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170화 (170/350)

170화 2.0 업데이트 (1)

“뭐야? 다들 업데이트 내용 읽어봤어?”

“네. 대박이던데요?”

각자 점검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터라, 모두 접속하자마자 들어오면서 읽었던 로그 내용에 대해서 떠들어댔다.

“도대체 이런 대형 확장 팩을 언제 다 준비해뒀던 거야?”

“그러게요. 하여간 일루전은 도무지 예상이 안 되는 개발사라니까요!”

“당당아, 혹시 너는 알고 있었니?”

“조금은요. 항상 먼저 만들어놓고 하나씩 푸는 게 타연의 특징이도 하니까요. 하지만 저도 이렇게 대규모 업데이트가 준비되어 있을 줄은 전혀 몰랐어요.”

몇 명 되지 않는 길드원만으로도 내성 안이 떠들썩할 정도.

그러니 현재 타연 속 모든 유저들이 얼마나 놀랐을지도 충분히 예상됐다.

* 시공의 틈새가 금지에서 해제되어, 이동 가능한 지역이 보다 넓어집니다.

* 시공의 틈새에 새로운 퀘스트와 몬스터들이 추가됩니다.

유저들이 몰릴 것이 당연했으니, 임시점검을 통해 즉각 업데이트된 사항들은 신규 필드와 관련된 세부 내용들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업데이트 내역 가장 마지막에 적혀진 두 줄의 메시지만큼은, 짧지만 어마어마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었다.

* 메인 퀘스트의 진행도에 연동되어, 다음 정기 점검에 타이탄 연대기의 2.0 업데이트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 새로운 볼륨으로 준비된 대규모 업데이트, ‘천계와 마계’에 유저분들의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2.0 업데이트라니……. 그럼 지금까지는 버전 1이었다는 소리야?”

“새 볼륨 타이틀을 걸고 진행될 정도면, 얼마나 대규모 업데이트란 거지?”

“엄청나겠죠. 이제까지는 기껏해야 소규모 필드 지역이나 성 하나, 인던 몇 개 정도만 소소하게 업데이트됐었잖아요. 이번처럼 ‘타이틀’을 걸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요.”

“천계와 마계라니……. 역시 예상했던 대로긴 하구나. 마계도 함께 진행될 줄은 몰랐다만.”

축빙 형님, 라챤이, 당당검 등.

다들 타연 속 초고수를 자처해도 손색없는 이들에게마저도, 이번 업데이트 소식은 충격인 듯싶어 보였다.

거대 게임쇼에서의 쇼 케이스, TV나 인터넷 광고, 각종 시네마틱 영상 제작 등등…….

다른 대형 게임사들은 그들의 대표 타이틀 게임의 업데이트나 확장팩 버전이 발표될 때마다, 무척이나 성대하고 요란하게 홍보했다.

반면 일루전은 왜 저럴까 싶을 정도로 업데이트 홍보에 소극적이었다.

밸런싱 관련이나 수정 사항이 있을 때만 조금 자세한 설명이 추가될 뿐이었지, 어떤 지역과 퀘스트, 스토리 등이 추가됐는지는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그 탓에 유저들은 직접 새 지역을 탐험해야 하고, 그곳을 다녀온 유저들의 후기를 읽고 막연하게 상상해야 했다.

또한 어떤 내용들이 추가될 예정인지, 아니면 이미 업데이트됐는지 구분조차 못 한 채로 게임을 플레이해야만 했다.

침묵의 숲에 드래곤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데스라 사막에 고대 마도 시대의 유적지가 있다는 사실도.

시공의 틈새라는 금지가 존재한다는 것마저도…….

전부 유저들이 직접 밝혀내기 전까지는, 존재 자체도 미리 알지 못하는 구조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와서는 이런 일루전의 행보가 최고의 마케팅 기법으로 회자되고 있었다.

가상현실 게임이라서 생겼던 일종의 제약과 영상으로 접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새로운 체험을 해보고 싶어 하는 유저들의 궁금증을 오히려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천계와 마계라는 이 단순한 두 단어만으로도 타연 유저들의 기대감은 역대급으로 폭발해버릴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정기 점검은 일주일 후니, 이번 주 내로 무슨 정보라도 조금은 공개되겠지. 이렇게 예고한 적은 처음이니까.”

