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173화 (173/350)

173화 영웅의 전당 (1)

“인던이요? 그것도 16인용으로요?”

“먼저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겠군. 너도 이미 눈치챘겠지만, 타연은 이번 업데이트를 통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전체 스토리상 지금까지는 몸풀기에 불과했던 셈이지.”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

타이탄 연대기 세계에서는 지금껏 유례가 없었던 엄청난 격변이 일어났다.

바로 마계의 침공으로 벌어졌던 ‘신마전쟁’.

중간계를 차지하고자 하는 마왕과, 그에 필사적으로 맞선 중간계와 천계의 장대한 전투였다.

이번 업데이트의 콘텐츠가 몇 년만에 소진될지는 현재로선 예측할 수 없지만…….

드디어 천계와 마계의 존재가 유저들에게 오픈된다는 것 자체가, 조만간 신마전쟁이 재현될 것이란 사실을 자연스럽게 암시하고 있었다.

“그거야 여러 매체의 분석 글이나 랭커들의 발언으로 다들 눈치챘잖아요? 갑자기 그 말씀은 왜……?”

“산드로…… 넌 참 뛰어난 플레이어지만, 확실히 이 부분만큼은 취약한 것 같군. 아무래도 빠른 성장과 이득에 신경 쓰느라, 공성전과 레이드 등의 콘텐츠에만 집중한 탓인가?”

“제, 제가 그랬나요?”

“그래. 타연이 아무리 자유롭고 현실적이어도, 기본적으로 게임이라는 틀 자체를 벗어날 순 없다. 즉 다시 말해, 개발사가 제시한 게임의 방향성은 기본적으로 메인 스토리 위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아무리 성을 많이 먹고 왕이 되더라도, 뜻밖의 업데이트 한 방에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

“다소 비약적인 말씀이시지만…… 어느 정도 동의는 되네요.”

당장 이번 업데이트를 통해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는지 실시간으로 체감하는 중이었다.

기존의 필드에 변화가 생겨 소위 새로운 명당을 차지하려는 자리싸움이 들려왔고.

쓸모없던 재료 템의 사용처가 밝혀졌다는 소문에 거래소의 템들 시세가 등락을 거듭했다.

업데이트 때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됐지만, 이번은 워낙 대규모라 ‘혼란’ 그 자체나 마찬가지인 상황.

카이저의 설명대로 사전에 업데이트의 방향성을 예측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었고, 그렇기에 게임 스토리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선두 주자들의 필수적인 기본 소양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난 여태껏 시간적으로나 성격적으로나, 그 부분에 많은 신경을 못 써왔지만 말이다.

“설명이 길어졌군. 말하고 싶은 요지는 하나다. 난 유저들이 천계와 마계, 이 거대한 신세계를 곧바로 접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개발사가 그 중간 단계에 준비해놨을 스토리 라인을 생각해봤지. 그랬더니 대략 가늠이 되더군.”

“그게 뭐였죠?”

“신마전쟁에서 탄생했던 12영웅. 먼저 그들의 유산을 조사하는 일이었다. 제국의 군단장이다 보니, 일반 유저들보다 접할 수 있는 NPC나 퀘스트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 루트를 발견하게 되었지. 네가 착용한 신검 ‘룬 페이토나’로 유명한 제국의 건국 황제, 제논 가이룩스의 동료였던 12영웅 중 한 명을.”

“그럼 그 인던이라는 곳이?”

“맞다. 제국에 위치한 건국 영웅들의 안식처. 그중 ‘섬멸의 도네타’와 연관된 인던을 발견했다. 업데이트 직후 찾아가 봤더니 새로운 NPC 한 명을 발견할 수 있었고, 약간의 퀘스트를 거친 후 활성화하게 되었지. 12영웅과 관련된 인던이니, 분명 천계와 연관된 곳일 것이다.”

테론 대륙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제국.

NPC 황제가 다스리는 이 국가는 필드의 절반을 혼자 독차지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유저들이 방문할 수 있는 마을과 필드 사냥터는 넘쳐났고, 그에 비례해 크고 작은 퀘스트들도 수도 없이 많았다.

그 속에서 어떠한 힌트 하나 주어지지 않은 메인 퀘스트를 얻게 되는 것.

그건 일정 수준 이상의 진척을 수행한 유저가 특정 조건을 만족한 상태에서 올바른 장소에 도착했을 때야만 가능했다.

쉽게 말하자면, 가장 선두를 달리고 있는 선수가 여러 갈래길 앞에서 시행착오도 없이 정확한 길을 연달아 선택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일단 한번은 들어가 보셨죠? 어떠셨나요?”

“입구에 나오는 몹들만 해도 우리 둘만으로는 상당히 버거운 정도였다. 2마리 이상은 한 번에 상대하지 못할 정도로. 괜히 16인 던전이 아니더군.”

“형님께서도 힘들 정도의 난이도라니…… 확실히 아무나 깰 수 있는 곳은 아니겠군요.”

