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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227화 (227/350)

227화 황실 창고 (3)

“아, 역시…… 밖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건가.”

급히 이동해서 우리가 어디로 향한 지 잘 모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만도 않았던 모양이다.

황궁의 보물 창고로 향하는 지하 2층.

이곳 입구는 원래 일반 유저들이 드나들 수 없도록 마법진으로 가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걸 얼마 전, 카이저 형님이 신창 획득 퀘스트를 하면서 열어버리게 된 것.

하지만 여전히 이곳 관련 퀘스트를 얻지 못한 이는, 입구를 지키는 삼엄한 경비에 막혀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많이 알려지지도 않았지만, 이곳의 정체를 아는 유저는 극히 드물었다.

“그렇겠죠. 뭔지는 몰라도…… 버닝 스타 전원과 무려 ‘산드로’가 들어가는 모습을 몇십 명은 지켜봤으니까요.”

레벨업에 바쁠 랭킹 1위가 뜬금없이 제국의 황궁 한복판에 나타났다?

그것도 무려 수배 중인 몸으로?

그렇다면 태성 놈들은 당연히 내가 들어간 이 인던 앞으로 집결할 게 뻔했다.

놈들이 활성화에 성공했던 인던의 퍼스트 클리어를, 내게 빼앗겼던 기억이 아직 선명할 테니까.

“됐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오히려 동기 부여가 돼서 더 잘됐어요. 자칫 방심하다 실패해서 클리어가 늦춰지는 것보다, 빡세게 한 번에 끝내는 게 좋죠. 그게 우리 버닝 스타의 스타일이기도 하고요!”

“그래. 뭐가 됐건 첫 방에 깨버리는 게 우리 길드 모토 아니었냐? 다크 엘프건 뭐건 나와 봐! 다 잡아 족쳐버리게!”

자신감 넘치는 무살 형님의 모습.

허나 그게 정말 허세만 부리는 게 아니란 걸, 함께한 지난 플레이 전투에서 이미 수도 없이 목격했다.

10여 명에 가까운 파티원들.

서로 이리저리 대화하며 떠드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솔플만 하던 때는 느낄 수 없던 자신감이 솟아올랐다.

모르긴 몰라도, 이곳 또한 우리 길드한테 깨지기 위해 만들어진 곳일 거라는!

“확실히 좀 달라졌군…….”

“네?”

“퀘스트가 달라서 그런지, 내가 전에 들어왔던 인던과는 묘하게 다르다. 저 앞에 있는 병사 보이지? 나 때는 이 안에 몬스터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거든. 그냥 하나의 ‘맵’에 불과했었다.”

카이저 형님이 얻은 퀘스트는 제국의 군단장, 즉 ‘사령관’ 수준이라는 높은 위치에 올라야만 획득할 수 있었다.

따라서 형님은 이곳에 사령관의 신분으로 들어왔었을 거라, 지금과는 다른 모습일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그냥 ‘방문’만 했던 거네요. 지금 저희는 명백히 적으로 ‘침입’한 상태이고요.”

“그렇지. 그래서 일단은 이번 인던이 어느 정도 난이도일지 감이 잡히진 않는구나. 뭐…… 아주 불가능한 수준이었다면 퀘스트가 주어지지도 않았을 거고, 의외로 쉬울 수도 있겠다만.”

높은 천장과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복도.

바닥엔 온통 푹신한 붉은 카펫이 깔려있었고, 복도 양옆은 입구부터 온갖 미술품과 조각상 등이 일렬로 서 있었다.

일정 간격마다 하나의 방과 같은 창고들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건드릴 수 없는 보물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창고’라기보다는 마치 유럽의 ‘미술관’에 들어온 듯한 느낌.

하지만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동상처럼 서 있는 존재가, 이곳이 게임 속 세상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제국 정예 수비대>

랭킹 1위가 된 이후.

이제는 벨루타 해안 금지의 몹들조차 색이 옅어졌는데, 저놈들은 여전히 이름이 시뻘겋게 보였다.

