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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192화 (192/350)

192화 변화의 바람 (3)

태성이 먼저 라인을 구축했다?

그렇다면 우리도 만들어서 대항하면 그만이었다.

그저 기존에 태성과 필드전을 벌이던 길드들마저, 싸그리 전부 태성 밑으로 들어가서 문제였을 뿐.

‘근데 이 상황에서…… 염두에도 없던 길드들이 우리 편으로 합류하게 된다면……?’

그러면 놈들에 비해 인원이 현저히 적다는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된다.

결코 우리만이 외로이 태성 라인에 맞서는 셈은 아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곳 타연 안에서는, 본격적으로 유저들 간의 ‘대전쟁’이 벌어지게 되겠지만!

“이거 완전히 피닉스 라인의 탄생이네요?”

“거창하게 그렇게 부를 만한 건 아니다. 하지만 놈들도 이 소식을 듣게 되면 당황은 할 거다. 이제 우리 피닉스와 버닝스타만 잡으면 끝날 거라고 생각 중이었을 텐데, 갑자기 이 두 분께서 함께하시기로 했으니…….”

“애초에 그동안 여기 두 분의 길드는, 태성이나 4강 길드들이 전부 암묵적으로 중립으로 인정해 왔잖아요? 근데 갑자기 기습 공격한 건 선을 넘은 거죠. 물론 덩치가 커졌으니, 나눠 줘야 할 몫이 늘어나서 그러긴 했을 거예요. 적이었던 놈들을 끌어안았는데, 그 정도는 챙겨 줘야 했겠죠.”

“산드로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리고 사실 저나 다이 님에게도, 며칠 전에 다리우스가 직접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아, 그러셨어요?”

“듣다 보니 결국 자기가 타연을 통일해 버리겠단 소리 같길래 바로 거절했었죠. 어째 두말없이 바로 돌아설 때부터 예감이 좋지 않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바로 저희를 쳐 버릴 줄은 몰랐네요.”

깔끔한 백색 풀 플레이트를 차려입은 국선이, 무척 분하다는 표정으로 그간 있었던 일을 전해 주었다.

사실 타연에서 중립을 유지한 채로 성길을 유지한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함께 힘이 되어 줄 동맹이 없었으니, 길드 자체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강해야만 존속할 수 있었다.

또한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평상시에도 모든 길드원이 매너 플레이를 중시해야 하고, 만약 시비가 붙더라도 대부분 참아야만 했다.

이런 것들을 줄곧 감내하면서 중립이란 자리를 지켜 왔을 것이기에, 그가 이토록 분노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리우스 그 자식은 재벌 3세에다, 워낙 현질로 유명한 놈이라서 그동안은 그냥 두고만 봤는데…… 정말 적당히란 걸 모르는 새끼더군요? 그렇게 전 서버를 먹어 봤자 뭐 하려고 그런데요? 그때부터 더 먹을 수 있는 건, 유저들 욕밖에 없을 텐데 말이죠! 물론 그 전에 그 자식 아구창은, 내 도끼부터 처먹게 되겠지만!”

들고 있던 도끼를 붕붕 휘두르는 야만 용사 차림의 전사, 유머스트다이.

호전적인 아이디와는 다르게, 그동안 피스메이커라는 길드를 운영하며 나름 즐겜 길드를 잘 운영해 온 것으로 알려진 유저였다.

원래 이런 게임은 소위 ‘전쟁광’으로 분류되는 유저들이 있는 반면, 몇 년을 플레이해도 단 한 번의 PvP 전투도 경험해 보지 않는 유저도 존재하기 마련.

후자에 속하는 고레벨이나 랭커급 유저들이 많이들 가입하는 길드가, 바로 라켄 성과 오펠 성을 장기간 점령 중이었던 이 두 중립 길드였다.

