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페가수스 신드롬 (1)
‘하지만 내가 있는 한…… 절대 마지막이 되도록 놔두진 않을 테다!’
디바인 템을 드랍한다는 것.
그게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는, 일전 지옥불 형님이 마신검을 빼앗기게 되면서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처음 신검을 얻은 날 현중이가 해 줬던 말과 같이, 디바인 템은 엔드 콘텐츠이자 양날의 검이 맞았다.
단순히 좋은 템을 잃어서 약해지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적의 전투력도 급상승시켜 버리고 마는 시스템.
아무리 적을 약화시키려 노력해왔다 해도, 디바인 템을 한 번 뺏겨 버리면 바로 물거품이었다.
특히나 레벤다스는 나이트급의 방어 특화형 타이탄까지 소환되는 방패.
만약 이대로 태성 라인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면, 두고두고 까다로운 방해물이 돼 버리고 말 게 분명했다.
“빨리 달려!”
“어, 어디로?”
“당연히 마을 방향이지!”
타탓! 탓!
성큼성큼 뛰어올라 레벤다스의 어깨 위에 올라타자, 곧 현중이가 넓은 보폭으로 눈길을 해치며 뛰기 시작했다.
지잉- 지잉-
하지만 적들 또한 우리를 지켜만 보고 있을 리 만무.
그와 동시에 우리 앞에 2대의 타이탄이 소환되며 길을 막아섰다.
“으랏샤!”
기본적으로 솔저급 타이탄들은 패시브 스킬 하나 정도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그 말인즉슨, 타이탄 간의 공격은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고작 두 대만으로는 우리의 앞길을 막아설 수 없다는 뜻이었다.
콰앙!
상당한 충돌 데미지가 들어왔지만, 레벤다스는 둘 사이를 비집고 뚫어 낸 다음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전진했다.
피핑! 핑! 핑!
허나 대규모 병력이 괜히 무서운 게 아닌 법.
그런 우리의 후방에서 원거리 공격이 끊임없이 날아와, 레벤다스의 체력을 계속해서 갉아먹었다.
“야, 이거 장난 아냐! 이대론 1분도 못 버티겠는데?”
“일단 달려! 내가 데미지 좀 분산시켜 줄 테니까!”
[마나 쉴드가 1,220의 마법 피해를 흡수합니다.]
[마나 쉴드가 2,866의 마법 피해를 흡수합니다.]
……………………
레벤다스의 소환 시간을 최대한 늘려주기 위해, 나는 양어깨 위를 오고 가며 마법 공격만 골라 대신 맞아 주었다.
사실 타이탄은 보폭이 넓어서 대체로 일반 유저들보다 이속이 빠른 편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많은 유저가 뒤따르더라도, 풀체력 상태의 나이트급 타이탄이라면 어느 정도 뚫고 도망갈 수 있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문제는, 이곳에 타이탄보다 이속이 빠른 적들이 넘쳐난다는 데 있었다.
“역시 원래대로 성기사 놈이 갖고 있던 게 맞았어!”
“절대로 놓치지 마라! 쉽게 찾아오지 않는 기회야. 무조건 죽여야 해!”
공중에서 랜스 차징하듯 부딪혀오는 페가수스 라이더들의 음성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사실 이번 작전은 처음부터 모 아니면 도인 도박이었다.
디바인 템을 우리만 먹어 본 게 아니다 보니, 적들도 7신기 외에는 교환이 가능하단 사실은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고 가정했다.
그러니 공중정원에서 나오는 9인 중, 무조건 한 명은 디바인 방패를 든 ‘잭팟’일 수밖에 없었다.
상식적이라면 당연히 내가 들고 나올 것으로 생각하는 게 정상.
하지만 나는 우리 길드원이 죽는 걸 지켜보기 싫었기에 모험을 걸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최대한 피해가 적도록!
‘아무리 머더러가 아닐지라도, 재수 없으면 템을 드랍할 수 있으니까…….’
나 혼자 빠져나가는 거야 우여곡절은 있었겠지만, 충분히 가능했을 터.