인던은 간혹 마도 시대 유적지 때와 같이, 첫 클리어가 가장 힘든 난이도로 만들어진 경우도 존재했다.

보통 엄청난 보상을 중복으로 풀기 곤란한 경우가 그랬는데, 12영웅의 인던은 이름만으로도 딱 그에 걸맞은 느낌이었다.

특히 새 업데이트로 발견된 만큼, 인던 자체의 난도가 엄청나게 높게 설정되었다 해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그래서 널 찾아왔다, 산드로. 다시 한번…… 용살을 하던 때와 같이 가슴 뛰는 도전을 해볼 생각이 있나?”

“물론이죠 형님. 기꺼이 함께하겠습니다!”

역전의 용사들.

타연 최강의 멤버들이 또다시 뭉치게 되었다.

* * *

-그럼, 언제 도전할 생각이지?

-뭐든 선점하려면 서두르는 게 좋을 테니까 바로 가죠, 형님. 아참! 형님이 따로 생각해 두신 분들은 안 계세요? 저희 길드원들만으로는 풀 인원이 되긴 모자라는데, 다른 분들을 불러도 괜찮을까요?

-몇 명 있기는 한데 전투에는 크게 써먹긴 힘들 거다. 드로, 넌 누구를 부르려는 거지? 어지간한 랭커가 아니라면…… 없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을 텐데?

-그럴 리는 없을 겁니다. 제가 아는 한, 이분보다 뛰어난 컨트롤을 가진 유저는 타연에 거의 없거든요.

현재 우리 길드원은 총 9명으로, 카이저와 라푼젤을 합하더라도 16인 제한까진 5자리나 남게 된다.

무척 힘든 난이도일 것으로 예상되는 인던.

최대한 빠르게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는 게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괜히 클리어하는 데 시간만 끌다가는 다른 길드들도 발견할 수 있었으니.

그래서 카이저 형님에게 풀 정원을 채워 도전하기를 제의했다.

(나: 지옥불님. 뭐 새롭게 발견하셨거나 들어온 정보라도 있으세요?)

(지옥불: 없습니다, 드로님. 족히 3천 명 이상이 사냥도 포기한 채 전 필드를 뒤지고 있는데, 특별한 정보는 없군요...)

(나: 흠... 그럼 지금 바쁘지 않으신 거죠? 잘됐습니다. 저희와 함께 인던 하나만 후딱 도시죠!)

(지옥불: 인던 말입니까? 오호라, 벌써 뭔가를 발견하셨군요!)

(나: 네. 제가 아니라 카이저님이 발견한 신규 인던이 있습니다. 아마 메인 스토리와 이어질 것 같은데, 지옥불님도 지금 함께 클리어하시죠?)

(지옥불: 그렇다면 저야 감사하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당장 합류할까요?)

(나: 네. 16인 인던이라 몇 자리가 남으니, 총 4분이 더 오실 수 있습니다. 그 이상은 정보가 새나갈 확률도 있어서요... 괜찮으시겠어요?)

(지옥불: 저희를 불러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합니다. 지금 당장 입이 무거운 랭커로만 한번 모아보겠습니다.)

충원 멤버를 구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우리 버닝스타와 한 몸이나 다름없는 돈독한 동맹, 피닉스가 있었으니까.

-카이저 형님. 좀 무리한 부탁일 수도 있는데요. 마지막 한 자리만큼은 제가 원하는 비전투 유저를 포함해도 괜찮을까요?

-응? 비전투 유저?

-네. 제가 아는 유저 중에 채집을 주로 하시는 분이 있는데, 그분을 좀 초대해볼까 해서요.

-아하? 무슨 생각인지 알겠다. 좋을 대로……. 어차피 널 찾아올 때부터 16인을 전부 채울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전력을 다하려는 취지에는 다소 맞지 않았지만, 특별한 유저 한 명도 무리해서 합류시켰다.

그는 바로 ‘꿈틀이’.

보기 드문 무한 노가다의 화신인 그는, 내 도움 끝에 어느새 채집 8성을 달성한 상태였다.

‘신규 지역에 가면 널린 게 신규 재료 템일 테니까……. 만약에 대비하려면 이 정도 투자 정도는 하는 게 좋을 거야.’

꼭 골드나 금전적인 이득 때문이 아니었다.

신규 템 획득은 신규 콘텐츠의 선점이나 퀘스트 획득과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인던이라 퍼스트 클리어 다음에 다시 클리어해도 되겠지만, 혹시 모르니 이렇게 최상의 멤버들이 모였을 때 함께 클리어하는 것이 베스트였다.

[산드로: 전원 다 숙지한 것 맞죠?]

[무적살라딘: 옛설! 길마님!]

[기파랑: 지금 모이는 건가요? 어디로 가면 될까요 길마님?]

[산드로: 나머지 분들은 방금 말씀드린 곳으로 오시면 됩니다!]

업데이트 당일이었던 터라, 당연하게도 길드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접속 중이었다.

