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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217화 (217/350)

217화 일인자의 무게 (3)

“연우를?”

지옥불 형님이야 같은 처지니 당연히 불가능했고…….

언뜻 카이저 형님이 떠올랐으나, 요즘 열렙하느라 바쁘신 게 생각났다.

‘하긴 현실로도 연락처를 아는 사이기도 하니까…….’

카이저 형님이 물론 먹고 째실 분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연우에게 부탁하는 편이 여러모로 나을 듯싶었다.

“그럴까? 연우도 바쁘진 않으려나?”

“울 누나는 항상 저보다 더 늦게 자요. 폐인도 그런 폐인이 없는데, 바쁠 리가 없죠. 그리고 형님이 부르시는 거라면 바로 올걸요?”

“하핫, 그래? 그럼 간만에 연우 얼굴이나 좀 볼까?”

바로 여관방을 하나 빌리고 식당 테이블 밑에 열쇠를 숨겨놓고 들어오자, 곧 연락을 받은 연우가 곧 도착했다.

“지환 오빠! 인게임에서 이렇게 마주 보는 게 얼마 만이에요? 벌써 400레벨이라니…… 정말 축하드려요!”

“고맙다, 연우야. 자주 못 봐서 그런가 이렇게 타연에서 보는 것도 반갑네. 근데 너…… 그동안 많이 변했구나?”

“네? 아…… 장비요? 그럼요! 저도 나름, 태성 주요 탱커 중의 하나인걸요!”

눈에 익은 백색 갑옷.

다리우스나 일도양단이 착용한 레전더리 갑옷, 사자왕 번스타인 세트였다.

물론 그들의 강화 수치와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혼자 몸으로 풀 레전더리 장비를 갖췄다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오빠, 근데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응? 뭐가?”

“그동안 제가 드린 정보만 해도 몇 갠데…… 오빠는 맨날 이런 일이 있을 때만 저를 찾잖아요!”

“어…… 그러고 보니 내가 좀 그랬나? 하긴 네 덕을 본 게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그러니깐요! 처음엔 타이탄 좀 빨리 타보려고 협력했던 건데, 이러다간 태성이 더 먼저 주겠어요!”

“정말? 태성이 일반 길드원들한테도 타이탄을 나눠주겠데?”

“말이 그렇단 거죠. 어디 걔들이 그럴 놈들이에요? 라인이라고 같은 편이 되긴 됐지만, 여전히 안에서는 길드 간 차별이 심해요. 근데 원조 멤버나 간부들은 어떻겠어요? 길드 규모도 더 커졌겠다, 무슨 자기들이 진짜 왕족인 줄 안다니까요!”

“그래?”

“네. 뭔가 좀 변하나 싶었는데, 위에는 여전히 그대로예요. 하긴 애초에 변할 놈들이었다면…… 제가 이렇게 태성에 들어올 일도 없었겠죠?”

“마침 만나기도 하고 말도 나온 김에…… 혹시 언제까지 태성에 있을 생각인지 물어봐도 될까? 벌써 들어간 지도 한참 됐는데…… 계속 게임을 그렇게 계속할 건 아니잖아?”

“아하, 복귀하는 거요? 일단 전…… 원래 목표를 달성하기 전까진 나올 생각이 없어요.”

“그니까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는 거기서 나와서 자유롭게 플레이하는 것도 괜찮지 않아? 너라면 피닉스에 돌아가도 충분히 랭커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냐? 그냥 라인 생활이 싫다고 나와버리면, 애초부터 스파이였는지 아무도 모른 채 끝날 수도 있고 말야.”

사실 그동안 내색하진 않았지만, 연우로부터 정보를 하나씩 얻을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다.

나름의 사정이 있다곤 들었지만, 태생적으로 ‘스파이’란 존재에 부정적일뿐더러 당사자도 많이 힘들 것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멀린, 그리고 히든캬드.

몇 년간 타연에서 많은 활약과 명성을 쌓아왔던 랭커들.

그들이 배신하고 난 뒤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는 유저가 없다.

하지만 연우가 지금이라도 태성에서 나오게 된다면, 보복은 당하더라도 그저 길드를 옮기는 수준에서 끝날 수 있었다.

