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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200화 (200/350)

200화 페어리 퀸 (3)

“와…… 진짜 감격스럽네요. 페어리 퀸을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옆에 있던 대탐이가, 기파랑과 함께 나지막한 탄성을 내뱉었다.

<페어리 퀸 루엘 소니아>

커다란 히아신스 꽃봉오리를 의자 삼아 앉은 페어리 퀸은, 다른 페어리들과 달리 거의 어린아이만 한 크기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담해 보이기는 했는데…… 새하얀 빛을 발하는 날개 때문인지, 그 존재감만큼은 두드러져 보였다.

“근데 란데스의 기록에서 읽은 것처럼, 날개가 다 뽑혀있는 건 아니었네?”

“그게 벌써 천 년 전 일이니까, 지금은 새로 돋아났을 만도 하지.”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저 날개는 찢어진 게 아니라, 새로 나고 있는 거였어?”

둘이 나누는 대화가 특정 스토리와 연관 있는 것 같아 가만히 듣고 있었는데,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어보았다.

“페어리 퀸의 날개는 신마전쟁 당시 마왕의 손에 전부 뽑혀버렸다고 전해지고 있어요. 사실 페어리 종족의 힘의 원천은, 그들이 가진 날개에서 비롯된 거라는 설정이 있거든요.”

“오호라……. 그럼 반 토막이나마 날개가 돋아났다는 건, 어느 정도는 힘을 되찾았다는 의미겠네?”

“그런 셈이 되겠죠.”

이곳 공중정원의 주인이라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인데, 신마전쟁 시절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건 투 메르타스보다도 나이가 많다는 뜻이었다.

그만큼 이 타연 안에서의 비중이 엄청난 NPC라 할 수 있었는데, 이런 존재가 하찮은 퀘스트나 보상 따위를 줄 리 없었다.

유저들의 접근성이 극악에 달하는 곳.

그만큼 특별할 보상을 줄 거란 기대를 갖고서,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페어리 퀸이시여. 여왕님의 이곳 공중정원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로군요.”

“이곳에 인간이 찾아오다니…… 윌리펑 이후로 백 년 만의 방문자인 것 같군요……. 당연히 그대는, 담력과 지혜를 한 몸에 갖춘 뛰어난 용사겠군요?”

“그저 운 좋게 이곳을 발견한 모험가에 불과할 뿐입니다. 허라도 없이, 불쑥 찾아온 무례를 용서해 주소서.”

한데 문제가 있었다.

인사를 나눈 후 이런저런 키워드를 섞으며 대화를 나눠 봤는데도, 도통 영양가 있는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묻지도 않은 옛날얘기나 알려지지 않은 비화 따위만 말해줄 뿐이지, 다른 NPC들처럼 덜컥 퀘스트부터 나눠 줄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아아, 바토 대왕은 사실 죽은 게 아니라 요정계로 넘어갔던 거구나. 이건 진짜 의외인 얘기인걸?”

“드래곤 로드가 하늘 산맥 깊숙한 곳에 봉인됐다는 건 또 어떻고? 와, 진짜 그동안 궁금했던 게 몇 개나 풀리는지 모르겠네! 여기 정말 대박이다. 대박이야!”

게임의 주목적이 스토리와 탐험인 대탐이와 기파랑은 한껏 신이 난 기색이었다.

당당이도 한 쪽에 서서, 페어리 퀸의 대화를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내 속은, 점점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당장 올림푸스의 잔당들을 내쫓았으니, 이 사실을 안 제독이 언제 페가수스 부대를 이끌고 쳐들어올지 몰랐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간 이곳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던 다른 태성 라인의 길드들도 하나둘씩 냄새를 맡고 몰려들 수 있었다.

“아, 난 진짜 퀘스트에 소질이 없나 봐! 억지로 말투도 좀 고쳐서 몰입하려고 해봤는데도, 뭔 반응이 없잖아! ‘날개’도 ‘돋아’나다 만 애가 뭐가 이리 깐깐한 거야! 어차피 줄 퀘스트면, 쉽게 좀 주면 좀 좋아?”

