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171화 (171/350)

171화 2.0 업데이트 (2)

정식 타이틀 제목인 천계와 마계에 관한 내용은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다니…….

유저들의 자유도를 최대한 배려한다는 이유로, 여전히 불친절하기 이를 데 없는 일루전의 공지였다.

허나 그렇다 할지라도 이번이 왜 2.0이라고 명명한 대형 업데이트인지는, 충분히 설명될만한 내용이 적혀있기는 했다.

* 새로운 직업 2개가 추가됩니다. 이제 유저분들은 타이탄 연대기 속에서 ‘인챈터’와 ‘악마사냥꾼’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 2차 전직 시스템이 추가됩니다. 이제 유저분들은 보다 진화된 심화 직업이나 이중 직업(dual class)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신규 직업과 전직 시스템이라…… 드디어 추가됐구나…….’

도달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지만, 타이탄 에이지에서의 이론상 레벨 한계치는 999였다.

그걸 감안했을 때 현재의 타이탄 연대기 속 레벨 수준은 아직 중간도 오지 못한 상태.

신검을 비롯한 디바인 템들을 종종 평생 템이라고 언급했던 것도, 7, 8백 수준의 후반부 레벨대까지의 플레이를 염두에 두고 말한 생각이었다.

어찌 됐건 이번 2.0 업데이트는 버전 앞자리 수가 바뀌는 만큼, 많은 변화와 새로운 요소들이 추가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나와는 크게 상관없는 일.

현재 게시판에서 내 이름이 쉴 새 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그다음에 언급된 내용 때문이었다.

* 타이탄 연대기 속에서 새롭게 맞이할 적들을 상대하기엔 많은 고난이 예상됩니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 계정당 단 1번의 스탯 및 스킬 포인트 재분배 혜택이 부여됩니다.

스탯 리빌딩.

그리고 스킬 포인트 재분배.

타이탄 에이지의 기존 10년 역사 속에서도 없었던 일이, 여기 타이탄 연대기에서 공표되었다.

그것도 아무 조짐도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이러면 스탯과 스킬 때문에 캐릭을 새로 키운 사람은 뭐가 돼? 나처럼 렙따해서 개고생한 사람들도 뭐가 되고?’

처음 공지를 읽는 순간, 대뜸 이런 생각부터 들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열 받은 마음을 부여안고 유저들의 게시글들을 훑어보다 보니, 조금씩 흥분이 가라앉았다.

나를 옹호하는 글은 없고 오히려 나를 놀리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었기에, 그런 글들 때문은 아니었다.

“근데…… 사람들이 엄청 환영하고 있네…….”

“맞아. 그러니 어쩌겠어. 그냥 받아들이고, 다시 노력해보는 수밖에.”

어쩌면 난 일방적인 피해자일 수 있었다.

이미 고착화된 스탯과 스킬 테크트리 속에서, 과감한 리빌딩과 실험적인 테크트리에 도전한 끝에 독보적인 캐릭터를 완성시킨 것이었으니.

사실 고레벨들이 이제와서 캐릭을 새로 키우기는 힘든 상황이었으니, 쉽게 따라 하기 힘든 내 올마력 마쉴 도둑이라는 캐릭이 더욱 활개 칠 수 있었다.

한데 갑작스럽게 현 레벨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재분배가 가능해진다?

테크트리를 손쉽게 따라 할 수 있어 까다로운 상대가 등장하는 것은 물론, 내 캐릭터에 맞춘 ‘저격 테크트리’로 갑자기 돌변하는 것도 이론상 충분히 가능했다.

즉 내가 손해 본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나를 제외한 모두가 수혜를 입은 업데이트라고 판단해서 다들 업데이트의 피해자로 나를 지목한 것이었다.

하지만 날 놀리던 글들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가자, 금세 새로운 내용의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대박! 망테크타서 겜 반 포기 상태였는데 개굿굿!

-간만에 일루전이 유저들 말 좀 들어주네. 진작 이랬어야지!

-접은 지 반년 됐는데 초기화 소식 듣고 찾아왔습니다. 209렙 궁수인데 복귀할 만할까요?

└그 정도면 공틈에서 몇 달만 고생하면 바로 300찍을 듯요~

└└공틈이 뭔가요? 새로 생긴 인던이에요?

-장비 세팅 완전 바꿔야겠네! 이번 달 월급 싸그리 다 털어서 달린다ㄱㄱㄱ!

글만 읽어봐도, 유저들이 얼마나 신나 하고 있는지 모를 수가 없을 정도였다.

“현중아. 솔직히 말해봐라. 너도 재분배한다는 이 공지, 맘에는 들지?”

“……안 그럴 유저가 있겠냐? 아무리 완벽하게 키우려고 들어도, 지나고 보면 항상 아쉬운 게 테크트리란 놈인데.”

“그래. 그럼 역시 일루전이 잘한 거네…….”

처음에는 태성과 붙어먹은 운영자가, 이번에도 수를 쓴 게 아닌 건지 의심부터 들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번 패치는 게임사가 얼마든지 운용의 미를 살리거나 마케팅 기법으로 사용할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저 1명당 캐릭터 1개라는 제한.

