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193화 (193/350)

193화 신규 직업 (1)

매일 타임 어택이 벌어지는 오스타그 황궁은 내게 출입금지의 공간.

따라서 그곳에 직접 찾아가 보고 싶었지만, 라챤이가 알려준 유저들에게 하나하나 귓속말을 넣어보는 것밖에 할 게 없었다.

[상대방은 현재 귓속말을 전부 차단한 상태입니다.]

[상대방은 현재 귓속말을 전부 차단한 상태입니다.]

……………………

(나: 안녕하세요, 버닝스타 길드의 산드로라고 합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잠시 대화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새롭게 10위 안으로 들어왔다는 6명의 유저.

그들에게 귓속말을 넣었는데, 5명이나 귓속말을 꺼둔 상태였다.

그나마 켜놓은 1명에게 귓속말이 들어가긴 했으나, 쉽게 답장이 올 것 같지는 않았다.

‘어떤 상황일지 예상이 되네. 당시에 나도 1등 하자마자 귓속말을 어마어마하게 받았었으니까.’

레벤다스나 로파미엘과 같은 디바인 템은, 7신기를 얻을 때와 달리 전체 알림창으로 공지되진 않았다.

같은 디바인 템이라 해도 분명 급 차이가 존재한다는 증거.

그런 것들을 고려해보면, 이번 타임 어택 경신에서 7신기급 아이템이 사용됐을 가능성은 없었다.

아직 딱 3개밖에 등장하지 않았을뿐더러, 교환마저도 불가한 템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제루티안의 축복으로 인한 실험이 먹히기 시작한 건가? 아니면 역시 이번 업데이트에 등장했던……?’

99레벨까지 오직 타임 어택을 위한 올인성 테크트리를 만들고, 기록 경신에 성공한 후에는 제루티안의 축복을 사용히 정상으로 리셋시킨다.

이런 방식이라면 경신이 가능할 법도 했다.

애초에 라챤이의 기록도 디바인 템 하나 없이 풀 레전더리로만 세웠던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역시나 그것보다는 후자일 확률이 높았다.

어제와 오늘 갑자기 많은 경신이 일어났다는 걸 고려해보면, 시기상 지금쯤 타임 어택에 도전할 레벨업이 이루어졌을 타이밍이기 때문이었다.

‘인챈터와 악마사냥꾼! 이 두 신규 직업으로 세운 기록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

제루티안의 축복을 쓰면 스탯이나 스킬 등을 초기화할 수 있지만, ‘직업’만큼은 바꿀 수 없었다.

그렇다 보니 저레벨 유저들이 가장 많이 접하게 된 2.0 업데이트의 신규 콘텐츠는, 역시나 신규 직업이었다.

새롭게 타연을 시작하거나 접었다가 복귀하는 유저.

혹은 신규 직업만의 희귀한 이점을 누리고 싶거나 길드나 파티 내에서 ‘귀족’ 대우를 받고 싶은 유저 등등.

이 같은 이유들로 캐릭을 새로 생성해서 신규 직업으로 다시 키우는 유저들의 수가 생각보다 많았던 것이다.

그 유저들 중 템도 되고 실력도 되는 사람이라면, 딱 지금쯤 타임 어택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타이밍이었다.

아무래도 타임 어택이란 퀘스트 자체가, 뒤늦게 출발하는 후발 주자들에게 어드밴티지를 주려고 만들어둔 시스템이니까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 반쯤 포기하고 있던 떡밥 중 하나에서 반응이 왔다.

(한계돌파: 산드로님? 좀 전에 귓말 주셨어요? 혹시 사칭은 아니죠?)

(나: 길지도 않은 아이디인데 사칭이라뇨? 저 찐 맞습니다! 귓말 드렸던 것도 맞고요!)

(한계돌파: 와! 그렇죠? 생각지도 못한 분한테 갑자기 귓말이 와서요ㄷㄷ 몇 번이고 확인해보느라 답장이 늦었네요!)

(나: 무슨 말씀을요? 이렇게 답장 주신 것만도 감사한 걸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말씀드린 것처럼 대화 좀 나누고 싶은데, 잠시 좀 뵐 수 있을까요?)

(한계돌파: 그럼요!)

그간 흑풍단에 가려져서 그렇지, 태성이 라인을 만들고 나서부터는 나를 깎아내리는 유저가 훨씬 폭증한 상태였다.

한데 다행히 나를 싫어하는 유저는 아닌 듯, 흔쾌히 만남을 허락해 주었다.

* * *

“안녕하세요! 갑작스러우셨을 텐데,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타연의 살아있는 레전설을 직접 만나 뵙게 되어 제가 더 영광이죠.”

데스라 사막 서부에 위치한 알라마 오아시스.

제국과는 제법 떨어진 이곳에서 한계돌파를 만났다.

이미 타임 어택에서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뒀다고 판단했는지, 미련 없이 도전을 중단하고 바로 레벨업에 돌입했기 때문이었다.

공교롭게도 예전의 내가, 타임 어택을 마치고 바로 이곳을 찾았던 것과 같은 코스였다.