따라서 이 두 명의 길마는 비록 랭커는 아니더라도, 길드 내에 랭커급의 유저를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저희 길드원들과는 이미 이야기 끝났습니다. 태성이 저희를 쳤다는 건 앞으로 중립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나 마찬가지니까, 놈들과 앞으로 전쟁을 벌이겠다고요. 원래 저희 같은 부류는 태성 놈들같이 게임하는 걸 가장 극혐하잖아요? 다들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저희 피스메이커도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어제 성을 뺏기자마자 지옥불 님을 찾아온 겁니다. 앞으로 태성에 대항해서 함께 싸울 길드는 피닉스밖에 없으니까요. 피닉스가 먼저 포기하지 않는 이상, 저희 피스메이커도 놈들과의 전쟁을 먼저 관두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건 버닝스타도 마찬가지겠죠?”

“그럼요, 유머 님! 진작부터 전, 혼자서도 놈들과 계속 싸워 왔는 걸요?”

“갑자기 이런 말씀 드리긴 죄송한데…… 앞으로 호칭은, 되도록 유머가 아니라 다이라고 불러 주시면 좋겠습니다, 크흠!”

“앗! 네, 알겠습니다. 다이 님!”

거친 말투에 약간 아저씨 같은 인상이었는데, 의외로 귀여운 면도 있는 유머스트다이 님이었다.

그렇게 두 길마의 이야기를 차분히 듣고만 있던 지옥불 형님이 다시금 말을 꺼냈다.

“이 두 분뿐만 아니라, 벌써 오늘도 다른 몇몇 길드에서 연락 온 게 있었다. 다들 어제 방송으로 태성 라인의 실체를 보고는 놀라신 거겠지. 그리고 또…… 그들에 맞서서 승리를 거두는 유저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도!”

“에이, 뭘 또 비행기 태우시고 그러세요. 형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결국 뚫려서 뺏겼을 텐데요!”

“난 분명 너나 버닝스타가 아니라, 유저‘들’이라고 말한 것 같은데……? 녀석,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김칫국도 잘 마시는구나?”

“네? 하하하! 죄송합니다, 죄송요!”

올림푸스를 비롯한 여러 명문 길드들이, 한순간에 적으로 돌아선 것이 솔직히 큰 부담이었다.

흡사 서버 전체를 적으로 돌리게 된 것만 같은 느낌.

하지만 타연속 정세는 다리우스의 생각처럼 단순하게만 돌아가지 않았다.

세상엔 작용 반작용 법칙이 존재하는 것과 같이, 놈들이 밀어붙이는 만큼 그에 대항하는 새로운 반발이 이렇게 튀어나온 것이다.

태성과 피닉스.

이 두 거대 세력으로 양분된 전투는, 분명 언젠가는 둘 중 하나의 승리로 끝이 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설사 피닉스가 이긴다 하더라도, 타연이 일통(一統) 되는 일은 일어날 수 없었다.

타연의 유저들은 자유의사를 가지고 살아 숨 쉬고 있는, 각각 한 명의 사람들이었으니 말이다.

“앞으로는 많이 힘들고 고생하게 될 겁니다. 태성이 예전으로 돌아가, 통제나 무차별 PK를 재개할 수도 있고요. 그래도 성 전용 사냥터는 충분하고 시공의 틈새도 있으니, 화랑과 피스메이커 분들도 버티실 만은 할 겁니다.”

“형님, 버티기만 해서는 의미가 없죠. 필드전도 이기고 성도 빼앗아서, 다시는 라인이라는 뻘짓은 생각도 못 하게 만들어야죠!”

“그래. 하지만 당장은 체급 차이가 나니 힘을 모아야 할 거다. 우리가 놈들을 상대로 몇 달이고 계속해서 버틴다면, 지켜보던 유저분들도 점차 우리에게 힘을 보태시게 되겠지.”