레벨이 상당히 높은 지역이라는 경고 표시.

오랜만에 제대로 된 사냥터에 왔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그럼 일단 사냥을 시작해볼까요?”

무려 클리어를 노리고 온 인던인데 초반이 힘겨울 리는 만무.

이미 여러 차례 상대해봐서 익숙한 제국 병사를 향해, 나는 하나둘씩 자버프를 걸며 앞장서 달려들었다.

* * *

“아직까진 몹들이 좀 강하다는 것 말고는 평범한 인던이네요. 그마저도 인간형 몹이라 상대하기 좀 더 수월한 편이고요.”

“맞아요. 트랩이나 미로 같은 것도 없어서, 이 정도면 상당히 쾌적한 편인데요?”

“그래. 아무래도 고레벨 유저라면 거의 대부분 이곳에 들러보도록 만들어뒀나 보다. 맵 자체도 다른 곳보다 더 공을 들인 것 같고.”

항상 처음 보는 곳이라면 관심이 많은 대탐이와 기파랑 듀오가, 연신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왠지 자신들의 주특기를 보여주고 활약할 장애물이 나오지 않아, 어쩐지 살짝 실망이라도 한 느낌이 들었다.

“그나저나…… 카이저 형님, 저희는 얼마나 더 들어가야 할까요?”

“이제 거의 다 왔다. 여러 문이 굳게 잠긴 회랑. 나무는 그 한가운데 마치 쉼터처럼 심어져 있던 거라, 멀리 있진 않았거든.”

벌써 이곳을 지키던 경계병들을 백 마리는 잡았다.

하지만 10명 넘게 들어올 수 있는 인던치고는, 결코 많은 수는 아니었다.

물론 현재 우리는 타연 최고라 자처해도 무방한 파티였으니, 일반 유저들 입장에서는 얘기가 다르겠지만.

어쨌든 S급 난이도의 퀘스트치고는 무난한 수준.

또한 온통 갖가지 볼거리로 화려한 특별한 장소이기도 해서, 덕분에 모처럼 타연 속 아름다움과 디테일에 흠뻑 빠져들 수 있었다.

‘이건 제국의 건국 과정을 그린 것 같고…… 이건 루이튼의 천사장 중 하나를 조각한 건가?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게 타연이구나!’

요즈음 스토리에 부족한 점을 종종 느껴, 매일 잠들기 전 타연 역사를 정리한 스크랩 글들을 틈틈이 찾아봤다.

그 덕에 예전과는 달리, 그림이나 예술품들을 봐도 무얼 묘사해 둔 건지 조금씩은 알아볼 수 있었다.

“다들 이리 와보시겠어요?”

그러던 중 당당이가 갑자기 파티 전원을 불러세웠다.

뭔 일인가 다가가 보니,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책 하나를 들고 빼 들고 있었다.

“어? 너 그거 어떻게 뽑았어?”

“뭐지? 퀘스트 관련인가? 예전에 왔을 땐 보지 못했던 건데.”

“아, 그래요?”

벽 한편을 채우고 있던 책장.

그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가죽 표지로 만들어진 두꺼운 책 한 권이 뽑혀있었다.

카이저 형님도 처음 보는 듯한 반응이었다.

“메인 스토리랑 관련 있어서 그런가 본데요? 확실히 이 던전은, 나중에 사람들이 수십 번씩 돌게 될 인던인가 봐요.”

“뭐라고 적혀있었어?”

“일단 다들 한 번 읽어봐 보세요. 두꺼워도 읽을 수 있는 건 몇 페이지밖에 없으니까, 금방 읽으실 거예요.”

‘제국의 탄생’.

건네받은 책은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다.

