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213화 (213/350)

213화 랭킹 1위 (3)

생각지도 못한 유저로부터의 귓속말인 것처럼, 제의 또한 뜻밖이었다.

‘갑자기 기업 스폰이라니……. 로만 전자에서 나를 왜?’

송강현.

헬파이어 신지석 형님만큼이나 유명세를 떨치던 로만전자의 본명.

한때 그는 나의 워너비이기도 했다.

스폰으로 인한 막대한 연봉과 광고 수익뿐만 아니라, 게임을 하며 얻게 되는 모든 아이템과 골드 등이 그의 몫이었기 때문.

하루하루 주머니 퀘스트같은 노가다로 버는 돈에도 만족하던 시절의 내게는, 그의 이런 플레이는 꿈만 같은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정말 어이없는 일이지만…… 많은 것을 얻은 만큼이나, 많은 것들 또한 포기해야만 했으니까.

(나: 저를 좋게 봐주셔서 제안을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죄송하게도.... 기업 스폰은 지금까지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로만전자: 물론 어째서 거절하시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한데 이번 제안은 상당히 자유롭고 특별한 조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저 내용을 전달하는 제가 봐도 무척 놀라운 특혜인데요... 괜찮으시다면 잠시만 시간을 할애하셔서, 조건이라도 들어 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어떤 제안이 제시된다 하더라도 내 생각에 변함은 없다.

하지만 유저들과 일절 교류가 없기로 소문난 그와 인맥을 쌓는 것도 그렇고, 그에게 물어보고 싶은 부분도 있었기에 잠시 시간을 내기로 했다.

‘비운의 천재……. 아니, 랭커보고 비운을 운운하는 건 좀 그런가? 아무튼, 난 그처럼은 게임하진 못하는데…….’

기업의 이름으로 아이디를 만든 유저.

걸어 다니는 홍보 간판이나 다름없는 그의 처지는, 어떻게 보면 처량해 보이기도 했다.

물론 그가 받는 연봉과 인센티브 등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은커녕 부러워 죽을 지경이겠지만.

어쨌든 그는 기업 스폰으로 편하게 타연을 시작하는 대신,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가장 큰 건 역시나 정체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름’을 선택할 수 없었던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자유’를 포기한 것이었다.

타연이 등장한 초창기.

선풍적인 인기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호평들에, 기업들은 너도나도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유명 프로게이머들을 영입해서 팀을 꾸리고, 수백억을 들여 길드를 키우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투자는 99%.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이 전부 실패해 버리고 말았다.

프로 게이머 출신이라고 선투자를 했지만, 정작 그들은 가상현실 게임에서 큰 두각을 드러내진 못했던 것이다.

결국 기업들은 초기 투자 방법에 급히 수정할 수밖에 없었고.

프로게이머들이 아닌, 이미 랭커급으로 활약하고 있는 유저에게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거액의 ‘위약금 청구서’를 받은 마법사 랭커 ‘람쥐람쥐’!

-세림 식품의 광고 모델이었던 게이머 ‘세림’의 학폭 논란으로 불매 운동 확산!

하지만 여기에서도 생각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는데…….

자유로운 PK가 가능하고 유저간 경쟁이 주력 콘텐츠인 타연과, 기업 이미지 제고를 위한 플레이는 서로 상충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스폰 계약을 맺은 유저에게 PK 당하자 기업에 컴플레인을 거는 유저.

혹은 몬스터를 스틸당하거나 템 경쟁에서 진 유저가 불매 운동을 주도하기도 하는 케이스 등이 속속 등장했다.

회사는 리스크 때문에…….

플레이어는 까다로운 계약 조건과 제약된 플레이, 그리고 위약금 때문에…….

결국 스폰을 유지할 수 있는 유저는 극소수밖에 존재하지 않았고, 그렇게 기업의 후원을 바라는 유저들도 나날이 줄어들었다.

그동안 내가 여러 대기업들로부터 광고나 스폰 제의를 수십 차례 받았음에도,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던 결정적 이유였다.

하지만 세상 어느 곳에나 예외는 존재하는 법.

계정 생성 전부터 스폰이 성사되어 성공적으로 랭커로 성장한 수년 동안,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은 채 기업 홍보를 성공적으로 이행 중인 유저.

로만전자의 대표 플레이어, ‘로만전자’가 바로 그 극소수인 1%에 해당하는 케이스였다.

* * *

약속 장소로 알려준 지웰 외성 마을 여관방.

로만전자가 알려준 숨겨놓은 열쇠를 주워들고 들어가자, 먼저 도착해 있던 그가 일어나 반겨주었다.

“오! 벌써 오셨네요? 반갑습니다, 산드로 님!”