카이저, 지옥불, 그리고 나.

각자 현재 유저들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라, 어쩔 수 없이 각자 지정된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특히 우리 길드원 중 반 이상은 제국 귀족 NPC 학살로 수배를 받는 몸이라, 각자 훼라리와 와순이를 나눠 탄 채 직접 날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아, 또 어그로 끌렸어요!”

“몰리면 귀찮으니까 후딱 잡자!”

우리가 향하는 곳은 제도 오스타그 북쪽에 위치한 제국의 성지(聖地), ‘영웅의 전당’이었다.

장소가 장소인 만큼, 그곳까지 날아가는 도중에도 제국 그리폰 순찰대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끊임없이 공격해왔다.

‘따라오는 사람은 없겠지?’

그렇게 공중 전투를 벌이는 도중에, 다른 그리폰 라이더나 플라이 마법의 유저들이 간혹 스쳐 지나갔다.

보나 마나 동시접속자가 최고를 기록하고 있을 지금.

다들 온 맵을 뒤지고 있느라 정신없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오스타그 영향권에서 벗어나자, 제국의 선산(先山)이 나타났다.

그리고 곧 산 중턱에 하얀 대리석 광장이 넓게 펼쳐진 석조건물에 다다랐다.

[산드로: 이제 역 소환할 테니까, 다들 바로 들어가세요!]

[축복받은얼굴: 오케이!]

착! 착! 착!

일사불란하게 건물 앞에 뛰어내린 우리는, 곧바로 입구 안으로 다이빙하듯 뛰어들어갔다.

[은신!]

라챤이만 빼고 전부 은신 망토를 보유한 상태.

덕분에 몇몇 유저들이 이곳 영웅의 전당을 둘러보고 있었지만, 별다른 의심의 눈초리 없이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축복받은무빙: 여긴 참 오랜만이네. 초보일 때 방문 퀘스트 깨느라 한 번 와보고 처음인가?]

[축복받은파볼: 페리넌 얘기하는 거죠? 타연 유저라면 걔 때문에 여기는 무조건 한 번쯤 다 와봤을 걸요?]

[라스트챤스: 생각해보니 초보때 말고는 여기 올 일이 없으니까, 오히려 더 발견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확실히 카이저님은 남다르긴 하시구나...]

높은 천정 때문에 거대한 성당이나 신전과도 비슷한 구조의 이 건물은, 제국 영웅들의 업적과 흔적들을 전시한 ‘발할라(Walhalla temple)’와 비슷한 곳이었다.

넓은 회랑 양옆으로 수많은 영웅들의 초상화와 동상들이 줄지어 서 있었는데, 굳이 이걸 보자고 먼 산 중턱까지 걸어올 유저는 드물었다.

따라서 초창기 제국의 역사학자 NPC와 관련된 퀘스트를 클리어한 이후로는, 잘 찾지 않는 곳이었다.

“먼저 와 있었네요!”

“그럼요. 급한 일인 것 같아, 연락 주시자마자 바로 왔습니다.”

이 건물의 메인은 역시가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글로리 홀’.

건국 황제의 위대한 행보를 벽화로 만들어 둔 곳이었는데, 우리의 목적지는 그곳이 아닌 옆방 ‘빅토리 홀’이었다.

신마전쟁을 종식시킨 제국 건국 영웅들의 업적을 기록한 곳.

이곳에 위치한 다섯 영웅의 동상 중 하나, 거대한 도네타의 뒤에는 어느새 피닉스 길드원들이 도착해 있었다.

“이제 다 모인 것 같군. 반갑습니다 지옥불 님.”

“오랜만이군요 카이저 님. 잘 지내셨나요?”

지옥불, 두바이, 슈바이쳐, 꿈틀이 등등.

워낙 큰 동상이라 작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는데, 허공에서 카이저와 라푼젤이 스르륵 하고 나타났다.

“어라? 형님도 은신 망토를 갖고 계셨네요?”

“최근에 하나 얻게 되었다. 드래곤 말고도 얻을 수 있는 루트가 있더군.”

비록 1성 은신 수준에 불과하더라도 엄청난 효용성을 자랑하는 초희귀 템인데…….

그걸 자체적으로 2개나 손에 넣었다는 것만으로도 카이저 형님의 저력이 느껴졌다.

“자세한 설명은 잠시 후에 하고, 다들 일단 먼저 들어갑시다. 그럼 산드로, 파티 초대 좀 부탁한다.”

“네? 제가요?”

“그럼 누가 하지? 여기서 버닝스타가 가장 많은 인원이 아니던가?”

뭔가 당연하다는 듯이 파티장 대접을 하는 듯한 분위기에, 등 떠밀리듯 서둘러 초대를 마쳤다.

그리고는 미리 전해 들은 방법대로 동상에 손을 댔다.

[‘영웅 도네타의 안식처’에 입장하겠습니까?]

[YES]

[‘영웅 도네타의 안식처’에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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