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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216화 (216/350)

216화 일인자의 무게 (2)

“깜짝이야! 갑자기 소리는 왜 지르고 그러세요, 형님?”

“그러게? 대체 뭐가 있다는 건데?”

400레벨이 되면 많은 변동이 있을 거라 예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저절로 찾아와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드래곤이 드랍했던 거 있잖아, 미완성 스킬북……. 이게 드디어 자기 좀 봐달라고 안달 부리네.”

“오옷! 진짜? 뭐 해 그럼? 세계수고 나발이고, 빨리 그것부터 좀 살펴봐 봐! 나도 그동안 쭉 궁금했었단 말야!”

굳이 현중이의 호들갑이 아니더라도, 나야말로 당장 이게 궁금해서 못 참을 지경이었다.

몬스터나 보스한테서 나오는 퀘스트 템은, 보통 완성도가 상당히 높은 상태로 드랍된다.

즉 일반적인 퀘스트 템들과 달리, 대부분은 간단한 조건만 달성하면 곧바로 보상이 주어지는 템으로 주어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법칙은…… 내 인벤 속에 있던 미완성 스킬북도 예외사항이 아니었다.

<미완성 스킬북(퀘스트 아이템)>

* 옛 마도 시대에 만들어진 스킬북입니다.

* 각 직업군의 마스터에게 찾아가십시오. (0/18)

템 정보를 읽어보니 테두리의 변화뿐만 아니라, 새로운 숫자 18이 나타나 있었다.

현재 타연의 직업은 총 18개.

이 숫자로 보아, 단순히 그들을 만나보기만 하면 이 스킬북이 사용 가능한 ‘소모품’이 될 거라고 예상됐다.

“대탐아! 혹시 생명의 숲이 어디 있는지 알 것 같니? 이거 지금 업데이트 돼 있는 곳인가? 아니면 인던 같은 곳일까?”

“고대 자료와 몇몇 NPC들의 언급을 토대로 추측해보면…… 분명 필드가 맞을 거예요. 2.0 업데이트 이후로도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지만, 한참 전부터 공중정원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아직 못 찾았다고 보는 편이 맞을 거예요.”

“흠……. 그럼 다들 흩어져서 찾아볼까요? 그사이에 저는 이 스킬북부터 해결해 놓을게요.”

“그럼 일단 지금 새로 알게 된 키워드들을 단서로 NPC들부터 돌아보자. 좀 막막하긴 하지만…… 드디어 퀘스트를 받긴 했으니까 첫걸음은 뗀 거잖아? 우리가 가장 앞서 나가고 있단 뜻이니까 다들 힘내 보자고!”

“넵, 형님!”

가장 맏형답게 든든한 축빙 형님.

내가 길마로서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늘 모자람 없게 서포트해주셔서 항상 고마웠다.

“전 이 스킬북이 너무 궁금하니까…… 개인적으로 드로 형님 좀 따라가 볼게요!”

“그래, 알겠다.”

직업 스킬은 각 마을에 존재하는 특정 장소에서 스킬북 등을 통해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직업 퀘스트나 특수 역할을 부여받은 각 직업의 마스터는, 타연에 각 1명씩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마저도 전부 다른 도시나 마을에 있었으니, 18명을 전부 찾아보는 일은 쉬우면서도 제법 귀찮은 일이었다.

그래서 함께 다니며 도움도 받을 겸, 라챤이와 함께 이동했다.

* * *

“드로 형님. 암만 그래도…… 혹시 전설 스킬 같은 게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너 설마 그런 게 나올까 봐…… 굳이 날 따라온 거였냐?”

“왜요? 전설 스킬 같은 거야 다른 게임에도 흔하게 존재하는 것들이잖아요? 드래곤이면 그 정도는 줘야 맞지 싶은데…….”

“아서라. 타연이 어떤 게임인데 그런 걸 넣어뒀겠냐? 어떻게 이룩한 자유도와 밸런싱인데…… 이제 와서 굳이 전설 스킬 같은 걸 추가하겠어?”

