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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208화 (208/350)

208화 페가수스 신드롬 (2)

로파미엘로부터 울려 퍼진 지옥불 형님의 말이 끝나자.

곧바로 드래곤 나이츠에서도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또 만나서 반갑네요! 일단 상황이 급한 것 같으니, 인사는 나중에 나누겠습니다!”

드래곤 레이드 당시 함께 싸웠었던 댜크홀스.

예전에 탔던 타이탄은 다른 이에게 양도했는지, 새롭게 제작된 드래곤 나이츠엔 그가 타고 있었다.

‘하긴…… 타이탄 조종 실력이 예사롭진 않은 사람이었지!’

로드급 타이탄은 단 7대밖에 없다고 게임 내에서 여러 번 안내된 바 있다.

그러니 저 두 대의 새로운 타이탄들은 나이트급이 분명했다.

저렇게 양산형과 다른 멋진 외형을 가진 놈들이 솔저급일 리는 없었으니까.

“방어 대형으로!”

“네!”

총 5대의 타이탄.

그 강철 거인들이 나를 중심으로 부채꼴 모양으로 뭉치며 방어벽을 형성했다.

일반 유저들과 공중에서 돌격해오는 적의 비행 부대들을 막아주기 위해서였다.

“끼이익! 끼익”

그뿐만이 아니었다.

타이탄 라이더들이 뛰어내린 머리 위 상공.

그곳에도 어느새 와이번 십수 마리가 날아와 라인의 비행 부대와 공방을 주고받고 있었다.

역시나 투 메르타스 레이드 당시, 테이밍 스킬을 익혀 아이언 골렘들을 소환했던 길드원들이었다.

‘과연 피닉스!’

누가 뭐라 해도…… 현재 태성 라인과 함께 맞설 수 있는 세력은 오직 지옥불 형님밖에 없었다.

급격하게 뛰던 가슴이 다시 기분 좋은 설렘의 떨림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된 이상, 더 이상 내가 도망칠 입장은 아니었기 때문에!

[산드로: 다들 귀환하셨죠?]

[라스트챤스: 네, 형님! 전부 주문서로 마을에 왔습니다!]

[산드로: 그래! 그럼 훼라리는 제가 다시 소환하겠습니다!]

멀리 태워 보냈던 3인방.

그들이 탔던 훼라리를 역소환시킨 후, 재소환 쿨타임이 끝나자마자 다시 꺼내 들었다.

남아있는 체력은 60% 정도.

이 정도면 아직 충분했다.

“이제 도망 끝! 내 차례다!”

난 그대로 훼라리에 올라타, 하늘에서 피닉스와 공중전을 벌이는 적들을 향해 솟구쳐올랐다.

쉬쉭!

그리고는 특유의 긴 리치를 자랑하는 두 자루의 장검을 스치듯 휘두르며 비행했다.

목표는 적들이 타고 있는 페가수스.

이미 여러 번 공중전을 벌여본 결과, 나는 공중전의 본질을 깨달은 상태였다.

본체보다 비행 탈 것을 먼저 역소환시키면, 공중에선 속수무책이 돼버린단 사실을!

“히히힝!”

그리고 역시나.

높지 않은 레벨에 체력마저 약한 페가수스로선, 내 공격을 몇 대 버티지 못하고 금세 역소환되어 사라졌다.

“으악! 살려줘!”

발버둥 치며 추락하는 기사 캐릭.

이 정도 높이에서라면 보나 마나 낙사였다.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드레이크만 공격해!”

“붙으면 사망이야!”

근 2초에 1마리.

꿈에도 그리던 원샷원킬 수준의 활약이, 페가수스를 상대로 한 공중전에서만큼은 가능해졌다.

“안 붙어도 사망일 텐데요?”

[포획!]

마치 양 떼 무리에 난입한 한 마리 늑대처럼.

나를 피해 공중에서 흩어지는 놈 중 하나를 골라, 군단장의 채찍을 내뻗었다.

휙! 휘리릭!

정확히 적중되어 휘감겨오는 기사.

당황해하는 놀란 표정과 함께, 내 코앞까지 당겨온 그는 공중에 자신의 펫을 놔둔 채 지상으로 추락했다.

‘바로 이거지! 일인무쌍이란 건!’

페가수스의 체력보다 족히 10배는 더 높은 훼라리를 탄 상황이라, 적들의 수가 아무리 많더라도 겁나지가 않았다.

붙으면 검으로 죽이고, 멀어지면 포획 쿨타임이 돌아올 때마다 차곡차곡 한 명씩 죽이면 그만.

혼자 포위된 상태라는 압박감이 없어지자, 이렇게 하늘은 나의 독무대가 돼버리고 말았다.

픽! 픽!

한데 이런 상황인데도, 유독 내가 공격하는 놈을 향해 무언가가 꾸준히 날아와 꽂혔다.

다름 아닌 주황빛 당근.

거의 백 미터는 떨어진 곳에서 날아온 당당이의 바람 단검이었다.

