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210화 (210/350)

210화 페가수스 신드롬 (4)

- 태성이 라인을 결성한 이유를 다들 직접 보고 계시죠? 처음이 어렵지, 앞으로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되고 더욱 심해질 겁니다. 아! 처음도 아니었던가요? 아무튼, 이대로 참고만 있을 겁니까? 자기들이 뭔데 유저들을 위해 마련된 비행 탈 것과 퀘스트를 독식한단 말입니까? 뜻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함께 나섭시다. 내일 오후 8시. 휴포드 마을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단 한 분도 오지 않더라도, 저 혼자 몇 번이고 그들의 억압에 투쟁하겠습니다!

비장한 각오로 가득한 본문 내용.

이 글을 쓴 사람은 피닉스의 지옥불 형님도이나 화랑이나 피스메이커 같은 중립 길드의 길마가 아니었다.

또한 유저들이 다들 알법한 네임드 유저나 랭커 또한 아니었다.

그저 한때 잠시 반짝 주목을 받고 사라졌던…….

그마저도 아이디가 변경되어 아는 이도 얼마 없는, 평범한 유저 중 한 사람이었다.

“근데 이 사람, 그분 아니냐? 낮에 너한테 템을 판매하신……?”

“맞아. 거북이 님…….”

하지만 비록 소수지만, 우리처럼 그를 알아보는 유저도 존재했다.

작성자 ID, 열혈거북이.

그리고 그런 탓에, 그의 모집 글은 이렇게 순식간에 이슈화될 수 있었다.

-이분 예전에 뉴스에 나왔던 그 사람 아니야? 왜 아프셨다가 타연으로 치료하셨던?

└맞음. 아이디 바꿨는데 아는 사람은 다 알아

└└템 팔고 겜 접은 줄 알았는데 아직 하고 계셨네? 근데 대단하시네. 태성과 맞서 싸울 생각을 다 하시고!

-참여합니다!(님처럼... 먼저 나서지 못했던 날들을 반성하며....)

-저도 참여하겠습니다! 그놈의 통제 지긋지긋하네요!

-총대 매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정말 감동이네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가 조용히 숨어 지냈던 그가.

귀찮은 건 딱 질색이라고 몇 번이나 까탈스럽게 굴었던 그가.

이렇게 자신의 이름을 걸고 태성과 맞서겠다고 나설 줄이야!

-깃털은 딱 이거 1개만 받을게요. 원래는 10개를 가져오셨더라도, 팔 생각은 없었지만…….

-네? 그만큼이나 필요하시다면 제게 말씀하세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어요. 퀘스트에서 이걸 보상으로 얻으려면, 레벨도 생각보다 높아야 하거든요.

-사실 저희 길드원들에게 페가수스를 깜짝 선물해 주고 싶었는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냥 시간을 두고 함께 차근차근 깨보려고요. 원래 게임은…… 그렇게 하는 게 재밌는 거잖아요?

그렇게 그는, 크게 시세를 따지지 않은 채로 단돈 천만 골드와 페가수스 깃털 하나에 불굴의 의지를 넘겨주었다.

앞으로도 계속 응원하겠다는 격려와 함께.

‘그냥 했던 빈말이 아니었네. 앞으론 변해보겠다고 했던 말이…….’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 템을 판매한다는 것도 그렇고.

나를 통하면 쉽게 얻을 수 있는 페가수스 깃털을 직접 얻어내겠다는 것도 그렇고.

그는 한순간 만에 많이도 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렇게나 큰 결심을 했던 건지는 몰랐다.

태성과 대놓고 맞서 싸우겠다는 것.

그건 몇 년간 힘들고 아끼며 키워왔던 캐릭을, 접을 각오까지 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할 거야? 그냥 이대로 지켜볼 거야?”

“그럴 수 있겠냐? 먼저 이렇게 뜨겁게 나서주셨는데…… 어떻게 모른 척해?”

지옥불 형님의 말대로 그냥 놔둬도 알아서 무너져버릴 통제였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큰 결심을 한 열혈거북이의 첫 행보가 실패로 돌아가는 걸 두고 볼 수만은 없었으니까.

-저를 포함한 저희 길드도, 전원 참여하겠습니다.

작성자 ID, 산드로.