돌려볼 멤버가 많아 서둘러 읽어보자, 담겨있는 내용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마계의 침공 이후, 황폐해진 중간계를 복구하기 위해선 하나의 결집된 힘이 필요했다. 결국 대의를 위해, 제논 가이룩스는 결단을 내리고 단죄의 검을 휘둘렀다……]

[……오랜 전우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한때는 서로 목숨을 맡겼던 사이였지만, 당시 그로 인해 많은 불화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아서, 도네타, 콘라드 등 불세출의 영웅들이 모습을 감추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그가 세계수를 파괴한 일이었다. 누구도 알지 못한 역사의 비사겠지만, 그는 갈 곳 없는 다크 엘프들을 포섭해 그의 충실한 종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을 시켜 그와 같은 참상을 저질렀다……]

[……하지만 제국이 이토록 번영하게 된 데에, 그가 끼친 영향이 막대했음을 누구도 부정하진 못할 것이다. 신마전쟁 이후 인간이 대륙의 주요 세력이 대두된 것에는, 제국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므로……]

“점점 타연의 주요 스토리들이 공개되고 있네요.”

“역시 제논은 영웅이 아니라, 희대의 악인이었던 걸까요?”

다들 새롭게 얻게 된 정보 때문에 소란해졌다.

내 눈앞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랭커.

그 말인즉슨, 이들은 다른 어느 유저들보다 타연이란 게임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하드코어 유저란 사실을 뜻했다.

그래서 남들은 모르는 스토리를 가장 먼저 알게 됐단 사실로, 다들 은근히 재밌어하고 들뜬 모습이었다.

“형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초대 황제 말이냐? 굳이 따지자면…… 영웅이 아닐까 싶다.”

“네? 제논이요? 세계수를 부러뜨린 놈인데요?”

“지금 다 말해주긴 힘들지만…… 현재 내가 맡은 역할을 대충은 알고 있지? 생명의 신 교황으로부터 어떻게 신창을 받게 됐는지.”

“알죠. 창을 받은 대신 현 황제의 뒤를 치셔야 한다고 그러셨잖아요. 이런 메인 퀘스트와 달리, 오직 단 한 유저만 받을 수 있는 퀘스트였다고…….”

“그래. 하지만 7신기는 어차피 등장할 템이니까, 내가 아니었어도 누군가는 얻었을 퀘스트였지. 아무튼, 그걸 진행하다 보면 알게 된다. 겉모습과 달리 현 황제는, 아주 포악하고 광기 어린 폭군이란 사실을!”

“오! 형님 말씀은, 결국 뭐가 됐건 현 황제는 죽게 될 거란 뜻이군요? 유저와의 전쟁에서든, 아니면 퀘스트로 인해서든 말이죠.”

“되도록 내가 치는 게 모양새도 좋고 너희한테도 좋겠지. 여하튼 현 황제를 몇 번 만나게 되는 위치다 보니 알 수 있는데, 놈은 선조들을 전부 싫어한다. 특히, 초대 황제만큼은 거의 증오하는 수준이지.”

확실히 형님은 스토리의 이해도 수준을 넘어, 마치 패키지 게임을 플레이 중인 것처럼 혼자만 알고 있는 비밀 정보가 많았다.

예전에야 남들이 걸어간 길만 따라가고 퀘스트 공략 가이드를 보며 게임했기에 스토리는 전부 스킵만 했지만…….

이젠 지도도 없이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것처럼, 퀘스트들을 직접 해결해야만 했으니 알 수 있었다.

형님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공유하는 이야기들.

그것들이 사실은 정말 힘겹게 고생해서 얻은 것들이고, 혼자만 알고 있을수록 이득인 귀중한 정보라는 사실을.

‘타연 덕분에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됐어…….’

생전 운이라고는 지지리도 없던 나였는데, 이제는 정말 남들이 하는 말처럼 타연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단순히 신검을 비롯한 수많은 템들을 운 좋게 먹은 탓이 아니라, 이런 고마운 사람들을 만난 것이 나조차도 신기할 정도라서.

“거의 다 왔다. 아마 이놈들만 잡으면 회랑이 나올 거다.”

비사가 적힌 책 때문에 머물던 것도 잠시.

우리는 곧바로 남은 병사들을 차례로 정리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던 중, 진열된 장식품들 사이로 무언가 특별한 게 하나 눈에 띄었다.

