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180화 (180/350)

180화 라인 탄생 (1)

어떻게 이런 일이…….

올림푸스라면 제독마저 태성과 한 배를 탔다는 뜻.

심지어 아틀란티스는 피닉스의 동맹이 아니었던가!

“지환아, 이게 무슨 소리야? 태성이 왜 적들과 동맹을 맺어? 아니, 올림푸스는 거기에 왜 껴 있고!”

“조용히 해봐, 현중아! 나도 지금 얼떨떨하니까! 연우야, 방금 그 말이 사실이야?”

-네. 분명 똑똑히 들었어요. 다리우스, 그니까 박태후가 직접 전국을 돌며 다른 길마들과 만나 담판 지었다고요.

스피커폰으로 들리는 연우의 목소리.

순간적으로 방금 한 모든 말이 정말 사실이구나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쩐지 태성 길드가…… 요즘 이상하리만큼 잠잠하더라니……. 그래도 설마 이런 짓거리를 준비하고 있었을 줄이야!’

투 메르타스 레어에서의 전투를 마지막으로, 도통 태성 길드원들을 필드에서 마주칠 수 없었다.

물론 그 직후 우리가 시공의 틈새에서 주로 활동했던 이유가 크긴 했지만…….

돌려서 생각해보면, 그건 태성 놈들이 시공의 틈새에 발도 디디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현재 최고의 레벨업 사냥터로 각광받고 있는 시공의 틈새.

한데 굳이 이곳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건 태성 자체적으로 철저한 통제가 있었다는 뜻인데, 나는 거기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냥 지네 구역 필드나 성 전용 사냥터에서 레벨업 중이겠지.’

그저 우리와 마주치면 일어날 싸움을 피하려는 줄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차곡차곡 반격을 준비해서 어느새 완료 직전까지 다다른 상태였다.

-드릴 말씀이 하나 더 있어요, 오빠. 사실 이게 메인인 것 같고요…….

“뭔데 그래? 아직 더 놀랄 일이 남아있어……?”

-태성이 동맹에 설득에 성공한 이유가…… 사실 시공 포탈 때문이래요. 오빠네 아베르 성에 설치된…….

“뭐?”

-벌써 3일 후면 이번 달 공성전이잖아요. 그것 때문에 동맹이 성사된 거란 식으로 말했어요. 이번에 기필코 오빠네 아베르 성을 빼앗아 시공 포탈을 차지하겠다고.

놀랄 일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아니, 이것이야말로 가장 놀라운 정보였다.

애초에 내가 아베르 성을 먹기로 한 것도.

그리고 외성 마을에 영구적으로 유지되는 시공 포탈을 설치한 것도!

전부 다 성을 지킬 자신이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수적 우위를 뽐내는 강력한 길드들이 여럿 존재하지만, 현재의 복잡한 세력 구도를 믿었다.

태성의 견제 역할을 할 피닉스가 있었고, 고조선과 합병하여 새롭게 신화국을 만든 올림푸스로 인해 삼국 체계도 형성됐다.

그 외 기타 성을 하나 정도씩 점령한 중대형 길드 중 절반은 태성과 중립 관계였지만, 나머지는 전부 각을 세우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태성이 우리 성을 치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투입한다는 건 어불성설!

그렇다면 우리 성 하나 정도는 충분히 지킬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한데, 그 모든 게 비틀어져 버렸다.

태성이 생각지도 못했던 동맹, 타연에 처음 등장하는 초거대 연합으로 재탄생되면서!

“일단 고맙다, 연우야. 네가 아니었으면 공성전 당일에 아무것도 못 한 채로 꼼짝없이 당할 뻔했어.”

-뭘요. 근데 괜찮겠어요? 이번 공성전에서 수성에 투입될 병력이 줄 테니, 분명 오빠네 성에 대놓고 몰려갈 텐데요?

“당장은 대책이 떠오르진 않지만…… 그래도 미리 알게 됐으니 지금부터 무슨 수라도 마련해봐야지. 그냥 넋 놓고 빼앗길 순 없으니까!

생각하면 할수록, 태성 길드 안에 연우가 있다는 사실이 정말 천만다행이었다.

