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2.0 업데이트 (3)
이렇게 특별한 색으로 보이는 건 업적을 얻고 나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지난 일주일간 타연 전역을 샅샅이 뒤졌는데도, 한 번도 이런 케이스는 없었다.
그 말인즉슨, 같은 지역일지라도 업데이트로 인한 지역적인 변동이 있었다는 의미.
로그인하자마자 첫 방문한 지역이, 제대로 찾아온 곳이라서 다행이었다.
“자, 타세요!”
괜히 전 길드원 대신 4명만 데려온 게 아니었다.
훼라리에 당당검과 대탐험시대를, 와순이에는 라챤이가 기파랑을 태운 후.
우리는 해안가를 지나 바다 한복판 위로 비행했다.
“여깁니다. 저희 바로 밑!”
“드로 형님은 혹시나 잘못되면 절대 안 되니까, 제가 내려가 볼게요.”
“아니, 넌 와순이 운전하고 있어야지. 내가 내려가 볼게.”
다들 성격들이 급한지, 말을 마치자마자 바다에 뛰어드는 대탐험시대.
알고 보니 동갑이라 급격히 친해진 라챤이를 대신해, 위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풍덩!
다이빙하듯 멋지게 입수한 대탐험은 익숙한 일인 듯 능숙하게 떠올랐다.
듣기론 이미 이곳 벨루타에서도 한동안 헤매어봤다고 했다.
-뤼젠 항구나 포트만 항구에 돌아다니다 보면, 노인 NPC들이 수중왕국을 언급하는 걸 얻어들을 수 있어요. 그러니 당연히 수중왕국도 갈 수 있는 필드 중 하나일 거라고 진작부터 생각해 왔죠.
-아마 3달은 족히 뒤져봤을 걸요? 태성 길드를 피해 힘들게 뒤져봤지만, 결국 단서 하나를 못 찾았었죠.
그가 내게 했던 말들을 떠올려보니, 그가 가장 먼저 뛰어든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들어가네요.”
잠시 수면 위에서 헤엄치던 그는, 곧 황금빛 바닷속으로 깊숙이 잠수하기 시작했다.
한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도로 솟구쳐 나타났다.
“도, 도와주세요!”
푹, 푹!
해안가에서 보이던 놈들보다 1.5배는 더 큰 데다 장비도 훨씬 좋아 보이는 머맨.
그런 놈 십 수 마리가 대탐험을 따라와 공격해왔다.
<심해 머맨 전사>
워낙 체력이 약해 몹몰이용이던 해안가 녀석들과는, 아주 종 자체가 다른 듯 무척이나 위협적으로 보였다.
실제로도 그런지, 성기사인 탱커에다 최상급 장비들로 무장한 대탐험의 피가 쭉쭉 깎여나갔다.
결국 얼마 버티지 못하고 천상의 방패까지 써버리게 되자, 난 곧바로 왼손의 용살검을 군단장의 채찍으로 스위칭했다.
그러는 한편 훼라리를 수면 위까지 낮게 활강시킨 후, 채찍에 내장된 스킬을 사용했다.
[포획!]
강철로 이루어진 고르곤의 꼬리.
그 모양을 꼭 닮은 긴 채찍이 일직선으로 촤르륵 펼쳐졌다.
그리곤 순식간에,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대탐험을 휘감아서 내 앞으로 당겨왔다.
“뭐, 뭐야? 방금 어떻게 하신 거세요, 산드로 님?”
“와우! 형님, 나이스 캐치!”
15미터 안의 대상을 내 앞으로 끌고 오는 ‘포획’.
원래는 적의 도주를 봉쇄하는 메즈기가 주 역할인 스킬.
하지만 틈틈이 연구한 결과, 집중 공격을 맞고 있거나 메즈기에 빠진 아군에게도 스킬이 통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기본적으로 논타겟팅 게임인 타연.
따라서 경우에 따라 이 스킬은, 어마어마한 활약을 펼칠 생존기 역할도 할 수 있었다.
“템빨이에요. 아직 타연에선 저 혼자만 갖고 있는 템 같지만요.”
