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181화 (181/350)

181화 라인 탄생 (2)

머리에 망치라도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다.

시공의 틈새에서 열심히 사냥 중인 유저들을 끌어들이자고?

‘맞아! 따지고 보면 안 될 것도 없잖아? 원래 다른 일반 장사꾼이나 생산 유저까지 끌어들이려고 했으니까!’

수성할 전략 자체도 바꿀 필요가 없었다.

장사꾼 및 생산 유저들에게 아베르 성만의 메리트를 맛보게 한 다음, 함께 지키도록 끌어들이는 것.

그 와중에 소속이 없는 다른 일반 유저들도 자발적으로 참여할 마음이 들도록, 알바마스터에게 미리 바람잡이 역할도 맡겼다.

한데 그들은 세금이 없다는 혜택.

즉, 모두 다 골드와 밀접하게 연관된 유저들이었다.

금전적 보상이라는 직접적인 메리트가 없다면, 수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기에 내린 결정.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 성을 지켜야 할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광장에 있는 포탈 너머에서 쉬지 않고 사냥에 열중인, 레벨업 유저들에게도!

“맞네요! 성을 먹을 때만 해도 시공 포탈의 존재도 몰랐어서, 염두에 두지 못하고 있었어요!”

“이 성을 태성한테 뺏기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기존의 멀쩡하던 필드 사냥터도 통제 걸고 독식하던 놈들인데, 입구를 손에 넣으면 가만 놔둘까요? 당연히 일반 유저들은 출입조차 못 하도록 철저히 막을 겁니다. 꿀사냥터를 자신들만 독점하려고 말이죠.”

“그래서 개발사가 내성 안도 아닌 마을에 포탈이 설치되도록 했던 건데…… 그게 가능할까요? 태성도 요즘 들어선 무차별 PK는 자제하던 분위기던 데요.”

“시공의 틈새에선 상점도 없고 귀환 주문서 사용이 안 된다는 점을 잊으셨어요? 사실 그 때문에 지금 이 마을에 이렇게나 유저들이 붐비는 거나 마찬가지인데요.”

“네? 아…… 그렇군요!”

기존에도 타연에 다른 인기 사냥터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유저들이 넘치는 마을은 처음 보는 수준.

그 원인은 유저들이 수시로 포탈을 드나들어야 한다는 데 있었다.

호라이즌 마을에서는 일체의 소모품도 판매하지 않았고, 귀환 주문서를 사용할 수 없었기에 마을 주변이 가장 붐볐기 때문에…….

한데 그런 포탈을 태성이 전부 막아선 채 통제한다?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는 유저들이 있을 순 있겠지만, 지금처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을 건 뻔했다.

“분명 태성 놈들은 어떤 식으로든 통제하려 들 겁니다.”

“하긴 그렇겠네요. 챙겨줘야 할 식구들도 늘어났으니까…….”

“네? 식구요?”

“아! 아닙니다. 곧 알게 되실 거예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알바 님. 덕분에 좋은 대안이 생긴 것 같아요!”

“쉽진 않으실 거예요. 거의 대부분을 일반 유저들로 채워서 수성한다는 건 처음 시도되는 개념이니까요. 죽으면 성안에서 부활도 안 되니 충원도 안 될 테고, 좀 전에도 말씀하셨다시피 몰래 스파이나 꼬장 유저도 분명히 잠입할 테니까요.”

“알바 님은 장사꾼이시면서 공성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시네요? 정확한 지적이세요.”

“허헛! 장사꾼들만큼 공성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유저들도 드물 겁니다. 유통 물량이라든지 성의 뒤바뀜에 민감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아무튼 전 이곳 아베르 성과 버닝스타에 올인했으니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방금 말씀하신 부분, 염두에 두고 잘 진행해 보겠습니다.”

확실히 유능한 조력자가 늘어난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끙끙대던 문제에 대해, 아주 단순한 조언만으로도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으니.

하지만 알게 된 것과 실현할 수 있느냐의 사이에는 많은 어려움이 존재했다.

일단 정말 이게 가능할지 가늠해보기 위해, 알바마스터와 헤어진 뒤 시공 포탈로 들어갔다.

