 어떻게 보면 녀석과 난 매일같이 짧은 회의를 나누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타연은 어느새 우리 삶의 일부이자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하는 일터이기도 했으니까.
“하긴 네크로맨서라는 새 직업도 함께 들어오셨으니 괜찮으려나? 특이한 조합으로 게임해 오셨더라.”
“잠깐 들어보니까 신규 필드나 인던, 고레벨 지역을 탐험할 때 저만한 조합이 없었다더라. 자체 힐에다 무적 스킬도 있고,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몹들도 소환 몹으로 정리가 된다던가? 뭐, 그동안 쌓아온 자신들만의 노하우가 있더라고.”
“그런 유저들만 모인 게 또 우리 길드이기도 하지. 딱 마침맞게 잘 영입했네. 굿굿!”
그런 유저들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 이런 길드란 걸 알고서 그런 유저들이 접근해온다는 편이 맞는 말 같지만, 뭐가 됐건 상관없었다.
도움이 될 만한 유저가 늘어날수록, 앞으로 있을 태성과의 콘텐츠 선점 경쟁에서는 좀 더 유리해질 테니까.
“천계라……. 그곳에 가면 나도 내 애마를 구할 수 있을까?”
페가수스 획득 루트가 어느 정도 공개됐음에도 현중이는 크게 관심 갖지 않았다.
아무래도 펫을 얻으려면 올림푸스 길드에 고개를 숙여야 해서 내켜하지 않는 것 같았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평소 내 훼라리를 봐왔으니 일반 페가수스로는 성에 차지 않는 건지도 몰랐다.
“어쨌든 지금까지는 성공이야. 생각보다 유저들의 호응도 초반부터 좋고. 이렇게 유저들이 몰려들었으니, 이번 달 수성은 생각대로만 된다면 무난히 성공할 수 있을 거야.”
“처음 니 계획을 들을 때만 해도 긴가민가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내 패배인가 보다. 하도 변수가 많아서 니 말대로 안 되는 것 같다가도, 결국에 지나고 보면 다 니 말대로 돼 있더라?”
“그게 실력이란 거란다 현중아. 너와 나 사이에 메울 수 없는 차이점이고 하고!”
“하여간 이 새끼는 칭찬을 못 해주겠다니깐!”
쓸데없는 잡담까지 하다 보니 2시간이라는 시간은 금세 흘러갔다.
그렇게 다시 열린 서버에 접속하자, 생각지 못했던 업데이트 로그 내역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