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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왕-231화 (231/350)

231화 정령왕 (1)

“어라? 이거 또 우리가 장소를 선택할 수 있는 거네?”

“맞아요. 비록 교황이 있는 도시에 한정되긴 했지만…… 교단은 여러 개니까 우리 입맛에 맞는 곳에 포탈을 열면 된다는 뜻이죠.”

앞서간 랭커들을 따라잡기 힘든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들이 온갖 퍼스트 클리어 및 퍼스트 킬을 차지하며, 온갖 최고급 템과 여러 혜택들을 독식하기 때문.

하지만 막연히 알고 있던 것과, 실제로 겪는 것에는 체감상 많은 차이점이 있었다.

‘이러면 또 완전 이득이잖아!’

퍼주고 퍼줘도 마를 걱정은 하지 말란 듯이.

일루전은 어렵고 힘든 산을 정복한 유저들에게 따뜻하고 달콤한 보상을 마련해두었다.

물론 카이저 형님 같은 유저에게는 지금 주어진 이 선택이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별 고민 없이 가깝거나 편한 곳을 선택했을 테니.

하지만 나와 우리 버닝 스타에겐 점령한 성과 동맹이 있을뿐더러, 무엇보다 태성 라인이라는 거대 세력을 적으로 두고 있었다.

“역시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 놈들보다 콘텐츠를 선점하는 게 정답이었어!”

“맞아. 놈들이 이 선택권을 가져갔다면 어땠겠어……? 지들 지역 깊숙한 도시를 택하거나, 눈 딱 감고 오스타그를 선택이라도 했으면 큰일이었잖아!”

“반대로 놈들로선, 시공 포탈에 이어 이연타를 얻어맞게 된 셈이죠.”

물론 천계로 향하는 루트가 영영 하나일 거란 보장은 없겠지만…….

최초, 그리고 그로 인한 퍼스트 클리어를 우리가 선점할 확률이 높아졌단 사실이 중요했다.

[고대의 스크롤(퀘스트 아이템)]

* 공허의 대마법사 주나스가 이동 포탈 마법진을 새겨놓은 스크롤입니다.

* 신의 대리자와 마나의 감응이 갖춰지면 천계로 향하는 포탈이 생성됩니다.

다들 길었던 퀘스트를 무사히 마친 소회를 푸는 동안, 카이저 형님이 퀘템을 살피는 내게 다가와 말했다.

“결국 천계로 향하는 키도, 네가 가장 먼저 손에 넣었구나.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형님. 형님이 제국에서 미리 선행해뒀던 퀘스트들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빨리 달성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그 과정에서 나도 신창도 얻고 서로 주고받은 게 있으니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그나저나 그건 어디에……?”

“아베르와 가까운 곳에는 신을 모시는 성지가 없으니까 힘들고…… 역시 룬몬이 적격이지 않을까 싶어요.”

“룬몬? 아하, 빛의 신 루이튼의 교단이 있는 도시 말이구나.”

“네. 피닉스가 최근에 점령한 번스타인 성과 가까운 곳에 있기도 해서요. 아무래도…… 이제는 ‘피닉스 라인’에도 힘을 실어줘야 할 시점이니까요!”

그간 레벨업과 퀘스트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이유.

그건 무려 적과도 손잡고 라인을 결성한 ‘태성’을 상대로, 피닉스가 필드전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화랑과 피스메이커 같은 중립 길드의 참전 선언 후 다른 몇몇 중립도 합류해왔지만, 여전히 역부족인 상태.

그런 그들이 재충전하고 더욱 강해질 기회를 내 손으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러기엔, 이번 ‘천계’ 지역만 한 곳도 없었다.

“힘을 실어준다고? 어차피 접근성의 문제일 뿐이지, 천계는 오픈된 필드일 텐데?”

“시공 포탈은 놈들이 가진 귀환석으로 소수긴 해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잖아요? 하지만 천계는 절대 그렇게 놔두지 않을 거예요. 진입 루트가 이렇게 밝혀진 이상, 정말 철저하게 관리할 생각입니다.”

“호오…… 드로, 네 말은 즉?”

“네. 저 혼자서라도 태성의 출입을 통제해볼 생각입니다. 놈들이 지금껏 플레이해왔던 방식, 그대로요!”

* * *

당장이라도 천계에 발을 디디고 싶었던 심정과는 달리, 우리는 한차례 쉬어갈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해 룬몬으로 직접 찾아 가본 결과, 정말로 다른 퀘스트 타령 없이 바로 포탈을 열려는 교황의 모습까지도 확인을 마쳤다.

잠시 늦추기로 한 이유.

그건 다름 아닌 지옥불 형님의 부탁 때문이었다.