* * *

“히야! 많긴 많구나! 지환아, 유저들이 언제 이리도 많이 들어왔던 거냐?”

“우리야 한 곳에서만 사냥하는 편이었으니까……. 많아진 줄은 알았지만, 진짜 엄청나게 많아졌구나!”

‘텔파스’란 NPC를 통해 어비스 수치를 전부 경험치로 바꿀 수 있는 시공의 틈새.

이 덕분에 성 전용 인던이나 유명한 필드 사냥터도, 레벨업 속도만큼은 여기를 따라오지 못했다.

그랬기 때문에 지난 일주일간, 우리 길드원들도 전부 이곳에서만 사냥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우리라도 아무 데서나 사냥할 순 없었다.

매일같이 이곳에 유저들이 급격히 늘어나 점차 몬스터가 부족해졌기 때문.

결국 우리가 필드의 끝자락에 있는 시공의 나락에서 사냥하게 된 것은, 반강제적으로 유저들을 피해 쫓겨 온 이유도 있었다.

나락같이 먼 곳은 아무래도 유저들이 오기를 꺼렸고, 또 워낙 다수의 몹이 한번에 리스폰되는 위험한 곳이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 넓은 필드에 빈자리가 거의 없는 느낌이잖아!’

본격적으로 현중이와 함께 훼라리를 타고 돌아보니, 필드 곳곳마다 유저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진’을.

“왼쪽!”

“파워 샷!”

“파이어 볼!”

“오른쪽에 또 떴다!”

콰쾅! 쾅! 쾅!

마법과 스킬들이 요란하게 터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귓가에 들려왔다.

심연의 몬스터들이 리스폰되는 자리에 2, 30명씩 모여, 다들 제 자리에 선 채로 화살과 마법을 난사하는 원딜러들.

어떤 곳은 레벨이 다소 낮은 유저들끼리 모여있는지, 100여 명가량 뭉쳐있는 곳도 있었다.

일명 ‘원딜팟’이라 불리는 이곳만의 특별한 막파티가, 그렇게 필드 곳곳에 족히 수백 개는 넘게 보였다.

“사실 파티를 맺은 것도 아니니까 엄밀히 따지자면 막파티도 아냐. 그냥 파티도 맺지 않고 딜만 날리는 거지. 자기 공격력만큼 경험치 먹으려고!”

“생각보단 꽤 짭짤하게 오르나 봐? 저 많은 사람들이 계속 죽치고 있다는 건, 그만큼 보상이 있다는 뜻일 테니까…….”

“일단 뭣보다 안전하잖아! 너도 사냥해보니 알겠지만, 물약값 안 들어가면서 이 정도 레벨업 속도가 나는 곳은 타연에 여기밖에 없을걸?”

“아! 하긴…….”

요즘 워낙 골드 마를 일이 없다 보니 초심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대다수의 유저들은 물약 하나를 먹을 때도 고민하면서 먹는다는 것을…….

유저들이 골드를 현질하고 중고레벨들이 레벨업하기 힘들어하는 이유는, 레벨에 맞는 장비를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한데 이곳은 그 모든 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 그것도 현존하는 최고 레벨대의 사냥터였다.

장비가 딸리더라도 무기 하나만 적당히 맞추면 상관없었고, 버프형 음식이니 물약값이니 하는 소모품 또한 일절 사용하지 않아도 됐다.

이곳에서 편하게 레벨업한 뒤 원래의 사냥터로 돌아간다면, 전보다 훨씬 손쉽게 골드 벌이를 할 수 있다.

이런 계산이 모두의 머릿속에서 끝난 순간부터, 이 필드의 가치는 걷잡을 수 없이 높아져 버린 것이다.

“유저들이 이곳의 맛을 봐본 이상, 포기 못 해. 아니, 절대 포기할 수가 없어! 근데 태성이 아베르 성의 주인이 될지도 모른다고? 유저들이 바보야? 당연히 무조건 반대할 거야!”

“현중아. 생각해보면 시공의 틈새가 천계, 마계 콘텐츠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곳이 맞는 것 같다. 괜히 금지가 풀리자마자 2.0 업데이트 공지가 떴던 게 아니야.”