만약 이대로 있다가 스파이란 사실이 어쩌다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아무리 부잣집 자녀라곤 하지만, 연우의 신변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멀린이 진짜 대단한 새끼인데…….’

얼마나 깡이 세면 박태후를 정면에서 배신할 생각을 다 했을까?

내게는 평생의 은인이나 다름없지만, 그의 자취를 이제는 찾아볼 수 없다는 걸 생각해보면 연우를 계속 태성에 놔둘 순 없었다.

“그냥 우리 길드에 들어오지 않을래? 그럼 내가 어떻게 해서든 바로 타이탄 한 대를 구해다 주고 보호해 줄게!”

“어, 정말요 오빠? 그건 정말 솔깃한데요?”

“그럼! 내가 누군데? 버닝스타의 길마이자 랭킹 1위인 산드로잖아!”

“그렇게까지 절 꼬시겠다면…… 고민 좀 해볼게요!”

“꼬시는 게 아니라 걱정돼서 그러지.”

“걱정이요……?”

연우는 원래도 친절하고 상냥했지만, 라챤이 누나 아니랄까 봐 특유의 밝은 성격으로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계속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똑똑! 저기 죄송한데요…… 저희 수다나 떨려고 만난 건 아니잖아요? 형님, 어서 스킬북 맡겨서 확인부터 해 보죠? 저 지금, 그게 전설 스킬인지 아닌지 궁금해서 3시간이나 따라다녔거든요?”

“어? 맞다, 스킬북 땜에 불렀던 거지? 연우야, 연석이한테는 들었지? 이걸 그냥 뷔잔드한테 가져다주면 돼!”

“네, 오빠. 최초의 400레벨 콘텐츠라니…… 기대되네요. 그럼 얼른 다녀올게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아직 하루가 지나지 않았다.

400레벨을 기념할 마지막 선물을 위해, 연우는 내게 스킬북을 건네받자마자 오스타그 황궁으로 떠났다.

* * *

(나: 사람들이 많을 수도 있으니까 너무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해!)

(연우: 네네, 걱정마세용~)

현재 태성이 점령하고 있는 성은 모두 6개.

같은 라인에 속한 올림푸스만 해도 5성을 점령한 국가였으니 정말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세력이었다.

하지만 라인이란 이름하에 뭉친 것이지 정식으로 합병을 한 건 아니었기에, 시스템상 제국의 견제를 받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태성 라인의 유저들은 피닉스나 우리 길드원들과 달리, 제국과 관련된 퀘스트나 편의 시설 등을 제약 없이 이용하고 있었다.

‘진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놈들에 비하면 너무 불리한 상황이야.’

그저 아무것도 모른 채, 신검빨 하나만 믿고 태성과 싸우기로 결정한 순간이 문득 그리워졌다.

그때는 아는 게 많지 않았기에 생각할 것도 적었다.

그래서 나름 안전에 신경 쓴다고 썼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정말 부나방처럼 위험한 짓을 많이도 벌였다.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또 효과는 끝내줬다.

혼자 성을 점령하질 않나 백대일로 싸우면서 득템을 하질 않나…….

놈들이 다 뚫어놓은 인던이나 타이탄을 뺏기도 하며 점차 강해질 수 있었다.

돌이켜보자면, ‘하이 리스크’인 행동만 골라 해서 ‘하이 리턴’을 받았던 셈이다.

(연우: 도착했어요. 바로 말 걸어볼게요!)

(나: 응!)

(연우: 어라? 전에는 안 하던 멘트를 하네요. 응? 스킬북을 보완해주는 대신 대가가 필요하다는데요?)

(나: 대가? 뭘 달래? 내가 바로 구해다 줄게!)

(연우: 아니에요. 바로 해결했어요! 스킬북을 돌려받았으니 바로 돌아갈게요! 이거 드래곤이 준 템이었다고 하셨죠? 역시.... 완성하고 나니까 진짜 탐나는 템이네요!)

힘들게 부은 만기적금을 타는 심정이 이럴까?