“돌파 님, 제가 만나 뵙고자 한 이유는 이미 눈치채셨죠?”

“당연히 타임 어택 때문에 그러신 거 아니에요? 제가 어떻게 순위권으로 급진입했는지 궁금하셔서요?”

“네, 맞습니다. 들어보니 어제는 20위권이셨는데 오늘은 바로 4위를 달성하셨다죠? 정말 대단하시네요!”

“푸흡! 타임 어택에 절망의 벽을 만들어두신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니 참…… 보기보다 뻔뻔하시네요, 크크! 아무튼, 그 비결은 보시는 대로입니다.”

평범한 가죽 갑옷을 입고 있던 한계돌파.

하지만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가 들고 있던 장검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오! 이게 바로 인챈터만의 고유 스킬인가요?”

“네. 그간 템들이 보여주던 자체적인 이펙트와는 좀 다르죠?”

“아직 저레벨이실 텐데, 이펙트 효과가 장난 아닌데요? 일단 간지부터가 대박이네요.”

아닌 게 아니라, 무기나 방어구 등에는 특성에 따라 고유한 이펙트 효과가 붙어있는 것들이 종종 있었다.

예전에 내가 잠시 사용했던 살라만다 장검이나, 랭커 궁수였던 비상구의 썬더볼트 같은 활 등이 그 예.

하지만 지금 한계돌파가 보여주는 스킬 이펙트는 그 외형부터가 확연히 달랐다.

화르륵!

그저 단순하게 공격이나 피격에만 속성 이펙트가 들어가던 것과 달리, 눈앞에선 검신이 붉은 화염으로 변한 것 같이 일렁였다.

마치 신화 속 불의 검을 손에 쥐고 있는 것만 같이, 멋지고 화려한 모습이었다.

“이건 스킬 레벨을 5성까지 찍어서 그런 거예요. 아무튼 보는 것만큼이나 위력도 좋은데…… 사냥하는 것도 한 번 구경해보실래요?”

“오! 그래 주시겠어요? 사실 인챈터 분은 아직 만나 뵐 일이 없어서…… 위력도 무척 궁금하네요.”

“어려울 것도 없는데요, 뭐. 그럼 함께 필드로 나가 보죠!”

그길로 바로 사막으로 나가서, 지천에 널려있는 개미굴 중 하나로 들어갔다.

원래 굴 안은 컴컴한 곳이지만, 검에 걸려있는 불꽃 덕분에 라이트 스크롤을 사용하지 않아도 전혀 어둡게 느껴지지 않았다.

“보아하니 장비는 레어 장검에 눈보라 에티 셋인 것 같은데…… 설마 그 레어 템으로 타임 어택에 도전하셨던 건 아니죠?”

“설마요. 이건 필드 사냥용으로 따로 구매한 거예요. 타임 어택 때는 본 장비와 빌린 템으로 도전했고요.”

“그럼 역시나 풀 레전더리로……?”

“그럼요! 그 정도는 돼야 10위 안에 들죠. 아마 모르긴 몰라도 2위분은 디바인 템을 갖고 계신 것 같아요. 그렇지 않은 이상, 저보다 3초나 더 높은 기록은 말이 안 되거든요.”

“아…… 그렇군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기존에 키우셨던 캐릭터 명을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이 정도 실력자신 걸 보니 갑자기 궁금하네요.”

“에이! 그걸 알려드리면 새로 키우는 의미가 있나요? 아무튼, 산드로 님이나 태성과는 연관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만난 거지만요.”

타임어택 기록을 경신한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도 수십 차례 도전하는 고인물 유저가 아니라, 이렇게 새롭게 등장한 아이디의 소유자라면 더더욱!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한 가지.

한계돌파는 분명 실력 있고 장비도 잘 갖춰놓은 고레벨의 유저가, 캐릭을 새롭게 키웠을 확률이 99%였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어느새 몰려들기 시작한 개미들을 간결하고 효율적인 동선으로 사냥하기 시작했다.

퍽! 퍽! 퍼석!

불의 검을 몇 대 휘두르는가 싶었는데, 첫 개미가 공격해보기도 전에 터져버렸다.

그리고 나머지 개미들도, 말 그대로 ‘학살’하듯 썰어버렸다.

“와…… 그거 진짜 레어 검 맞아요? 저도 몇 달 전에 여기서 사냥해봐서 아는데, 도저히 그런 수준이 아닌데요?”

“아무래도 불 속성이 이놈들의 상성이니까요. 거기에 특수 인챈트도 하나 더 걸려있기도 하고요.”

“특수 인챈트요?”

“네. 위력도 대충 보여드렸으니까, 이제부터는 원래 목적에 맞는 대화를 나눠볼까요?”

물약 하나도 먹지 않고 순식간에 20마리의 개미를 도륙한 한계돌파.

그가 돌아서며 내게 말했다.