하지만 내 말 한마디에 이곳에 전부 집결한 길드원들이 전멸하는 꼴은, 차마 두고 볼 수 없었다.
결국 그런 생각 끝에 내가 내린 결론.
그건 양동작전으로 시선을 끈 사이, 나머지는 전부 흩어져 귀환 주문서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비록 안타깝게도 축빙 형님과 축볼 누님은 이미 희생되고 말았지만…… 나머지 인원은 다행히 전부 성공의 문턱까지 갈 수 있었다.
이 모든 걸 간파한 제독과 비상구의 저격만 없었더라면!
[축복받은무빙: 어떻게 됐어! 다들 괜찮은 거야?]
[산드로: 걸려서 도망치는 중이에요! 이렇게 된 이상, 제독이 원하는 대로 진흙탕 싸움을 해 주는 수밖에요!]
[축복받은파볼: 너희만으로 어떻게! 우리도 떨쳐 보려 했는데 페가수스가 무지하게 많던데!]
[라스트챤스: 비둘기가 많아 봤자 비둘기죠! 다들 걱정 마세요! 현중이 형은 제가 지켜 줄 테니까요!]
공중으로 솟구쳤던 훼라리는 어느새 되돌아와 우리 머리 위에서 날갯짓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내 오더를 따르고 있는 비행이었지만, 그 위에 탄 사람들까지 내가 조종하는 건 아니었다.
쉭! 쉭!
빠르고 정확한 솜씨로 쏘아지는 화살들.
더불어 그 화살이 꽂히는 그 자리에 기파랑의 본 스피어도 뒤따라 날아갔다.
정확히 올림푸스 라이더들이 타고 있는, 페가수스의 몸통에!
“이히힝!”
한 대여섯 발이나 맞았을까?
비행 중이라 맞추기 힘든 공격이 연달아 적중되자, 체력이 많지 않은 페가수스는 곧바로 역소환됐다.
그리고 그 위에 타고 있던 라이더는, 공중에서 그대로 추락해버리고 말았다.
[무적살라딘: 잘한다 라챤아! 진짜 페가수스는 별것도 아닌 펫이네! 뭐가 이리 몸빵이 약해?]
[라스트챤스: 당당이가 하고 있는 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요. 저 위에 좀 보세요. 도대체 쟤는 도둑이 맞는 거예요? 완전 궁수 저리가라인데요?]
라챤이의 말에 더 높은 상공을 올려다보자, 멀리서 고군분투 중인 당당이를 찾아볼 수 있었다.
적들 외곽에서 쉴 새 없이 단검 투척을 날리는 모습.
원래 훼라리를 뒤쫓던 페가수스와 그리폰이 왜 합류하지 못하나 싶었는데, 모두 당당이 덕분이었다.
휘리릭, 휘리릭!
본인이 탄 페가수스를 공중에서 360도 회전시키는가 하면, 롤러코스터처럼 위아래를 뒤바꾼 채 곡예비행을 하는 콘트롤.
적들과 같은 조건인 펫을 타고 있으면서도, 일당백처럼 페가수스만 야금야금 역소환시키며 합류를 최대한 저지하고 있었다.
[산드로: 무사히 잘 귀환했나 했더니, 또또 미친 컨으로 타연을 씹어먹고 있었네... 도대체 혼자 페가수스를 몇 마리나 잡은 거야?]
[당근당근단검: 16]
쉴 새 없이 단검을 던지는 와중에도 짧게 전적을 대답해주는 당당이.
사실 올림푸스 라이더들이 대부분 기사나 전사로 이루어진 놈들이었기에 가능한 플레이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제 막 비행 펫을 운전해 보는 녀석이었는데…….
정말 악마의 재능이라고 말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천부적인 감각이었다.
“너희들! 정말 우리를 뚫고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쉬익! 척! 척!
지금의 상황을 보다 못했는지, 제독이 십여 기의 페가수스와 함께 우리를 앞서 나갔다.
그리고는 공중에서 페가수스들을 역소환시키더니, 내가 있는 레벤다스 어깨 위로 하나둘씩 내려앉았다.