“와…… 그동안 갖고 싶은 템이 거의 없었는데, 그건 진짜 갖고 싶네요.”
실제로 사용해본 결과, 근력 수치와 레벨 차이 등이 성공률에 연동되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유틸성만큼은 레전더리급 중에서도 톱급 스킬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기왕 놈들을 구경하는 김에, 얼마나 센지 확인 좀 하고 올게요.”
“어? 위험하지 않겠어요? 수가 좀 많은데요?”
“일반 몹들한테 죽기에는…… 제가 너무 커버렸죠.”
“뭐죠? 이 형님 허세는?”
첨벙!
아직 어그로가 풀리지 않아 수면에서 올려다보던 놈들이, 새로운 먹잇감이 떨어지자 곧바로 삼지창을 찔러왔다.
난 그런 놈들의 공격을 최대한 무빙으로 피하며, 회전 베기부터 시전했다.
[마나 쉴드가 3,880의 반사 피해를 흡수합니다.]
[마나 쉴드가 3,880의 반사 피해를 흡수합니다.]
채챙! 챙!
허나 생각보다 MP가 많이 차오르지 않았다.
이유는 공격력에 비례한 반사 데미지 때문.
현중이가 익힌 ‘가시 반사’와 비슷한 종류의 스킬을, 눈앞의 머맨 전사들도 갖고 있는 모양이었다.
‘일반 몹치고는 제법 센데?’
하지만 보스 몹도 아닌 놈들이 이런 까다로운 스킬을 무한정 사용할 리 없다.
잠시 살펴보던 나는, 곧 놈들의 배 부분이 반사가 적용되지 않는 약점 부분이라는 걸 눈치채고 하나씩 집중 공격해 잡아버렸다.
“와! 우리 길마님, 진짜 강하시네요?”
“형님, 괜찮으세요?”
라챤이를 비롯한 나머지 파티원들도 원거리 공격으로 보태준 터라, 생각보다 강한 놈들이었지만 결국 정리할 수 있었다.
“여기선 못 보던 몹들이네요. 확실히 업데이트된 이후로 완전히 변했어요.”
“이곳이 금지가 맞다는 또 하나의 증거이기도 하죠. 근데 어쩌죠? 보아하니 잠수해야 할 것 같은데, 이렇게 강한 몹들이 들러붙으면 깊게 못 들어갈 것 같은데…….”
“흠…….”
그림자 밟기로 다시 훼라리에 올라탄 후.
대탐험과 이곳에 관한 대화를 나눠보니, 확실히 당장 탐사하기엔 까다로운 점들이 몇 가지 눈에 띄었다.
바닷속으로 얼마나 들어가면 뭐가 나오고, 어디서부터 어떤 몹들이 나오는지 미리 알고만 있다면 충분히 도전해 볼 수 있으련만…….
아무 정보도 없는 곳에 무작정 들어갔다가 복귀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쳐 버린다면, 그대로 죽어버릴 수 있었다.
나야 디바인 템 중 하나 이상을 무조건 드랍할 테니 절대 도전할 수 없는 상태.
다른 파티원들 또한, 드랍할 확률은 낮지만 너무 비싼 장비들을 착용하고 있었다.
이후 몇 차례 더 돌아가면서 잠수를 해봤지만.
결국, 몹들만 실컷 잡고 뾰족한 수는 찾지 못한 채 다들 귀환했다.
* * *
(꿈틀이: 네. 뭐든지 처음 보는 걸 발견하게 되면 바로 말씀드릴게요!)
(나: 감사합니다.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핑크래빗: 거래소에 특별한 템이 올라오면 바로 귓말 달라시는 얘긴 거죠?)
(나: 네. 뭐가 새로 생긴 건지 전혀 모르는 상태라, 어떤 거든 단서를 찾는 게 우선이라서요. 수고 좀 해주세요.)
(핑크래빗: 그럼요! 누구 부탁이신데요~)
새로운 금지 하나는 금방 발견했지만, 시공의 틈새 때와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접근 루트 방법이 필요해 보였다.
아무리 봐도 수많은 심해 머맨들을 뚫고 들어가는 코스는 죽음밖에는 보이지 않아서…….
