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득템왕-225화 (225/350)

225화 황실 창고 (1)

“오호라……. 대체 세계수 정령이란 놈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막막했는데, 이 정도면 많이 좁혀졌는데?”

“그렇죠? 영상으로 봤던 일은 벌써 천 년 전 사건이니까, 만약 심었다면 상당히 클 수 있어요. 물론 원래 크기만 한 나무는 본 적이 없으니, 의외로 작을 수도 있겠지만요.”

“뭐가 됐건 사람 키보다는 클 거 아냐? 그 정도면 충분히 눈에 띄겠어. 무슨 정원 같은 곳에 뒀을 리는 없을 테니까.”

이제 목표는 정해졌다.

그것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하지만 문제는 위치였다.

한번 심으면 옮기기 힘든 나무의 속성상, 묘목은 분명 제국의 영토 안에 심어졌을 것이다.

더 대상을 좁혀보자면, 거의 99% 이상 오스타그 황궁 어딘가에 있을 게 분명했다.

‘제논이 다크 엘프를 사주한 게 확실하다면…… 황제가 머무는 주성 어딘가일 확률이 높아. 가령 비밀 거처나 혹은……?’

고민도 잠시.

이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줄 사람이 도착했다.

“제법이구나, 드로. 덕분에 영상 구경 잘했다. 멀쩡했던 세계수는 정말 너무나 멋졌던데?”

“오셨습니까, 형님!”

내 연락을 받고 도착한 카이저 형님이었다.

“하루 동안 왔다 갔다 바쁘시네요. 이럴 거면 그냥 저희 길드로 들어오시죠?”

“어허! 왜 이러실까요, 축빙 님? 막상 길마인 드로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갑자기 훅 들어오시네요. 하하!”

“이쯤 되니 가족 같아서 그러죠! 길드원 대부분이 수배 중인 버닝 스타와 제국 군단장이 한 길드라면…… 진짜 재밌는 조합이 될 것도 같고요!”

이제 카이저 형님은 내가 지옥불 형님만큼이나 많이 의지하고 신뢰하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 길드와는 다소 맞지 않았다.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이 틀린 것이다.

물론 길드를 더욱 키워보고자 결심한 건 사실이나, 우리 길드의 일차적 목표는 태성의 ‘궤멸’.

함께하면 누구보다 큰 힘이 되어줄 형님이었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가끔 조력자 역할만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다.

“하하! 어쨌건…… 그 다크 엘프가 가져간 묘목에 우리가 찾는 정령이 들어있을 거란 말이지? 그걸 찾아내는 게 내 역할이고?”

“맞습니다 형님. 정확히는 ‘수호령’이라고 칭하는 것 같아요. 아마 세계수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그 수호령이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혹시 어디에 있을지 예상되는 곳이 있으세요?”

“나무라고 하니 딱 떠오르는 장소가 하나 있긴 하구나. 생각해보니 그곳에 나무 한 그루가 덩그러니 서 있던 게, 참 아름답긴 하지만 이상하기는 했어. 나무 같은 게 있을 만한 곳은 아니었거든.”

“네? 정말요? 역시 형님이 괜히 제국 사령관이 된 게 아니라니까요!”

듣고 있던 축빙 형님도 다급히 물었다.

“거기가 어딜까요? 위치를 특정할 수만 있다면, 영웅의 전당 때처럼 수배 중이라도 얼마든지 잠입할 수 있지 않겠어요?”

“원래는 들어가지 못하는 곳인데, 최근의 퀘스트를 진행하다가 최초로 들어가 본 곳입니다. 그리고 잠입할 수만 있다면 참 좋겠지만…… 그건 아마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분명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곳이긴 하지만, 그곳까지 갈 수가 없을 테니까요.”

“왜요, 형님? 거기가 대체 어딘데 그러세요?”

“황실 창고. 제국의 모든 보물이 잠들어 있는 곳에서…… 한 나무가 심어져 있는 걸 봤다.”