첫 번째로 찾은 직업 마스터는 도둑 마스터, 푸른달 ‘알 쿠자드’.

그가 있는 포트만 항구에 도착해 아지트로 향하는 중에, 라챤이가 뜬금없이 속마음을 말해왔다.

“디바인 템이나 로드급 타이탄도 존재하는데, 전설 스킬이 없으란 법 있어요? 그러고 보니 이미 스킬 중에 특별 스킬도 있잖아요!”

“그게 이거랑 같냐?”

“뭐가 다른데요?”

“디바인 템이나 로드급 타이탄은 개인이 가질 순 있어도 영원하진 않잖아. 죽어서 남한테 뺏길 수도 있고 팔 수도 있지. 근데 스킬은 한번 배우면 그 캐릭한테 영원히 귀속되잖아? 시간이 지나고 누적될수록, 밸런싱에 해만 될 시스템이야.”

“에이…… 그건 억지 같은데……”

“뭘 그렇게 전설 스킬에 로망을 갖고 있는 건데? 아, 맞다! 너 특별 스킬을 2개나 익혔었지? 뭐가 됐건, 18명이라고 해봤자 다 아는 장소에 있으니까 오늘 안엔 알게 될 거야. 내 말이 맞을지 네 말이 맞을지 한번 내기해볼래?”

“무슨 그런 거에 내기까지 걸어요? 아무튼 그럼 빨리 돌아봐요, 우리. 궁금해 죽겠으니까, 흐흐.”

타이탄 연대기가 수많은 국내외 게이머들로부터 위대한 게임으로 칭송받는 이유.

그건 단순히, 최초이자 완벽에 가까운 완성도로 만들어진 ‘가상현실’ 게임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상현실이 태동하기 직전, PC와 모바일 게임이 게임업계의 주류였던 시절.

대다수의 RPG 게임류는 암흑과도 같은 시기를 거치고 있었다.

아무리 많은 투자와 높은 완성도로 게임을 만들더라도, 허접한 가챠나 밸런스를 망치는 캐쉬 템들로 도배한 게임에 묻혀 흥행하지 못했기 때문.

기본적으로 타인과의 경쟁에서 재미를 얻는 구조인 MMORPG 류 게임에서는, 캐쉬템이 필요악과도 같은 존재로 취급받으며 업계를 좀먹고 있었다.

하지만 일루전은 타연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바로 GTB로 불리는 골드 환전소.

꾸준히 높은 수익을 가져다주는 이 BM모델 덕분에, 타연 유저들은 게임 내에서 어떠한 캐쉬템이나 유료 가챠 등을 접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는 제한 없는 템 착용과 자신만의 고유 테크트리가 가능한 스킬 시스템과 어우러져, 유저들이 타연에 훨씬 더 몰입할 수 있는 토대가 되어주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전설 스킬이란 걸 새롭게 추가하겠다고?

템까지야 용납이 가능할지는 몰라도, 스킬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유저들의 불만이 폭발해버릴 것이 분명했다.

만약 전설 스킬이란 게 등장한다면…….

디바인 템과는 다르게, 그간 애써서 키워온 기존의 직업과 테크트리 등이 완전히 부정당하게 될 테니까.

“도착했네.”

부둣가에서 제법 거리가 떨어진 주점 거리.

그곳 깊숙한 곳에 있는 한 5층짜리 건물에 들어서자, 제법 많은 유저들이 붐비고 있었다.

직업은 전부 도둑들.

열심히 퀘스트 삼매경에 빠져 있는지, 하나같이 바쁜 모습이었다.

“엇, 산드로다!”

“대박! 여긴 어쩐 일이지?”

“산드로는 도둑 아니냐? 올 수도 있지! 와, 아무튼 진짜로 만나니까 신기하긴 하네.”

알아보는 사람들을 뚫으며 서둘러 마스터가 있는 5층에 올라섰다.

하지만 퀘스트를 기다리는 줄이 계단 밑까지 길게 이어져 있어, 3층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나: 이거 뭐지? 여기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아졌냐? 이제 저녁 시간은 지나지 않았나?)