이 방칙은 타연 속에서 캐릭터의 소중함을 극대화했지만, 반대로 애정이 식어버리면 주저 없이 게임을 접을 만큼 상실감도 안겨주는 양날의 검이었으니 말이다.

“너처럼 다시 키운다고 개고생한 유저들은 피해 보상을 요구할 만도 하지 않을까?”

“됐어. 게임사가 권장했던 플레이 방식도 아닌데 뭐. 그리고 일방적으로 피해를 봤다고만 볼 수도 없어.”

“응? 3일 밤낮으로 렙따하고 몰래 렙업 한답시고 고생한 건 그새 다 잊었나 보네? 피해를 본 게 아니라니?”

“넌 확실히 겜은 좀 하는데, 고정관념이 너무 강해. 캐릭당 1번씩 재분배 권한이 주어진다고 했잖아. 그럼 그게 나한테도 주어진다는 소리 아냐?”

“억……! 설마 그럼 너도?”

“맞아. 나한테도 보험이 하나 생긴 거지. 만약 적들이 마쉴 도둑을 저격한 조합을 찾아내면 그걸 카운터쳐 줄! 아니면…… 나도 새로운 테크트리를 연구해봐도 좋고!”

“캬! 벌써 거기까지 계산한 거였냐? 진짜 니가 내 친구라서 다행이다. 하여간 잔머리 하나는 기가 막히네! 크크.”

“오바 고만해라. 점검 다 끝난 거 같으니까 일단 들어나 가보자.”

“오냐!”

게시글들이 올라오는 속도가 느려졌다 싶더니만, 역시나 점검이 끝나 모두 타연 안으로 우르르 접속한 모양이었다.

우리 둘 또한 각자 할 일이 많았기에, 서둘러 각자 캡슐에 누워 로그인했다.

* * *

[타이탄 연대기에 접속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즐거운 모험이 되길 바랍니다.]

매일 몇 차례씩 마주하는 환영 메시지지만, 오늘만큼은 기분이 남달랐다.

‘즐거운 모험이라…… 그러고 보니, 정말 간만에 모험다운 모험을 하게 생겼구나.’

2.0 업데이트, ‘천계와 마계’.

이번 확장팩을 통해 우리가 얻게 될 손익과 여파 등을 계산하느라 줄곧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하지만 사실 타연 유저들 중 한 명으로서, 이번 업데이트는 내게도 분명 즐거운 일이었다.

‘그동안 남들이 앞서나간 곳을 따라가기만 했던 거니까……. 어떻게 보면 처음인 거지.’

영상화가 불가능한 타연만의 독특한 구조상, 유저가 직접 가봐야지만 그곳만의 정취와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었지만…….

이미 그곳을 먼저 방문하거나 경험해본 유저들의 경험담만으로도 유저들은 간접적으로 체험해볼 수 있었다.

선행자들이 만든 리뷰, 여행담, 각종 일러스트, 합성 사진 등등으로 사전에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건 아직 콘텐츠를 겪어보지 못한 유저들에게 일종의 ‘스포일러(spoiler)’이기도 했다.

몇몇 보스의 퍼스트 킬을 해냈다고, 내가 처음으로 발견한 콘텐츠는 아니었던 것.

침묵의 숲 끝에 뭐가 있는지 모르고, 시공의 나락에 누가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발을 디뎌보는 것이, 진정한 ‘모험’이라고 불릴 만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이번에 업데이트된 신규 지역에 첫발을 내딛는 데 성공만 한다면…….

처음으로 미지의 세계를 모험하고 경험해보는 셈이었다.

[산드로: 접속 오래 기다리셨네요. 다들 업데이트 내용은 숙지하셨죠?]

[축복받은무빙: 봤다만.... 괜찮아? 드로, 너한테 좀 손해인 것 같은 내용이 보이던데...]

[산드로: 괜찮습니다 형님. 아무리 발목 잡으려 해도, 더 빨리 달리면 잡히지 않는 법이잖아요. 더 빨리 뛰어나가죠 뭐.]

[라스트챤스: 오...메모메모... 오늘도 산드로 어록에 명언 하나가 더 추가됩니다.]

“어록은 뭔 어록? 크크!”

“이놈은 사람 앞에다 두고 길드 채팅창 쓰는 버릇이 여전하네.”

함께 접속한 현중이와 함께, 내성 안에 먼저 접속한 라챤이, 당당검 등과 인사를 나누었다.

“대규모 업데이트라 그러더니만…… 별로 변한 건 모르겠네요?”

“뭐, 인터페이스라도 바뀔 줄 알았어요?”

“너 아직 인벤토리창을 안 봤구나? 한 번 열어서 확인부터 해 봐.”

그 말에 당장 열어보니, 정말 처음 보는 생소한 아이템 하나가 들어와 있었다.

<제루티안의 축복(디바인, 특수 아이템)>

* 모든 스탯이 초기화됩니다. (레벨은 하락하지 않습니다.)