* * *

-거긴 저도 알아요. 길드에 들어오기 전에, 저도 황제한테 받은 퀘스트를 통해 황실 창고의 보물을 보상으로 받아본 적 있거든요. 물론 카이저 님처럼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요.

-아, 펠아린 부츠? 그게 거기서 랜덤으로 뽑혀 나왔다고 했지?

-맞아요.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카이저 님이 무슨 말을 하신진 알겠어요. 제 생각에도 수배받는 몸으로는 절대 그 안에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아요. 거긴 황궁 안에서도 황제의 침소를 제외하면 가장 경비가 삼엄한 곳이거든요!

훼라리를 탄 채 높은 상공에 떠 있는 터라, 거친 바람이 연신 두 뺨에 부딪혀 왔다.

하지만 아직도 내 머릿속에는 조금 전 대탐이와 나눈 대화가 계속 맴돌고 있었다.

황실 창고.

랜덤 보상으로 희귀 레전더리 템을 얻은 몇몇 랭커에 의해 밝혀진 장소.

하지만 퀘스트 자체를 받을 수 있는 유저도 극히 드물어, 막상 직접 가본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설정상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제국이 온갖 보물들을 모아둔 곳.

그러니 그 안에 세계수 정령이 있을 만도 했지만, 그 때문에 절망스러웠다.

‘이 정도면 S급이 아니라 SS급 아니냐? 도대체 현시점에서 깨라고 만들어 둔 게 아니잖아!’

하지만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단 자신감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난 항상 일루전, 혹은 태성이 계산하는 그 이상의 플레이를 해왔다.

이번 일도 그렇게 포기할 거였다면, 지금 이곳에 오지도 않았다.

‘이 방법이 먹히면 가능할 지도 몰라. 물론 우리처럼 수배를 받는 경우가 흔한 건 아니지만, 이건 자그마치 메인 퀘스트잖아? 힘들긴 해도, 결국 유저가 깨긴 깰 수 있도록 만들어 뒀을 거야!’

황궁 오스타그.

한때는 마음껏 들어가 인터뷰 장소로도 사용하던 곳을, 하늘에서 내려다봤다.

NPC들뿐만 아니라 여전히 유저들로 넘치는 곳.

하지만 여기서 조금만 더 내려갔다간, 제국군의 어그로 감지 범위에 들어가 수많은 그리폰 라이더들이 몰려온다.

* 최근 발생한 부적절한 플레이로 인하여, 각 도시 및 왕궁 병력들의 경계 범위가 20배 확대 적용됩니다.

원로원과 마탑에서, 닥치는 대로 귀족 NPC들을 학살했다가 패치된 사항.

물론 그 덕에 나를 포함한 우리 길드원들이 공격력 버프 업적을 얻어, 많은 이득을 본 건 사실이다.

그 후 몇 차례의 퍼스트 킬과 전투, 빠른 랭커 진입 등에 막대한 도움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가 이렇게 클지는 미처 몰랐다.

현재 오픈된 타연 맵들에서 가장 큰 나라를 마음대로 활보할 수 없다니…….

“이거야 원……. 제국을 없애 버릴 수도 없고.”

“응? 뭐라고? 너 지금 뭔 생각을 하고 있냐? 설마 황제 모가지라도 딸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지?”

“응? 황제 모가지?”

“뭐 없애버린다고 하지 않았어? 난 또 다리우스처럼, 너도 나중에 황제라도 될 생각을 하고 있나 식겁했네.”

“어라? 그거 괜찮은데요? 드로 형님이라면 왠지 가능할지도?”

이젠 우리 길드원 전원이 비행 탈 것을 보유한 상태.

그중 바로 옆에서 비행 중인 현중이와 라챤이가 내 혼잣말을 잘못 듣고는 오해했다.

‘그러고 보니 귀족 NPC들도 잡았는데…… 황제라고 잡지 못할 건 없지 않으려나?’

여하튼 당장은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저 밑에 있는 제국군.

놈들의 어그로가 어떤 수준인지, 지금부터 확인해봐야 했다.