“뭐, 뭐야!”
놀란 내 외침과 상관없이, 제독은 함께 내린 부하들에게 공격 명령을 외쳤다.
“타이탄만 부수면 다잡은 거다! 죽을 각오로 찔러 넣어!”
푹! 푹! 푹!
이런 말도 안 되는 플레이가 가능한 이유.
놀랍게도 뛰어내린 놈들 전원이 대도 부츠를 착용한 상태인지라, 어깨 갑주와 등에 달라붙은 채로 근접 공격을 쑤셔 넣기 시작했다.
[재빠른 몸놀림!]
그걸 지켜만 볼 수 없던 나는 자버프를 사용한 다음 가까이 있는 기사 캐릭부터 공격했다.
허나 놈은, 맞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레벤다스에게 한 대라도 검을 더 먹이는 데만 집중했다.
[축복받은얼굴: 드로야, 이건 못 버티겠다! 나 곧 딸피야! 이제 10초!]
[산드로: 적들이 너무 많아서 안 되겠다. 마지막에 말했던 그걸로 가자!]
[축복받은얼굴: 아... 이런 쉣!]
아직 마을까지는 갈 길이 먼데, 벌써 레벤다스가 역소환된다니…….
천상의 방패도 없는 현중이가 지금 맨몸으로 필드에 떨어지게 된다면, 무조건 죽은 목숨이었다.
난 공격하던 놈을 마저 죽인 다음, 곧바로 제독에게 달라붙어 후방공격을 휘둘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데미지라니!”
제법 버티던가 싶던 제독은, 결국 레벤다스의 몸에서 발을 떼 지상으로 떨어져 나가는 걸 선택했다.
그 직후 난, 남아있는 놈 중 하나에게 다가가 비장의 스킬을 사용했다.
[덫 설치!]
펑!
그리고 2초의 캐스팅 시간이 끝나자, 거대한 연막이 튀어나와 레벤다스의 온몸을 가려버렸다.
“무슨 연막 하나가 이렇게 커!”
“타이탄이 없어졌다!”
“법사들 뭐해! 어서 빨리 바람 마법!”
연막과 함께 레벤다스는 역소환되어 사라졌고, 열심히 공격 중이던 놈들이 그 속에서 다급한 음성을 토해냈다.
페가수스 라이더 중에는 마법사가 없는 듯했지만, 그리폰 라이더에는 얻어탄 마법사가 몇 명 있었는지 곧 바람 마법이 날아왔다.
“윈드 커터!”
“에어 밤!”
조금씩 흩어지는 연막들.
갑자기 그 속에서 무언가가 연기를 뚫고 공중을 향해 날아올랐다.
말할 것도 없이 현중이가 소환한 페가수스였다.
“저놈이다! 다들 무조건 잡아!”
고래고래 소리치는 제독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하늘에 떠 있던 페가수스와 그리폰들이 현중이를 향해 돌진했다.
광기 어린 듯한 집단 비행!
그러자 결국, 현중이는 얼마 날아보지도 못하고 공중에서 추락해버리고 말았다.
‘…….’
그리고 난, 그 광경을 뒷걸음질 치며 전부 지켜봤다.
흩어지는 연막 사이에서, 남몰래 8성 은신을 시전한 채로.
‘처음부터 갖고 있었다고 해서, 끝까지 갖고 있으란 법은 없잖아?’
계획대로 잘 풀렸다면 모를까, 이 상황까지 와서 현중이가 무사히 도망치길 바라는 건 욕심.
결국 우리는 최후의 수단으로 말해두었던, ‘템 바꿔치기’를 실시했다.
연막 덫을 통해, 잠시 모두의 시선이 가려졌던 짧은 순간을 틈타!
‘현중이가 레벤다스를 소환한 걸 눈앞에서 보여줬으니까, 놈들이 끝까지 착각할 만도 하겠지!’
짧은 순간, 모두에게 지시를 내려두었다.
연막이 터지면 공격을 멈추고 전부 도망가라고.