“네. 일단은 다들 그때까지 레벨업에 집중해 주세요. 천계…… 그리고 마계까지 저희가 태성보다 앞서 선점하려면, 역시 레벨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와! 진짜 쉴 새가 없구나 없어! 군단장 잡고 나면 좀 여유로워질 줄 알았는데!”

“배부른 소리 할래, 축굴아? 남들보다 앞서나가는 게 저절로 되는 건 줄 알았어?”

“와! 우리 축빙 형님 말씀하시는 것 좀 봐! 언제 이렇게 꼰대가 다 됐지?”

다들 시끄럽게 떠드는 와중에도 기대감에 찬 표정을 감출 순 없었다.

대규모 업데이트 소식을 보고 당연하다는 듯이 선점할 생각부터 하고 있다니.

새삼 우리 길드원들이 타연에서 어떤 위치로 성장했는지 실감이 드는 한편, 서둘러야겠다는 조급함도 들었다.

“당당아, 그리고 대탐 님?”

“네.”

“부르셨어요?”

인원은 적지만, 어느새 우리 길드에는 타연 최고의 공략가가 둘이나 들어와 있었다.

물론 라챤이도 이 둘에 비해 빠지는 인물은 아니지만, 하루빨리 랭커가 되어 우리 길드의 원딜을 책임져 주는 게 더 급선무였다.

“두 분은 저와 함께 업데이트를 준비하기로 하죠. 선행 퀘스트나 단서 찾는 것에 집중해서, 업데이트가 끝나면 바로 진행할 수 있도록요.”

“좋아요.”

“바라던 바예요. 제가 버닝스타에 들어온 이유가 바로 그건 걸요.”

시공 포탈을 설치했으니, 다른 랭커들이나 길드들도 시공의 틈새를 공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그들과의 선점 경쟁에 앞서가기 위해선, 조금도 방심하지 않고 더욱 철저히 준비해 둘 필요성이 있었다.

* * *

2.0 업데이트가 진행되기 5일 전.

공식 홈페이지를 비롯한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신규 필드인 시공의 틈새에 관한 이야기가 매 순간 도배되듯이 올라왔다.

-단언컨대 시공의 틈새는 역대 모든 사냥터 중에서 최고의 레벨업 필드가 확실하다

└또 또 산드로 빠돌이 출동했냐? 템도 안 나오는 곳이 뭐가 최고래?

└└글 제대로 안 읽냐? 템이 잘 나오는 게 아니라 레벨업이 최고라고

└└└그건 다시 말해 현질러들 말고는 가면 안 된다는 곳인 거지

└└└└얘 진짜 뭐냐? 하여간 악플러 자식들 직접 가보고 좀 글 써라. 반대로 말하고 앉아있네ㅋㅋㅋㅋ

-레벨이면 레벨, 템이면 템. 골라서 챙길 수 있는 곳이 공틈이다!

└이거 진짜 ㄹㅇ임. 레벨 낮아서 암것도 못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렙 낮은 애들한테 천국이었음

└└이건 또 뭔 소리임?

└└└타연 특성상 직접 가봐야지만 알지 글로는 모름. 장담하는데 200렙 후반만 돼도 듀메인이나 번스타인에서 헤맬 바에는 공틈으로 가는 게 백배 나음!

└└└└직접 가보라고 그렇게 말해도 안 가는 애들 개답답. 가보면 안다고ㅋㅋㅋ

└└└└└못 믿겠는 애들은 좀 놔둬라. 꿀 좀 더 빨게ㅋㅋㅋ

시공의 틈새가 얼마나 좋은 사냥터인지.

따로 홍보도 하지 않았지만, 금세 소문나게 되었다.

텔파스와 로퍼스 형제.

이 두 NPC를 선택해 얻을 수 있는 보상들이 얼마나 유저 친화적인 시스템인지, 사람들도 금세 알아차린 것이다.

골드나 아이템 대신 ‘경험치’를 선택할 수 있는 레벨업 사냥터.

시간만 투자하면 무조건 본인 직업에 어울리는 ‘심연의 무구’라는 신규 장비를 보상으로 얻을 수 있는 필드.