* 모든 스킬 포인트가 초기화됩니다. (레벨은 하락하지 않습니다.)

* 이 아이템은 단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 이 아이템은 최초 주어진 본인밖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빛의 신 루이튼과 어둠의 신 데이베스.

타연에 존재하는 12신들 중, 제루티안은 불과 정화를 담당하는 신으로 알려져 있었다.

사제를 직업으로 선택한 유저들은 많이 접해봤을 이름.

타연을 오래 플레이한 덕에, 나에게도 생소하지만은 않았다.

“오! 이게 그 아이템이구나! 스탯 초기화!”

“와! 이거 무려 디바인 템이네? 본인 한정이긴 하지만.”

“덜컥 사용하진 마세요! 한 번밖에 쓰지 못하는 거니까, 충분히 고민한 다음에 쓰셔야 할 거예요!”

“2.0에서 한번 주길래, 3.0이나 4.0 등등 차후에도 하나씩 줄 줄 알았는데…… 딱 한 번만 가능하다고 못 박아뒀구나?”

“네. 이런 걸 풀 거라곤 생각도 못 해봤던 일루전이니까, 유저 입장에선 이 정도도 감지덕지인 듯해요.”

길드원들이 말하는 걸 들어봐도, 확실히 이 초기화 시스템은 유저들에게 환영받을 만한 조치였다.

여하튼 그와 별개로 당장 해봐야 할 일이 있었기에, 라챤이, 당당검, 대탐험시대, 기파랑 등에게 파티 초대를 걸었다.

[산드로: 업데이트가 됐으니 바로 이동해 볼까요?]

[라챤이: 네! 바로 출발하죠~]

[대탐험시대: 제발 예상이 맞기를...!]

그간 천계로 이동할 단서를 찾던 우리는, 결국 예상했던 대로 고대 마도 시대의 마법사였던 주나스가 키 NPC라는 사실까지 밝혀냈다.

그리고 녀석을 통해 새로운 퀘스트를 클리어해야만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도 어느 정도 확인을 마쳤다.

타이틀로 선정된 것답게, 천계는 소수만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귀환석과 같은 제한이 있는 것이 아니라, 퀘스트만 클리어하면 누구나 이동 가능한 공간.

결국 우리는 아무 단서도 없는 상태에서, 최대한 남들보다 빨리 ‘퍼스트 클리어’를 해야만 한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먼저 가 있을게요!”

착!

다들 공간이동술사를 이용해 가까운 항구로 이동한 후, 벨루타 해안가에 하나둘씩 도착했다.

수중 왕국의 머맨들이 끊임없이 출몰하는 좋은 사냥터라, 예전 태성 길드가 통제하던 필드.

이곳이 우리가 점찍어둔 유력 후보지 중 하나였다.

-아마 대규모 업데이트라서, 기존 필드 중에서 막혀있던 곳이 뚫리는 곳이 있을 거예요. 경험상, 보통 그런 곳이 업데이트 내용과 연관된 지역일 가능성이 가장 높았습니다.

-당당검 님의 말씀이 맞아요. 저도 그런 식으로 새로운 필드와 퀘스트를 제법 많이 발견했습니다.

당당검과 대탐험시대가 한 길드에 모이자, 단서 하나 주어지지 않는 타연에서도 어디부터 가야 할지 알아서 루트가 제시됐다.

그 결과 우리는, 업데이트 직후 역시나 그동안 가장 의심스러웠던 수중 왕국이 유저들에게 오픈될 거라고 예상했다.

“정말이었네……. 여기가 맞았어…….”

“오! 뭔가 반응이 오셨어요?”

“어. 업적 효과 때문에 내 눈에는 바다의 한 부분이 다른 색으로 보이네.”

[업적: 금지를 개척한 자(S)]

* 타연에 존재하는 금지를 해금시킨 사람에게 주어지는 업적입니다. (모든 능력치 +30)

* 업적 효과로 새로운 금지를 발견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실명’ 면역)

* 금지를 추가로 개척할수록, 이 업적은 더욱 뛰어난 효과로 거듭나게 됩니다.

마을에 시공 포탈을 설치하자마자 얻었던 업적.

이 업적은 놀랍게도 그 얻기 힘들다는 S급 업적이었다.

나로서도 몇 개 얻지 못했던 급이 뜰 줄은 예상하지 못해서, 당시에도 많이 놀랐다.

기본적으로 스펙 업을 해주는 첫 번째 옵션도 뛰어났지만, 더욱 눈에 띈 것은 두 번째 옵션이었다.

새로운 금지를 발견할 확률을 높여준다는 것.

시공의 틈새가 세 번째 금지였다는 사실은, 대륙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금지가 최소 2개 더 존재한다는 힌트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추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벨루타 해안가에서 보이는 바닷가 한복판의 한 부분이, 예전과 달리 푸른색이 아닌 노란 황금빛으로 덧칠한 것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머맨이 나타나는 곳이라 확신했는데…… 역시 맞았습니다. 이곳이 수중 왕국, 새로운 금지로 통하는 입구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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