하지만 그 순간.

“인간 용사여…… 지금 저에겐 잃어버린 힘을 하루빨리 되찾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태초의 생명수가 솟아나는 땅을 얻어 이곳을 만든 것도, 바로 날개를 회복하기 위한 일이었죠. 허나 요즈음 제가 없는 요정계를 향해 마족이 힘을 뻗치고 있다는 걸 감지했습니다. 그대는 혹시 나를 도와 그들을 물리쳐줄 수 있나요?”

곁에 있는 당당이나 대탐이도 감을 못 잡길래 투정을 부리던 중, 의도치 않게 키워드가 들어맞았는지 갑자기 퀘스트가 부여됐다.

띠링!

[퀘스트 ‘페어리 퀸의 부탁’을 획득했습니다.]

[페어리 퀸의 부탁: 기록 경신 퀘스트]

* 클리어 난이도: S

* 중간계를 떠날 수 없는 페어리 퀸을 대신하여 요정계에 마수를 뻗고 있는 마족과 마물들을 처치하라

* 퀘스트 클리어 조건: 제한 시간 내 마족 섬멸

* 퀘스트 클리어 보상: 공략 정도에 따른 차등 업적과 보상

“오! 드디어 받았다, 퀘스트! 근데 오랜만의 기록 경신 퀘네요?”

“어? 정말? 나도 좀 받자!”

“와! 경신 퀘인데 난이도가 S급이네? 도대체 뭐가 나오길래?”

다들 내가 알려준 키워드로 퀘스트를 받고는 바로 설명창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나 불친절하기 이를 데 없는 타연답게, 적혀있는 것 외에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없었다.

“기록 경신이니까 인던이겠죠? 참여 횟수 제한도 걸려 있을 거고요?”

“그래. 타임 어택이랑 비슷하겠지만, 따로 순위가 기록되는 곳이 없는 거로 봐서 좀 다른 방식인 것 같다.”

모두 머리를 맞대어 의견을 나눠보는 도중, 라챤이가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여기 3인 던전이네요. 4인 파티 상태는 입장이 메시지가 안 뜨다가, 3인부터는 입장 가능이 떴어요.”

“아, 그래? 그럼 팀플형 기록 경신 퀘구나!”

“계속 이렇게 느긋하게 있을 시간은 없지 않아요? 그냥 저희가 먼저 들어가 봐서 다른 정보 좀 알아내 볼게요! 자, 그럼 갑니다!”

“드로야, 조금만 기다려! 금방 다녀올게!”

“어? 잠시만요, 누나! 현중…… 뭐야, 벌써 들어갔네?”

대화를 나누던 현중이가 파티 상태였던 라챤이, 축볼 누님과 함께 갑자기 사라졌다.

페어리 퀸으로부터 받은 입장 메시지의 수락 버튼을 터치한 것이었다.

아무리 시간이 급하다지만 그래도 업적과 보상이 주어지는 퀘스트였다.

한데 우리를 위해 먼저 정보를 얻어 보겠답시고, 말릴 새도 없이 입장해 버렸다.

[산드로: 안은 어떻냐? 뭔가가 달라?]

[축복받은얼굴: 잠만, 여기 시간제한 10분에다 재입장 쿨타임이 7일로 떴다. 지금 말할 시간 없으니까, 끝나서 나가면 자세히 알려줄게!]

[산드로: 어, 알겠다. 기왕 들어간 거 일단은 최선을 다해서 좋은 거 받아라!]

입구부터 꽤나 바쁜지, 현중이는 단편적인 정보만 알려준 채 인던 클리어에 전념했다.

“일주일에 한 번밖에 시도할 수 없는 인던? 이런 건 처음 보는 거 아니에요?”

“그러게 드로야. 이제야 올림푸스 놈들이 여길 꽁꽁 숨겨놓을 수 있던 이유를 알겠네. 인원이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닌 데다, 일주일에 한 번씩만 가능한 인던이다 보니 가끔만 들려도 됐을 거잖아!”

“와! 그럼 제가 입장 중이던 놈들을 발견한 건, 아주 타이밍이 기가 막혔던 거네요?”