거세게 타오르는 불꽃에, 기름을 붓는 댓글이 한 개 더 추가되었다.

* * *

평일 저녁 8시.

대부분의 사람이 퇴근하거나 귀가해서 접속률이 가장 피크를 찍는 시간대.

그걸 감안하더라도 지금 이곳의 밀도는, 미어터져 나갈 듯이 높았다.

“거기 좀 나갑시다, 나가! 오늘 목적지가 여기도 아닌데 왜 이렇게 몰려 있어요!”

“무슨 막자가 도대체 몇 명이야? 공성도 아닌데 이러고 싶냐?”

“태성이 고용한 알바겠지! 제대로 된 사람이 지금 저 짓거릴 하고 있겠어?”

북적북적.

식상한 표현이지만, 이곳이 정말 내가 알던 휴포드 마을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많은 인파로 득실댔다.

드래곤 레이드 당시에도 제법 몰린 적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마을 입구에 대규모 막자가 나타날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유저들의 밀침으로 조금씩 해결하고 있어, 큰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나는 사람들을 뚫고 마을 광장으로 이동한 뒤, 그곳 중앙에 서 있는 한 유저 앞에서 은신을 풀었다.

오늘 이 많은 사람을 모이게 만든 구심점.

바로 열혈거북이였다.

“안녕하세요, 거북이 님. 아직 출발 안 하셨네요?”

“오! 산드로 님 오셨습니까? 많이 바쁘실 텐데 이렇게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잔뜩 상기된 표정의 열혈거북이.

그의 곁에는, 같은 길드 마크를 달고 있는 길드원 일고여덟 명이 나란히 서 있었다.

“정말 대단한 일을 해내셨어요! 우리는 분명 성공할 테지만, 설사 만에 하나 실패하더라도 오늘 일은 대대로 전해질 겁니다. 길드 간 전투로 생긴 대립이 아닌, 일반 유저들이 자발적으로 태성에 반항한 기념비적인 사건이니까요!”

“저도 사람들이 이만큼이나 호응해 줄지는 몰랐습니다. 그냥 산드로 님의 말씀을 듣고, 이대로 가만히 있는 건 억울한 것 같아서 즉흥적으로 써본 글이었는데…… 일이 말도 안 되게 커졌네요.”

“페가수스가 가진 날개가 상징하는 게 뭡니까? 자유 아니겠어요? 그만큼 사람들은 자유를 갈망하고 통제를 싫어한다는 뜻인지도 모르죠! 생각해보니 이거 좀 의미심장한데요?”

“하하! 그건 좀 끼워 맞춘 것 같은데요? 아무튼, 덕분에 이렇게나 많은 유저들이 찾아오게 됐습니다. 역시 타연의 스타, 산드로 님이시네요!”

“무슨 말씀을요? 제가 뭘 했다고. 워낙 열혈거북이 님의 이미지가 좋고 상징적이셔서, 사람들도 좋은 뜻에 동참한 거겠죠.”

“주변을 보시고도 그런 말씀을 나오세요? 어제 산드로 님이 올리신 참여 댓글에, 추천이 몇 개나 박혔는데요?”

지금 광장에는 어림잡아 수천 명이 넘게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그중 적지 않은 수가 특정 템을 장착하고 있었다.

제법 독특한 외형에 온통 검은색으로 염색된 망토.

의심할 바 없는, 전형적인 흑풍단의 모습이었다.

“태성과 싸우는 자리에 우리 흑풍단이 빠질 수 없지! 외쳐, 산드로!”

“산! 드! 로!”

“흑! 풍! 단!”

내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급속도로 검은 망토로 갈아입는 사람이 늘어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내 이름을 떼창으로 외쳐대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 손을 완전히 떠난 건가? 도대체 이 사람들이 언제까지 이럴 건지…… 슬슬 무서워질 지경이네!’

컨셉을 즐기는 건지, 아니면 묘한 소속감이라도 느끼고 있는 건지…….

이제 흑풍단은 완전히 대형 길드 못지않게 그 수가 늘어나 버렸고, 이렇게 볼 때마다 더 늘어난 모습에 매번 깜짝깜짝 놀랐다.