“안녕하세요, 로만 님. 근데…… 혼자가 아니셨네요?”

서버 최초로 알려진 레드 드레이크 갑옷 풀 세트를 착용 중인 모습.

얼핏 마검사가 아닌 전사나 기사로도 보이는 단단한 그의 곁에, 처음 보는 유저 두 명이 나란히 서 있었다.

<로만공식계정> <관우>

그중 외형 변경으로 현대식 정장을 착용 중인 유저.

아이디만 보더라도, 플레이보다는 공적인 목적을 위해 만든 캐릭처럼 보이는 로만공식계정이 말을 건네왔다.

“미리 말씀드리지 않고 이렇게 불쑥 찾아봬 죄송합니다. 로만전자의 홍보팀장, 김오식이라고 합니다. 저까지 뵙는다고 말씀드렸다면, 혹여 나오지 않으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예전부터 여러 계정으로 귓말을 드려봤는데, 정말 가차 없이 차단하시더군요, 하하!”

“아, 네…….”

로만전자로부터 귓속말을 받았던 적이 있었나?

워낙 습관적으로 귓속말들을 차단해왔기에,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저건 뭐지? 처음 보는 장비 같은데?’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모양새와 이펙트.

나머지 한 명인 관우라는 아이디를 가진 유저는, 얼핏 봐도 레전더리급 이상으로 보이는 거대한 양손검을 든 채 조용히 서 있었다.

“언제고 한 번 꼭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메인 몸이다 보니, 이렇게 공적인 일이 있어야 처음 만나 뵙게 되는군요.”

“아닙니다. 워낙 제가 특이한 사냥터만 돌아다녔던 터라, 우연히 마주친 적도 없었네요. 저도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로만 님.”

게임이라곤 하나 이제는 직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타연.

이런 거물 유저를 만날 때는, 아무래도 평소보다는 더 진지한 태도로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잠시 서로를 향한 인사와 칭찬이 오고 간 후, 이렇게 만난 목적에 관한 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알고 계시겠지만, 제가 타연에서 하는 행동들은 상당 부분 제약을 받는 부분이 많아서요. 하지만 이렇게 비공개로 만나는 일에서까지 그렇진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스폰의 장단점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으로 전달해 드릴 수도 있을 겁니다.”

“네. 근데 로만 님의 부탁 때문에 오긴 했는데…… 전 정말 스폰 같은 건 생각 없습니다. 괜히 옆에 계신 분들이 힘 빼실까 봐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름 내가 일반 유저들로부터 호감과 인기를 얻게 된 이유.

그건 처음부터 혼자, 그리고 지금도 극소수의 길드원들만으로 거대한 태성 길드와 맞서 싸우기 때문이었다.

한데 이제 와서 기업의 입김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스폰을 받게 된다?

돈이야 넘칠 만큼 충분해 부족한 게 없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는 흑풍단이 와해될 건덕지를 굳이 자처할 이유가 없었다.

“여기서부턴 제가 대신 간략하게 말씀드리지요. 그간 로만전자에선 산드로 님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봐 왔습니다. 저희 경쟁사인 태성전자의 이름을 단 태성 길드와 맞서는 대표적인 유저시니 그럴 수밖에 없었죠.”

“흠……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말씀을 하시려는 건지도 대충 알겠고요. 근데 정말 전 스폰 같은 건 필요 없습니다. 굳이 제 개인적인 원한으로 인한 싸움에, 다른 이해관계를 개입시키고 싶지도 않고요.”

“물론 어떤 생각이신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괜히 지금까지 어떤 지원도 없이 플레이하셨던 게 아니시겠죠. 하지만 그만큼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통합 랭킹 1위에 걸맞은 대우와 함께요!”

로만공식계정이 로만전자 대신 껴들었지만, 같은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정말 생각 없다니까요? 그리고 로만전자 님, 하나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요. 자주 쓰시는 스킬…….”

“6개월 계약에 20억, 그리고 길드원 전원에게도 2억씩 드리겠습니다. 계약 조건은 길드 마크 변경. 어떠한 추가적인 홍보 활동도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길드 마크 하나만 저희 로고 바꿔주신다면, 어떠한 플레이를 하신다 해도 일절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안 한다…… 네? 뭐라고요? 지금 얼마라고 하셨죠?”

“6개월에 20억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특별한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연장도 물론 가능합니다.”

20억?

그저 6개월간 길드 마크만 바꾸는 조건으로 그 돈을 주겠다고?

‘이게 무슨 일이야, 진짜! 내 몸값이 이렇게나 높아졌다고……? 미쳤네 정말!’

아무리 내가 타연에서 이슈를 몰고 다니는 인물이라곤 해도.