‘어떻게 점령하고 어떻게 얻은 시공 포탈인데…… 이대로 절대 넘겨줄 순 없어! 누구 좋으라고!’

웬일로 여유롭게 레벨업할 시간이 길게 주어졌나 싶었다.

하지만 역시나 이번 공성전에서도, 다시 또 난 타연에서 가장 바쁜 유저가 될 운명이었나 보다.

공성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급한 마음을 부여잡은 채, 일과를 마친 타연 속으로 재접속했다.

* * *

“그게 정말이냐, 드로야? 아직 난 그런 낌새는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급하게 게임 속으로 다시 들어왔어도, 이런 극비 사항을 의논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이 형님이 계신다는 사실은, 이 와중에도 든든하게 느껴졌다.

“아직 연우가 말씀 안 드렸나 보네요. 하긴 바로 알게 되자마자 연락한 거랬어요. 아마 놈들도 깜짝 카드로 준비한 걸 테니, 공표 전까진 보안이 철저할 겁니다.”

“아…… 연우한테서 들은 정보였나? 그럼 분명 사실일 텐데, 큰일이군. 사실 난 버닝스타가 아베르 성을 점령한 것도, 내심 힘든 선택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태성이 수성 병력까지 빼서 대규모로 공격해온다면…… 정말 답이 없는 수성이 될 거다.”

하지만 지옥불 형님조차도 이 갑작스러운 소식에는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셨다.

사실 태성의 동맹 소식은, 우리뿐만 아니라 형님에게도 타격이 큰 대형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줄곧 오랜 동맹 관계였던 아틀란티스가, 말도 없이 배신한 거나 다름없으니……. 거기다 신화국이 건국되면서 겨우 힘의 균형이 맞춰졌다고 생각하셨을 텐데, 오히려 태성과 올림푸스가 힘을 합친 2:1의 구도가 돼버렸으니…….’

태성 하나만으로도 벅찬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적이 2배로 많아진 셈.

속된말로, 이건 태성이 타연 전체를 집어삼키려고 작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수없이 난립했던 많은 전투 길드들이 3년의 세월을 거치며 소수의 성길로 정리됐는데, 그중 2/3가량이 태성과 한편이 돼버렸으니 말이다.

“제독…… 님이 그러실 줄은 몰랐군. 하긴 낌새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태성과 동맹을……? 거기다 아틀란티스의 아리스토마저 이럴 줄은…… 크흠!”

“그 자식한테 님은 무슨 님이에요? 그리고 사실 아리스토도, 예전 제국군 침략 때 왠지 감이 안 좋기는 했어요. 욕심이 많아 보이기도 했지만, 뭣보다 형님을 좀 질투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랬나? 하긴 우리 피닉스가 근래들어 너무 급성장하기는 했지. 그래도 함께 한 시간이 얼만데…… 이런 식의 마무리는 개인적으로 많이 아쉽구나.”

“현실에서 직접 만나서 쇼부 봤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보상을 약속했겠죠. 동맹이야 누구와 하든 자유니까 상관없지만…… 게임 속 일을 현실에서 해결하려는 그 방식이, 정말 마음에 안 드네요.”

“그거야 모를 일이지. 보상을 약속했는지, 아니면 보복으로 협박했는지……. 아무튼, 이미 결론이 그렇게 정해졌다면 할 수 없다. 그저 우리는 이번 공성전에서 어떻게 대응할지만 생각해보자꾸나.”

‘보복’이라…….

문득 어릴 적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만드는 단어였다.

‘박태후…… 설마 넌 이 나이 먹도록, 정말 변한 게 하나도 없는 거냐?’

“알겠습니다, 형님. 그럼 반대로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도록 할게요.”

“그건 무슨 뜻이지……?”

“태성 놈들도 이제 막다른 길에 몰렸다는 걸 시인했다는 의미로요. 이 정도가 아니면 더 이상 저희를 상대할 수 없을 것 같으니까, 기존 원탑 길드로서의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자기를 쳤던 놈들과 붙어먹은 거겠죠.”