“그럼 나 뛰어내린다? 다들 잘 살펴봐 주세요! 축빙 형님도 잘 부탁드리고요!”

“그래! 걱정 마라!”

“조심하세요!”

휘잉-

난 전원에게 당부를 마치고, 훼라리에서 거침없이 뛰어내렸다.

상공 1km는 거뜬히 될만한 타연 최고 높이였던 터라, 스카이다이빙이나 다름없었다.

짜릿하기 그지없고 절로 흥분되는 상황!

하지만 내 정신은 차갑게 유지됐다.

띠딩! 띠딩!

연신 벨이 울리는 것처럼, 갑자기 쉴 새 없이 어그로 감지음이 들려왔기 때문!

목표했던 지상, 궁전 안에 떨어지기도 전부터 곳곳에서 그리폰 라이더들이 날아오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500m.

어느덧 그 수는 수십을 넘어 수백에 이르게 되었고.

300m.

드디어 나는 온갖 화살과 마법 공격의 타겟팅이 되어 공격당하기 시작했다.

200, 100, 50, 30m…….

그리고 마침내 지상에 추락하기 직전!

[그림자 밟기!]

내가 떨어지는 곳으로 빼곡히 몰려온 제국 경비병 중 하나를 타겟으로, 이동기를 사용했다.

팟!

그렇게 낙하 데미지를 무효화시키자마자, 사방에서 제국군들이 뭐라 지껄이면서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적군이 쳐들어왔다!”

“수배자다!”

퍼퍼퍽! 펑!

[마나 쉴드가 1,521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

[마나 쉴드가 530의 마법 피해를 흡수합니다.]

……………………

유저들을 상대하며 얼마든지 겪어본 다굴 상황.

하지만 그때와 달리, 지금은 공격해오는 놈들이 하나같이 전부 메마르고 무표정한 얼굴의 인형들 같아 보여 조금은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유저들보단 이놈들이 좀 더 수월하긴 하네!’

[회전 베기!]

후두둑 깎여나가는 MP를 채우기 위해 회전 베기를 한 차례 사용한 뒤, 곧바로 궁전의 주성 방향으로 뛰쳐나갔다.

내가 뛰어내린 장소는 넓디넓은 황궁에서도 황제가 있는 메인 주성.

그 앞 정원에 착지한 터라, 어림잡아도 제국군 천 명 이상이 단시간에 몰려들었다.

그리고 주성 건물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도, 전 방향에서 나를 향해 온갖 경비병과 제국 기사, 마법사 등이 달려오고 있었다.

“뭐야, 이게 무슨 일?”

“운영자 이벤트인가?”

“아냐! 잘 봐봐! 산드로잖아!”

퀘스트와 관광으로 언제나 유저들이 넘치는 곳.

그중에도 주성 앞은 아름다운 풍경 탓에 가장 인기가 높았다.

그런 만큼, 유저들의 수 또한 몰려든 NPC들 못지않게 많이 보였다.

‘오! 이게 웬 꿀?’

그래서 의도한 건 아니었겠지만.

갑자기 구경하러 몰려든 유저들이 몰려드는 제국군을 어느 정도 ‘막자’ 해주는 상황도 벌어졌다.

[라스트챤스: 그쪽 방향에선 근위대가 몰려오고 있어요! 왼쪽 문으로 들어가세요!]

여전히 공중 위에서 ‘이글 아이’로 이곳을 내려다보는 라챤이.

녀석의 오더도 참고하면서, 난 수백 명의 제국군들을 이끌며 주성 안으로 들어갔다.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제국의 검에 자비를 기대하진 마라!”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이제껏 상대해온 놈들과는 차원이 다른 상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크림슨 나이트 발라즈> <크림슨 나이트 렝기엘>

은빛에 붉은 장식이 새겨진 화려한 갑옷.

황제의 친위대로도 유명한 제국의 최강 전력 ‘크림슨 나이트’들이었다.

콰광!