- 형이 말한 대로 랭킹 1위를 서둘러 달성한 것도 기특한데, 벌써 천계 루트도 완료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

- 네 말대로 천계를 선점하는 건 중요한 일이 맞다. 하지만 그곳을 공개하는 건 조금 늦출 수 없을까? 어차피 그곳을 오픈하는 건 너의 선택에 맡겨졌으니, 더는 서두르거나 조급할 필요가 없잖아? 아마도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을 거다.

형님이 이런 부탁을 한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사실 난 이번 대화를 통해, 그동안 태성 라인과 피닉스 라인 간의 전투를 너무 간단하게만 생각해왔다는 걸 깨달았다.

형님이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아서 그랬지, 두 세력 간의 다툼은 어느새 판가름이 나기 직전의 상황까지 와있었던 것이다.

- 페가수스가 공개된 후부터 필드전이 더욱 심해졌다. 처음에만 콘틀랑을 비워뒀던 거지, 놈들은 시시때때로 점령해서 통제와 해산을 반복했거든. 그 과정에서 많은 길드원들이 지쳐 포기하고 말았지.

- 그 와중에 네가 만든 흑풍단이 많은 힘이 되었다. 물론 태성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나서진 못했지만, 한 번씩 검은 망토를 뒤집어쓰며 버프와 엄호를 돕기도 했지. 실질적인 준 도움은 적었지만, 우리 길드원들에게 정신적으로 많은 위안이 돼주었어.

사실 아무리 태성과 비견할 세력이 피닉스만 곳이 없다지만, 결코 그게 피닉스가 태성과 비등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어림잡아도 3배 이상.

길드원의 수뿐만 아니라, 질적인 수준 또한 태성이 피닉스를 압도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필드전이 지속되다 보니, 길드원들이 남아날 리 없었다.

이번에 고백하신 건데, 어느덧 피닉스는 필드전을 시작할 때의 1/5이나 탈퇴해버린 심각한 상황이었다.

- 힘든 때지만, 그래서 더욱 버틸 필요가 있다. 이제 조만간 진짜가 누구고, 가짜가 누군지 가려지게 될 거야. 그렇게 한 번 싹 거른 다음에, 다 함께 천계로 입성하자. 그러니 잠시만…… 기다려주겠니?

그렇게 속이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아무 말 없이 버티고 계셨으면서, 여전히 내 의사를 물어오던 지옥불 형님.

그런 형님의 뜻에 반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 의견에 적극 찬성이었다.

여러 중립 길드들과 동맹을 맺는 과정에서, 어중이떠중이를 비롯한 태성 라인의 잔당들도 함께 들어와 있었으니까.

‘역시 형님이야. 내가 이 상황이었다면, 당장 위급하니까 간과하거나 무시했을 텐데……. 사실 이렇게 잡초 제거하듯 한 번 걸러 주는 게, 싸움이 길어질 걸 고려해 보면 옳은 선택이지.’

아는 거지만 되짚어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길이 힘들 걸 알지만 굳이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이것들만 돌이켜봐도 지옥불 형님은 타고난 ‘리더’로서의 자질을 갖고 있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나란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았겠지만…….”

“뭐라냐? 널 누가 사로잡았다고 헛소리야?”

“어? 뭐야. 너 언제 와 있었냐?”

지옥불 형님을 만나 뵙고 돌아온 아베르 성.

현중이를 기다리며 차후의 계획을 곱씹어 보던 중, 녀석이 금세 도착해서 말을 걸어왔다.

“당장 미완성 스킬북을 각인해 준다는데 만사 제쳐두고 와야지. 왔으니까 바로 출발해볼까?”

이 스킬북을 각인시키기 위해선, 18명의 마스터 전원을 만나는 단순 노가다를 끝마쳐야 했다.

그 과정이 심심하기도 하고, 이걸 익힐 현중이 녀석의 코칭도 봐줄 겸 함께 하기로 했다.

그렇게 첫 번째 마스터를 향해 이동하며 물었다.

“그래서…… 생각해 봤어? 뭘 배우고 싶은지?”

“생각할 게 있어? 답은 정해져 있는데.”

여태 머리 싸매고 고민 중일 거란 생각과 달리, 녀석은 이미 마음을 굳힌 모양이었다.

내 질문에 녀석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응? 어떤 걸 배우려고?”

“배리어. 넌 번개로 배웠으니까 난 화염으로 배우려고. 화염을 감싼 성기사라……. 캬! 생각만 해도 개간지! 존잘 성기사!”

“뭐? 너 돌았냐? 그걸 왜 배우는데?”

한데 역시는 역시.

녀석은 택도 없는 망상에 빠져 있었다.

“돌긴 내가 왜 돌아? 배리어가 어때서? 너도 좋으니까 그 많고 많은 스킬 중에서 라이트닝 배리어를 익힌 거잖아! 난 정했어. 간지 외길 인생에서, 이만큼 내 맘을 사로잡은 스킬은 또 없어! 축볼 누나랑도 함께 사냥하면 더 멋질 것 같고!”