득템한 이후로 항상 인벤토리에 잘 모셔만 뒀던 녀석이, 드디어 알을 깨고 돌아오기 직전이었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잠시 기다리자, 마침내 연우가 조금 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리, 잔뜩 흥분된 표정만큼은 감출 수 없었다.

“이거 진짜 대박이에요, 오빠! 400레벨이 되면 이런 걸 얻을 수 있다니! 저도 빨리 400렙을 찍을래요!”

“뭔데 누나! 그거 전설 스킬 맞았지?”

“전설? 넌 전에도 맨날 히든 피스니 뭐니 노래를 부르더니, 아직도 그러고 있니? 꿈 좀 깨! 타연에 그런 게 어딨어? 그딴 거 기대할 시간에 컨 연습이나 테크트리 연구나 좀 하라니까! 그동안 지환 오빠 하는 걸 보고도, 느끼고 배운 게 없어?”

전형적인 한국 남매답게 티격대는 두 사람.

하지만 그 바쁜 와중에도, 연우는 궁금해할 나를 위해 스킬북을 바로 건네주었다.

<마도 시대의 스킬북(레전더리, 특수 아이템)>

* 고대 마도 시대에 사용되던 스킬북입니다.

* 마도 시대의 특별한 방법으로 만들어져, 모든 직업의 고유 스킬을 자유롭게 옮겨 담을 수 있습니다. (단 1차 직업에 한정)

* 이 아이템은 단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오옷! 역시!”

“왜, 왜요, 형님? 뭐라고 적혀있는데요?”

“궁금하면 너도 한 번 봐봐라. 역시 나랑 현중이가 예측했던 대로였네…….”

레전더리 특수 아이템.

제루티안의 축복이나 투 메르타스의 심장 같은 ‘디바인’급 아이템은 아니었으나, 쓰기에 따라 그에 못지않을 포텐을 간직하고 있었다.

무려 다른 직업의 스킬…….

즉, 도둑 직업 외의 ‘고유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캐릭 당 단 1회에 한정된다라…….’

치명적인 단점이 눈에 띄었지만 상관없었다.

고작 한 개만이라도 다른 직업의 고유 스킬을 익힐 수만 있다면…… 거기서 파생될 수 있는 테크트리가 무제한에 가까울 만큼 늘어나게 될 테니까!

“아오, 일루전 이놈들! 이렇게 어렵게 얻은 템이 고작 타직업 스킬이야? 그것도 캐릭 당 단 한 번만 가능? 400렙부터는 듀얼 클래스도 고를 수 있다면서 이런 건 왜 만들어 둔 거야! 전설 스킬 같은 게 나왔어야지, 이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드래곤한테 넣어뒀던 건데?”

“라챤아. 난 이게 전설 스킬 못지않아 보이는데, 아직 이 스킬북의 가치를 모르겠냐?”

“형님, 그게 무슨 소리세요! 고유 스킬 따위보다는, 공격력을 다섯 배쯤 올려주거나 한 번에 100명쯤 기절시킬 수 있는 광역 스킬 같은 게 당연히 더 좋죠!”

“하핫, 뭐라고? 라챤아, 넌 남이 그런 스킬을 갖고 있으면 계속 타연이 하고 싶겠냐? 얘는 예전엔 안 그랬는데 드라코닉 보우를 들고 난 후부턴 좀 이상해졌다니까? 아니, 현중이랑 붙어 다니면서부터던가?”

전과 달리 허무맹랑한 소리를 태연히 하는 라챤이.

워낙 강하고 컨이 뛰어난 유저들이 계속 길드에 들어오다 보니, 아무래도 뭔가 심정에 변화가 생긴 모양이었다.

“지환 오빠. 스킬북 효과를 예상했다고 하니 물어보는 건데요…… 혹시 생각해두신 스킬이라도 있으세요?”

“흠…… 글쎄? 생각은 해둔 게 있지만, 아직은 모르겠는데? 일회용인데 섣불리 써버리면 후회할 수도 있잖아.”

“형, 형님! 제가 추천 하나 해 볼게요! 전사 캐릭의 차징 어떠세요? 스턴이 가장 좋지만 방패나 둔기가 필요하니까, 넉백도 괜찮으실 거예요! 차징은 전진기로도 쓸 수 있으니까 더 좋지 않아요? 와, 도둑이 즉발 넉백기라니…… 형님이 왜 전설 스킬 못지않다고 한지 이제 알겠네요!”