[마나 쉴드가 15,228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

[마나 쉴드가 14,677의 물리 피해를 흡수합니다.]

“커헉!”

앞을 가로막던 십여 명의 친위대들이 다짜고짜 공격 스킬부터 휘둘러왔다.

최대한 무빙을 활용하며 공격들을 피해 단 2대만 허용했는데, 데미지가 무시무시했다.

‘미쳤다! 지들이 무슨 드래곤 급이라도 돼?’

하나같이 ‘네임’을 갖고 있는 것부터가 심상치 않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미쳐버린 공격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위험한 건 놈들뿐만이 아니었다.

“속박의 손길!”

복도 어딘가에서 들려온 익숙한 스킬 명.

그와 동시에 내 발은 자유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뷔잔드!”

어지간한 랭커급 마법사들의 CC기도 대부분 저항하는 날 단번에 붙잡아버린 마법사.

그는 예전에도 나를 곤경에 빠뜨렸었던 지혜의 마탑주, ‘뷔잔드’였다.

[그림자 분신!]

나는 얼른 순간 무적 판정의 스킬로 속박을 해제시키고, 주저앉고 천장을 타고 거꾸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저놈이 나타난 이상, 만약 빙결이라도 걸리면 정말 큰일 날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지혜의 마탑은 여기서 좀 떨어져 있을 텐데……. 그런가? 마법사라 텔레포트로 쫓아온 건가?’

위험을 무릅쓰고 굳이 황궁 안으로 뛰어든 이유.

그건 수배자가 황궁에 잠입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도 모르기에, 직접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물론 어렵고 위험한 일일 거라곤 예상은 했다.

하지만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

무려 마탑주까지 몰려오는 난이도라니?

놈이 가장 센 NPC라 일찍 온 거였지, 마탑의 다른 마법사들도 곧 이곳에 몰려올 게 분명했다.

또한 마탑주가 달려올 정도라면, 각 기사단장이나 근위대장, 친위대장 등의 초네임드급 NPC들도 오는 중일지도 몰랐다.

[산드로: 안 되겠다. 바로 후퇴할게!]

[축복받은얼굴: 뭐야, 벌써? 들어간 지 얼마 됐다고!]

[산드로: 말할 시간도 없어. 여기 진짜 미친 난이도야!]

현중이의 말대로 뛰어내린 지 1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내 MP는 어느새 절반도 채 남지 않았다.

‘단테리오의 팔찌를 쓰면 조금 더 버틸 순 있을 것 같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확인할 시간을 벌었을 거야.’

마음을 굳힌 나는, 곧바로 복도의 창문 중 하나를 열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제국군들을 뒤로 한 채 벽을 타 옥상으로 올라간 뒤, 훼라리를 소환해 날아올랐다.

쉬쉬쉬쉭!

미친 듯이 날아오는 화살.

그리고 돌격해오는 그리폰 라이더들을 가속 스킬로 따돌린 뒤, 처음 길드원들과 헤어진 상공에 도착했다.

“휘유……. 다녀왔습니다. 진짜 힘들었어요!”

“와, 진짜 수고하셨어요! 정말 형님이 아니었다면 누구도 살아나올 수 없는 지옥이었네요.”

“그래? 그래도 다들 잘 살펴보셨어요?”

“네. 덕분에요.”

고생한 나를 반겨주는 길드원들.

그런데 그중 한 명이 보이지 않았다.

“형님은 아직 안 오신 거야?”

“페가수스는 훼라리보다 좀 많이 느리잖아요. 아, 안 그래도 저기 오시네요!”

위험하니까 잠깐만 내려오셨다가 바로 올라오라고 말해두었는데, 최대한 버티다가 출발하신 모양.

축빙 형님은 이제야 이곳을 향해 천천히 날아오고 있었다.

그리고는 도착하시자마자 말했다.

“황궁에서 무사 귀환 성공! 다들 봤지? 드로 예상대로, 제국군은 진짜로 선 어그로 대상밖에 안 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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