“그러려면 역시나 신규 콘텐츠는 무조건 저희가 먹어야겠네요. 놈들과의 전쟁에서 어떤 도움이 될 변수가 있을지 모르고, 저희가 선점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고레벨 분들도 태성보다는 저희 쪽 라인에 서게 될 테니까요!”

“맞다. 역시 드로 넌 상황을 정확히 볼 줄 아는구나. 그러니 부탁한다. 이제부터는 최대한 레벨업에 집중해서 일단 랭킹 1위부터 찍어다오. 그래서 천계든 마계든, 가장 먼저 그곳에 발을 디디는 최초의 유저가 되거라. 유저들의 머릿속에 점차 다리우스란 이름이 지워지고 너의 이름만이 남도록!”

“아…… 원래도 그럴 생각이긴 했지만, 형님께서 그러시니까 괜스레 부담되네요.”

“부담 가져야지. 타연이 어떤 게임이고, 이 안에서 1등이 되는 일인데……. 어찌 됐건 넌 버닝스타 길드의 길마인 한편, 타연 최고의 게이머라는 사실을 항상 잊지 마라. 그래서 앞으로도 태성과 맞서 싸우는 우리 측의 상징이자 불패의 존재로 남아 다오.”

“네……. 알겠습니다, 형님!”

다리우스가 한 것처럼 어떤 회유나 협박, 달콤한 보상 등으로 모인 게 아니었다.

각자 놈들과 싸우고자 자발적으로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지금은 비록 놈들에 비하면 한참이나 부족한 숫자였지만, 상관없었다.

‘처음 복수를 시작했을 때와는……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많아진 거잖아!’

그때는 혼자였지만, 어느덧 수천 명이 함께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계속해서 늘어나게 될 것이다.

태성이란 이름이 타연에서 사라지는, 그날이 올 때까지!

* * *

기분 좋았던 만남을 뒤로하고, 내가 다시 찾은 곳은 시공의 틈새였다.

역시나 당장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은, 레벨업뿐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새벽에 이어 오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냥하기에 버거워졌다.

자발적으로 심연 망토를 구매하는 사람이 있단 말이 정말 실감 날 정도로, 어제의 공성전을 기점으로 유저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것이다.

“와! 이제는 무슨 시공의 나락에도 유저들이 넘쳐나네?”

물론 사냥하기에 부족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몹들을 쌓아 두고 사냥하던 때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거기다 움직일 때마다, 아는 척하고 따라오는 유저들을 상대해 주느라 낭비되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결국 다른 사냥터인, 우리가 최근에 발견했던 영웅의 전당으로 이동했다.

이 인던을 활성화시킨 지도 벌써 열흘이 넘었건만, 아직 이곳은 알려지지 않은 상태라 입구 주변에 다른 유저는 없었다.

[‘영웅 도네타의 안식처’에 들어왔습니다.]

은신으로 다시 찾은 신규 인던.

최대 정원 16인까지 입장 가능한 이곳을, 혼자서 찾아왔다.

이미 클리어해 본 터라 제법 익숙할 뿐만 아니라, 이곳의 몹들은 전부 3미터 이상의 대형 몬스터들이라 추가 데미지가 들어가는 놈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쾌적하게 사냥하는 건, 인던을 따라갈 수 없다니까!”

랭커인 내 눈에도 시뻘건 이름으로 보이는 천사병들은, 인던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짭짤한 경험치를 주는 몹들이었다.

특히나 저레벨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줄곧 20%의 추가 경험치 버프가 걸려 있는 나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물론 인던답게 괜찮은 드랍 템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었지만, 경험치가 최우선인 내게는 해당 사항이 아니었다.

“빛이 늘어날수록 더욱 밝게 빛나리라!”

“빛이 늘어날수록 더욱 밝게 빛나리…… 커흑!”

[천사장의 눈물(유니크)을 획득했습니다.]

“오! 간만의 유니크네?”

입구 몹을 잡고 마주한 첫 천사병 파티를 잡자마자, 템이 튀어나왔다.