“어차피 봉우리 뒤지다 보면 여길 발견했을 거잖아요? 그냥 타이밍만 겹쳤던 거죠, 뭐.”

함께 가트웰 산맥을 수색한 무살 형님과 당당이의 말이 맞았다.

설사 놈들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도 이곳은 결국 우리가 어떻게든 찾아냈을 것이다.

오히려 동선이 겹쳐버린 탓에 놈들이 우리가 이곳을 발견한 사실을 바로 알아버린 게, 지금으로선 더욱 문제였다.

‘차등 보상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역시나 주요 보상은, 한가롭게 물이나 먹고 있는 저놈들이었겠지?’

사실 이곳까지 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거기다 일주일에 한 번만 도전이 가능한 인던이다 보니, 레벨업 용으로 써먹을 만한 인던도 아니었다.

즉 다시 말해, 길드 차원에서 써먹기에는 별 효용은 없는 곳.

하지만 여기서만 나오고 얻을 수 있는 희귀 보상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제독이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했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니 그 보상이란 역시나…….

우리 눈앞에 있는 ‘페가수스’가 분명했다.

“사실 페가수스가 일인 탈것답게 HP가 높은 편은 아니었잖아? 아마 비행 펫 중에서는 가장 약한 놈이 아닐까 싶은데…….”

“맞아요. 하지만 워낙 비행 탈 것이 없다 보니까, 현재로선 엄청 유용하긴 하죠. 갖고 싶어 하는 유저들도 엄청나게 많고요.”

당당이의 말대로, 올림푸스의 페가수스 부대가 공개된 후 고레벨 유저들이 신화국으로 많이 넘어가고 있었다.

태성 라인이라는 든든한 빽이 생길 뿐만 아니라, 운이 좋으면 페가수스 라이더가 될 기회를 얻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페가수스를 얻은 게 정말이라면, 비행 펫은 사실 그렇게까지 얻기 힘든 놈은 아니었을지도 몰랐다.

하필이면 올림푸스가 가장 먼저 발견한 탓에, 이곳이 쭉 감춰져 있었던 것이니 말이다.

만약 대탐이 같은 유저가 이곳을 발견해 올타 게시판에 공유했다면, 지금쯤 페가수스 라이더는 수천 명도 넘었을 수도 있었다.

차분히 먼저 들어간 현중이 팀을 기다리며 이런 대화를 나누던 도중, 낯선 이로부터 귓속말이 들어왔다.

(혼플장인: 산드로 님. 저희 길마이신 제독 형님이 드릴 말씀이 있다 하시는데, 잠시 대화 좀 가능하겠습니까?)

(나: 헛소리 말고 대화는 직접 찾아와서 면전에서 하라고 전해주세요.)

[‘혼플장인’의 귓속말을 차단합니다.]

제독을 차단한 지는 이미 오래 전.

그래서인지 부하들을 시켜 계속 귓속말을 넣어왔다.

(0주당0: 길마님이 전해달라고 합니다. 그곳 공중정원은 제발 시공의 틈새처럼 오픈하지는 말아달라고요. 전쟁 관계인 것과 별개로, 그 대가는 충분히 치르겠다고 꼭 좀 전해달라십니다.)

[‘0주당0’의 귓속말을 차단합니다.]

“아…… 차단하기도 귀찮네, 정말.”

“왜 그러세요, 드로 형님?”

“자꾸 올림푸스 놈들이 귓속말로 질척거리잖아. 제독 성격이라면 바로 쳐들어올 줄 알았는데, 이곳이 노출되는 게 어지간히도 싫은 모양이야.”

“아, 그러세요? 그럼 잘됐네요. 일주일에 한 번만 할 수 있는 인던인데, 그러면 조금 여유롭게 도전해 볼 수 있겠어요.”

사실 차등 보상 시스템이라면 아직 놈들이 최고 보상을 얻지 못했을 확률이 높았다.

지금까지 타연에 등장했던 마계와 연관된 것들은, 전부 다 하나같이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S급이라는 난이도 등급은 아무 퀘스트에나 붙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10분여.