“뭐야? 너 여태 귀환 안 했었냐?”

“제가 어떻게 도망가요? 형이 아직 버젓이 남아있는데요?”

“아니, 말은 고마운데…… 어떻게 페가수스를 가지고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거야? 네 것만 특별히 센 놈도 아닐 텐데 말야.”

“얘네들…… 진짜로 컨이 너무 구려요! 비행 탈것을 제대로 조종하는 애가 한 명도 없던데요?”

막 전투기가 처음 보급되던 세계대전 당시.

혼자서 80대 이상을 격추한 조종사가 존재했다는 전설이 갑자기 생각났다.

기체 성능의 차이가 얼마 나지 않던 상황이었기에, 그런 엄청난 전적은 오로지 파일럿의 조종실력 차이로밖에는 설명되지 않았던!

‘이 자식이 그런 부류인 거야. 괴물 중의 괴물……!’

만약 당당이가 탄 놈이 페가수스가 아닌 훼라리였다면……?

나도 정말 잘 써먹는 중이라고 자부하는 편이지만, 녀석의 이런 미친 활약을 보고 있자니 정말 그런 것인지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랜스 투척!”

쾅!

그러던 중, 갑자기 지상에서 거대한 랜스가 날아와 페가수스를 꿰뚫어 역소환시켜 버렸다.

뼈를 깎아 만든 듯한 거대하고 티 없이 하얀 장창.

지금껏 봐온 타이탄 스킬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강력해 보이는 스킬이었는데, 곧 소환되듯 사라지더니 다시 드래곤 나이츠의 손으로 돌아갔다.

“드로야! 네 맘은 알겠지만, 피 관리 좀 하면서 살살해라! 우리한테 좀 맡기고!”

“네, 형님!”

순식간에 페가수스 라이더들을 헤집으며 십여 기를 추락시키자, 제독을 비롯한 태성 라인의 네임드 유저들이 멀찌감치 떨어졌다.

이대로 내가 훼라리를 타고 도망쳐버려도 상관없다는 움직임.

피닉스의 타이탄과 후속 부대를 보고는, 결국 오늘 나를 잡는 데는 실패했단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토끼몰이하느라 거의 총출동을 했을 텐데…… 미안하게 됐네, 제독?’

지상의 병력들도 피닉스의 타이탄들에 대항하기보단, 전진을 멈춰 전투는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으으으……! 저 자식을 또 그냥 보내줘야 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전부 돌격하지 않고 뭐 하는 거야, 제독은!”

“하핫, 당무 씨. 그러길래 너네 길마를 데려왔어야죠. 그 쫄보 자식이 함께 왔으면, 그래도 뭔가 좀 달랐을지도?”

다리우스가 가진 데이네스.

녀석의 타이탄에는 리프 어택이란 사기급 전진기가 있었다.

무려 수십 미터가 넘는 거리를 단숨에 좁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넉백까지 유발시키는 고유 스킬.

그러니 데이네스만 이곳에 있었더라면, 도망치는 레벤다스를 진작에 넘어트려서 현중이와 나를 동시에 붙잡았을지도 몰랐다.

‘그게 그 자식과 나의 결정적인 차이점이지.’

하지만 이렇게 많은 부하들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다리우스는 끝내 오지 않았다.

아니, 올 수 없었다.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에, 지난 번의 상실이 만들어준 두려움이 생각보다 컸던 것이다.

“다들 후퇴! 공중정원으로 복귀해라!”

“힝, 다 잡은 거였는데……!”

“대체 피닉스 놈들은 언제 이렇게 타이탄을 많이 갖게 된 거야!”

많이 줄어들었다지만 여전히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적의 비행 라이더들.

놈들은 투덜대면서도, 제독의 오더에 마지못한 듯 방향을 바꿔 콘틀랑 정상을 향해 돌아갔다.

“당당아. 그만 쫓고, 너도 이제 그만 내려와라!”

“네!”

다른 길드원들은 전부 피했는데, 당당이만은 끝까지 남아주었다.

물론 정면승부는 피한 채 외곽을 돌며 공격했고 살아남을 자신이 있어서 그랬겠지만, 생각지도 못한 행동에 묘한 감동을 받았다.

탁!

그런 녀석과 함께 지옥불 형님이 탄 로파미엘 앞에 함께 내려섰다.

“그래, 드로야. 이번엔 또 어떤 일이었던 거냐? 이 설산 한가운데서 갑자기 이런 전투라니?”

“우연히 단서를 찾게 돼서 새로운 장소를 찾던 중에, 놈들과 마주쳐서요. 미처 몰랐는데…… 여기에 올림푸스가 꽁꽁 숨겨놓고 있던 꿀단지가 있었더라고요.”

“꿀단지라고?”

“네. 놈들이 페가수스를 독점하고 있었던 이유. 그게 방금 놈들이 되돌아간 콘틀랑 산 정상에 있었거든요.”