“하하!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하긴 그중 절반은 대관식 날 본인을 쳤던 놈들일 텐데, 다리우스가 동맹을 권할 때의 표정이 볼만했겠는데?”

“아무튼 저는, 아베르 성을 순순히 넘겨줄 생각 따윈 절대 없습니다. 남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수성 준비를 해볼 테니, 형님께서도 도와주세요!”

“아무렴! 상대도 이 정도 발악은 해줘야 이겨줄 재미가 있겠지!”

그동안 나름 평온하다면 평온했던 한국 서버.

둘 중 하나가 접기 전까지 끝나지 않을…….

내가 시작한 이 전쟁은, 어느새 서버 전체를 양분하게 만들 정도로 크게 번지고 있었다.

* * *

[아베르 성 외성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지옥불 형님을 만나 뵙고 다음 유저를 만나기 위해, 급히 우리 마을을 찾았다.

눈부신 햇살과 쌀쌀한 바람이 먼저 느껴졌고,

그다음으로 광장을 가득 메운 유저들의 분주함이 나의 방문을 반겼다.

“비켜요, 비켜!”

“살 거 다 샀으면 나도 좀 봅시다!”

“아니, 타연 사람들 전부 여기에만 모여 있나! 옴짝달싹을 못 하겠네!”

성을 최초 점령하고 어느덧 한 달의 시간이 다 되어 가는 지금.

당초 내가 세운 목표는 이미 초과 달성한 지 오래였다.

광장 한복판에 세워진 10미터의 시공 포탈을 둘러싼 장사꾼들의 수많은 좌판과 구경꾼.

그리고 그들 사이를 비집고 포탈 앞을 오고 가는 유저들.

감히 장담하건대……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는 오스타그 황궁의 정문 앞도, 이보다 더 붐비지는 않았다.

“어서 오세요! 방문을 환영합니다! 호구 박멸, 호박입니다! 어라?”

“항상 우렁차시네요. 지금 올라가면 사장님 만나 뵐 수 있죠?”

“그럼요! 연중무휴는 장사꾼의 기본 아니겠습니까? 올라가 보시죠?”

아직 한창 접속하고 있는 시간대라는 걸 알고 왔지만, 입구의 장사꾼에게 확인 차 물어봤다.

물론 내가 물은 건 접속 여부가 아니라, 대화를 나눌 시간이 있느냐에 관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와…… 진짜 사람 많아졌구나. 이대로 몇 달만 지나면…… 정말 타연 최고의 상인 길드가 될 수도 있겠는데?’

대뜸 알바마스터를 만나볼 수 있을까란 생각부터 들었을 정도로, 상점 안은 유저들로 인산인해였다.

광장만 해도 이보다 더 붐빌 순 없을 것만 같았는데, 이 안은 유저들의 머리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만원 지옥철을 방불케 했다.

할 수 없이 간만에 그림자 밟기까지 써가며 계단 위로 올랐고, 마침 알바마스터의 방 문을 나서는 유저 덕분에 곧바로 알바마스터와 조우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알바 님? 마을엔 오랜만에 찾았는데 상점 규모가 장난 아니게 커졌네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어서 오세요, 산드로 님. 안 그래도 공성 날짜가 점점 다가와서 연락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아, 그러셨어요? 근데 방금 나가신 분 랭커 아니었나요? 아이디가 어디서 많이 본 궁수 같은데…….”

“맞습니다. 현재 궁수 랭킹 8위신 ‘블루스카이’ 님이셨죠. 급하게 판매하실 게 있다고 하셔서 찾아오셨습니다.”

“오! 이젠 랭커 분들도 찾아오시나 봐요? 랭커들은 어지간하면 단골 장사꾼이 있어서, 굳이 다른 곳은 잘 안 찾아오는데…….”

“시공의 틈새에 워낙 고레벨들이 몰려서…… 여기서 사냥하는 김에 저희 쪽에 들르시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저흰 또 세금이 없으니까,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가격을 더 쳐드릴 수 있는 부분도 있으니까요.”

이 정도면 정말 처음에 예상한 정도보다 훨씬 웃도는 성과였다.