(라스트챤스: 형님 모르셨구나? 요즘 신규 직업을 제외하고 가장 인기 있는 직업군이 도둑이에요. 도둑이 인기 직업이 된 지도 벌써 반년은 됐을걸요?)

(나: 응? 왜? 도둑이 얼마나 개고생하는 캐릭인데.. 왜 갑자기 인기 캐가 됐지?)

(라스트챤스: 왜긴 왜예요, 형님 때문이죠. 그 망캐인 도둑 가지고 타연을 실시간으로 씹어 드시고 계시는데... 신규 유저들이 도둑을 안 고르고 배기겠어요?)

뭐야, 그런 일이 있었나?

하긴 길을 가다 보면, 내 예전 아이디나 지금 아이디와 비슷하게 만든 유저들을 종종 마주치긴 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 파급력이 있었는진 몰랐다.

“먼저 들어가세요! 전 급하지 않으니까 양보하고 맨 뒤에 서겠습니다.”

“아니에요. 저도 그냥 줄 서서 차례대로 받겠습니다.”

“에이, 괜찮아요! 사실 저…… 도둑이긴 하지만 흑풍단이거든요, 헤헤!”

어차피 다들 뻔한 직업 퀘스트를 하고 있는 터라, 줄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한데 그런데도 굳이 내게 양보하겠다고 앞에 서 있던 유저들이 하나둘씩 뒤로 빠져 주었다.

나 때문에 도둑의 위상이 올라가 길드에 가입하거나 파티를 구하는 게 한결 수월해졌다나?

그들을 위해 벌였던 일들도 아닌데, 괜스레 감사 인사와 배려를 받다 보니, 나중 가서는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였다.

그렇게 10분여.

마침내 내 차례가 돌아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오랜만에 보는 도둑 마스터가 나를 반겨주었다.

“대륙 제일의 도둑 산드로가 아니신가? 허허! 오랜만에 이곳을 찾아왔군?”

(나: 뭐지? 멘트가 평소완 다른데?)

(라스트챤스: 형님 진짜 오랜만에 오셨나 보다. 랭커가 되면 직업 마스터들의 대우가 달라지는 것도 모르셨어요?)

(나: 그런 것도.... 있었냐?)

(라스트챤스: 이래서 몹만 잡아도 레벨업이 되는 지금 시스템에 제한을 둬야 한다니까요. 퀘스트나 스토리는 스킵하면서 플레이하시니까, 뭐 아는 게 없으시네요?)

(나: 어쭈 이게?)

타연 NPC들의 AI는 상당히 훌륭한 편이다.

사람들이 실제 사람과 구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게임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NPC일수록 더욱 높은 수준의 알고리즘이 적용되어 있었다.

마스터라면 충분히 그럴 만한 존재.

안대를 하지 않은 한쪽 눈을 반짝이며 살갑게 구는 그가, 어쩐지 내가 아는 NPC 같지 않아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이 ‘스킬북’을 한번 보시겠습니까?”

“설마 이건……? 잊혀진 마도 시대의 유물?”

그런 그에게 미완성 스킬북을 꺼내 들자, 단숨에 표정을 굳히며 진지한 태도로 돌변했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전혀 반응하지 않던 예전과는, 완전 딴판인 반응이었다.

“전대 마스터로부터 전해 들은 물건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듣던 대로 특별한 마법이 담긴 책 같긴 하군. 하지만 아직 완전하지는 않은듯해…….”

“이 스킬북은 어떻게 사용되는 거죠?”

“아직 완전하지도 않은 책에 스킬을 새길 수는 없지. 일단 이 책을 복원시킨 후에 다시 찾아오게.”

이윽고 같은 대답을 반복하는 알 쿠자드.

이 말인즉슨 볼일이 끝났다는 뜻이었기에 인벤 창을 열고 숫자를 확인해보았다.

* 각 직업군의 마스터에게 찾아가십시오. (1/18)

분명 조금 전까지 0이었던 숫자가, 어느새 1로 변해있었다.

“흠……. 역시 연계 퀘는 아니고, 단순 노가다였네. 그럼 이동해볼까?”