“안돼요, 오빠! 전 완전 반대예요. 넌 뭐 그딴 걸 추천하고 그래?”

“내가 뭘……. 생각만 해도 완전 좋잖아! 형님은 공격력도 세니까 넉백만 시키면 일어나기 전에 다 죽여버릴 수 있을 건데!”

“아냐 아냐. 그런 건 듀얼 클래스가 보편화되면 엄청 흔해질 조합이야. 지환 오빠, 그러니까 오빠는 그런 것 대신 마쉴 테크트리와 가장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는 스킬을 배우셔야 해요!”

“그래, 라챤아. 나도 연우 말에 동감이야.”

이 마도 시대의 스킬북은 단 한 번밖에는 사용할 수 없다.

그러니 무턱대고 타 직업에서 인기 있는 스킬을 배우기보단, 연우의 말대로 나와 가장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스킬을 익히는 게 중요했다.

-자네에겐 이미 걷고 있는 길이 있지만, 충분한 수련을 거친 것 같군. 혹시 ‘기사’의 길을 걷고 싶은 생각은 없는가?

-그대에게서 마나의 향기가 짙게 느껴지는군요. 혹시 그대는 ‘마법사’가 되어 세상의 진리를 탐구해볼 생각이 없나요?

-어둠의 길에서 방황하는 자여. 지금이라도 대지모신의 신실한 종이 될 생각은 없습니까? 당신이라면 ‘사제’의 가르침을 받기에, 부족하게나마 자격을 갖춘 것 같군요.

[기존의 직업 외에 두 번째 직업으로 ‘궁수’를 선택하시겠습니까?]

각 직업의 마스터들을 찾아갔을 때 듣게 된 멘트들과 시스템 메시지.

도둑 마스터를 찾아갔을 때와 달리 그들은, 하나같이 내게 이중 직업을 권유해왔다.

전직과 달리 이중 직업을 얻는 데는, 다른 퀘스트 따위가 필요 없다는 뜻.

유저들은 400레벨이 되면, 그 즉시 듀얼 클래스를 통해 수없이 많은 테크트리를 개척해 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잠깐 생각해봤는데요…… 새로 나온 인챈터의 ‘마나 웨폰’ 어떠세요? 오빠의 마나 쉴드 테크트리와 가장 잘 어울릴 스킬일 거 같은데요?”

“오, 마나 웨폰? 그거 진짜 좋지! 안 그래도 지금도 그거 때문에 아는 인챈터 분과 함께 사냥 중이었거든.”

단숨에 가장 최적에 가까운 스킬을 떠올린 것을 보면, 확실히 연우는 평범한 유저는 아니었다.

하긴 애초에 타임 어택 순위자 출신에다가 진작에 태성 1군 길드로 스카우트된 인재였으니, 이 정도는 당연한 건지도 몰랐다.

“어, 형님? 그럼 그걸로 익히시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 그것만 배우면 굳이 인챈터를 세컨 직업으로 선택할 필요도 없겠네요!”

“아니. 그것도 좋긴 하지만…… 이미 진작부터 생각해둔 게 있어.”

“네? 그게 뭔데요? 마나 웨폰보다 더 어울리는 스킬이 있어요?”

고유 스킬을 배우게 된다면, 그 스킬에 한해서 난 본 직업을 가진 유저들보다 훨씬 더 뛰어난 활약을 벌일 수 있었다.

5성이 한계인 그들과 달리, 난 신검 덕분에 8성까지 성장시킬 수 있었으니까!

‘8성 마나 웨폰이 얼마나 끝내줄지 예상이 되긴 한다만…….’

등급이 올라갈수록 쿨타임이 줄어들고 엄청난 효율을 자랑하게 될 마나 웨폰.

포기하기엔 아쉽지만, 지금 내게는 다른 스킬이 더 필요했다.

방어뿐만 아니라 공격도 함께 도와줄!

“마검사의 배리어. 쭉 그것만 생각해왔어. 불이나 얼음이 아닌…… 다른 속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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