내겐 8성 은신이 있었으니, 훼라리에 태운 3인방도 마을을 향해 비행을 명령해두었다.
이대로 놈들 시선이 현중이에게 쏠려있는 사이.
이곳에서 조금만 벗어난다면 내 8성 은신을 잡아낼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토네이도!”
공중에서 생각지도 못한 마법 캐스팅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마법은 놀랍게도 내가 서 있는 인근에 떨어졌고…….
[마나 쉴드가 3,112의 마법 피해를 흡수합니다.]
고레벨이 사용했는지 저항하는 데마저 실패해서, 광역 데미지에 은신이 벗겨지고 말았다.
“다들 여기 좀 봐봐! 산드로는 여기 있잖아!”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익숙한 목소리.
어째 혼자만 안 보인다 싶었던 홍당무였다.
“이런, 개뽀록이!”
“사람들은 딴 데 정신 팔렸는지 몰라도, 난 너밖에 안 보이거든? 어디서 얌생이처럼 도망치려고?”
여전히 페가수스들 대부분은 추락한 현중이를 뒤쫓았지만, 몇몇은 홍당무의 외침을 듣고 방향을 바꿨다.
그리고 태성 소속의 그리폰들 대부분은 그들과 함께, 나를 향해 강하하며 돌격해왔다.
‘이번엔 진짜로 위험하다!’
분명 시선을 전부 다 돌렸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곳에서 변수가 생겨버렸다.
타이탄도 없고, 훼라리도 멀리 날려 보낸 상태.
심지어 믿었던 8성 은신도 방금 쓰자마자 벗겨져 버려 쿨타임이 돌아가는 중이었다.
이대로 현중이를 향했던 페가수스들이 되돌아온다면, 순식간에 둘러싸이게 될 위급한 상황.
적들 대부분이 비행 부대라 이속 차이를 활용해 벗어날 가능성도 희박했다.
두근두근!
정말 엿된 상황인 것을 직감하자, 오랜만에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왔다.
타탓! 탓!
지금까지와는 다른, 정말 생존을 위한 다급한 뜀박질!
난 재빠른 몸놀림을 사용하고는 곧바로 마을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축복받은얼굴: 아... 나도 결국 아웃! 어떻게, 잘 도망쳤냐 드로야?]
이런 상황을 모르는 현중이가 올린 채팅 메시지가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제 곧 레벤다스를 드랍하지 않은 걸 본 제독의 부대가, 나를 향해 날아올 테니까!
퍼펑! 펑!
머리 위에서 마법 공격과 화살이 날아와 꽂혔다.
그런데도 맞으면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내가 훼라리를 역소환하면 타고 있는 세 명이 전부 낙사할 것이기 때문.
이도 저도 할 수 없이, 그저 줄어드는 MP 칸을 보며 묵묵히 달려나가는 순간.
쿵! 쿵! 쿵! 쿵! 쿵!
갑자기 하늘 위에서 폭죽이 터지듯 밝은 빛이 연달아 터지더니, 육중한 강철 거인들이 포탄처럼 떨어졌다.
“뭐야 이것들은 또?”
당황한 홍당무의 목소리.
뒤돌아보자, 가장 먼저 낯익은 리버스 나이츠의 이름이 보였다.
그리고…….
<로파미엘>
<드래곤 나이츠>
이어서 처음 보는 타이탄이 무려 2대나 눈에 들어왔다.
마치 천사장의 모습을 연상시킬 만큼 화려한 갑주와 날렵한 디자인을 자랑하는 로파미엘.
그리고 나머지 한 대는 비늘을 겹댄 것 같은 두터운 외장갑과 유난히 긴 랜스를 들고 있는, 드래곤 나이츠란 이름의 타이탄이었다.
“지옥불 형님!”
“드로야, 너무 하는 거 아니냐? 이런 재밌는 일이 생겼으면 처음부터 날 불렀어야지!”
“와, 살았다! 뭐예요? 벌써 드래곤 하트로 타이탄을 만드신 거예요?”
“그래. 어제 막 제작에 성공했다. 마침 개시해 보기에는…… 딱 좋은 상황인 것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