“응?”

“현재 입장 퀘스트의 전제 조건으로 전직, 즉 400레벨을 찍어야 한다는 제한이 밝혀졌잖아. 아직 300레벨도 못 찍은 유저들도 수두룩한데……. 그러니 일루전이 친절하게 폭업할 공간을 마련해 둔 거지. 돈 없고 인맥 없어도, 꾸준히만 하면 400레벨을 찍을 수 있는 곳을…….”

“와! 말 되네? 그렇단 얘기는, 이곳 시공의 틈새가 앞으로도 쭉……?”

“그래. 최소 몇 년간은 타연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냥터 중 하나로 유지되겠지. 그러니 무조건 지켜야 돼. 반대로 이곳을 뺏기게 되면 태성 놈들이 너무 유리해지게 될 테니까!”

사실 아베르 성에서 세금을 전혀 걷지 않겠다고 공언해둔 터라, 아무리 열심히 성을 지켜도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일차원적으로만 생각해서는, 이 험난한 타연의 경쟁 속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태성이 먹지 못하게 막아서 그들 세력이 더 커지는 걸 막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수성해야 할 이유는 충분한 것이다.

그 와중에 유저들로부터 지지와 호감까지 얻게 될 일은 덤이고.

“됐다. 이 정도면 충분히 둘러봤어. 알바 님의 말씀대로네. 이들만 수성에 참여시킬 수만 있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겠어.”

“근데 그게 맘처럼 되겠냐?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저절로 참여해준다면야 땡큐지. 근데 그럴 리가 없잖아?”

“또 또. 현중아, 그런 마인드로는 될 일도 안 된다는 거 모르겠냐? 형이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된 이유가 뭔지 알아?”

“뭔데?”

“안될 일도 될 거라고 믿는 긍정적인 마인드! 항상 모든 일에는 자신감이 제일 중요한 거야! 본인부터가 안될 거라고 생각하는 일에 사람들이 발 벗고 도와줄 것 같아? 그러니까 넌 그 마인드 좀 고쳐라.”

“아! 오케이! 위인 산드로 님의 명언, 메모메모…….”

“이 자식이? 너 자꾸 라챤이 흉내 낼래?”

처음 혼자서 태성 전체와 싸우겠다고 공언했던 말.

그건 정말 가슴속에서 우러나온 진심이었다.

당시 누구도 귀담아듣지 않았을 허무맹랑한 소리.

하지만 지옥불 형님이 내게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분명 당시의 내 자신감도 한몫했을 것이다.

슬슬 내려가 궁법촌의 유저들을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눠보려는 순간, 의외의 인물로부터 귓속말이 들어왔다.

(제독: 드로, 잠깐 만나서 대화 좀 할 수 있을까?)

바로 지금껏 치열하게 싸우던 태성과 한배를 타기로 한,

올림푸스의 길마 제독이었다.

* * *

“오랜만이구나, 드로야. 잘 지냈지?”

올림푸스의 메인 성, 레디치.

지난 공성전에서 내가 준 타이탄으로 태성의 침공을 막아낸 이곳 옥상에서, 제독과 재회했다.

생각해보니 당시 그렇게나 치고받으며 싸우던 태성과 동맹을 맺었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올림푸스가 지난 공성전에서 막아내지 못하고 뺏겼으면…… 태성이 동맹 맺을 일은 없었으려나? 그러고 보니 내가 넘겨준 타이탄이 ’티에스 나이츠‘였는데…… 어쩌면 이렇게 될 운명이었을지도…….’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지만, 내색 없이 그의 인사를 받았다.

“……인사는 생략하고, 하실 말씀이 있다는 거나 하시죠? 피차 바쁜 사람들인 것 같으니까요.”

“아직 지난 드래곤 레이드 때문에 꿍해 있는 거냐? 너나 나나 한 길드의 길드 마스터들인데, 그런 일들은 그만 접어두는 게 어떠냐?”