“사실 제가 업데이트 이후 신규 콘텐츠 발견이나 공성전에만 신경 쓰느라, 신규 직업에는 관심을 두지 못했거든요. 근데 이번에 기록 경신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괜찮으시다면 그 노하우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들어볼 수 있을까요? 앞으로 제가 가야 할 방향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물론 염치없게 그냥 찾아뵙진 않았습니다. 별건 아니지만, 이건 제 성의니 받아주세요.”

말과 함께 인벤토리에서 유니크 액세서리를 꺼내어 건넸다.

골드를 직접 주기엔 뭐해서, 이곳을 찾기 전 거래소에서 급히 사 온 100레벨대에 사용하기 좋은 장비였다.

“뭘 이런 걸 다…… 아무튼, 감사히 받겠습니다! 대가도 받았으니 대충 말씀드릴 수도 없겠네요. 궁금하신 게 있으시면 전부 다 물어보세요!”

“하하! 감사합니다. 그러면 일단, 어떤 테크트리를 타셨는지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대충 사냥하는 걸 지켜보니, 공통 스킬 류는 거의 찍지 않으시고 직업 고유 스킬 위주로 찍으신 것 같던데요.”

“네, 맞아요. 일단 스킬 설명에 앞서 신규 직업에 대해서 먼저 말씀드려야겠네요. 산드로 님은 인챈터와 악마 사냥꾼이라는 직업이, 갑자기 2.0 업데이트에서 등장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네?”

신규 직업의 등장 배경?

거기에 무슨 의도나 의미가 있었던 건가?

“크크, 아마 별생각 없으셨나 보네요?”

“아, 네……. 요즘 쫌 이것저것 바빴었어서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님이라면 그러실 만도 하죠. 그러면 제 생각을 말씀드려 볼게요. 전 이렇게 생각해요. 천계와 마계 오픈에 앞서, 이 2개가 꼭 필요한 직업군이라서 등장했다고요.”

“오! 천계와 마계에 대비해서, 미리 준비하듯 공개된 거란 말씀이시군요?”

“악마 사냥꾼은 누가 봐도 마계에서 활약할 직업으로 느껴지죠? 하지만 그에 반해 인챈터란 직업은 그렇지 않고 특색도 없어 보이지 않나요? 근데 일루전이 오랜만에 등장시킨 신규 직업인데, 왜 굳이 이 2개를 함께 공개했을까요?”

“그러니까 돌파 님 말씀은 악마 사냥꾼이 마계 대비용이라면, 인챈터는 천계를 대비해서 함께 등장시킨 직업이란 뜻이군요? 맞나요?”

“정확합니다. 역시 산드로 님이 잘나가시는 이유가 있네요. 몇몇 지인에게 이런 식으로 말한 적이 있는데, 그냥 버퍼 하나 늘어난 거지 뭔 소리 하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는데 말이죠.”

사실 크게 관심 갖진 않았지만, 그래도 몇몇 들리는 이슈들에 대해 모를 수가 없었다.

그중에는 신규 직업, 정확히 말하자면 픽률에 관한 내용도 있었다.

새롭게 등장한 두 직업 중, 악마 사냥꾼을 선택하는 비율이 90%에 이를 만큼 압도적이라는 소식이었다.

아무래도 평범한 ‘버퍼’ 느낌이 나는 인챈터보다는, 이름부터가 ‘극딜러’의 향기를 물씬 풍기는 악마 사냥꾼이 유저들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악마나 언데드, 혹은 암흑 속성으로 도배된 마계와 달리 천계는 어떤 몹들이 나올지 모르는 상태잖아요? 근데 타연에 존재하는 신들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빛의 신, 땅의 신, 불의 신 등등, 얼마나 많은 속성의 신들이 존재해요? 이걸 카운터할 직업으로 인챈터를 제공해 준 거 아닐까요?”

“오…… 듣고 보니 그럴듯한데요?”

“큰맘 먹고 새로 키우는 건데, 저도 빡세게 고민하고 생각한 다음에 직업을 정한 거거든요. 아무튼 키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그 선택이 맞는 것 같아요. 그 결과가 이미 타임 어택에서 증명됐거든요!”

상대적으로 악마 사냥꾼에 비해 훨씬 낮은 픽률에도 불구하고, 타임 어택에서 기록이 경신된 직업군은 전부 ‘인챈터’였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

인챈터란 직업은 사람들의 선입견과는 달리, 단순한 버퍼 정도로 취급당할 캐릭이 아니었다.

“고유 스킬 ‘인챈트 엘리멘탈’은 속성을 골라서 부여할 수 있어요. 파티원이나 남에게 걸면 비록 자신한테 걸었을 때의 절반 밖에 효과가 부여되지 않지만, 그래도 사냥 및 PvP에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되겠죠. 그리고 무기에 ‘블러드 웨폰’ 혹은 ‘마나 웨폰’,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인챈트할 수 있는데…… 이게 진짜 대박이에요!”

“네? 그건 또 뭐죠?”

“아직 배운 유저가 많지 않아서 별로 알려지진 않았을 거예요. 쉽게 말해 블러드 웨폰은 ‘피흡’, 마나 웨폰은 ‘마흡’ 버프를 걸어준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