항상 둘 중 하나는 아쉬울 수밖에 없던 타연의 필드 사냥터 중에, 양쪽 모두를 충족시킬 수 있는 뉴 사냥터가 등장한 것이니 말이다.

허나 고레벨 유저들 만큼이나, 중레벨대의 유저들까지도 몰리게 된 상황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공틈 마을 북쪽보다 300레벨을 빨리 찍을 수 있는 사냥터는 없음!

└이거 레알임. 다들 속는 셈 치고 한번 가보세요! 아, 물론 탱커와 근딜러들은 빼고ㅋㅋ

└└여기 구경 한번 가봤다가 깜놀했다. 완전 원딜러들의 성지더만?

타이탄 에이지부터 이어온 유구한 역사 속에서, 이제는 잊혀져버린 이름이 있다.

바로 궁수들로만 이루어진 ‘활피단’, 그리고 마법사들로만 이루어진 ‘법피단’.

이 기형적인 구조의 집단이 뜬금없게도 시공의 틈새에서 부활해버렸다.

물론 예전과 같은 PK를 위한 것이 아닌, 오직 심연의 몬스터들 사냥만을 위해서!

무척이나 맞추기 쉬운 거대한 몸집에 막대한 HP를 자랑하는 심연의 몬스터.

가뜩이나 원딜러들의 타겟이 되기 쉬운 유형의 몹인데, 어비스 수치라는 유일한 보상이 딜링한 만큼씩 주어졌다.

그러니 원딜러들끼리만 사냥하면, 드랍 템들을 먹자에게 스틸당하기 쉬운 구조였던 기존 사냥터보다 훨씬 좋은 조건이었다.

거기에 큰 몸집만큼이나 유달리 긴 어그로 범위 덕분에, 가만히 자리만 잡고 있어도 사방에서 심연 몹들이 알아서 다가왔다.

이러다 보니 오픈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필드의 각 포인트들마다 원딜러들이 하나둘씩 자리 잡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제는 중레벨대 유저들까지 몰려들어 수백 명이 한곳에 자리를 잡고 사냥하는 모습마저도 종종 찾아볼 수 있었다.

죽을 걱정 없는 안전한 사냥터에서 온종일 활만 당기기만 하면, 간혹 박히는 공격과 주어지는 어비스 수치 덕분에 동렙의 사냥터 대비 몇 배나 빠른 레벨업이 가능했던 것이다.

2.0 업데이트가 진행되기 4일 전.

한국인들답게 신규 필드에 대한 분석이 급속도로 파악되자, 내가 예상했던 일도 생각보다 빠르게 이루어졌다.

각 성마다 관공서를 통해 이루어지는 점령 지역 마을의 건물 임대.

다름 아닌 아베르 성의 ‘하우스’와 ‘스토어’ 낙찰 경매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요즘 호박 마크 단 장사꾼들이 왜케 많이 보이는 거냐?

└상인 연합 중에서 호박 마켓이 아베르 성 독점하고 있는 거 모름?

└└엥? 어쩐지 마을 광장에 죄다 호박 길드네 상점밖에 없더라니

└└└첨에 호박 마켓이 아베르로 본점 옮긴다고 할 때 망했구나 싶었는데, 갑자기 시공 포탈 때문에 신의 한 수가 됐음ㄷㄷ

호박 마켓에게 약속했던 상점 자리를 주고도, 남은 상점 자리가 7개나 됐다.

거기에 길드들이 임대할 수 있는 하우스는 총 15개 그대로 남아있었다.

보통 임대는 1달 단위로 이루어져 공성이 끝나면 바로 낙찰 경쟁이 이루어지는데, 아베르 성은 워낙 인기가 없어 그동안 비어있었다.

따라서 이번에 낙찰받으면 보름도 사용하지 못할 걸 뻔히 알면서도, 수백 개가 넘는 길드들이 입찰에 들어왔다.

그렇게 낙찰로 들어온 임대 수입금만 해도 155만 골드.

현금으로 치자만 1억5천이 넘는 거금을 한순간 만에 벌어들이게 되었다.