“그럼 전 이만 먼저 출발해 보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다른 중립 길드 마스터분들도 도와주시기로 했으니, 걱정 마세요!”

인사를 나눴으니, 서둘러 다른 이를 태우기 위해 훼라리를 소환해서 날아올랐다.

어제 참가 글을 올린 다음 지옥불 형님과 의논해 보았으나, 오늘 공격에는 피닉스가 불참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사실 이 많은 인파와 더불어 피닉스까지 참전하게 되면, 오늘 공격이 실패할 확률은 굉장히 낮았다.

하지만 그렇다 보면 기존의 대형 길드 간 길드전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어져, 열혈거북이가 처음 모집 글을 올린 취지가 퇴색해 버리게 된다.

그래서 오늘은 순수히 일반 유저나 중립, 또는 소규모 길드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남도록 피닉스는 빠졌다.

-그리고 우리 피닉스가 없는 게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을 거다. 놈에게도 생각이 있다면…….

지옥불 형님의 마지막 말이 인상 깊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편이 좋았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분에게 도움을 요청드렸다.

좋은 취지로 모인 것이니, 꼭 좀 성공할 수 있게 잠시만 와달라고…….

그리고 형님은, 역시나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여기다, 여기!”

“오빠! 여기예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와이번 둥지.

그곳에서 막간을 활용해 사냥 중이던 카이저 형님과 라푼젤 앞에 내려앉았다.

“와! 뭐예요? 잠깐 봤는데, 와이번을 도대체 몇 방으로 죽인 거예요? 5방 맞아요?”

“하핫! 맞다. 그런 건 또 기가 막히게 체크하는 구나?”

“아니, 창이 워낙 길고 눈에 띄니깐 멀리서도 잘 보이더라고요. 근데 진짜 대박이네요. 암만 와이번이 이젠 별 위협도 되지 않는 렙이라 해도…… 정예급 몹인데 5방이라뇨? 저보다 2배는 더 빨리 잡으신 것 같은데요?”

신창 룬 페이서를 얻게 된 카이저 형님.

타이탄을 소환하느라 10레벨이라는 막심한 레벨 다운을 겪었지만, 빠르게 랭킹을 회복 중이셨다.

그리고 그 이유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니 놀랍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곁에서 라푼젤이 각종 버프를 걸어준다 해도, 같은 7신기를 갖고 있는 나보다 월등히 빠른 사냥 속도였기 때문이었다.

‘마검사는 공방 밸런스를 둘 다 챙길 수 있는 하이브리드 캐릭터니까……. 비록 나보다 방어나 몸빵은 좀 떨어지겠지만, 공격력만큼은 나보다 월등하구나!’

제루티안의 축복을 사용해 검에서 창 테크로 완벽히 갈아탄 효과를 보니, 내심 부럽기 짝이 없었다.

7신기의 진정한 공격력을, 내가 아닌 남을 통해서 처음 느껴본 것만 같아서.

“아무튼, 이만 가보지? 이미 8시가 넘었으니 출발하지 않았을까?”

“아! 네, 맞아요. 두 분 다 얼른 타세요!”

차례로 두 사람을 훼라리에 태운 후, 반대편에 있는 콘틀랑 산을 향해 날아올랐다.

사실 어제 전투로 우리 버닝스타가 보유 중인 타이탄은 전부 소환 쿨타임에 들어갔다.

피닉스는 불참할뿐더러, 마찬가지로 쿨타임이라 참여가 힘든 상황.

하지만 정상 위에서 어그로와 몸빵을 해주기엔 타이탄만 한 적격이 없었기에, 형님에게 부탁을 드리게 된 것이었다.

“참 재미난 곳을 발견했더구나. 페어리 퀸의 공중정원이라니. 나도 한때 찾아보다 포기한 곳이었는데…….”

“어쩌다 운이 좋았네요.”

“그런 게 운으로 가능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네 말대로 운이 반복되는 건, 누가 뭐래도 실력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맞아요, 드로 오빠.”

짧은 대화를 나누며 중간쯤 도착하자, 우리 버닝스타 길드원들과 공중에서 합류했다.

기존의 와순이뿐만 아니라, 이번에 페가수스를 펫으로 얻게 된 현중이와 당당이 등이었다.

“와! 반가워요! 이렇게 공중에서 만나니까 색다른데요?”