* * *

지옥불 형님을 비롯한 피닉스 간부진들에게 이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중 페어리 퀸의 공중정원이 숨겨진 위치와 페가수스를 얻을 수 있는 퀘스트에 관해 알려드리자, 다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뭐야? 이곳 가트웰 산맥에 그런 곳이 남아있었단 말야? 그것도 2.0 업데이트 이전부터?”

“네. 저희도 운 좋게 입장하는 올림푸스 놈들을 발견해서 찾았지…… 그게 아니었으면 한참을 더 헤맸을 거예요. 정말 처음 발견한 놈이 누군지 몰라도, 어지간히 뻘짓 좋아하는 놈이었을 거예요.”

백여 개가 넘는 산의 정상을 전부 뒤져보는 것.

그것도 투명 계단으로 이루어진 공중정원을 찾아냈다는 건, 정말 엄청난 똘끼를 가진 자만이 해낼 수 있는 업적이었다.

사실 그렇게 어렵게 찾아낸 것이니, 최대한 숨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일견 당연한 일이었다.

그곳에서만 유일하게 페가수스 펫을 얻을 보상이 주어진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 후라면 더더욱.

“그런 곳을 너희 때문에 태성 라인 전부와 공유하게 되었으니…… 제독 속이 여간 쓰릴 게 아니겠군.”

“이대로는 저희도 문제예요. 그동안은 올림푸스 혼자 독식하겠답시고 몰래 보상을 받느라 페가수스의 수가 나름 통제돼서 많이 풀리진 않았잖아요? 근데 이제는 라인 모두와 공유하게 됐으니 페가수스가 금방 대규모로 풀리게 될 거에요.”

“드로 형님 말씀대로예요. 그리고 또 큰 문제가, 그곳 자체가 천연의 요새나 다름없어요. 대도 부츠가 없으면 걸어서 올라갈 수도 없거니와 아니면 비행 탈 것이 필요한데, 그건 놈들이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상태니까요.”

라챤이의 말대로였고 이미 우리가 안에서 예상했던 바였다.

놈들 수백 명이 정상에 자리를 잡고 방어를 한다면, 아무리 우리라도 쉽게 뚫기는 힘들어 보였다.

일단 놈들은, 많은 그리폰들뿐만 아니라 백 마리가 넘는 페가수스를 가져 수송 능력과 기동력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뭐가 문제지, 드로야? 그러면 자기들끼리, 그냥 그렇게 잘 지키고 있으라고 하면 될 것 같은데?”

“네?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한데 지옥불 형님의 생각은 달랐는지, 뭐가 걱정이냐는 듯한 태연한 표정으로 되물으셨다.

“퀘스트를 일주일에 한 번밖에 못 받는다고 하지 않았어? 그걸 얻겠다고 24시간씩 몇 날이고 그곳을 지키고 있다? 그것도 최소 수백 명이? 사냥터같이 몹이 나와 사냥할 수 있는 곳도 아닌 곳에서, 그런 통제가 얼마나 길게 유지될 수 있을까?”

“엇……!”

“생각해 봐라, 드로야. 그런 건 어차피 길게 유지할 수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길게 지키려들수록 우리에겐 이득이다. 신규 콘텐츠에 접근하려면 레벨업이 시급한데, 그곳에서 시간만 낭비하게 될 테니까. 너희 길드나 우리를 막으려면 최소한 350레벨 이상들이 지켜야만 할 텐데, 그런 통제가 정말 가능할까?”

생소한 지역에서 워낙 상황이 급하게 돌아가느라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식견이 탁월한 지옥불 형님과 대화를 나누고 보니, 우리가 너무 간과한 부분들이 있었다.

형님의 말대로 그냥 놔둬도 길어야 한 달.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짧은 시간 만에 놈들은 콘틀랑의 통제를 풀 수밖에 없으리라.

“알겠습니다, 형님. 그럼 저희는 그곳은 신경 끄고, 그동안 레벨업에만 전념하고 있겠습니다!”

“그래. 그래도 놈들만 페가수스를 독차지하는 건 다음 공성전 때 위협이 될 수 있으니…… 우리가 올타에 글을 좀 올려보마. 태성이 라인을 결성한 후 처음 재개한 통제니까, 나름 여론전에 먹히는 부분이 있을 거다.”

“네, 알겠습니다. 근데 그건 좀만 늦춰주시면 안될까요? 그 전에 먼저 만나볼 사람이 있거든요.”

“응? 누구지? 혹시…… 카이저 님?”

“아니요. 공중정원의 단서를 알게 해주신 분이 있어요. 아무 정보도 없는 채로 몇 달 간이나, 혼자 남다른 의지로 그곳을 찾고 있던 사람이요.”

페어리 퀸을 찾으면 얻을 수 있는 부산물이 목표였다는 열혈거북이.

이제 그가 그토록 원하던 것이 페가수스란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지금 내 인벤토리 안에는, 퀘스트 보상으로 함께 받은 페가수스 깃털이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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