“오랜만에 연락하셔서 하신다는 말이 고작 그거세요? 정말 실망인데요? 형니…… 아니, 제독 님의 예전 모습을 알고 있는 저로서는, 배신이라도 당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러게 미리 연락을 줬으면 좋았을 거 아니냐? 우리 올림푸스만 따돌린 채 그렇게 행동하는데 그저 지켜만 보는 게 맞았다는 거냐?”

“그렇다면 제독 님이야말로 저한테 먼저 연락을 주셨어야죠? 아무 소리도 없이 먹자하러 나타나 놓고는 그런 핑계가 말이나 돼요? 신화국에 매달 들어오는 세금의 절반을 저한테 주실 수 있으세요? 못 주시죠? 그런데 저는 왜 피닉스와 저희 버닝스타가 애써서 얻을 보상을, 올림푸스와 나눠야 한다는 거죠?”

“그만! 역시 이럴까 봐 시간을 두고 연락했던 건데…… 소용없구나.”

휘이잉!

그가 말을 멈추며 든 손 사이로, 세찬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지옥불과 제독.

타연 4강 길드의 수장 출신이자 국왕이 된 것까지 비슷한 점이 많다는 평을 받는 둘이지만, 내게는 너무나 달라 보였다.

한 명은 전혀 모르던 남이었지만 지금은 친형이나 다름없는 돈독한 사이가 되었고,

한 명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이었지만 지금은 적이나 다름없게 멀어졌다.

심지어 지금 말하는 태도를 보아하니, 그가 내게 하고 싶다는 말이 뭔지 벌써부터 예상됐다.

“그러니 제가 처음부터 말했잖아요. 본론이나 얘기하자고요. 뭐 때문에 저를 부르신 거세요?”

“오늘 7신기가 새롭게 모습을 드러냈지. 그건 역시 카이저 님께서 뽑으신 거겠지?”

“……네.”

이미 많은 유저들이 예상한 바이기도 하고, 어차피 한 시간 뒤 랭킹 순위가 재집계되면 밝혀질 사항이었다.

카이저 형님은 나와 헤어진 뒤, 곧바로 타이탄의 봉인을 풀기 위해 10레벨 다운을 하러 가셨으니.

“최근 지옥불 님의 검이 바뀌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카이저 님도 그렇고 지옥불 님도 그렇고, 다 네가 도와준 일들이겠지?”

“부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한데 그런 것들이 지금 말씀하시려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길래 물으시는 거죠?”

“역시……. 드로야, 넌 너 자신의 가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니? 솔직히 말해다오.”

“네? 제 가치요?”

순간 그가 자세를 고치며 정색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처음에는 모를까, 이제는 네 실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최근의 시공 포탈, 드래곤 레이드도 모자라…… 업데이트 직후 두 거물이 득템하는 데 도움을 준 것들까지. 너와 한 편인 사람들은 더없이 든든하겠지. 너란 존재가…….”

“…….”

“하지만 반대로 너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심정은 어떨지 생각해 봤니? 그들이 느낄 박탈감을?”

무슨 소리를 하나 가만히 들어줬는데, 다시 예전의 그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또 그런 소리 하실 거면……?”

“아니! 이번엔 다르다. 정식으로 너한테 제안을 하려는 거다.”

“제안이요……?”

“그래. 앞으론 우리와 함께하자. 굳이 적으로 남기보단 같은 편이 되자 이 말이다. 어느새 넌, 타연에서 너무 강한 존재가 돼버렸어. 튀어나온 못은 맞을 수밖에 없다. 적의 입장에서는, 널 같은 편으로 삼지 못하면 계속 가만둘 수가 없다고!”

“적이요? 전 올림푸스에 실망하긴 했지만, 적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는데요?”

“우리 올림푸스가 아니라…… 태성을 말하는 거다.”

“네? 태성요?”

왜 슬픈 예감은 틀리지를 않는 건지…….

한번 실망한 지인에게 또다시 실망할 수밖에 없는 지금 이 상황이, 너무도 싫게 느껴졌다.

“그래, 태성. 우리 올림푸스는 태성과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니 너도 더 이상 자존심 세우지 말고 들어와라. 우리가 만들어갈, 태성 라인(line)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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