그래서 다들 일단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기로 했다.
일단 난 현중이와 함께 훼라리에 올라탄 채, 다른 노란 빛이 띄는 지역이 없는지 다시 한번 대륙 전역을 비행했다.
그러는 한편 친구 목록에 있는 꿈틀이와 핑크래빗 등에게 연락해, 필드와 거래소에 뭔가 업데이트된 템이 올라오는지 확인을 부탁했다.
[산드로: 뭐 새롭게 올라온 소식은 없죠?]
[축복받은무빙: 응. 아직 별다른 건 없네.]
[대탐험시대: 제 구독자 중 한 분이 방금 주신 게 하나 있는데, 먼저 확인해보고 공유해 드릴게요!]
[무적살라딘: 오우, 제발 메인 퀘스트가 떠 주길....!]
“일루전 이 자식들……. 진짜 이렇게 많이 업데이트해놓고는 설명은 달랑 그게 전부였던 거냐?”
“일루전이 또 일루전 해버린 거지. 뭐, 나쁘진 않아. 찾기 어려운 만큼, 만약 우리가 먼저 발견하게 된다면 독식할 가능성도 높다는 의미기도 하니까.”
이번 2.0 업데이트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대규모인 업데이트였다.
상당히 비중을 많이 차지할 콘텐츠인 천계와 마계는 아직 공개되지도 않았지만, 기존 필드에서 자잘하게 변화되거나 추가된 신규 콘텐츠의 양이 상당했다.
하긴 향후 몇 년간은 플레이해야 할 텐데, 나중에는 대부분의 유저들이 즐길지 몰라도 당분간 천계와 마계는 고레벨인 유저들이 주축이 되어 경험할 것이 뻔했다.
그러니 현재 저레벨에서부터 중고레벨의 유저들이 즐길 만한 새로운 콘텐츠도 함께 준비한 건, 일견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그 많은 업데이트 내용 중에서, 어떤 것이 천계와 마계로 향하는 열쇠가 될지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노스랜드에 시공의 틈새로 향하는 귀환석 퀘스트가 있었던 것처럼…….
천계나 마계로 향하는 방법은 전혀 의외의 공간에,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물론 게임인 이상 확률이 높아 보이는 곳들이 분명 존재했지만, 방금 수중왕국 입구에서 좌절한 것처럼 쉽게 단서가 주어질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막말로 수중왕국은, 우리가 찾던 천계로 이어지는 중간 단계가 아닐 수도 있었다.
-새로 나온 머맨들이 좀 이상하지 않았어요? 기존 머맨들과 비교해 봤을 때요.
-응? 라챤아, 그게 뭔 소리야?
-주나스는 분명 천계로 가는 방법만 알고 있잖아요? 근데 수중왕국이 금지인 건 확인됐지만…… 주나스가 요구한 선행 퀘스트와는 관련 없는 곳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번에 나타난 머맨들의 눈이 붉게 빛나던 게 왠지…….
-네 말은 혹시?
-네. 제 생각에 수중왕국은 천계가 아니라 마계로 이어지는 중간 단계가 아닌가 싶어요. 바닷속은 왠지 마계와 더욱 가까운 느낌이기도 하고요.
-일리 있는 추측이네요. 이번 2.0 업데이트는 천계와 마계, 둘이 한꺼번에 공개된 확장팩이니까요. 금지가 천계로만 이어질 거란 생각은 편견일 수도 있죠.
라챤이의 의견에 당당검마저 호응하자, 더욱 갈피를 잡기 어려워졌다.
그 결과, 지금처럼 돌아다니는 한편 귓속말로 실시간으로 추가되는 소식을 취합하는 일에 몰두했다.
(알바마스터: 도움을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현재 수많은 아이템과 재료 템들의 시세가 실시간으로 급변하고 있어서, 상인 연합 내 장사꾼들 전부가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나: 아... 네. 괜찮습니다. 혹시나 무슨 새로운 소식이 들어오면 알려만 주세요.)