마침내 먼저 들어갔던 현중이 팀이 복귀했다.

“후아, 후아!”

“와…… 벌써 끝났어요? 아직 많은데?”

“장난 아니네! 얼마 들어가지도 못한 것 같은데!”

다들 한시도 쉬지 않고 사냥에 몰두하다 귀환한 느낌.

지친 기색이 역력했던 그들이 어느 정도 숨을 고르자, 다들 인던에 대해 하나둘씩 물어보았다.

“넘어간 곳은 요정계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는데요. 강력한 마족과 좀 약하지만 엄청난 숫자를 가진 마물이 함께 몰려나왔어요.”

“주변에 페어리들도 있는 것 같았는데, 우린 뭘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몰라서 마물만 잡다 나왔네?”

“미로 같은 곳은 아니에요. 오히려 상당히 단순한 구조긴 한데, 3인 파티란 제약이 있어서 할 수 있는 게 한정됐네요. 몹들이 너무 세서, 서두르다가 몇 번이나 죽을 뻔했거든요!”

각각 소감을 말해주었는데, 공통된 내용은 몹들이 너무 강하다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인던의 보습 몹이 무언지 확인조차 못 해봤을 정도로.

“축굴아, 그럼 보상 한번 받아 봐봐. 뭘 주나.”

“아, 맞다! 잠시만…….”

정신없이 질문에 대답해주던 현중이가, 페어리 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환호성을 터뜨렸다.

“야호! 페가수스 깃털이다! 한 번에 이걸 얻다니, 대박!”

“오, 진짜? 업적은?”

기뻐하는 현중이 대신, 같은 파티원인 라챤이가 대답해줬다.

“업적은 주어지지 않았네요. 깃털도 하나만 나왔고요. 그래도 이게 어디에요? 축굴이 형, 바로 소환해 보세요!”

“뭐? 내가 가져도 돼?”

“굴아, 너 아니면 누가 페가수스를 타? 라챤이는 와순이가 있고, 난 뒤에 타는 게 마법 쓰기엔 더 편해. 어서 당장 사용해 봐!”

3인 파티임에도 불구하고 보상은 하나밖에 주어지지 않았지만, 누가 우리 길드원들 아니랄까 봐 다툼은 없었다.

잠시 머뭇대던 현중이는 다들 재촉해오자, 결국 방금 건네받은 깃털을 사용했다.

스르륵.

현중이가 인벤토리에서 커다란 깃털을 꺼내 들고 흔들자, 곧 천천히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하늘 어디에선가 날개를 활짝 펼친 페가수스가 날아와 현중이 앞에 내려앉았다.

드디어 그토록 현중이가 바라왔던…….

페가수스 라이더가 되는 순간이었다.

“와…… 결국 내가…….”

“짜식, 축하한다. 형이 말했지? 조만간 자가용 하나 마련해 주겠다고.”

“새끼, 약속 하나는 진짜 칼 같은 놈이네. 고맙다, 캬아!”

나날이 비행 탈 것의 유용함과 전략적 가치가 높아져 가고 있었는데, 늦지 않게 페가수스 획득 루트를 찾아내서 다행이었다.

펫으로 등록하자마자 공중정원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는 현중이를 놔두고, 다음 타자로 입장할 준비를 서둘렀다.

“저희도 빨리 들어가 보죠. 올림푸스가 올 것 같진 않지만, 느긋하게 있을 곳은 아니니까요.”

“드로 형님은 누구와 들어가실 거예요?”

대탐이가 은근한 눈빛으로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을 어필했지만, 이미 앞 팀의 정보를 들은 순간 나머지 멤버는 마음속으로 정해두었다.

“무살 형님, 그리고 당당아. 함께 가볼까?”

“네? 저요? 도둑 세 명으로만 인던에 들어가시겠다는 말씀이세요?”

“어. 원래 기록 경신은 평범한 방법으로 깨기 어려운 법이잖아? 버닝스타의 도둑 삼인조가 얼마나 센지, 이번에 한 번 모두에게 보여 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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