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209화 (209/350)

209화 페가수스 신드롬 (3)

“제가 귓말은 켜두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여기 계셨기에 망정이었지, 하마터면 못 찾을 뻔했네요.”

다시 열혈거북이를 만나기 위해 귓말을 넣었으나, 그는 여전히 귓속말을 꺼둔 상태였다.

하는 수 없이 그를 만났던 페어리 언덕을 찾아가 보니, 다행히 그는 이곳에서 페어리를 만나보겠답시고 순찰을 돌고 있었다.

“여긴 왜 다시 온 거예요? 가트웰에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왜요. 그 대탐험시대를 데리고도, 거긴 못 찾겠는가 보죠?”

“또 그러시네요. 암만 게임이라도 말투 좀 고치실 생각은 없으세요? 좀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됐고요! 생각해보니 제가 괜한 말을 한 것 같더라고요. 어딨는지 찾기 전까진 찾아오지 마세요. 당신은 생각보다 눈에 띄는 사람이라서, 제가 또 귀찮은 일에 휘말릴 수도 있거든요.”

개인사까지 어느 정도 말해주길래 좀 가까워진 줄 알았더니, 여전히 대하기 어려운 상대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지금은 처음 만날 때와는 다르게, 그가 원하는 걸 찾아온 상태였으니까.

“찾아냈어요.”

“두 번 다시는 또 겪고 싶지…… 네? 뭐라고요?”

“페어리 퀸을 찾아냈다고요. 공중정원도…… 그리고 그곳에 있는 페가수스도요.”

“진짜요? 정말로 페가수스를 찾아냈다고요? 이렇게나 빨리? 거짓말! 제가 알고 있기론 그걸 얻으려면 퀘스트도 해야 할 텐데요!”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이거 한 번 보시고 진짠지 아닌지 확인해 보세요.”

콘틀랑 정상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왔지만, 아직 타연에 그 싸움을 알고 있는 유저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니 당연히 그도 내가 어떤 일을 겪고 왔는지는 모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추정 레벨은 300레벨 전후.

그가 설령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중정원에 도달해 페어리 퀸을 만나더라도, 퀘스트를 깨서 정상적으로 깃털을 얻을 확률은 희박했다.

물론 시간이 흐르다 보면 판매하는 이도 나타날 테니, 돈을 주고 살 수도 있게 되겠지만…….

당장 태성 라인이 통제에 들어간 상황에서 그게 언제쯤에나 가능해질지는 가늠하기 힘들었다.

그러니, 지금 이걸 가지고 흥정을 한다면 거래에 응할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다.

<페가수스 깃털>

그에게 다가가 교환창에 올린 아이템.

얻기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한없이 어려운 이 아이템을 보게 되자, 그는 한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 만에……?”

“말씀드렸잖아요. 저희에겐 스페셜리스트가 있다고요. 저 혼자면 힘들었겠지만, 저희 버닝스타는 또 얘기가 다르거든요.”

“대, 대체 어디에 있는 겁니까? 그 공중정원은?”

“에이. 먼저 확답을 주셔야 알려드리죠. 금방이라고 하셨지만, 저도 이걸 얻기까진 꽤 고생했거든요. 어떠세요, 이제는 불굴의 의지를 파실 생각이 들지 않으셨나요? 이건 그냥 드릴게요!”

“무슨 말씀을! 제가 언제 그걸 가져오면 팔겠단 소릴 한 적 있습니까? 아까도 혼자 지레짐작해서 찾아준다고 나선 거였잖아요? 제가 왜 당신한테 제 템을 팔아야 하는 건데요? 안 팔아요!”

“……네?”

“가트웰인가 어딘가에 있다는 건 확실해졌으니까…… 그냥 제가 알아서 찾아보렵니다. 어쨌든 그건 감사하네요. 그래도 죄송하지만, 템은 안 팔아요.”

뭔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분명 마지막엔, 내가 대신 페어리 퀸을 찾아주게 되면 당장이라도 템을 판매해줄 것처럼 굴었었는데…….

‘생각해보면 그가 확답을 하지 않았던 건 맞아…….’

대신 페어리 퀸을 찾아주겠다고 말했을 때 거절하지 않은 것도.

그가 슬그머니 지난 개인사에 대해 말해주었던 것도.

모두 나를 이용해 먹기 위한 수작이었나?

‘이 자식이 누굴 호구로 아나? 감히 날 갖고 놀아? 지 이득만 공짜로 쏙 챙기고?’

예전이었다면 당장 이런 생각과 함께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았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의 난, 이상하게도 조금도 화가 나지 않았다.

열혈거북이의 말대로 그가 먼저 페어리 퀸을 찾아달라고 부탁한 게 아니었기 때문.

오히려 내가 템 욕심에, 처음부터 팔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던 그에게 괜한 부담만 안겨준 건 아닌가란 반성이 들었다.