자잘한 소모품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뿐만 아니라, 한 번에 목돈이 들어오는 고레벨 장비 매매도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니.

‘이 정도라면…… 호박도 절대 이 성을 포기하지는 못하겠네…….’

필사적으로 성을 지켜야 할 멤버가 우리 버닝스타 말고도 생긴 셈.

더 시간 끌 것도 없이 이곳에 온 목적에 관해 곧바로 물어보았다.

“알바 님. 예전에 제가 부탁드렸던 건 잘 진행됐나요?”

“아! 수성 참여에 관한 바람잡이요?”

“네, 맞습니다. 혹시 이번 수성전에 보태주실 인원이 얼마나 될지 여쭤봐도 될까요? 이제 며칠 후면 공성전이라 저희도 준비를 좀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일단 저희 호박 마켓의 장사꾼들은 전원이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하루 장사를 접고 교대로 돌리는 인원들까지 합쳐서 150명쯤 될 것 같네요.”

“흠…… 그리고요……?”

“저희와 함께 작업하는 대장장이와 세공사, 광부와 채집꾼들까지 합치면 대략 200명쯤 될 것 같네요. 대부분 꾸준히 작업해둬서 90% 정도는 참여할 겁니다. 다들 이미 택스 프리의 돈맛을 보게 돼서, 수성에 아주 의욕 넘치는 상태가 됐거든요!”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인원을 모아두었다.

애초에 이 정도 규모는 아니었던 듯싶은데, 아무래도 한 달간 잘되는 만큼 호박 마켓의 세력도 커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들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

적들이 공성에 앞서 동맹까지 맺은 걸 가늠해보면, 족히 수천 명은 쳐들어올 것이라고 가정하는 편이 맞았다.

“혹시…… 수성 인원을 더 구할 방도가 없을까요?”

“네? 이 정도로도 부족한가요? 아무리 이곳이 핫해졌다고 해도 다른 길드들도 각자 성을 지켜야 하느라 적극적으로 쳐들어오진 못할 텐데요? 버닝스타가 타이탄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유저는 없으니까요.”

“생각보다 상황이 안 좋아진 것 같습니다. 당장 밝히기는 힘든데, 아무래도 이번 공성 타임에서는 저희 아베르 성이 가장 치열한 전장이 될 것 같아요. 용병이라도 좋으니, 무슨 수가 없을까요?”

“사실 제가 말씀드린 숫자에도, 적 길드의 스파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용병이라니……. 괜히 어중이떠중이를 받다가 오히려 내부에서 성문을 열어주는 대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어요.”

확실히 장사꾼 길드의 수장답게, 공성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내가 염려한 것도 이게 가장 컸다.

바로 내부의 배신자.

하지만 원딜러 위주로 수성 진형을 짜게 되면, 그중 배신자가 나타나더라도 별 활약도 하기 전에 죽여버릴 수 있기에 크게 상관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인원이 모자라 탱커나 근접딜러들도 할 수 없이 받게 되면, 도저히 그게 가능할 것 같지가 않아 보였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일단 조언을 들으러 찾아왔는데, 아무래도 이곳에서도 뾰족한 방법을 찾기는 그른 듯싶었다.

“그렇군요……. 아무튼 공성까진 며칠 남았으니, 그때까지 최대한 많은 인원을 모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잠시만요, 산드로 님!”

“네?”

“인원이 많이 필요하시다는 거죠? 최대한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요?”

허탈한 마음으로 뒤돌아서는 나를, 알바마스터가 붙잡았다.

그리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로 내게 뜻밖의 제안을 하나 전해왔다.

“네……. 물론 스파이가 힘을 못 쓰게 원딜러들로 구성된 인원이면 더욱 좋고요…….”

“딱 그렇게 구성된 병력이 있잖습니까? 그들만 수성에 참여하도록 설득할 수 있다면, 문제는 해결될 것 같은데요?”

“네? 어디에 그런 유저들이……?”

“이곳 광장에요. 아니, 광장에 있는 시공 포탈 너머 필드에요! 지금 거기엔, 활피단이든 법피단이든, 원딜러라면 발에 챌 정도로 넘쳐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