내가 출연한 인터뷰나 방송 등이 기록적인 시청률을 경신하고 억 단위 조회수를 자랑한다 해도.

일체의 홍보 활동이나 제약도 없이, 이런 거금이 제시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현재 내가 벌어들이는 골드와 돈이 막대하고, 빛마석 사재기로 든든한 자금줄을 마련해 두었다 해도.

이렇게 현실 속 단위로 제시된 금액을 듣게 되니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난, 편의점 도시락을 고를 때 단돈 몇백 원 차이에도 고민하던 놈이었기 때문이다.

“추가적으로 원하시는 조건이 있으시다면 얼마든지 긍정적으로 검토해 드릴 수 있습니다. 아! 저희 실장이신 전무님은 물론 사장님께도 전격 위임받은 사항이니, 절대 허투루 드리는 제안은 아닙니다.”

“…….”

다리우스가 타연에서 태성의 이름을 그렇게나 각인시킨 이유.

그리고 놈이 플레이 영상으로 찍었던 기업 홍보 CF 등은, 타연이 현실 세계에 미치고 있는 막대한 영향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한데 아무리 그렇더라도, 내가 게임 속에서 하고 있는 플레이가 이렇게 거대한 가치로 책정되고 있는지는 몰랐다.

항상 타연 속 거물들을 여럿 지켜봐 왔지만, 이제는 정말 완전한 거물이 돼버린 것…….

통합 랭킹 1위 기록을 보고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 이렇게 타인을 통해 처음 실감하게 되었다.

“산드로 님……?”

“먼저 과분한 제안 감사드립니다. 잠시 고민해봤는데, 아무리 그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타연을 하는 이유 중에 돈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서요. 지금은 그저, 처음 목적에만 집중하는 게 맞는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돈이라면 환장하는 나였지만, 끝내 유혹을 이겨냈다.

지금 내가 성공적으로 랭킹 1위를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

그건 이 자리에 오기까지, 숱하게 있었던 골드의 유혹을 떨쳐냈던 것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돈을 쫓다 보면, 정작 돈에서 멀어진다…….’

멀린 등을 비롯한 다른 유저들의 몰락들을 바라보면서, 난 타연 속 골드는 현금이 아니라는 최면을 스스로에게 많이 걸어왔다.

그 결과 길드원들에게 아낌없이 템을 나누고 여러 조력자에게 과한 보상을 건네줄 수 있었고, 그건 고스란히 그 이상의 보답으로 내게 돌아왔다.

지금 기업 스폰을 받게 되면 금전적으로 풍요로워질 수 있겠지만, 그에 실망한 유저들이 우리를 향해 주던 호응과 지지를 잃게 만들 수도 있었다.

아쉽지만 더 들어봤자 마음만 흔들릴 것 같아 떠나려 들자, 줄곧 아무 말도 없이 서 있던 유저 ‘관우’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계약 조건이 부족한 것 같으니…… 하나 더 추가해 드리죠.”

“죄송하지만 어떤 조건을 들고 오셔도 제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그런 바빠서 이만…….”

“저희가 왜 여관방에서 뵙기로 한 건지, 혹시 아시나요?”

“네?”

뜬금없이 다른 주제를 꺼내는 관우.

‘그러고 보니 어디서 본 적이 있는 아이디 같은데…… 누구지?’

희귀 아이디를 사고파는 일은 흔하게 이루어지지만, 정작 그런 사람 중에 랭커급으로 성장한 유저는 드물었다.

그래서 잘 알려지지 않은 유저라 별 특별한 게 없는 유저인 줄 알았는데, 조건을 운운하는 걸 보니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여관방은 정해진 열쇠로 입장하는, 하나의 인스턴트 던전 같이 개별화된 공간. 일반적인 필드가 아니죠. 따라서 타연에서의 가장 철저하게 사생활 보호가 이뤄지는 공간입니다.”

“그거야 다들 아는 바인데요……?”

“그럼 이것도 알고 계신가요? 이 안에는 아무리 운영자라 하더라도 정해진 열쇠가 없다면 들어올 수 없다는 사실도요?”

“……네?”

갑자기 운영자를 입에 담는 관우.

그의 이곳에 나타난 의도가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았기에, 천천히 되물었다.

“제게 원하시는 게 뭐죠? 그리고 추가한다는 조건이 도대체 뭡니까?”

“드디어 생각이 바뀌셨나 보군요. 이제 진지하게 고민해 보실 것 같으니 말씀드리죠. 저희 로만전자와 계약하시게 된다면, 태성과 타연 운영자. 그 둘 간의 비밀스러운 관계에 관한 정보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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