‘수성을 무사히 마치게 되면, 다음 달엔 이것보다 몇 배가 넘는 골드가 들어올 거야.’

세금을 받지 않더라도 길드 운영비가 충족될 거라고 믿었던 이유.

드디어 그 수익 모델이 시공 포탈의 설치와 동시에 돌아가기 시작했다.

2.0 업데이트가 진행되기 3일 전.

첫 출시 이후로 단 한 번도 진행되지 않았던 총괄 디렉터의 방송 인터뷰가 방영되었다.

『이번 타이탄 연대기 2.0 업데이트는 저희도 오랜 기간 준비해온 확장팩입니다. 저희 일루전의 원칙이자 운영 방침상, 유저들이 직접 도달하기 전까지 차후 콘텐츠를 공개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아쉬웠을 만큼 말이죠. 그만큼 유저분들께서는, 이번 업데이트를 통해 많은 변화를 체감하게 되실 겁니다』

『기존의 유저들 뿐만 아니라 신규 유저분들을 위한 콘텐츠들도 많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잠시 타이탄 연대기의 세계를 떠나신 유저분들이 돌아오실 만한 부분도 염두에 두었고요. 그래서 오랜만에 대대적인 광고와 시네마틱 영상, 오프라인 이벤트 등도 실시할 예정입니다!』

‘저 사람이 이오네스구나……. 새로운 총괄 디렉터.’

타연의 모든 것의 기획하고 개발했던 기존의 총괄 디렉터이자 부사장이었던 장혁수의 후임인 ‘배혁진’의 인터뷰였다.

사람 좋아 보이는 눈웃음과 부드러운 어조가 돋보였지만, 마냥 그런 성격이기만 했다면 저 자리까지 올라가지는 못했을 터.

방송에서 보인 살가운 모습 때문인지, 내 눈에는 왠지 모르게 그가 더욱 의심스럽게만 느껴졌다.

2.0 업데이트가 진행되기 2일 전.

이오네스의 장담대로, 대대적인 광고가 이어졌다.

각종 TV와 인터넷 매체에서는 타이탄 연대기의 광고와 기사들이 줄을 잇기 시작했고, 너튜브에 공개된 시네마틱 영상은 단 하루 만에 5천만 뷰를 갱신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돌풍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이벤트였다.

-천계 풍경 보고 쌌다. 천국의 모습을 드디어 보게 된 느낌이야!

-마계야말로 지리더라. 정말 업데이트되면 두 곳 다 가볼 수 있는 거 맞냐? 아! 빨리 좀 가봤음 좋겠다!

└어림없지~ 첫 타이탄도 출시 3년 만에 공개된 타연인데, 업데이트됐다고 바로 갈 수 있을 리가~

전 타연 유저들의 관심은 날이 갈수록 고조됐고, 일루전의 주가는 매일같이 전고점을 경신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나와 우리 길드원들은 다가올 업데이트를 대비해, 매일 최선을 다해 레벨업과 퀘스트를 완료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2.0 업데이트가 진행되는 당일이 되었다.

2시간의 정기 점검 시간이 시작되었고, 일루전은 이례적으로 이번에 이루어지는 업데이트의 대략적인 내용들을 공식 홈페이지에 사전 공지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읽은 유저들의 생생한 반응이 미친 듯이 게시판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미쳤다 미쳤어! 이러면 완전 다 바뀌는 거나 마찬가지네!

-ㅋㅋㅋ누구는 득 보고 누구는 피눈물 나게 생겼네ㅋㅋㅋ 뭐가 됐든 난 개이득!

-이거 완전히 산드로 저격 패치 아니냐? 레알 짱나겠다ㅋㅋ

└저격은 아니지. 읽어보니 원래부터 개발자들이 이렇게 계획 세워뒀던 것 같던데;

└└그걸 믿냐? 이유야 갖다 붙이면 그만이지ㅋㅋ 산드로 팬들 역겨웠는데 속이 다 시원~

“지환아, 반응 봤냐? 이거 어쩌냐?”

“……별수 있냐? 하던 대로 계속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좀 많이 빡치긴 하다만…….”

그리고 점검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동안 게시판에서 가장 언급된 것은.

다름 아닌 바로 나, ‘산드로’의 아이디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