“아…… 네. 생각해보니 제가 너무 억지를 부렸던 게 아닌가 싶네요. 하긴 그 템은 거북이 님을 위해 만들어진 거고 오래 간직해 오신 템인데…… 제가 너무 쉽게 얻으려 들었죠? 알겠습니다. 판매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

“그리고 굳이 가트웰 전부를 이렇게 헤매실 필요는 없어요. 잠시 귓말 좀 켜보시겠어요? 제가 위치 링크를 보내드릴게요. 그 산 정상에 공중정원이 있습니다.”

“…….”

“특이하게도 그곳 정상에 가도 입구는 안 보이거든요? 정상에 있는 흰 암석 부근에 가면 투명 계단이 있는데 그걸 밟고 올라가셔야 해요. 허공을 밟는 거라 무서우실 수도 있는데, 물약 같은 걸 드랍하면서 보고 가시면 안전하실 거예요.”

나는 묵묵히 듣고만 있는 그에게 내가 알게 된 정보들을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아참! 근데 당분간은 가보시기 힘드실 겁니다. 어쩌다 보니 태성 라인이 그곳을 점령했거든요. 아마 한동안은 통제할 테니까, 그곳에 들어가기까진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네? 태성이에요? 그리고 통제요?”

“네. 사실 그곳은 올림푸스가 먼저 독식하고 있던 곳이더라고요. 아마 거북이 님께서도 올푸 유저로부터 흘러나온 정보로 페가수스에 대해 알게 되신 것 같은데…… 맞죠? 아무튼, 그러다 보니 발견 당시 충돌이 있었고 올푸 놈들이 그곳을 태성 라인에 공유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태성이 알게 됐고, 역시나 그곳에 다른 유저들이 못 오도록 통제해서 막고 있다는 얘기인 거죠?”

“네. 맞아요. 지금 가면 괜히 공격당해서 죽으실 수도 있어요.”

“이런 빌어먹을 새끼들! 진짜 정도란 걸 모르는 놈들이네!!”

“……네?”

계속 조용히 듣고만 있던 그가,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 오른 듯 고함을 내질렀다.

“씨앙, 적당히란 걸 모르잖아요, 적당히란 걸! 왜 그렇게 태성 새끼들은 남한테 피해 끼치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건데요! 올푸 놈들이 감추고 있었던 건, 지들이 먼저 찾아냈으니 이해는 할 수 있어요. 근데 이제 다 오픈된 걸 왜 지들만 차지하겠다는 건데요! 남들도 지들만큼이나 페가수스를 갖고 싶어 할 거란 생각은 조금도 안 드는 거예요?”

“좋으니까 통제를 거는 거겠죠. 늘 그래왔듯이, 태성은 다른 유저들 기분 같은 건 생각 안 하면서 게임하니까요…….”

“제가 그래서 얼마나 힘들었는데……. 놈들 때문에 우리 길드원들이 얼마나 시달렸었는데……. 또 그 지랄을 하고 있다고요? 그것도 제가 가려는 곳에서요?”

생각보다 불굴의 의지 때문에 시달렸던 게 심했었는지, 그는 태성이란 이름이 나오자 마치 발작 버튼이라도 눌린 듯 태도가 돌변했다.

“제가 산드로 당신을 싫어했다고 했죠? 그 이유에 대해서 하나만 더 말해줄까요?”

“……얼마든지요.”

“사실 저도 당신처럼 태성과 맞서 싸우고 싶었어요. 좋은 템을 갖고 있으니까 이걸 가지고 지존이 돼서 다리우스를 처단하는 상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를 겁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죠.”

“…….”

“그러니 당신이 나타났을 때 실패하기를 바랐습니다. 혼자서 다리우스를 죽이고 태성을 없애겠다니? 그냥 그렇게 허세 부리다 실수해서, 얼른 죽어서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오늘 저를 찾아왔을 때도, 사실 한편으로는 영영 페어리 퀸은 찾지 못하고 저를 다신 안 찾아왔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죠. 근데 당신은…… 나와는 참 많이도 다른 사람이네요.”

이곳에 혼자 찾아오기를 잘했다.

그가 이토록 침울해하는 모습을 여럿이 볼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나도 다른 이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이야기를 해줄 수 있었으니까.

“어떤 고생을 겪었는지는 모르지만, 대충 예상은 됩니다. 저도 그만큼 놈들을 싫어해서 싸우게 된 거거든요. 그리고 사실…… 제가 특별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정말 솔직히 말하면, 당신과 저는 별 차이가 없고 오히려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쓸데없이 위로할 생각은 마시죠? 당신과 내가, 어디가 비슷하다는 겁니까?”

“저도 어쩌다 보니 몇 년간이나 골방에 처박혀 타연만 했었거든요. 그러다 운 좋게 템을 얻게 됐고요. 물론 그 템을 어떻게 활용했냐로 인해 지금의 차이가 발생하긴 했지만, 성격 자체는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동류끼리는 서로 알아보는 거 아시죠?”

몸에 장애가 생겼던 그였지만, 나는 마음에 장애가 있었던 건 아닐까?