“하하! 그러게?”

“이렇게 자주 함께하실 거면, 그냥 저희 버닝스타로 들어오시죠?”

축빙 형님의 은근한 가입 권유가 있었으나, 끝내 말을 아끼는 카이저 형님이었다.

그렇게 다 함께 콘틀랑을 향해 날아가다 보니, 지상으로 길게 이어진 유저들의 행렬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충 봐도 1만 명에 가까워 보일 만큼 어마어마한 숫자.

길드 차원이 아닌 유저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것으로는, 타연에서는 처음 보는 대규모 사건임이 분명했다.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자, 깎아지는 듯한 급격한 경사를 자랑하는 콘틀랑 산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초입부터 중간중간마다, 거대한 무언가가 드문드문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골렘들.

테이밍 몬스터 스킬을 배우거나 골렘 소환을 익힌 네크로맨서들이 걸어서 올라가기 힘든 구간마다 골렘을 소환해 둔 것이었다.

대도 부츠가 없으면 올라가기 힘든 구간.

하지만 이렇게 사다리 식으로 골렘들을 소환해 두자, 유저들이 밟고 올라가기에 큰 어려움은 없어 보였다.

그 광경들을 바라보며 정상을 향해 고도를 높이자, 마침내 콘틀랑 산 정상의 모습이 드러났다.

“어…… 이건 뭐죠?”

황당해하는 라챤이의 목소리.

함께 비행 중인 다른 길드원들도 같은 기색이었으나, 카이저 형님만큼은 달랐다.

“역시 이렇게 됐구나? 간만에 몸을 푸나 했는데 싱겁게 됐는데?”

“그렇긴 하지만 유저들 입장에서는 잘된 일이잖아요? 애써 와주셨는데 허탕 치게 만들어서 죄송하네요.”

“별게 다 죄송하구나?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라. 개의치 말고!”

어제 우리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이곳.

콘틀랑 정상에는 우리의 예상과 달리 텅 비어있었다.

천연의 요새와도 같아 수천 명의 유저들이 죽더라도 뚫릴지 의문인 곳이었으나, 태성 라인은 이곳을 포기해버린 것이었다.

-놔둬도 결국 통제를 포기하고 말 곳일 텐데…… 유저들이 이렇게 대규모로 저항하는 일에 끝까지 맞서는 건 멍청한 짓이지. 족히 수천 명을 죽여야 해서 원성을 받게 될 뿐만 아니라, 머더러도 수백 명씩 만들게 될 테니까……. 고레벨 유저들을 그렇게 소모하는 건 아무리 태성이라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거다.

지옥불 형님과 나눴던 예측 그대로, 놈들은 콘틀랑 정상을 지키는 일을 포기했다.

이 말인즉슨, 일반 유저들이 페가수스를 얻는 것 또한 하는 수 없이 허용했다는 뜻이었다.

탓!

정상 위 하얀 암석.

그곳에 훼라리를 착지시킨 후, 투명 계단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뭐 하는 거야, 드로야? 놈들도 없으니 그냥 돌아가는 거 아니었어?”

“하나 남겨두고 싶은 게 있어서요.”

카이저 형님의 물음에 답하며 난, 인벤토리에서 랜턴을 꺼내 들어 불을 켰다.

그리고는 투명 계단의 양 끝자락에 하나씩 내려놓았다.

그렇게 밝게 빛나는 랜턴이 허공에 두 줄기로 줄을 이었고, 마침내 준비해온 랜턴이 떨어질 때쯤 입구에 도달할 수 있었다.

“와! 그렇게 해놓으니까 너무 이뻐요!”

“그러게? 무슨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 같은데?”

밑에서 라푼젤과 현중이가 감탄을 하며 올려다보았다.

“이곳에 오는 유저분들을 위한 제 선물이에요. 괜히 헛디뎌서 낙사하지 말고, 앞으로 이곳에서 페가수스를 얻어서 즐겁게 플레이하시라고요.”

퀘스트 보상으로는 최초로 제공되는 비행 펫, 페가수스.

가히 신드롬이나 다름없는 유저들의 열렬한 열망만큼이나, 앞으로 급변하게 될 타연의 앞날을 기대하며 마지막 랜턴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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