“가긴 어딜 가세요, 형님? 전직 퀘스트는 안 여쭤보시게요?”

“아, 맞다! 400레벨만 기다려왔는데, 막상 되니까 자꾸 하나씩 놓치게 되네!”

쓸데없이 데려온 거 아닌가 싶었는데, 제법 도움이 되는 라챤이였다.

나는 다시 몸을 돌려 마스터에게 전직에 관해 물어보았다.

“이제는 자격을 충분히 갖춘 것 같습니다. 혹시 ‘전직’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시겠습니까?”

“허허…… 어느새 자네가 내가 일러준 모든 기술에 통달할 정도에 이르렀군. 후훗, 새로운 길을 걸을 자격이 충분하고도 충분해! 허나 이제부터는 가르침이 아닌 깨달음의 영역……. 자네가 어떤 길을 선택하게 될지, 한번 시험해 보겠네.”

띠링!

[퀘스트 ‘알 쿠자드의 시험’을 획득했습니다.]

[알 쿠자드의 시험: 전직 퀘스트]

* 클리어 난이도: A

* 마스터 알 쿠자드가 만족할 만한 물품을 찾거나 훔쳐오십시오.

* 가져온 물품에 따라 제시되는 전직 직업의 종류가 결정될 것입니다.

역시나 일루전.

주나스 때와 마찬가지로, 불친절하기 이를 데 없는 퀘스트가 주어졌다.

‘도대체 뭘, 어디서 가져와야 할지 정도는…… 유저한테 알려줘야지!’

괜히 팁과 노하우 게시판에 정보를 공유하는 유저들이 대단한 게 아니었다.

어렵사리 알아낸 것들을, 그들은 아낌없이 알려주었으니까.

“끝났어요?”

“어. 나가볼까?”

“근데 전직 하실 생각은 있으세요? 퀘스트를 바로 받으시게요?”

“일단 받아만 놓고, 고민 좀 해보려고……. 분명 전직 대신 세컨드 직업을 얻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으니까.”

제법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지만, 쓸데없이 많은 시간이 지체됐다.

나와 라챤이는 곧바로 귀환주문서를 써서 빠져나온 뒤, 다른 마스터들을 차례차례 찾아 나섰다.

* * *

“드디어 마지막 녀석이 끝났네요!”

“어, 그래. 근데…… 이게 끝이 아니었네?”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럼 오늘 스킬북의 비밀이 풀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찾았던 인챈터 마스터, ‘베인 뮤’.

그를 통해 드디어 숫자 18을 전부 채웠지만 기대했던 변화는 없었다.

다소 허탈한 마음에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갑자기 먼저 말을 걸지도 않았는데 베인이 대사를 읊기 시작했다.

“각 마스터들을 통해 고대 스킬북의 진위는 틀림없는 것으로 확인됐으니…… 잃어버린 마력을 되찾는 일만 남았겠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마력이란 걸 어떻게 되찾는 건데요?”

“그거라면 걱정 없다. 대륙 최고의 현자를 찾아가면 해답을 알려줄 테니……. 그 책을 가지고 지혜의 마탑주를 찾아가 보거라.”

“뭐, 뭐? 지혜의 마탑주? 걘 뷔잔드잖아!”

그저 찾아만 가더라도 곧바로 해결된다는 그의 말.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현재 난 제국과 전쟁이자 수배된 상태로, 시스템상 명백히 ‘적’인 상황이었으니까.

“뭐야, 이거 어떻게 깨? 뷔잔드 만나봤자 대화도 안 될 텐데!”

하지만 이것 역시도 별생각 없이 데리고 다닌 라챤이가 해답을 제시해주었다.

“뭔 걱정이세요? 그냥 그 템을 갖고 뷔잔드만 만나면 되는 거잖아요. 그럼 다른 사람이 해결하면 되죠!”

“그, 그런가? 하지만 우리 길드원 중에선 아무도 안 될 텐데…… 누구한테?”

“뭐 고민하실 거 있어요? 그냥 저희 누나한테 맡기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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