그가 현실의 괴로움을 게임속 길드원들을 통해서 치유했다는 사실도, 내가 버닝스타를 창설하고 길드원들에게 감동과 위로를 받았던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지금이라도 안 늦었어요. 그렇게 당한 게 많다면 직접 복수하세요. 제가 해봐서 아는데요…… 생각했던 것보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거든요.”

“산드로 님…….”

“앞으론 절 싫어하기보다는 좋아해 보시는 건 어떠세요? 저처럼 내 손으로 복수하겠다고 마음먹고 행동하다 보면, 저절로 그렇게 될걸요? 장담합니다!”

이제 그에게 해줄 말은 다 해주었다.

지금까지처럼 계속 그가 제 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인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마음속의 응어리를 풀기 위해 행동에 나서게 될 것인지는.

그의 마음 먹기에 달려 있었다.

그렇게 생각에 빠진 그를 두고 떠나려는 순간.

그가 나를 불러세웠다.

“산드로 님. 판매하겠습니다.”

“네? 뭐라고요?”

“제 불굴의 의지를 판매하겠다고요.”

“정말요?”

“님 말씀대로 그 동안은 개인이 태성과 맞서 싸울 수 없다고 지레 포기했던 것 같네요. 오늘 짧은 시간이었지만, 당신을 만나고 많은 걸 깨달았습니다. 앞으론 당신 말대로 늘 피해만 다녔던 삶을 청산해 보겠습니다. 그러니 제 템을 사 주세요. 그 템을 팔아서 다른 장비들부터 맞춰야겠습니다.”

뭐가 그의 마음을 돌려세웠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나는 최초의 +10 레전더리 장비를 구매하게 되었다.

* * *

-[알림] 페가수스 펫을 얻는 루트를 공개합니다.

늘 시끌벅적하고 타연에서 일어난 사건사고들이 가장 많이 공유되는 곳, 올 어바웃 타이탄.

오늘 저녁 올타에 올라온 한 정보 공유 게시글은, 그 쇼킹한 내용 때문에 단숨에 가장 핫한 글로 선정되어 상단에 박제되었다.

-와, 이 말대로면 개나 소나 다 비행 펫을 얻을 수 있다는 거 아냐? 구라 아님?

└넌 작성자 아이디도 안 봤냐? 무려 헬파이어가 올린 글인데 구라겠어?

└└하긴 올림푸스 애들만 페가수스 수백 마리 끌고 다니는 게 졸라 이상하긴 했어. 얻기가 생각보다 쉬웠던 거구나!

└└└잘 읽어보면 그렇게 쉬운 것만도 아닌 것 같음. 레벨과 장비가 받쳐줘야겠더라.

-이 글 읽고 콘틀랑 산에 가봤는데 늦었음. 이미 태성 라인이 점령 중이더라ㄷㄷ

└뭐야? 진짜야?

└└ㅇㅇ 맞음. 점령뿐만 아니라 통제 중임. 가까이 다가가면 그냥 경고도 없이 죽임

└└└개 버릇 남 못 준다더니, 또 그 ㅈㄹ같은 버릇이 나왔네.

└└└└내가 말했었지? 그나마 버닝스타가 시공 포탈 먹어서 다행이었지, 태성이 먹었으면 발도 못 붙였다고.

함께 로그아웃한 후.

쇼파에 누운 채 폰을 보던 현중이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지환아, 이거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응? 왜?”

“지옥불 형님이 올린 글 있잖아……. 그거 댓글이 벌써 5만 개가 넘었어.”

“뭐? 정말?”

게시글이 올라온 지는 이제 막 3시간.

그 시간 만에 이렇게 많은 댓글이 달린 건, 최근 몇 달을 되돌아봐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심지어 태성이 라인을 선포했을 때나 우리가 모집 글을 올렸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와! 생각보다 페가수스에 대한 관심이 높았었나 본데? 하긴 마을에서 훼라리를 탈 때마다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기는 많았지.”

“그걸 말이라고 하냐? 나만 해도 페가수스를 얼마나 갖고 싶었는데! 뭐, 막상 타니까 생각보다 약해서 좀 그렇긴 하다만…….”

“너야말로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사실 우리의 원래 목적은 페가수스가 아니었던 터라, 크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그저 다음 공성전부터는 좀 골치 아파지겠다는 정도?

하지만 유저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이번 페가수스 획득 루트 발견은 생각보다 대형 사건인 모양이었다.

“어? 이건 또 뭐야? 새로 올라온 글인데, 무쟈게 핫한데?”

생각보다 격렬한 유저들의 반응에 놀라 한창 올타를 살피던 중, 현중이가 새로운 글을 하나 보여주었다.

-[모집] 콘틀랑 통제를 해산할 유저들을 모집합니다. 다 같이 페가수스를 획득합시다!

새로 고침을 할 때마다 댓글이 수십 개씩 늘어나고 있는 글.

얼른 그 글을 클릭해서 살펴보자, 하나같이 자신도 참여하겠다는 댓글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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