“어라? 이거 뭐지?”

“뭐가요, 드로 형?”

“방금 책처럼, 이것도 좀 빛나고 있는데? 이거 말야.”

“이 도자기요? 하나도 안 빛나는데요? 잘못 보신 거 아니에요? 아님 뭐, 혼자만 갖고 있는 퀘스트라도 있으세요?”

“퀘스트?”

그러고 보니 이런 빛은 퀘스트와 연관됐다는 상징이었다.

혼자만 갖고 있는 퀘스트라니…….

얼른 보유 퀘스트 목록 창을 열어 보니, 단번에 무엇 때문에 이런 건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알 쿠자드의 시험(진행 중)]

* 클리어 난이도: A

* 마스터 알 쿠자드가 만족할 만한 물품을 찾거나 훔쳐오십시오.

* 가져온 물품에 따라 제시되는 전직 직업의 종류가 결정될 것입니다.

“이거, 전직 퀘템이었구나!”

“전직이요?”

“응. 전직하려면 뭔가를 가져오거나 훔쳐 오랬거든. 직업만 도둑이지, 도대체 뭘 어떻게 훔쳐야 하는 건가 싶었는데…… 이런 거였구나? 하긴 이곳이 보물 창고이긴 하지!”

클리어 난이도 A급답게 아무 곳에서나 이렇게 퀘템이 빛나진 않을 터.

생각지도 않게, 아주 손쉽게 전직을 위한 필요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기품 있는 도자기(퀘스트 아이템)를 획득했습니다.]

그저 손만 갖다 대자마자, 내게 흡수되듯 사라져 인벤토리 안으로 들어왔다.

‘대충 결정해두긴 했지만…… 이왕 얻은 김에, 나가면 한번 찾아가 봐야겠다.’

전직 시스템.

당연한 일이지만, 수많은 타연 유저들은 이 시스템이 어떻게 진행될지 많은 추측을 내놓았다.

그중 내가 얻은 퀘스트에도 부합하고 가장 설득력 있게 읽었던 글.

거기엔 전직이 크게 2가지 부류로 나눠질 거란 예상이 적혀 있었다.

즉 내 직업인 도둑을 예로 들자면, 크게 ‘어쌔신’ 계열과 ‘씨프’ 계열로 나눠질 거란 추측.

단 한 가지 진화 직업을 택할 수 있다면, 굳이 ‘전직’이란 단계가 필요했을까?

그렇다고 다수의 전직 직업을 선택하기엔, 1차 직업의 종류가 이미 너무 많은 상태였다.

다양함과 전문성을 추구하는 타연의 성장 정책상, 이 의견은 현재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리고 난 그걸 최초로 확인시켜줄 수 있는 유저였다.

“그걸 들고 가면 ‘상급 도둑’ 같은 거로 전직되는 거 아니에요? 피 묻은 암살검. 뭐 이런 거나 하나 찾아서 가져가시죠? 형은 공격 특화로 가셔야죠.”

“누가 전직하기는 한대?”

“어? 안 하시게요?”

“암살자 같은 건…… 나보단 당당이, 네가 더 어울리겠다. 너도 여기 잘 눈여겨봐. 나중에 그런 퀘템 찾으려고 들면, 막상 찾아내기 힘들 걸?”

잠시의 해프닝이 끝난 후, 우리는 다시 앞으로 전진했다.

그리고 곧 카이저 형님의 말씀하셨던, 거대한 회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수십 미터는 거뜬히 넘어갈 아치형의 천장.

그곳에는 초희귀 템으로 알려진 ‘태양석’이 박혀있어 대낮같이 환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여러 개의 갈림길로 나눠진 원형의 공터 중앙에 나무 한 그루가 우뚝 솟아있었다.

비록 높이는 10여 미터 정도로 작은 편이었지만…….

시네마틱 영상에서 봤던, 온전했던 세계수의 모습을 쏙 빼닮은 나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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