보통 천사의 눈물이라는 레어 템을 드랍했는데, 이번에는 운 좋게도 유니크 템이었다.

물론 장비 템이 아니라 크게 비싼 건 아니었지만, 아직 용도를 모르는 이런 템일수록 많이 얻어둬서 나쁠 건 없었다.

그렇게 한창 사냥에 몰두하던 중.

진작부터 접속해 있던 라챤이로부터 귓속말이 들어와 잠시 사냥을 멈추고 답장했다.

(라스트챤스: 형님, 혹시 소식 들으신 거 있으세요? 타임 어택에 관해서요!)

(나: 제국 기사단 입단 시험? 아니, 들은 거 없는데? 넌 아직도 그런 거에 관심 두고 있었냐?)

(라스트챤스: 그럼요! 형님과 달리, 저는 순위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는 걸요! 경험치 버프를 언제까지 받을 수 있을지 잘 체크하고 있어야죠)

(나: 하긴, 너도 경험치 버프 땜에 폭렙업했던 거였지. 아무튼 타임 어택이 왜?)

(라스트챤스: 그게 있잖아요, 제가 그동안 한 번씩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5위 안에서는 버티고 있었거든요? 저도 워낙 좋은 기록을 남긴 채로 졸업한 거라서요.)

(나: ㅇㅇ 그랬지)

(라스트챤스: 그런데 어제에 이어 오늘까지, 제 순위가 쭉 떨어져서 단번에 10위 밖으로 밀려났어요. 이러다간 몇 달도 안 돼서, 100위 밖으로 떨어져서 경험치 버프를 잃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네요ㅠㅠ)

(나: 뭐? 정말이야? 그게 가능하다고?)

워낙 내 기록이 독보적이서 그렇지, 당시 라챤이가 세웠던 기록 또한 1위를 5초 이상 경신한 최상의 기록이었다.

장비들을 대여받아 풀 레전더리 착용 상태로 도전했던 것은 물론, 라챤이의 전투 실력이나 컨트롤은 그때나 지금이나 의심할 바 없는 탑 플레이어였기 때문이다.

한데 그런 녀석의 기록을 이틀 새에 5명이 넘게 경신했다고?

아무리 고인물들이 넘쳐나는 타임 어택이라곤 해도, 이건 확실히 비정상적인 일이었다.

(라스트챤스: 저도 좀 전에 듣고는 황당해서 알아봤는데, 진짜더라고요…… 특히 2등은 이제 형님과 20초밖에 차이 나지 않아요. 이러다간 결국, 형님의 기록도 깨지는 날이 오는 건 아니겠죠?)

(나: 혹시 아이디는 알고 있어? 2위와 3위를 비롯한 나머지 분들 꺼?)

(라스트챤스: 네. 저도 알아봐서 귓말 드려 봤는데, 다들 꺼 둔 상태거나 켜 뒀어도 답장은 없더라고요. 그래도 일단 알려드릴게요.)

(나: 어, 그래.)

통합 랭킹 1위를 목표로 사냥 중인 놈이, 무슨 99레벨 짜리들이나 하는 퀘스트에 관심 갖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심으로 타임 어택에 도전해 본 유저라면, 이번 일이 의미하는 바를 모를 수가 없었다.

어쩌다 1, 2초를 단축시키는 거야, 그날의 컨트롤이나 아다리가 딱딱 들어맞는다면 충분히 벌어질 법한 일.

하지만 무려 다섯 명이 넘는 유저들이 한꺼번에 단축했다는 건, 그 수준에서 가능한 일이 절대 아니었다.

아마도 나와 같은 케이스로 압도적인 장비를 착용했다거나.

혹은, 획기적인 테크트리의 발견됐다거나.

오직 이 두 가지만이, 바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게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둘 중 어떤 건지는 몰라도, 나로서는 단 하나라도 간과할 수 없는 사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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