“너랑 내가 같냐? 으이구, 이 화상아. 언제쯤 철 들래? 그놈의 외변으로도 모자라서, 천금 같은 스킬을 외형 빨로 고르고 있냐? 그것도 늘 마나가 모자란 성기사란 놈이 배리어를?”

“간지만 본 건 아니지. 그걸 익히면 사냥도 빨라질 테고, 나름 다굴 상황에선 가시 반사랑 함께 쓰기 딱 아냐? 생각하면 할수록 좋은 것 같은데?”

처음엔 나만 죽으면 안 됐지만, 이제는 현중이의 생존 또한 중요해졌다.

우리들이 강해진 만큼, 녀석이 죽으면 드랍할 템의 가치 또한 엄청나게 높아졌기 때문.

한데 녀석은 이번 스킬북을 통해, 생존력을 어마어마하게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아직 제대로 실감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너 나중에 400레벨 찍으면 어떻게 하기로 했어. 전직하기로 했잖아, 안 그래?”

“응. 그랬지. 아무래도 우리 길드의 메인 탱커 역할은 내가 계속 도맡아야 하니까.”

400레벨이 되면 전직을 하거나 이중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

타연에서 가장 강력한 탱커인 성기사.

이 직업이 전직하게 된다면?

당연히 가장 강력한 탱커 직업 중 하나가 선택지로 제시될 게 분명했다.

그래서 현중이는, 이중 직업은 생각도 없이 전직만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니까 더더욱 생존기를 익혀야지. 물론 생존에 특화됐지만, 동시에 공격에도 써먹을 수 있을 만한 절묘한 스킬을!”

“그게 배리어라니까……? 너처럼 공격이 최선의 방어인 스킬은 그만한 게 없…….”

“그만 닥치고, 내 말 들어. 넌 내가 저렙 때부터 어떻게 한 번도 안 죽었다고 생각하냐? 옆에서 쭉 지켜봐 왔으니까 느낀 바가 있을 거 아냐. 뭐 때문에 그런 것 같아?”

“갑자기 그건 왜? 아무튼, 흠……. 아무래도 8성 은신 때문?”

“아, 그건 빼고. 다음.”

“다음이라면…… 역시나 도둑답게 빠른 이속? 거기에 훼라리를 활용한 기동성?”

“됐다. 내가 말을 말지. 예전엔 스마트하던 놈이, 갈수록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네.”

예전에는 이 정도 말해주면 척하고 알아듣곤 했는데…….

실망하려던 찰나, 녀석이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하핫! 농담이다, 쨔샤. 네가 뭘 말하고 싶은지 알겠다. 나보고 도둑의 그 스킬을 배우란 거 아냐.”

“오…… 이제 뭔지 알겠냐?”

“그림자 밟기. 네가 추천하는 게 이거 맞지?”

그리고 역시나 한번은 몰라도 두 번은 실망시키진 않는 녀석이었다.

“겨우겨우 세이프다, 요놈아. 이거마저도 못 맞췄으면 이 스킬북, 딴 사람 주려고 했다.”

“흠, 그밟이라……. 생각해 보니 괜찮은가? 아니구나. 이거…… 내가 익히면 개 쩌는 스킬이 되는 거 아냐?”

“그걸 인제 깨달았냐? 니 캐릭인데 네가 가장 신중하게 고민해야 하는 거 아냐? 꼭 내가 이렇게 하나하나 가르쳐줘야 해?”

성기사가 그림자 밟기를 쓸 수 있게 된다면?

그것도 타연에서 가장 장비가 좋고 컨트롤도 좋은 랭커가 그 캐릭의 주인이라면?

장담하건대 이 스킬 하나로 생존력이 두 배 이상 증가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5성 그림자 밟기의 쿨타임은 60초.

비슷한 스킬인 마법사의 블링크의 쿨타임이 300초인 것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게 짧은 수준이었다.

물론 스킬을 사용할 대상이 필요하단 제한이 있었지만, 이것 또한 단점은 아니었다.

왜냐면 성기사에겐 근접 대상에게 쓸 수 있는 즉시 발동 스킬, 즉 ‘즉발 스턴기’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성기사한텐 돌격기가 없어서 항상 아쉬웠는데 순간이동이라니……. 이건 생존기면서도, 성기사 한정으로 말도 안 되는 공격 스킬인 셈이나 마찬가지네.”

“그래. 팽팽한 전투 상황에서 네가 타이밍 좋게 그밟과 스턴 연계를 먹일 수만 있다면…… 그날의 주인공은 네가 될 수도 있는 거지. 내가 아니라!”

“오, 그건 좀 구미가 당기는데?”

“당길 뿐이냐? 그냥 이거로 정해. 더 고민할 것도 없어.”

“…….”

내 말에도 잠시 고민하던 녀석이, 마침내 마음을 굳혔는지 대답했다.

“옥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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