혹시나 싶어 마지막으로 호박 마켓의 길마, 알바마스터에게까지 부탁해 봤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바로 옆에 있는 현중이를 비롯해 무살 형님이나 대탐험등의 길드원들도, 각자 타연 속 자신의 지인들과 귓속말로 쉴 새 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쓸 만한 단서가 주어지진 않았는지, 따로 내게 전해오는 귓속말은 없었다.
‘지옥불 님한테도 아직 별 연락이 없네…….’
이제는 형제와도 같은 동맹 길드, 피닉스.
가장 먼저 지옥불 님께도 정보 공유를 요청했지만, 그쪽도 별 소득이 없는지 조용했다.
사실 업데이트가 이루어진 건 불과 몇 시간 전.
벌써 단서를 찾고 천계로 진격하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비정상이었다.
하지만 태성이 먼저 선점할 수도 있다는 그 조그마한 가능성 때문에, 불안하고 초조하기만 했다.
그러던 중, 그동안 잠시 잊고 있었던 조력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동안 길드를 키운답시고 바빴는지, 이제야 떠올렸다는 게 어이가 없을 사람으로부터.
(카이저: 산드로, 잘 지냈나?)
(나: 형님! 저야 잘 지냈죠. 안 그래도 연락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카이저: 방송으로 얼마나 바쁘게 지냈는지 잘 알고 있는데 뭘.... 아무튼 잠시 좀 볼 수 있을까?)
(나: 지금요?)
(카이저: 그래. 업데이트 때문에 많이 바쁜 모양이지? 그럼 너한테도 손해는 아닐 테니 조금만 시간을 내주지?)
(나: 아이고, 무슨 섭한 말씀을요. 형님이 찾으시면 바로 가야죠. 어디서 뵐까요?)
(카이저: 내가 직접 너희 성으로 가지. 너의 새집도 구경할 겸.)
현재 통합 랭킹 2위이자, 제국의 8군단 사령관이 된 유저.
여전히 타연 최고의 ‘콘텐츠 킬러’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형님한테 아직 연락을 안 했다니.
서둘러 귀환 주문서로 성에 돌아오자, 카이저 형님이 라푼젤과 함께 도착했다.
“오! 집 좋은걸? 정말 10명도 안 되는 길드로 먹은 성이 맞는 건가?”
“하하! 감사합니다. 주성 안은 더 아늑하니까 들어오시죠.”
“오랜만이에요, 드로 오빠? 잘 지내셨죠? 인터넷으로 보니 요즘 더 핫해지셨던데요?”
“아, 푼젤이도 잘 지냈지? 열심히 했는지 어느새 랭킹이 더 올라가 있더라?”
제국 NPC들로부터 수배를 받고 있는 내 입장과 달리, 카이저나 라푼젤은 도시를 드나드는데 아무런 페널티가 없었다.
오랜만에 직접 본 두 사람은, 미묘하지만 착용하던 장비가 조금 더 고급스러워져 있었다.
‘그새 뭔가 더 강해지신 모양이야. 하긴 나도 쭉쭉 컸으니까 이분들도 당연한 거겠지…….’
길드 마스터가 된 나와는 다른 길을 택한 유저지만, 원래 내가 지향하던 방식을 최고의 플레이로 구현해내고 있는 카이저.
형님이 이번엔 또 어떤 일로 나를 찾았는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바로 물어보았다.
“이렇게 갑자기 찾으시다니……. 역시 이번 업데이트와 관련된 것 때문에 그러신 거죠?”
“그래. 네 말대로다. 정확히는 네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겼지.”
“도움이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번 확장팩 타이틀과 연관된 퀘스트를 찾은 것 같아서 말이다.”
“네? 천계와 마계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천계와 연관된 곳을 발견한 것 같다. 한데 우리 둘만으로는 많이 무리인 것 같아서 함께 해볼까 싶구나.”
천계라니!
생각지도 못한 사람으로부터 돌파구를 찾은 느낌이었다.
순간 너무 흥분돼서, 말까지 더듬으며 되물었다.
“다, 당연히 같이해야죠! 어디죠? 어딘데 그렇게 형님께서도 힘들어 보이는 곳이 있어요?”
“인던이다. 인원 제한이 16명인, 제법 커다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